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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03화 (103/210)

흑막의 신! 103화

마포 불곰의 저택 내실.

쾅!

아직은 섬섬옥수라고 해도 좋을 만한 마포 불곰의 손이 앉은뱅이 탁자를 내려쳤다.

“이걸 나보고 믿으라는 말인가요?”

마포 불곰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아닌 옆에 앉아 있는 최 사부를 봤다. 이건 나를 무시하겠다는 표현이다. 어리니 이런 대우를 받는 거다.

‘이제 1개월만 있으면 나도 성인이다.’

물론 그래도 대부분은 나를 어리게 볼 것이다.

“화를 내야 할 대상이 틀린 것 같소.”

최 사부가 담담히 말했다.

“뭐라고요? 그럼 이 자리에 없는 장 선생이랑 하란 말인가요?”

“장 선생이 당신과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보시오?”

“뭐라고요? 그럼 당신 말고 누구랑 이야기를 하라는 건가요?”

마포 불곰의 물음에 최 사부는 고개를 돌려 날 봤다.

“마이 캡틴과!”

“뭐요?”

인상을 찡그린 마포 불곰이 본능적으로 날 봤다.

“그 이야기는 저랑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린 것은 가만히 있어. 이곳은 어린 것들이 놀 자리가 아니다.”

마포 불곰은 앙칼지게 내게 쏘아붙였다. 정말 기세가 여자라고 하기에는 남달랐다.

“위임장을 받은 사람은 나다. 그리고 내가 최 사부의 캡틴이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말을 높여 줄 이유는 없다.

“뭐라?”

“내가 이 빚을 인수받았다. 그럼 된 거 아닌가? 배를 째겠다는 것도 아니고 빚을 갚겠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지?”

“말이 짧군.”

마포 불곰은 그제야 내게 관심을 보였다.

“호호호! 좋아.”

“이제 이야기할 준비가 됐습니까?”

“이런 종이 쪼가리를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최 사부가 위조를 했을 거니 전문가가 봐도 틀림없다고 하겠지만 이건 분명 위조야!”

마포 불곰은 위임장을 손가락으로 들어 흔들었다. 역시 내가 어리다고 무시를 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내 담이 얼마나 크고 그릇이 어떤지 보려는 것이 분명할 거다.

“위조 맞아.”

난 마포 불곰을 보고 씩 웃었다.

“호호호! 바로 실토를 할 줄은 몰랐네.”

“그게 위조라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으니까.”

“뭐?”

마포 불곰은 잠시 당황했다가 금세 표정이 담담해졌다.

“여기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이 담보물을 가지고 난 법원에 갈 생각이야.”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법원에 가서 사채업자가 돈을 준비했는데도 담보물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담보 반환 가처분 신청을 내볼 참이야.”

내 말에 마포 불곰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포 불곰은 안 듯했다.

“그래서?”

“최 사부가 위조를 한 것이니 진품이라고 판명이 나겠지. 난 재판에 이기든 지든 상관이 없어.”

“날 한 번 들었다가 놓겠다는 거야?”

“그건 국세청이 알아서 하겠지. 내가 들 필요도 없잖아.”

내 말에 마포 불곰이 나를 노려봤다.

“날 협박하는 건가?”

“협박?”

“그래, 협박!”

“협박은 이런 거지.”

난 마포 불곰이 앞에 놓인 앉은뱅이 탁자에 손을 올려놨다. 그리고 지그시 눌렀다.

찌지지!

그 순간 내 손바닥에 가려진 부분만 무거운 것에 눌린 것처럼 원목이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여기서 당신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뭐라고?”

“밖에서 뛰어 들어오는 시간이면 난 당신 머리를 이렇게 눌러 버릴 거다. 뇌수가 철철 터지겠지.”

“어린놈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협박이지.”

내 말에 마포 불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순간 나는 살기를 담아 말했다. 당장에라도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고 말이다.

“재판을 해서 이기면 나야 좋고, 지더라도 겨우 A4 용지 몇 장 값만 날리는 거지.”

내 말에 마포 불곰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솔직히 난 장 꼰대가 여기서 얼마를 빌렸다는 것도 몰라.”

난 마포 불곰에게 거짓말을 했다. 상식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무대포로 접근하면 된다.

“법원이 네놈 말을 믿어 줄까?”

“상관없다고 했을 텐데.”

난 마포 불곰을 보며 씩 웃었다.

이 순간 내 무대포가 통했다. 벼랑 끝 무대포 담판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내게 가져다 줄 것이다.

“으음.”

처음으로 마포 불곰이 신음 소리를 냈다.

“여사님께서는 얼마나 탈세를 하셨을까? 또 얼마나 많은 차명 계좌를 만들어 놓으셨을까? 요즘 기술이 좋아서 조사하면 다 나온다던데.”

“지금 나보고 같이 죽자는 거야?”

“죽는 건 당신이지. 난 잃을 것이 별로 없어. 잃어도 손해도 없고.”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끝까지 덤빌 수 있다. 그것을 난 마포 불곰에게 인식시킨 거다.

“내,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날 건드리면 장 꼰대처럼 될 텐데.”

“장 꼰대처럼…….”

“비명횡사!”

다시 한 번 마포 불곰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어. 그러니 순순히 내놔. 내가 그냥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돈 준다고 돈.”

물론 내가 마포 불곰에게 줄 돈은 장 꼰대의 돈이다.

“네, 네놈, 이름이 뭐냐?”

“은성, 최은성!”

“은성? 은성! 호호호! 호호호! 정말 오늘 내가 대물을 만났군. 적으로 돌리기에는 무섭군.”

“줄 거야? 말 거야?”

내 물음에 마포 불곰은 최 사부를 봤다.

“최 사부, 저 아시죠.”

마포 불곰의 말에 최 사부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저, 빚지고는 잊지 않습니다.”

“쉽지 않을 거야.”

“물론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심하세요.”

마포 불곰은 다시 날 봤다.

“너도.”

“나 생각보다 쉬운 남자 아니야.”

“아직 애송이지.”

“그럴까?”

“그럼. 지금은 네가 이겼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길 수 있을지 보자고.”

“준다는 거군.”

마포 불곰은 장 꼰대가 저당 잡힌 담보물을 내게 내밀었다.

“돈은?”

난 마포 불곰을 보며 씩 웃었다.

“그거 팔아서 줄게.”

마포 불곰은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날 한참을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빨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너, 다음에 다시 보자.”

바드득!

“그럼. 우리 다시 봐야 할 거야.”

난 드디어 장 꼰대의 모든 재산을 확보했다. 물론 이 자금은 두 개의 복지 시설 운영에 사용할 거다.

난 그렇게 무대포로 마포 불곰과 담판을 하고 나서 유유히 그녀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이제 정말 하나가 끝났다.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최 사부는 마포 불곰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아니, 저 여자를 항상 조심해야 할 겁니다.”

“마포 불곰, 절대 쉬운 여자 아닙니다.”

“저 역시도요.”

“알겠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최 사부도 이제 장 꼰대의 일이 다 끝났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이 궁금한 모양이다.

“우선 일상으로 좀 돌아가야겠네요.”

난 최 사부를 보며 씩 웃었다.

“예?”

“우리 보통 사람이잖아요. 하하하!”

“그런가요?”

“예. 우리 보통 사람입니다.”

난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

장 꼰대를 제거하고 나서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습 게임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얻었다.

우선은 장 꼰대의 복지 시설을 내 요원들을 양성하는 곳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이게 가장 큰 거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얻는데 내 돈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마포 불곰에게 주기로 한 돈은 주지 않았다.

아니, 마포 불곰도 내가 돈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적 하나를 얻고, 난 많은 금전적 이익을 얻은 거였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가질 부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이 분명할 거다.

‘돈 때문은 아니다.’

마포 불곰에게 돈을 주지 않은 것은 돈을 가진 자가 사악하면 그 돈은 검보다 예리하게 힘없는 사람들을 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내 목표는 절대 최 회장과 최상혁 그리고 그 주변 것들이 아니다. 그들은 결국 정리해야 할 대상이지만 내 마지막 목표는 가진 것들이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어 그 두려움으로 인해 함부로 이 세상을 농락하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어쩌면 난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에서 그랬다.

영웅이 늙으면 반드시 악당이 된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나도 사람이니, 나도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내가 변하면 나를 응징할 그 무엇이 존재해야겠지.’

난 그런 생각을 하며 김용팔 회장의 자식을 떠올렸다.

김용팔 회장은 내게 많이 의지한다. 나 역시 말은 안 했지만 그를 의지한다. 그러니 그 아이밖에 없을 거다.

아직 태아인 그 아이로 하여금 변한 나를 멈추게 하는 존재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뿐이다.’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우선은 그 무엇보다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

악을 제거하는 테러리스트에게는 완벽히 위장된 신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도, 돌봐야 할 것들도 아주 많다.

그러기 전에 내 스스로를 좀 돌봐야 한다. 난 아직도 중졸이다. 이제 고입 검정고시와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도 우선 최소한 고졸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은 대학이다.

난 의대를 포기했다. 나 같은 누명 쓴 전과자가 의대를 가기에는 장벽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당분간은 포기다.

“시험을 좀 봐야지.”

이번에는 수정이가 내 고등학교 졸업장을 원했다. 참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를 바라는 여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어머니는 아저씨랑 해외 일주를 가셨고.”

평소에 해외여행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셨기에 난 아주 길게 여행을 보내드렸다. 그것도 최고급으로 말이다.

다시 돌아올 때 어쩌면 동생 하나 안고 들어오실 수도 있을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세 할머니 식당을 봤다.

그러고 보니 식구가 늘었다. 최 사부는 식당에서 서빙을 봤다. 그리고 뜨악새는 배달을 시작했다.

‘사기꾼보다는 저런 게 더 잘 어울리네.’

난 피식 웃었다.

“오늘 검정고시 아니야?”

최 사부는 세 할머니와 손님들을 의식해서 내게 하대를 했다.

“가야죠. 제 졸업장을 학수고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잘할 수 있지?”

“제가 말했던가요? 저는 공부가 제일 쉽다고.”

“하하하! 그런가?”

“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난 시험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때 세 할머니 식당 문을 열고 수정이 들어왔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니 화장이 약간 진해졌다. 물론 난 이제 20살이다. 저 뽀송뽀송한 우리 수정을 어찌해 볼 수 있는 20살인 거다.

‘화장발 좀 먹네.’

화장을 하면 약간 수수한 면이 사라지지만 원래 인물이 있다 보니 미모는 더욱 돋보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늦장을 부릴 줄 알았어.”

“왔어?”

“그럼, 와야지. 오늘 중졸 딱지 떼는 날이잖아.”

수정은 마치 고입 검정고시를 합격이라도 한 듯 말했다. 물론 일도 아닐 거다.

“시험 봐야 딱지를 뗄지 못 뗄지를 알지.”

“2년 전에 서울대 간다고 큰소리 뻥뻥 친 분이 왜 이러셔?”

수정이 웃었다.

“아직 그 내기 유효한가?”

난 수정을 보며 웃었다.

“그건 우리 아빠한테 물어보고. 늦겠다. 가자!”

수정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세 할머니들이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내 일상은 평화롭다. 하지만 내 본래의 삶은 이렇지 못할 것이다.

위태로울 것이고 불안할 것이다.

어쩜 이곳은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일 거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세 할머니 식당은 어느 정도 체인점 체계를 구축했다.

벌써 15호점이 창원에 들어섰다.

물론 묵은지 뼈다귀 해장국으로 주 메뉴 변신을 했다. 그에 따라 난 마산댁 할머니와 계약을 다시 했다. 수익금의 10프로를 할머니에게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물론 마산댁 할머니가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드린다고 했고 그때 마산댁 할머니는 다시 인상을 찡그리셨다.

“애기 사장은 정말 큰돈 못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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