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04화
“안 아껴야 할 때 아끼면 더 못 벌어요.”
세 할머니 식당 체인에서 나오는 돈은 내게는 이제 돈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엄청난 자금은 1년 후에 내가 가지고 있을 자금에 비하면 또 돈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나한테 돈 더 주는 게 안 아낄 때가?”
“그럼요. 우리 식당 체인점의 핵심 기술을 다 가지고 계신데 대우를 해 드려야죠.”
“호호호! 그런가?”
마산 댁 할머니는 싫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날 빤히 봤다.
“애기 사장!”
“예. 할머니.”
“나, 돈 벌 만큼 벌어도 봤다.”
“그런데요?”
난 마산댁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했다.
“더 많이는 필요 없다고. 더 많이 주면 더 욕심이 나는 법이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저렇게 욕심이 없다면 그래도 지금 보다는 조금은 더 깨끗한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마산 댁 할머니가 저런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상당한 세월과 시련이 있었을 거다.
“할머니 깜냥 것 드리는 거예요.”
“알았다.”
아마 언젠가는 묵은지 뼈다귀 해장국으로 이 대한민국의 최고 체인점이 될 수 있을 거다.
“뭐해? 가자!”
수정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응.”
난 그렇게 수정과 시험장으로 향했다.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수정은 내 팔짱을 꼈고, 지나는 사람들은 나와 수정을 봤다.
아마 수정처럼 상당한 미모의 여자와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이 남자들은 부러울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나처럼 잘생긴 남자와 팔짱을 끼고 가는 수정이 부러울 거다.
“사람들이 우리만 본다.”
수정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내가 잘나서 그래.”
수정이 걸으며 날 봤다.
“뭘 그렇게 빤히 보나?”
“너 그거 알아?”
“뭐?”
“너 정말 재수 없다는 거.”
“뭐?”
“너 재수 없어.”
“그렇게 재수가 없는데 왜 이 재수 없는 놈의 팔짱을 끼고 다니나?”
“봐! 재수 없잖아.”
역시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수정이다.
“재수가 없어도 난 네가 좋아.”
수정은 씩 웃으며 내 팔짱을 더욱 꽉 꼈다.
지금 나와 수정이 걷고 있는 곳은 거리의 인도 옆에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질주해 오는 차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뭐지?’
마치 차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중앙선을 넘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빵! 빵!
돌진해 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을 때마다 마주오던 차가 경적을 울렸다.
“저 차 이상해!”
수정이 말을 하는 동시에 차가 내 앞에 있는 가로수를 강하게 들이받으며 전복됐다.
쾅!
콰콰쾅!
차가 3바퀴나 돌았고 난 급한 마음에 수정을 꼭 안고 몸을 숙였다.
“괜, 괜찮아?”
난 수정을 봤다.
수정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파르르 몸까지 떨리는 것이 어린 새 같다.
“사고가 났어?”
“사고야. 누가 119 좀 불러줘요.”
한국 사람들은 이런 특징이 있다. 자기가 119를 부르면 되는데 꼭 누구를 시킨다. 사람들이 하나둘 전복된 차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전복된 차에서 운전자를 꺼내려 하지는 않았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어, 어떻게 해?”
수정이 날 봤다.
“구해야지.”
그래도 다행인지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서 가로수를 박을 때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았다.
난 급하게 차 안을 살폈다. 여자다.
그것도 아주 젊은 여자다.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의식을 잃지 않았다.
“괜찮아요?”
난 피를 흘리는 여자에게 소리쳤다.
“시간 없어.”
내가 여자를 구하려 할 때 수정이 날 보며 말했다.
“뭐?”
“시험 봐야 하잖아.”
“됐어. 우선 구해야 해.”
난 운전석 반대편으로 갔다. 지금 차 문이 찌그러져서 열리지 않았다. 이럴 때는 차 창문을 깨야 한다.
“모두 물러서세요. 차가 폭발할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사람들은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장 꼰대의 차도 전복을 하고 나서 폭발을 했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나 소리를 친 거다.
“어서요. 어서!”
다시 내가 소리를 쳤고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다.
퍽! 퍽!
난 발로 자동차 강화 유리를 깼다. 수백, 수천 조각으로 강화 유리가 깨어졌다.
찌지직! 지지직!
난 깨어진 강화 유리를 뜯어냈다. 그리고 빠르게 운전자 옆 조수석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안전벨트가 운전자를 살렸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밧줄처럼 운전자의 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난 바로 안전벨트를 뜯어냈다.
바직!
역시 난 평범한 사람들보다 힘이 좋다.
“이봐요? 괜찮아요.”
“헉 허허헉!”
여자는 숨을 못 쉬는 것 같았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고민을 했다. 왜 숨을 못 쉴까? 전직 의사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사고로 외상을 입거나 뇌출혈 및 장기 손상을 당한 것은 제법 봤지만, 저렇게 숨을 못 쉬는 것은 처음 봤다.
“숨쉬기 어려워요?”
“헉, 허허헉 컥! 컥!”
역시 숨을 못 쉬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차 안을 빠르게 살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것은 하얀 가루였다.
‘설, 설마 마약?’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난 예전에 마약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난 살짝 손가락으로 흰 가루를 찍어 미세하게 맛을 봤다.
‘마약이 아닌데. 그럼 뭐지?’
거의 아무 맛도 안 나는 게 꼭 밀가루 같았다.
‘설마 밀가루인가?’
그러고 보니 여자의 입술에도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뭐지?’
난 고민을 했다.
“컥, 컥커어억! 어억 컥!”
숨을 못 쉬는 고통과 비명이 섞인 굉음을 여자가 질렀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를 살살 다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난 끝내 여자를 차 밖으로 꺼냈다.
수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난 전복된 차에서 떨어져 조심스럽게 여자를 바닥에 눕혔다. 이 순간 난 선택을 해야 한다. 여자는 지금 분명 숨을 못 쉬고 있다. 벌써 얼굴이 새파란 것이 곧 질식사할 것 같았다. 이미 의식도 가물가물해지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쩌지?’
호흡 곤란이나 호흡 장애일 때는 우선 기도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통 기흉 같은 것이 생기면 목 부분에 구멍을 내어 호수를 삽입해서 기도를 확보한다. 하지만 그건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가슴이 부풀어 오른 것 같지는 않다.
‘흰 가루가 뭐지?’
난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잘못 선택을 하면 저 여자는 정말 죽거나 목소리를 잃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 여자는 죽어 가고 있었다. 누군가 분명 신고를 했을 건데 119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젠장! 뭐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난 그때 여자의 입술에 묻은 흰 가루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설마 밀가루?’
난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3월 초다. 막 대학을 개학한 시기였다.
‘우선 뭐든 해 보자.’
난 바로 여자를 돌려 눕혔다.
그런데 이 여자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폭발한다고 소리를 쳤지만 수정은 겁 없이 내 옆에 있었다. 수정도 여자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난 바로 여자를 돌리고 나서 바로 여자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고 일으켜 세웠다. 내 팔은 여자의 가슴 바로 아래 명치에 위치해 있다.
‘목에 뭐가 걸린 것일 수 있어.’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힘껏 팔에 힘을 줘서 여자의 명치를 강하게 압박을 했다.
“컥!”
여자는 컥 소리를 냈다.
이렇게 명치를 하면 식도에 걸린 이물질이 압박에 빠져나온다. 이것 역시 응급조치다.
난 다시 힘껏 여자의 명치를 더욱 강하게 압박을 하며 내 몸 쪽으로 힘껏 당겼다. 내 몸과 여자의 몸이 강하게 밀착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꼴사나운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삐옹! 에에엥! 삐옹!
119 구급차가 멀리 보였다.
‘한 번만 더!’
난 더욱 힘을 줘서 강하게 압박을 했다.
“컥!”
툭!
여자의 입에서 뭔가 하얗고 끈적이는 것이 튀어나와 도로에 떨어졌다. 난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찹, 찹쌀떡?”
“허어어억! 허어억!”
여자의 식도에서 찹쌀떡이 튀어나오자 여자는 살았다는 듯 급하게 숨을 쉬었다.
“괜, 괜찮아요?”
“허어어억!”
여자는 숨을 쉬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마 살면서 공기가 이렇게 감사하다는 것을 지금 알았을 것이다.
호흡이 원활해지자 여자는 몇 군데 골절에 대한 고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으으윽!”
원래 교통사고는 이렇다. 사고 그 순간에는 아무런 고통도 못 느낀다. 한 마디로 쇼크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고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몸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난 여자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딱 봐도 갈비뼈 3대는 부러진 것 같고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간 죽음의 위기는 넘긴 것이 확실했다.
“은, 은성아!”
수정이 떨리는 모습으로 날 불렀다.
“왜?”
난 급하게 수정을 봤다.
“은, 은지수야.”
수정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은지수가 누군데?”
“은지수 몰라? 가수 은지수!”
“가수 은지수?”
“그래! 톱스타 은지수!”
난 수정의 말에 여자를 봤다. 아까 어디서 봤을까 생각을 했던 것이 바로 이 여자가 은지수이기 때문일 거다.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다.
끼이익!
119 구급차가 급하게 섰다.
“비켜 주십시오. 비키세요.”
119 구조대원 2명이 급하게 들것을 가지고 달려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은지수를 봤다. 119 구조대원도 지금 쓰러진 여자가 은지수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갈비뼈 3대가 나간 것 같고 다리도 복합 골절이 난 것 같아요.”
난 119대원에서 설명을 했다.
“그래? 은…… 아니, 사고자를 차에서 구해 내고 응급처치를 했냐?”
“예. 식도에 찹쌀떡이 걸린 것은 빼냈어요.”
“잘했다. 네가 사고자를 살렸다.”
119 대원은 내게 짧게 말하고 돌아서서 은지수를 조심스럽게 들것에 올려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뇌출혈이나 척추손상 이런 것은 없는 듯했다.
119 대원은 은지수를 들것에 단단히 고정을 했다.
“하나, 둘, 셋!”
2명의 119 대원이 서로에게 신호를 하는 숫자를 말하며 동시에 들것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119 구급차로 옮겼다.
그때 들것에 고정된 은지수가 날 봤다. 그녀는 날 보고만 있을 뿐이지만 눈빛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난 멍하니 은지수를 봤다.
내가 연예인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한 연예인을 보는 것 역시 처음이다.
또 찹쌀떡을 먹으며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연예인 역시 처음 본다.
“은성아! 늦었어.”
수정이 소리쳤다. 난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바로 시계를 봤다. 이제 시험 시간까지 30분 남았다. 여기서 시험장까지의 거리는 차로 달려 15분 정도 걸린다.
난 이 상태라면 시험을 못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