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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06화 (106/210)

흑막의 신! 106화

수정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커피는 보통 10m 정도까지 자라지만 대부분의 커피 농장에서는 재배 및 수확의 용이성을 위해 3m 정도로만 자라게 한대.”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니다.

이제는 지겹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애인의 쫑알거림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사다리를 놓고 딸 수 있을 만큼 키우는 거네.”

“그렇지. 커피나무에서 사용되는 부분은 오로지 커피 열매뿐이며 대부분의 커피 열매에는 두 쪽의 콩이 들어 있다. 이렇게 수확한 콩을 건조시키면 원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세계 각국으로 수출한대.”

“콩처럼 생겨서 원두구나.”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대표적으로 브라질 생산 커피와 에티오피아의 하라 커피래.”

“오호! 그렇군.”

정말 수정은 주구장창 커피 생산 이야기만 했다.

“이렇게 선별된 원두를 곱게 갈아서 고온의 물에 추출해서 먹으면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된다. 알았어?”

“응. 맛있는 커피가 이렇게 머리 아픈 줄은 몰랐네. 하하하!”

“뭐?”

수정이 날 살짝 째려봤다.

“하하하! 그렇다고.”

우린 그렇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난 수정이 말해 줬던 이야기보다 다른 것을 떠올렸다.

태양의 선물, 커피!

하지만 난 태양의 눈물이라 부르고 싶다.

나와 수정이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5천 원이다. 보통 점심 한 끼보다 비싸다. 하지만 이 커피 값에서 커피 농민들 그리고 원두 생산 종사자들에게 얼마나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10원도 안 될 것이다. 이게 이 세상의 현실일 거다.

하루 종일 피땀을 흘려 수확한 원두의 값이 겨우 10원, 나머지 4,990원은 이 전문점과 거대 도매상이 먹는 거다.

어쩜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눈물일 거다.

나는 지금 눈물을 마시려는 거다. 그래서 커피가 쓴 걸 거다. 이런 사실을 아는 나지만 나 역시 커피를 마신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는 에티오피아의 눈물을 마시는 거다. 아마 세상은 다 그럴 것이다.

그게 아쉽기만 하다.

“커피 향 좋지.”

수정은 커피 향에 매료된 것 같다.

“태양의 눈물이 쓰다.”

“뭐?”

수정이 날 빤히 봤다.

“그게 무슨 말인데?”

“이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에티오피아의 빈민들은 참 많이 태양 아래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노동자들 중에는 학교를 가고 싶은 아이들도 많겠지.”

내 말에 수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 거대 커피 회사들 때문이야.”

수정의 말이 맞다.

그들은 에티오피아나 다른 커피 생산자를 착취하고 있는 거다.

“그래. 맞아. 그들의 부는 노동자의 눈물에서 나오는 거야.”

물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 세상이 다 나빠.”

수정도 인상을 찡그렸다.

세상이 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이 나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다가갈 것이다.

“너, 그거 들었어?”

우리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무슨 이야기? 뭐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있어?”

“은지수가 오늘 아침에 사고가 났대.”

“사고? 무슨 사고? 정말 어떻게 해?”

“은지수 학력이 고퇴래. 그래서 검정고시 시험 보려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대.”

난 내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는 여자애들을 힐끗 봤다.

‘그래서 찹쌀떡을 먹었구나!’

그제야 난 은지수가 왜 운전 중에 찹쌀떡을 먹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마 사람들이 시험 잘 보라고 선물로 준 찹쌀떡을 먹다가 식도에 걸려서 차량 사고를 낸 거다.

‘아쉽겠네. 시험을 못 봐서.’

난 동병상련이라고 측은지심이 생겼다. 나도 고퇴다. 아마 은지수도 누구보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을 거다. 그러니 유명 연예인이면서 그렇게 시험을 보려고 갔을 것이다.

난 은지수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난 다시 여자애를 힐끗 봤다 여자애의 말에 다른 여자애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자꾸 여자애들을 힐끗거리며 보자 수정도 여자애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됐다.

“어머! 어머! 은지수가 고퇴였어? 그래. 춤추고 노래하는 게 저급해 보이더라.”

난 순간 어이가 없었다.

노래와 춤에 무슨 학력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게 바로 이 대한민국의 문제점일 거다.

“맞아. 흐느적거리는 게 스트립 댄서 같아.”

“맞아. 재수 없어.”

두 여자애의 말에 수정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난 수정을 봤다. 수정은 저런 상황에서 참지 않는 허영 덩어리다. 아마 고등학교 때의 쌈닭 기질을 다시 발휘할 것 같았다.

아마는 역시다.

수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수정아!”

“왜?”

“참아라! 없을 때는 나라님 욕도 한다잖아.”

“그건 나라님 이야기고 못 배운 게 저렇게 무시당할 일은 아니잖아.”

수정은 날 의식한 것 같다.

사실 수정이 이렇게 나설 때면 난 말릴 방법이 없다. 수정은 아직도 은지수에 대해 씹고 있는 여자애들의 테이블로 성큼 다가갔다.

“휴우! 저 싸움닭을 어쩌지?”

난 그냥 한숨이 나왔다.

여자애들은 여전히 은지수를 씹고 있었다.

“정말, 잘났다고 몇 억씩 대학교에 기부하는 게 다 학력 콤플렉스 때문인 거였어.”

“그래.”

“걔 웃기다. 호호호!”

여자애들은 은지수를 시기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씹을 일이 생기니 신이 난 모양이다.

“몇 억씩 기부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지 씹을 일인가요?”

수정이 드디어 오지랖을 넓혔다.

“예?”

“뭐라고요?”

여자애들은 수정을 황당한 얼굴로 봤다.

“그리고 고퇴가 노래 부르면 왜 저급한데요?”

“왜 그래요?”

여자 하나가 수정이 왜 자신에게 왜 말을 거는지 몰라 되물었다.

“고퇴는 노래 부르면 안 되는 거예요?”

“그, 그건 아니지만…….”

여자애는 당황을 했다. 이 상황이면 누구나 당황할 거다.

“그런데 무슨 사이인데 그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따지시는데요?”

상황을 파악한 여자애 하나가 수정을 보며 쏘아붙였다.

“팬이거든요.”

그제야 여자애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정을 무시하는 눈으로 봤다.

“신경 쓰지 마시고 커피나 드세요.”

여자애가 그렇게 말하고 다른 여자를 봤다.

“요즘 연예인 빠들 때문에 짜증나.”

여자애의 말에 다른 여자애도 그렇다는 듯 씩 웃었다.

“뭐라고요?”

“팬이라면서요? 그만 씹을 테니까. 가라고요.”

여자애 하나가 수정을 무시하며 말했다.

“요즘 못 배운 것들이 아주 자랑인 양 난리야.”

여자는 수정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역시 무시다. 물론 지금 나선 수정이 잘못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저 여자들, 정말 싸가지 없다.

“얼마나 배우셨는데 그렇게 유세죠? 그리고 배운 사람이 그런 막말을 해도 돼요? 정말 저급한 사람들은 당신들이라는 거 아세요?”

수정의 말에 여자애가 인상을 찡그렸다.

“에이 썅! 재수 없게.”

“뭐요?”

“못 배워서 못 배웠다고 했고 저급해서 저급하다고 한 게 무슨 잘못인데?”

여자는 이제 수정에게 반말을 했다.

난 여자애들을 봤다. 딱 봐도 입고 있고 들고 있는 꼴이 된장녀들이 확실했다.

저런 것들을 건드렸으니 수정이 잘못한 거다.

“세상에 못 배워서 저급한 게 어디 있어요?”

“그건 못 배운 애들이 하는 소리고. 딱 보니 너도 고졸이나 되는 모양인데 이런 곳에서 같이 커피 마신다고 다 같은 줄 알아?”

역시 된장녀들은 막간다.

물론 이렇게 막가게 한 것은 수정이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니 나까지 기분이 나빴다. 나도 고졸도 안 되니 화가 치밀었다.

“뭐라고요? 그럼 당신들은 얼마나 배우셨는데요?”

수정의 말에 여자애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우리는 배울 만큼 배우고 있거든.”

여자애 하나가 이야기를 하면서 대학 원서를 힐끗 눈으로 가리켰다.

아마 이 원서를 보고 쫄아서 가라는 걸 거다. 대학을 안 다니는 사람은 영어나 독일어로 된 대학 전공 원서를 보고 쫀다.

난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원서를 봤다.

식품학개론이다. 원서로 되어 있지만 별 내용이 없는 책이다. 물론 식품공학과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수정은 식품학개론을 보며 씩 웃었다.

“아! 밥통과세요?”

“뭐야?”

대학생들은 식품학과나 가정학과를 밥통과라고 말한다.

여자애의 눈에 살기가 서리는 것이 이 여자애 둘은 가정학과인 모양이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여자애 하나가 바로 일어나 수정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아마 저 여자애에게는 밥통과 다니는 것이 콤플렉스 같아 보였다.

“정말 재수 없는 애네.”

다른 애도 수정을 째려봤다.

“이래서 연예인 빠들은 안 된다니까. 그만해! 저런 저급한 애랑 싸워서 뭐하니.”

여자애 하나가 다른 애를 말렸다.

“그러세요.”

수정이 씩 웃었다.

“왜 웃니?”

“나 같은 연예인 빠순이도 서울대 다니는데.”

“뭐?”

“얼마나 고급하신지는 모르는데 좀 그러네요.”

수정은 씩 웃었다.

여자애들은 수정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눈빛이다.

“서울대? 서울대는 개나 소나 다 가나 보네.”

“혹시 서울대세요?”

여자의 말에 수정이 받아쳤다.

“으음…….”

“아니세요? 개나 소나 그리고 연예인 빠도 가는 서울대인데.”

서울대를 다닌다는 말에 여자애들은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저렇게 다른 사람의 학력에 신경을 쓰는 것들은 서울대라고 하면 깜빡 죽는다. 기세등등한 된장녀들이 기가 팍 죽은 게 내 눈에 보였다.

그런데 내 눈에는 수정도 된장녀처럼 보였다.

‘저 허영 덩어리!’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렇게 누구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저급하게.”

수정은 여자애들에게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어쩜 수정은 약간 똘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저런 똘기가 있는 수정이 좋다. 그녀가 된장녀라고 해도 좋다.

수정은 당당히 내게 걸어왔다.

“아, 속 시원하다.”

수정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자애들이 수정과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봤다. 그리고 핸드폰과 날 번갈아 봤다.

“저 남자! 이 남자 아니야?”

난 여자애들의 이야기에 집중을 했다.

“뭐? 누구?”

“이 동영상! 은지수 구한 남자 동영상!”

난 여자애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요즘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어 올리는 게 일인가 보다. 난 영등포 맨발남 이후로 다시 인터넷 검색어에 뜰 게 분명했다.

아니, 벌써 검색 1위에 등극해 있었다.

그리고 내일쯤이면 내 과거사를 탈탈 털 거다. 난 그런 게 정말 싫다.

“맞네! 저 남자야.”

“맞지?”

여자애들은 신기하다는 듯 날 봤다. 아마 저 여자애들은 내일이면 또 커피를 마시며 날 씹을 게 분명할 거다.

“가자!”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밥 먹자.”

“밥?”

“응. 그 대신 밥 먹을 때 이거 어떻게 만들고 이거의 원리가 어떻고 기원이 어떤 거라고 이야기하면 밥상 엎어 버린다.”

“뭐?”

“농담이야! 가자! 배고파.”

우린 그렇게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고 나서 데이트를 끝을 냈다. 이제 내 애인 챙기기는 끝이 났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뛰어야 한다.

난 수정을 바래다주고 나서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준성. 내일 만나야겠어.’

난 씩 웃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김재창에게 전화를 했다.

-김재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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