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08화
“으음.”
이준성은 짧은 신음을 했다. 내가 한 말이 폐부를 찌른 모양이다. 자기는 아니라도 자기 회사의 사장은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같다.
회사에 사장이 있으면 바람난 사모도 있는 법이다.
호스트바에는 살짝살짝 TV에 나오는 남자 배우가 꽤 있다는 소리를 뜨악새에게 들은 것이 떠올랐다.
“그,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할게.”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죠. 그 사장, 성질머리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요.”
난 이준성을 보며 씩 웃었다.
“배우 하려고 온 것 아닌가?”
이준성은 날 뚫어지게 봤다.
“배우야 시켜 주면 하죠. 뭐 시켜 준다는데 마다할 것도 없죠.”
“그래. 우리 같이 해 보자.”
“그런데 꼭 그 회사에서 해야 해요?”
“뭐?”
이준성은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쓰레기 같은 곳에서 배우 해야 하냐고요.”
“우리 회사 그렇게 나쁜 곳만은 아니다. 조금 쉽게 가는 방법을 택하려는 것뿐이다.”
“조금씩 쉽게만 가려고 하면 큰일을 못 하죠. 대충 알아보니 특급 배우나 가수는 없던데요. 그저 A급 하나둘 있던데,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이준성은 사장과 그렇게 극렬하게 싸웠지만 이 순간에는 사장의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관행이라는 걸 거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꺾기고 휘어지는 것뿐이죠.”
내 말에 이준성이 날 째려봤다.
“아직 네가 세상을 몰라서 그래.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이 세상이 썩은 것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이로 세상의 이치를 알고 모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평생 죽을 때까지 부모 잘 만나서 고생 한 번 안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할 나이에 인형의 눈깔을 붙여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아이도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다.
“제가 분명 큰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 그건 내가 장담한다. 내 트레이닝을 잘 따라와 준다면 넌 톱스타가 될 수 있다.”
“그럼 나 하나 보고 그 회사 그만두세요.”
“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해?”
“나처럼 큰 배우가 될 사람을 그냥 그런 쓰레기 같은 사장에게 물어다 줄 수는 없잖아요. 난 그런 쓰레기 같은 회사 싫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배우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전 그런 쓰레기 밑에 있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배우 하기 싫은 거야? 아니면 더러운 이 바닥을 봐서 마음이 달라진 거야?”
“나 사실 배우 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
“뭐?”
다시 이준성이 날 뚫어지게 봤다.
“그럼 왜 날 찾아온 건데?”
“당신 사려고 왔지.”
난 바로 말을 놓았다. 지금까지는 어리니 이준성에게 말을 높였다. 하지만 이 순간 이후에는 내가 이준성의 고용인이 될 거다.
“뭐라고? 날 사? 누가? 네가?”
“당신 내가 사지. 얼마면 되나?”
“뭐야?”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이준성이 날 봤다.
“하하하! 웃기는 놈이구나!”
“지금까지 나를 웃기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난 이준성을 노려봤다. 그리고 살기를 뿜어냈다. 내 눈빛 때문인지 이준성은 날 한동안 뚫어지게 봤다.
“좋아! 그래, 나 얼마에 살 건데. 그거나 들어 보자.”
이준성은 내 말을 농담처럼 여기며 물었다.
“얼마면 되지?”
“무조건 많이 주면 좋지.”
“좋아! 그럼 나랑 그 서울대 다닌다는 애랑 그리고…….”
“그리고 뭐? 그리고 돈이 아니었나?”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나? 연예계에서는?”
“그렇기도 하지. 사람이 돈이 되는 곳이니. 그런데 아직 그 둘로는 약해. 다른 사람 없나?”
“그리고 은지수를 내가 차려 줄 당신 연예 기획사 사무실에 데려다 놓지.”
“뭐?”
이준성이 놀란 눈으로 날 봤다.
“은지수 몰라?”
“네가 말하는 은지수가 가수 은지수를 말하는 건가?”
“그래. 그 은지수.”
“그 은지수가 얼마나 비싼 가수인 줄은 알아? 계약금만 100억이라는 소리가 있다.”
“그럼 당신을 내가 100억 플러스알파에 사는 거네.”
난 씩 웃었다.
“하하하! 너 제법 농담 잘한다.”
“사무실은 벌써 준비해 놨어.”
“사무실을 준비해 놔?”
“그래. 어때? 다시 한 번 재기해 보는 거. 시원하게 말아먹었다면서. 그래서 이 바닥 사람들이 깔보고 무시하고 조롱하지 않나? 그들에게 이준성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지 않나?”
“재기?”
“보기 좋게 말아먹은 회사 다시 한 번 해 보라고. 내가 뭐든 지원해 줄 테니까.”
내 말에 이준성은 날 다시 한 번 뚫어지게 봤다.
“네가 날 지원해? 뭐가 있어서?”
“돈! 그건 나한테 가장 쉬운 거다.”
“좋다. 은지수를 내 눈앞에 데려다 놓으면 너랑 같이 개고생이든 뭐든 한 번 해 본다.”
“약속한 거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내가 약속을 못 지키면 시원하게 나 한 대 후려쳐! 그리고 그 더러운 사장 밑으로 들어가 주지.”
“좋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한 주둥이로 두 말 씹는 게 아니다.”
“물론.”
사실 돈으로 이준성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돈은 쉬운 만큼 힘이 없다. 돈이 없으면 떠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감동을 줘야 하고 충격을 줘야 하고 존경을 줘야 한다.
난 이준성에게 은지수를 주려고 한다. 아마 이준성에게는 은지수가 감동이며 충격이며 존경일 거다.
은지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최고의 가수이니까.
“그럼 더 할 말 없네. 은지수 데리고 와서 이야기하자.”
이준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때는 나한테 존댓말 하기다.”
“뭐?”
“내가 은지수를 주고 샀으니 내가 위지.”
난 씩 웃었다.
“그래. 좋다.”
이준성은 시원하게 대답을 했다.
난 이준성과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난 길을 걸으며 내 핸드폰 단축 번호 8번을 꾹 눌렀다. 뜨악새다.
물론 내 단축 번호 1번은 수정이다.
-김 씨 뭐해? 어서 배달 가지 않고.
마산댁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렸다. 바쁜 모양이다.
“바쁘시네요.”
-예. 바쁩니다.
“바빠도 할 수 없네요. 오늘 중으로 가수 은지수가 어떤 병원에 입원을 했는지 알아내서 보고해 주세요.”
-저 야근 싫어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과로사 할 것 같습니다.
“마산댁 할머니한테 제가 찾는다고 말하시고 움직이세요.”
-그럼 여기 배달은 누가 합니까?
“으음. 그건.”
그때 내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휙 지나갔다. 퀵이다.
“그 사람은 제가 보내드리죠.”
-보내 주시면 가겠습니다.
뜨악새는 마산댁 할머니가 무서운 것 같았다. 아니면 어머니처럼 좋아하던 둘 중 하나였다.
“알았어요. 금방 보내죠.”
난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이놈아! 어서어서 배달 가지 않고 뭐해?”
마산댁 할머니는 전화를 받고 있는 뜨악새를 째려봤다. 사실 뜨악새도 이제 40대 초반으로 누구한테 이놈아 저놈아 그런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었다.
“아이고, 저도 사십 세입니다. 이제 제발 그 이놈아 저놈아 좀 하지 마세요.”
“이놈아 소리가 듣기 싫으면 돈 받은 만큼 일을 해.”
“하고 있잖습니까?”
“네놈이 배달을 가야 하는 거지.”
마산댁 할머니의 말에 뜨악새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 이러다 과로사로 객사하겠습니다.”
“어린놈이 엄살은, 쯔쯔쯔.”
“저 요즘 우루사 먹고 배달한다고요.”
뜨악새는 울상이 됐다.
“우루사보다 홍삼이 좋아. 하하하!”
최 사부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홍삼?”
“그래. 원기 회복, 피로 회복에는 홍삼이다. 홍삼! 나도 홍삼 먹고 서빙한다.”
“그래도 최 씨는 찬바람 맞으면서 일 안 하잖아.”
“난 욕 바람을 배 터지게 먹잖아. 하하하!”
최 사부는 힐끗 마산댁 할머니를 봤다.
“욕 바람?”
“하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최 사부는 바로 테이블을 닦았다. 그때 최 사부의 딸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오! 우리 딸! 왔어.”
“응.”
은성이 치료를 해 준 최 사부의 딸은 건강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완치 수준이라 학교에도 다시 다니고 있었다.
“우리 새끼 강아지 왔누?”
조금 전까지 욕쟁이 대마왕이던 마산댁 할머니가 최 사부의 딸을 보자 방끗 호호 할머니가 됐다.
“예. 국밥 주세요. 배고파요.”
최 사부의 딸은 이곳에서 거의 저녁을 먹었다. 물론 사는 곳은 식당 뒤에 있는 5층 빌라의 4층이다.
물론 최 사부가 살고 있는 빌라에는 뜨악새도 살고 있고 호중도 살고 있다. 물론 진태와 형성도 살고 있다. 창권의 부모님과 창권도 은성이 구매한 빌라에 모여 살고 있다.
은성은 그렇게 자기 사람들을 한 빌라에 모았다.
은성 역시 빌라 제일 꼭대기 층에 살고 있다.
한 층에 두 가구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평수는 32평. 도합 10가구가 살 수 있는 빌라다.
은성은 제일 꼭대기 층에 살면서 옆에 비워 둔 집을 사무실처럼 사용했다. 물론 그곳이 바로 은성의 회의실이며 본부인 거다.
“알았다. 우리 강아지.”
“할머니 강아지입니까? 제 강아지지.”
“네놈도 내 아들, 저놈도 내 아들이니 저년은 내 강아지지.”
마산댁 할머니는 최 사부와 뜨악새를 아들이라고 말했다.
“예?”
“왜 싫어? 욕쟁이 할멈 아들 하는 게 싫나?”
“하하하! 아닙니다.”
최 사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싫습니다.”
“싫으면 아들 안 하면 되지.”
“전 욕 안 하시는 엄니가 좋습니다.”
“그런 엄니는 없다. 싫으면 말아.”
“예?”
“없다.”
“그럼 할 수 없죠.”
“뭐가 없는데?”
“어머니 아들 할 수밖에요. 하하하!”
마산댁 할머니가 뜨악새를 째려봤다.
“싱거운 놈. 배달 안 갈 거야?”
“갑니다. 가요.”
끼이익! 끼이익!
그때 두 대의 퀵이 식당 앞에 섰다. 뜨악새는 퀵을 보고 처음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다가 묵은지 뼈다귀 해장국이 든 철가방을 퀵에게 건넸다.
“영등포 e편한 세상 7동 402호.”
뜨악새를 마산댁 할머니가 빤히 봤다.
“뭐야? 쟤네들은?”
“애기 사장이 보냈네요.”
“애기 사장이? 왜?”
“당연히 배달시키라고 보낸 거죠. 그리고 저, 다른 일 좀 해야 해서 보냈습니다.”
“다른 일?”
“예.”
마산 댁 할머니는 빤히 뜨악새를 봤다.
“사장이 시킨 거면 가 봐야지.”
마산 댁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최 사부의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강아지, 국밥 먹으러 가자.”
“예. 할머니.”
“고년 커서 사내놈 여럿 울리겠다.”
최 사부의 딸은 이제 15살이다. 정말 청순하고 가련해 보이는 것이 커서 제법 남자를 울게 만들 정도로 예뻤다.
“애한테 별 소리를 다 합니다.”
“예쁘다는 거지.”
마산댁 할머니가 최 사부를 째려봤다.
“예. 예, 알겠습니다.”
마산댁 할머니와 최 사부의 딸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최 사부는 뜨악새를 봤다.
“무슨 일이야?”
“가수 은지수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내라는 명령입니다.”
최 사부가 나이가 더 많으니 뜨악새는 최 사부에게 존대를 했다.
“가수? 캡틴이 가수는 왜?”
“둘 중 하나겠죠.”
“둘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