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11화
‘설마 15층을 통째로 다 빌린 거야?’
난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톱스타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 그것도 특실 층을 다 빌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CF 한 편에 5억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그리고 앨범도 엄청나게 팔렸다는 말도 사실인 모양이다. 그리고…….
‘스폰서도 빵빵하다고 했는데.’
난 카더라 통신에서 들은 것을 떠올렸다.
은지수의 스폰서는 굴지의 대기업 손자라는 말이 있다. 물론 카더라 통신이지만 말이다.
‘이래서 여자는 잘나고 봐야 하는 모양이군.’
사실 은지수는 꽤나 미인이고 매력적이다. 내가 그녀를 구할 때 스친 가슴의 사이즈를 봐서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린다는 C컵 이상일 거다. 그러니 노래도 잘 부르고 인기도 있는데 미인이고 글래머이기까지 하니 스폰서가 있는 것은 당연할 거다. 그래도 뭐 부적절한 관계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여기네.”
내가 15층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이 날 막아섰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딱 봐도 은지수가 고용한 경호원일 거다. 딱딱하게 말하는 투가 꽤나 실력은 있겠지만 무게도 잡는 스타일이었다.
“은지수 씨 만나러 왔는데요.”
내 말에 경호원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렇게 찡그리는 것은 보안을 철저하게 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의문에서 나오는 표정이다.
“은지수 씨 이 병실에 없습니다.”
“있는 거 다 알고 왔어요.”
“없습니다. 저희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겁니다. 그러니 가 주십시오.”
경호원은 정중하게 내게 말했다. 난 여기서 깽판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은지수를 만난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았다.
‘두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비술을 쓸까?’
혈을 살짝 누르면 그 자리에서 기절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비술까지 쓴다는 것은 좀 그렇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자세히 보세요.”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얼굴 자세히 보시라고요. 뭐 떠오르거나 생각나는 거 없어요?”
난 경호원들을 보며 씩 웃었다.
“얼굴이 잘생기셨네요.”
경호원은 내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거다. 내가 잘생겼다는 것은 인터넷을 본 악플러들까지 다 아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거 말고 다른 거 못 느끼세요?”
“으음. 그게…….”
경호원은 내 얼굴을 보다가 눈이 커졌다.
좀 둔한 감이 있는 경호원들이었다.
‘이제야 알았네.’
눈이 커진 것을 보니 내가 누군지 안 것 같았다.
“혹시 동영상의 주인공?”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도 만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제가 잠시 만나고 싶다고만 전해 주세요. 안 된다고 하면 갈게요. 그래도 제가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경호원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싫다고 하시면 조용히 가시는 겁니다.”
“물론이죠.”
“그 대신 은지수 양이 노 하셔도 여기에 있다는 거 비밀입니다.”
“물론이죠. 두 말하면 입 아프죠.”
난 씩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 아셨습니까? 철저하게 비밀로 붙였는데…….”
“제가 사람 하나 죽이게 찾는 사람을 잘 알거든요.”
“그게 누군데요?”
“있어요. 뜨악새라고.”
난 씩 웃었다.
“뜨악새요?”
“예. 그런 사람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립시오.”
경호원들은 무척이나 내게 정중했다. 처음에는 좀 딱딱한 면이 있었지만 내가 부드럽게 말을 하고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알자 무척이나 정중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경호원 하나가 돌아왔다.
“특실 말고 옥상으로 올라오시랍니다.”
난 그렇게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은지수가 15층인 특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차단하니 덩달아 병원 옥상은 은지수의 것이 됐다.
난 옥상으로 올라가 옥상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환자복을 입고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은지수를 발견하고 뚫어지게 봤다.
“담배 피는 년 처음 봐?”
은지수는 생각보다 말투가 거칠었다.
“아니? 대놓고 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인기 가수를 처음 보지.”
내 이죽거림에 은지수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날 봤다.
“필래? 기분 더러울 때는 이게 대마 다음으로 괜찮아.”
순간 난 좀 당황스러웠다.
“대마도 하는 거야?”
“끊었다. 사람 되고 나서. 그런데 너 왜 반말이니?”
“너도 반말하잖아.”
“내가 너보다 한창 누나 같아서 말 깐 거지.”
“난 생명의 은인이거든.”
은지수가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니 나도 은지수랑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쪼그려 앉아야 한다. 하지만 남자가 쪼그려 앉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여자는 무게 중심이 뒤에 있어서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남자는 무게 중심이 앞에 있기에 쪼그려 앉는 게 불편하다.
난 그래서 바로 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왜, 기분 더러운데?”
“가방 끈이 짧아서.”
은지수는 말도 거칠게 했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인 것 같았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은지수가 TV에 출연했던 방송들을 좀 봤다.
그녀의 시원시원한 방송은 다 성격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가방끈 짧은 게 죈가?”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나한테는 죄네. 젠장!”
따지고 보면 나도 가방끈이 짧다.
검정고시 지원자이니 말이다.
은지수는 담배 한 개비를 다 피고 나서 다시 다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골초다.’
난 순간 그 생각이 들었다.
“왜, 골초 같아?”
“독심술 있네. 하하하!”
내가 웃자 은지수가 날 한 번 째려봤다.
“나쁜 애새끼들이 내가 고퇴라 내 춤하고 노래가 싸구려래. 노래하고 춤하고 가방끈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네.”
은지수는 마치 하소연을 하듯 내게 말했다.
“그 마음 알아.”
내 말에 은지수가 날 째려봤다.
“너 같은 게 어떻게 알아? 시발! 꺼져.”
은지수는 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병원복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내게 카드 한 장을 던졌다.
“이 카드 한도 끝까지 써도 되니까. 꺼져!”
내게 신세 한탄을 하던 은지수가 돌변했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은 자신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처럼 은지수를 잘 이해할 사람도 없을 거다.
나 역시 검정고시 지원자이니 말이다. 물론 합격은 했을 거다. 그러니 내가 은지수보다 조금 가방끈이 길어진 거다.
“이걸로 땡?”
난 은지수가 내민 카드를 바닥에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씩 웃으며 그 카드를 표창 던지듯 옥상에서 아래로 날렸다. 내가 날린 카드는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바람을 타고 쭉 날아갔다.
“너 뭐하는 거야?”
“한도 끝까지 쓰라며. 누군가 쓰겠지. 나도 담배 하나만 줘 봐.”
서글프고 억울한 인생을 논할 때 담배가 빠지면 섭한 법이다. 원래 이럴 때는 소주가 최고지만.
그러고 보니 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담배를 핀다. 은지수를 보니 나를 보는 것 같다.
“너 완전 꼴통이구나! 저 카드 한도가 얼만 줄 알아?”
“당연히 모르지.”
“1억이야!”
“그래? 하하하! 몰랐네.”
난 살짝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부디 꼭 필요한 사람이 주워 가게 해 주세요. 나무아미타 아멘!”
“뭐하는 거야?”
“기도.”
“그게 무슨 기도야?”
“신 하나한테 비는 것보다 둘한테 비는 게 더 좋잖아.”
내 넉살에 은지수가 피식 웃었다.
“왜 왔어?”
은지수가 내게 담배를 건넸다.
“그냥 얼굴 보려고.”
“돈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얼굴 보러 왔다고?”
“응. 국민 가수잖아. 은지수! 사인도 받고 싶고.”
“너 내 팬이니?”
“아닐 걸 아마.”
“그럼 뭐야?”
은지수가 날 째려봤다. 난 은지수를 보고 씩 웃었다.
“우리 골초 누님을 계약을 해야 어떤 사람이 내 밑에 와서 일을 하겠다네.”
“뭐? 내가 알아먹을 수 있게 말을 좀 해라. 짜증나게.”
은지수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봤다.
“말 그대로. 지금 기획사랑 계약 기간 거의 끝나가지 않나?”
“나랑 계약하자고?”
“응.”
“내가 계약금이 얼마인 줄 아니?”
“한 100억 정도 한다고 하던데.”
“있니? 백억?”
“없어.”
내 말에 은지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너 완전 똘아이구나.”
은지수의 말에 난 은지수를 뚫어지게 봤다.
“다시는 누구도 너 가방끈 짧다고 무시 못하게 해 줄게.”
“뭐?”
“내가 그 기분 잘 알아.”
“시발! 네가 뭘 아냐? 똘아이야!”
은지수는 날 똘아이라고 불렀다. 어쩜 은지수에게는 내가 정말 똘아이처럼 보일 거다. 다짜고짜 와서 1억짜리 카드를 날렸고, 이제는 100억도 없으면서 계약을 하자니 웃긴 것이 분명했다.
“나 꽤 유명한데 모르나?”
“네가 유명해?”
은지수는 날 빤히 봤다. 그리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저 표정과 행동은 날 기억해 냈다는 증거다.
나 역시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기억한 모양이네.”
“너, 영등포 맨발남?”
“그냥 성폭행미수범 아니었냐고 물어봐.”
난 인상을 찡그렸다.
“라이터나 이리 던져. 쫄지 말고.”
내 말에 은지수는 피식 웃으며 라이터를 던졌다. 자신이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 내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말은 거칠어도 마음은 착한 것 같았다.
“미안해!”
“뭐가?”
딸깍!
난 켜진 불에 담배를 붙었다. 그리고 담배를 힘껏 빨았다.
“쿨럭! 에이 오랜만에 피니까. 멍해지네.”
난 다시 은지수에게 라이터를 던졌다.
“이제 왜 내가 너의 기분을 알겠다고 했는지 알겠지. 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악플이 7만 개 달리더라. 그리고 이번에는 너 구하고 나서 5천 개나 달리더라. 그러니 너 이해해.”
내 말에 은지수는 날 빤히 봤다.
“사실이야?”
“뭐가?”
“너 누군가에게 모질게 하려고 했던 거?”
“사실일 것 같아? 아닐 것 같아?”
“난 아닐 것 같아.”
“그래. 아니야! 누명이라는 게 있더라.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게 흘러가는 경우도 있더군.”
난 다시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
휴우~,
“정말 왜 왔어?”
은지수가 내게 다시 물었다.
“말했잖아. 너랑 계약하려고 왔다고.”
“100억도 없다며?”
“내 계약 조건은 누구도 이 대한민국에서 너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어 준다야.”
“결국 맨입으로 날 먹겠다는 거잖아.”
“난 사람 안 먹거든.”
난 3류 개그를 했다.
“호호호! 너 완전 똘아이구나.”
은지수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힐끗 날 올려봤다.
“이야기 길어질 것 같은데 앉아.”
“나 바쁜 사람인데.”
난 그렇게 말하며 앉았고 은지수는 다시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깔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날 뚫어지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