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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13화 (113/210)

흑막의 신! 113화

그러고 보니 벌써 5월이다.

내가 20살이다. 장 꼰대를 처리하고 6개월이나 지났다.

꽃은 피고 여자들 마음은 살랑거리는 오월이 됐다. 이런 묘한 오월에 나 같은 미남이 캠퍼스를 걸으니 여자들이 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역시 하느님은 공평하군.’

아마 대한민국에서 독하고 못생겼지만 공부 하나는 끝내주는 곳을 찾으라면 서울대라고 말하면 될 거다.

‘저런 얼굴이니 독하다는 소리를 듣지.’

난 피식 웃었다.

이런 발상 자체가 허영인지 모르겠다.

‘그럼 수정은 뭐야?’

수정은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싸가지도 있다. 한마디로 완벽한 여자라는 거다. 내가 수정을 생각할 때, 수정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는 꽃이다 보니 앵앵거리며 따라다니는 똥파리들이 많았다.

하나님이 공평한 것은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남자들에게도 다 해당되는 소리였다. 아마 이곳이 서울대가 아니라면 저렇게 찌질하게 생긴 남자들은 모두 여자들이 오타쿠처럼 볼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대고, 그들의 못난 얼굴과는 상관없이 1등 신랑감 후보가 될 것이다.

“참!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난 피식 웃었다.

“수정아! 오늘 점심 어때?”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학생이 수정의 옆에 앵앵거렸다.

“저 약속 있다고 말했는데요. 선배.”

“누구랑?”

“그걸 제가 선배한테 이야기해야 하나요?”

수정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난 멀리서도 수정이 찡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저 남자가 지독히 따라다니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무척이나 잘 차려 입었다. 얼굴도 남자 오크 같이 생기지 않았다.

“그건 아니지. 그럼 내일은?”

“내일은 토요일인데요.”

“그럼 시간 많잖아.”

“저 남자친구랑 여행 가기로 했어요.”

수정은 거짓말을 했다. 요즘 내가 바빠서도 여행을 못갈 판이다.

“그, 그래.”

남자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친구 올 시간 다 되었거든요. 가 주실래요? 우리 남친이 보기보다 의처증이 있어서 누가 옆에 있는 거 싫어해요.”

“내가 누가니?”

“그럼 뭐죠?”

수정이 남자를 째려봤다. 처음 수정이 신입생 환영식에서 그래도 선배라고 웃어 준 것을 지금 이렇게 후회하고 있는 거다.

“우리 사랑하는 수정이 선배지?”

“예?”

수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남자를 봤다.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요. 선배.”

“뭐? 무슨 말이든 난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수정이 하는 소리면 뭐든 들어.”

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정과 남자를 봤다. 정말 남자는 수정이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수정을 봤다.

“남자들이 그러잖아요.”

“뭐? 뭘 그러는데?”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는 나무 없다고.”

“그렇지.”

남자는 수정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런데 정말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어요.”

“그럼 남자의 각오로 백 번이라도 찍어야지.”

남자는 수정을 보며 자신에게 마음을 줄 때까지 도전을 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선배.”

“그래 말해!”

“잘 생각해 보세요. 열 번 찍어서 왜 나무가 안 넘어갈까요?”

“뭐?”

“그래도 도끼인데 찍으면 언젠가는 나무면 넘어가는 거겠죠.”

수정의 말에 남자는 수정의 마음이 조금 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렇지. 지성이면 감천이고,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미인은 용감한 자가 얻는 거고, 영웅은 미인을 좋아하고.”

“정말 아무리 찍어도 안 넘어가는 것은 나무가 문제가 아니라 도끼가 문제라는 거죠.”

수정의 말에 남자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뭐?”

“거울 좀 보시라고요.”

“거, 거울?”

“전 딱 선배 같은 스타일 싫어하거든요.”

수정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도 그렇게 못난 편이 아니었다. 아니, 잘생긴 축에 드는 미남형이었다.

“내, 내가 못생겼다는 거야?”

“아니요.”

“그렇지.”

남자는 다시 씩 웃었다.

“그 대신 아예 매력이 없죠.”

수정이 남자를 빤히 봤다.

“그리고 여자라는 나무는요. 열 번 찍을 것도 없어요. 한 번 찍어 보면 넘어갈지 안 넘어갈지 딱 계산서 나온다고요. 아셨어요? 다시 말해서 전 절대 오기가 있어서 선배한테는 안 넘어가요. 아시겠어요?”

“그런 건 장담하는 게 아니야!”

정말 수정의 옆에 있는 남자는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할 만했다. 수정이 저렇게 핀잔을 주는데도 저렇게 오매불망 해바라기를 하는 눈동자이니 난 조금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난 그런 거 몰라. 난 내 마음이 가는 곳으로 움직인다.”

“그럼 빨리 다른 곳으로 움직여 주세요.”

“아직은 수정이 옆에 있고 싶네.”

“선배.”

수정이 남자를 물끄러미 봤다.

“왜?”

“과 애들이 우리 둘 두고 내기한 거 아세요?”

“무슨 내기?”

“제가 선배한테 넘어간다. 안 넘어간다 걸고 내기를 했어요.”

“오 그래? 몰랐네.”

말을 그렇게 했지만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우리 과 1학년부터 해서 128명이 내기를 했는데요.”

“그런데?”

“그중에 127명이 절대 전 선배한테 안 넘어 간다고 걸었다네요.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 믿음을 배신하면 안 되죠.”

가만히 듣고 있는 나도 정말 기분이 나빴다. 정말 내 애인 수정이 아니었다면 걸어가서 한 소리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저 남자가 불쌍하게 보였다.

‘참 여자가 싫다는데 왜 저러지?’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수정을 빤히 봤다.

“그랬니?”

“예. 그러니 제발 저 좀 가만히 건들지 말아 주세요. 지독한 관심은 부담이 되네요.”

“그런데 수정아.”

남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수정을 불렀다.

“왜 무게 잡고 그러세요?”

“네가 넘어온다, 에 누가 걸었을까?”

“그야 저는 모르죠.”

“나도 내 믿음에 배신하고 싶지 않아.”

결국 ‘수정이 넘어온다’에 건 사람은 바로 이 남자라는 말이다.

“휴우 전 모르겠네요. 알아서 하세요.”

정말 내가 봐도 수정은 이 순간만큼은 싸가지가 없고 저 남자는 청승이다. 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졌다.

“수정아!”

난 크게 수정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내 갑작스러운 출연에 수정은 잠시 당황하다가 환하게 날 보며 웃었다.

“저 애가 제 남자친구거든요.”

수정의 말에 남자는 날 봤다. 불타는 질투심이 내 머리통을 뚫고 지나갈 것 같았다. 이런 걸 보고 레이저가 눈에서 뿜어진다고 할 거다.

“누구시냐?”

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난 모질게 해서 저 수정을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다. 처음에야 조금 날 미워하고 힘들겠지만 저 남자에게 그러는 편이 좋다. 그리고 사람은 혹시 모르는 거다. 저렇게 싫어하다가도 수정이 마음이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냥 아는 선배.”

“아는 선배? 많고 많은 그 아는 선배?”

난 남자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아마 이것만으로도 저 남자는 기분이 나쁠 거다. 그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적개심이다.

그리고 내심 나를 연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과대망상증 환자처럼도 보였다.

‘과대망상 같다.’

저런 남자는 위험하다. 혼자 상상하다가 혼자 피해 의식에 빠지고, 그러다가 몹쓸 짓을 하게 된다.

‘안 좋아! 과대망상에 피해 의식까지 생기면.’

과대망상증 환자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자신이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저 남자도 그럴 것이다. 그런 과대망상을 할 수 있는 바탕은 있다. 서울대 의대를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대망상을 가진 환자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을 한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예로 자신이 초능력을 가졌다거나 영적인 힘을 가졌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 인류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가 사고를 치는 거다.

이런 과대망상은 원래 자신의 열등감에서 시작을 해서 패배감에서 종결이 된다.

다시 말해 저 남자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열등감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못생겨서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못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옛날 선풍기 아줌마가 있었다.

처음은 미녀였지만 자신의 외모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끝내 불법 시술을 하다가 얼굴이 선풍기만 해졌던 사람이 있다.

그만큼 정신 질환은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과대망상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그런 정신 질환을 가진 줄 모른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득하기에 자신은 완벽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 정신 질환 같은 게 걸렸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자신의 중요성이나 능력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쓰거나 일을 벌여 경제적 또는 법적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표출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난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자신보다 수만 배는 더 잘생긴 내가 자신의 앞에 서 있고 수정도 나를 좋다고 이러는데 한 치의 꿀림도 없다.

그리고 마치 수정이 지금 내 마수에 빠져 저러고 있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결국 표출이 되겠네.’

과대망상은 결국 표출이 되고 만다. 그럼 대형 사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해. 아까부터 지켜보니까. 한참을 이야기하던데.”

내 물음에 수정은 잠시 날 빤히 봤다.

“그냥 수업 이야기.”

“오 그래?”

그래도 수정은 남자가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거짓말을 해 줬다. 그런데 남자는 그게 더 싫었던 모양이다.

“수정이 현재 남자친구인가?

남자는 날 보며 바로 반말을 했다. 아마 자기보다 내가 3살은 어려 보이니 반말을 하는 걸 거다. 하지만 분명 기분이 나빴다.

“서울대 다니면 모르는 사람한테 반말해도 되나?”

내 말에 수정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날 봤다.

수정의 눈빛은 내가 자격지심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젠장! 실수네.’

하지만 말을 토해 내면 다시 담을 수는 없다. 이 순간의 콘셉트가 자격지심이라면 계속 그렇게 나가면 된다.

“뭐라고?”

“오다가다 본 사이도 아니니 말 짧게 하지 마시라고.”

나도 말을 짧게 했다.

“뭐?”

난 남자를 보며 씩 웃었다.

“처음 보는 사이 같은데 말 짧게 하지 마시라고요. 두 번 이야기했습니다.”

“으음.”

남자는 헛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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