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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17화 (117/210)

흑막의 신! 117화

“내가 죽으면 그렇게 꼭 해 주세요.”

남자의 말에 은지수는 살짝 놀라 멈춰 섰다.

“꼭 그렇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건 불법입니다.

“제 눈입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전 의료인으로 그렇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이상하게 은지수의 귀에 남자의 목소리 말고 핸드폰 속 통화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니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하, 하지만…….

“제, 제가 죽어 그, 그 여자의 빛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그건 어렵습니다.

“이미 전 죽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철컥!

그때 아래층 계단을 통하는 문이 열렸다.

탁! 탁! 탁!

작은 막대기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은지수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민수 씨! 민수 씨 거기 있어요?”

가냘픈 목소리의 여자가 민수라는 남자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조금 전까지 통화를 하던 남자가 급하게 전화를 끊고 일어섰다.

“왜 나왔어?”

“없어서. 당신 없으면 불안해서.”

여자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솔직하고 애절한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계단에 구르면 어쩌려고?”

“이제 익숙해서 괜찮아요. 그리고 며칠 있으면 볼 수 있잖아요.”

“그래. 그게 참 다행이다.”

여자가 가냘픈 팔로 남자의 팔을 더듬었다.

“내가 수술이 끝나고 제일 먼저 눈을 뜰 때 민수 씨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그럼. 항상 내가 옆에 있을 거야.”

민수라는 남자는 최대한 편안하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수라는 남자의 목소리는 촉촉했다. 눈물이 담겨 있는 그런 느낌을 은지수는 받았다.

‘뭐지?’

은지수는 민수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민수와 여자는 민수의 부축을 받아 계단 통로를 벗어났고, 은지수는 힐끗 그들을 봤다.

‘여자가 눈이 안 보여?’

은지수는 그제야 조금 전 탁탁거리는 소리가 맹인용 지팡이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뒷모습이 참 예쁜데 불쌍하다.’

은지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은지수의 생각일 뿐이었다. 은지수가 계단 통로를 벗어나서 아래층 병실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환자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까지 은지수에게 집중했다.

“은지수다.”

“가수 은지수다.”

“아프다고 하더니 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

사람들은 그렇게 소리치며 은지수 주변에 모여들었다.

“사인해 주세요. 언니!”

“저 언니 팬이에요.”

은지수는 그렇게 바로 사람들에게 갇혀 버렸다. 그리고 민수라는 남자가 힐끗 은지수를 봤다.

“무슨 일 있어요? 민수 씨?”

민수의 옆에 있는 여자가 민수에게 물었다.

“은지수가 이 병원에 입원을 한 모양이네.”

“은지수요? 가수 은지수?”

“그런가 봐.”

“나 그 가수 팬인데.”

여자가 수줍게 말했다.

“사인 받아 줄까?”

“사인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사인 받으려고 난리야.”

“은지수는 원래 사인 안 해 줘요.”

정말 여자는 은지수의 팬인 모양이다. 사실 은지수는 사인을 안 해 주기로 유명한 가수였다. 처음에는 은지수는 사인이 없었다.

멋들어지게 사인을 만들고도 싶었지만 이상하게 사인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안 하던 것이 이제는 은지수는 사인을 하지 않는 가수로 유명해졌다.

그래서 은지수의 팬 중에는 은지수의 사인이 아주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이 다 사인을 해 달라고 난리인데 해 주겠지.”

“원래 은지수 고집불통이라 사인 안 해 줘요.”

“사인 받고 싶어?”

민수는 여자를 물끄러미 봤다.

“받으면 좋죠. 그래도 제가 은지수 팬인데…….”

“잠깐 기다려 봐.”

민수는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의 틈에 갇혀 있는 은지수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언니, 사인해 주세요.”

“저 언니 팬이에요.”

사람들의 말에 은지수는 사람들을 빤히 봤다. 지금까지 정말 자신의 팬이라는 사람들은 은지수에게 감히 사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해 주지 않고 하기도 싫어하기에 그런 소리를 안 했다. 다시 말해 이곳에 진짜 은지수의 팬은 없다는 거다.

은지수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아마 이렇게 사람들에게 갇혀 있는 곳에서 또 다시 사인을 해 주지 않으면 많은 안티가 생길 거라는 것을 은지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은지수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고퇴 학력에다가 저급한 춤을 추는 가수로 여론은 몰아가고 있었기에 은지수는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정말 사인을 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쩜 그건 고집과 같은 거였다.

‘어쩌지?’

은지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 은지수에게 사인을 해 달라고 마구 요구를 했다.

그때 민수가 끝내 사람들을 틈을 비집고 들어서서 은지수 앞에 섰다. 은지수는 남자를 봤다. 조금 전 복도에서 이상한 통화를 하던 그 남자다.

‘어쩌지?’

“저, 저기…….”

은지수는 지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수를 빤히 봤다.

“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여자 친구가 은지수 씨 팬이랍니다. 원래 사인을 안 해 주는 거라고 부탁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인해 주시면 안 되시겠습니까?”

민수는 최대한 정중히 은지수에게 부탁을 했다.

그때 은지수는 스르륵 눈을 감으며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물론 이건 쇼다.

정말 사인을 해 주기 싫은 은지수인 모양이다.

은지수가 쓰러지자 제일 앞에 있던 민수가 바닥에 쓰러진 은지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작게 은지수의 귀에 속삭였다.

“괜찮으세요?”

그리고 사람들은 은지수가 쓰러지자 놀라 당황했다.

“은지수 정말 아픈가 봐.”

“은지수가 쓰러졌어.”

이렇게 놀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쓰러진 은지수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찰칵! 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리자 민수는 사진을 찍는 여자를 노려봤다.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민수다.

하지만 지금은 은지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간호사! 간호사!”

민수가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 틈으로 간호사들이 급하게 뛰어왔다.

“왜 그러세요? 김 선생님!”

“이 환자가 갑자기 쓰러졌어. 응급실로 급하게 옮겨!”

“예. 알겠습니다. 김 선생님!”

은지수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이야기에 집중을 했다.

‘김 선생? 설마 의사야?’

은지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은지수는 이동식 침대에 실려 응급실로 급하게 내려가기 위해 환자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로 은지수가 사라지고 민수는 조금 전 사진을 찍던 여자를 노려봤다.

“그 사진 지우세요.”

“왜 그러세요?”

여자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민수는 환자복을 입은 여자를 노려봤다.

“당신도 아픈 환자인 것 같은데 갑자기 사람이 쓰러졌는데 그걸 사진을 찍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연예인도 보장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습니다.”

민수는 약간 흥분을 한 것 같았다.

“무슨 상관이세요. 내가 사진을 찍든 말든. 별꼴이야!”

“예. 아무 상관없죠. 하지만 사람으로는 그래서는 안 되죠. 아픈 사람이 신기하게 보여서도 안 되고.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 보세요. 당신이 쓰러졌는데 다른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마구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당신은 어떻겠습니까?”

민수의 말에 환자복을 입은 여자가 재수 없다는 듯 민수를 노려봤다.

“연예인이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그 정도는 참아야죠.”

“뭐라고요?”

민수가 여환자를 노려봤다.

“별꼴을 다 보겠네요.”

여자가 돌아서려고 했다.

“지우라고. 어서!”

민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민수와 여자의 옆에 모여들었다. 웅성거리기 시작을 하더니 여자를 욕하는 사람 한둘, 민수를 욕하는 사람 한둘이 각각 자신들의 생각을 기초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 간호사도 민수를 보고 다가왔다.

“무슨 일이세요. 김 선생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간호사는 무척이나 민수에게 정중했다. 간호사는 여자를 힐끗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저런 모습만 봐도 분명 진상 환자가 확실했다.

“어서 지우라고 했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누구의 사생활도, 인권도 지켜져야 합니다.”

“별꼴이야! 재수 없게.”

여자는 마치 막말녀처럼 행동했다. 민수는 그 여자를 보고 안 되겠다는 듯 환자복 안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을 힘으로 빼앗아 바닥에 집어던졌다.

“어머? 왜 이러는 거예요?”

여자가 놀라 민수에게 소리쳤다.

퍽!

바지직!

여자의 핸드폰이 박살이 났다. 이 순간 여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의 과격한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자만 핸드폰을 던진 민수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는 법이다.

“어머! 저 의사 미쳤나 봐.”

소곤거리기 시작을 하더니 이제 대부분 민수의 무례함을 이야기했다.

“왜 이래요? 그게 얼마짜리 핸드폰인 줄 알아!”

여환자는 군중 심리를 이용하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병원에서 의사가 이래도 되는 거야? 환자한테 이렇게 위협을 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거야! 이 병원 미쳤어. 이 병원 의사도 다 미쳤고.”

여 환자는 민수의 행동을 보고 모든 의사가 다 이렇다는 투로 소리쳤다. 그리고 점점 더 수군거림이 커졌다.

“당신은 이 병원에 있을 자격 없어.”

“왜 남의 핸드폰을 부수고 지랄이야? 뭐 자격? 당신이야말로 의사 할 자격 없어.”

여자도 눈에 독기를 품고 민수를 노려봤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왜 당신이 내가 병원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막말을 해!”

지금 막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최 간호사.”

“예. 김 선생님!”

“이 여자 당장 강제 퇴원시키세요. 우리 병원은 저런 환자는 필요 없습니다.”

민수는 무겁게 말했다. 병원이 환자를 거부한다.

이것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당신이 뭔데 헛소리야?”

여자는 민수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별꼴이야 정말! 어서 내 핸드폰이나 물어내.”

“최 간호사!”

“예.”

“퇴원 수속할 때 핸드폰 가격도 되돌려 주세요. 아니, 최신 기종으로 계산해서 드리세요. 또 혹시 모르니 변호사 전화번호도 알려드리시고요. 민사라도 걸어오시면 정중하게 위자료 지급하라고 변호사에게 통보해 주세요. 그 대신에…….”

민수가 말꼬리를 흐렸다.

민수가 하지 않은 말은 너 같이 미친년은 앞으로 이런 종합 병원에서는 진료는 다 받은 줄 알라는 눈빛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세요. 저는 한 명의 환자보다 더 많은 환자들의 사생활의 보호를 우선시하겠습니다.”

민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예. 알겠습니다. 부원장님!”

최 간호사라는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자를 봤다.

“가시죠. 바로 퇴원 수속해 드리겠습니다.”

순간 여자는 황당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래도 되는 거야?”

여자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이러시면 안 되죠. 아무리 그래도 환자가 쓰러진 것을 재미있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난 그냥…….”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세요.”

최 간호사는 따끔하게 여자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 여자의 입장에서는 참 오늘 황당한 일을 당한 날로 기록될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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