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19화
“비켜요. 그냥, 오늘 기분 좋아서 그냥 갑니다.”
“나도 아주 기분이 좋거든. 두둑하게 챙겨서?”
양아치는 씩 웃었다.
“비키라고 했다.”
난 양아치를 노려봤다.
“오, ‘비켜!’ 하면 우리가 ‘예!’ 하고 대답해야 하나? 씨발!”
드디어 양아치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오늘 속초 대포항 앞바다에서부터 낙산사까지 밤꽃 향기가 솔솔 나더라. 너희들도 밤꽃 향기 내려고 가냐?”
양아치의 말에 난 인상을 찡그렸고 수정은 무슨 뜻인지 몰라 날 봤다. 사실 그 뜻을 딱 설명해 주기 힘들다.
“이죽거리면 혼난다.”
난 마지막 경고를 했다.
“혼? 내가 기다린 게 얼마인데 그냥은 못 가지.”
“뭘 기다려?”
내가 노려봤다.
“그런 게 있다.”
양아치들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가씨! 저 새끼 밤꽃 향기 싫으면 우리 것은 어때? 킥킥킥!”
이건 분명 성희롱이다. 난 화가 치밀었다.
“닥치라고 했다.”
“무슨 뜻이야?”
수정의 물음에 양아치들은 킥킥거렸다.
“아주 아무것도 모른 척을 하시네. 이 아가씨 내숭 장난 아니다.”
양아치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수정의 팔을 낚아채려고 했다.
탁!
그것을 그냥 보고 있을 내가 아니다. 난 빠르게 놈의 팔을 내 손으로 쳐냈다.
“뒤지고 싶어서 그러지?”
“그럴까?”
양아치들이 날 노려봤다. 그리고 그 다음은 덤벼들 거다.
“이 새끼가 겁도 없이.”
결국 정해진 수순처럼 양아치들이 덤벼들었다. 물론 양아치니 내 상대가 안 될 거다. 난 몇 대 쥐어박고 양아치들을 쓰러뜨렸다.
“뭐도 아닌 게. 확!”
난 바닥에 쓰러진 양아치들을 째려봤다. 그들은 이미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가자! 춥다. 어디 가서 쉬자.”
난 그렇게 말하고 수정의 팔짱을 꼈다. 수정도 양아치들이 있는 곳이 마음에 안 드는지 바로 종종걸음을 걸었다.
“아후! 정말 춥네. 너 하여튼 간 쌈질은 정말 잘해.”
여자는 원래 남자의 강함에 약한 모양이다. 그래서 미인은 대부분 운동선수나 격투기 파이터에게 뽕 가는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완벽한 남자다.
우린 그렇게 대포항 등대를 벗어났다.
“여보세요. 알바입니다.”
양아치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일은 어떻게 됐어?
“당연히 잘 깨졌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런데 돈을 좀 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빨이 나간 놈이 하나 있고 입술이 터진 놈이 하나 있습니다. 전 허리가 나간 것 같습니다.”
전화를 하던 양아치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사실 이들은 권태가 고용한 양아치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먹이 아예 돌입니다. 돌!”
권태는 양아치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맞아 본 놈은 은성의 주먹의 파워를 안다.
-알았어. 계좌 문자로 보내.
역시 권태는 은성의 부하답게 쿨했다.
“예. 감사합니다. 좀 많이 신경 써 주십시오. 아이고! 허리야!”
-알았어. 나도 그 주먹 알지. 섭섭하지 않게 챙겨 줄게.
“감사합니다.”
* * *
재창건설 사장실.
그렇게 권태는 전화를 끊었다.
“무슨 전화야?”
전화를 끊는 권태를 보고 재창이 물었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님!”
권태가 형님이라고 부르자 재창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 과장, 아직 과거를 못 벗어났나?”
“예?”
“난 형님이 아니라 사장이라고, 이 과장도 내 똘마니가 아니라 이 과장이고.”
재창의 말에 권태는 멋쩍게 웃었다.
“예. 하하하! 깜빡깜빡 합니다.”
“우리 실수하지 말자. 은성 님께 누가 된다.”
어느 순간부터 김재창은 은성을 보스라고 부르지 않았다. 자신부터 조폭의 물을 빼야 후배들도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 사장님!”
“그런데 무슨 전화야?”
“지금 은성 님께서 속초의 역사를 다시 쓰고 계십니다.”
권태는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야?”
“아마 은성 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겁니다. 아마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하는 밤이 될 겁니다. 20살 좋은 나이입니다. 수정 씨도 예쁘고. 흐흐흐!”
권태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자세하게 재창에게 설명을 해 줬다.
“오호! 하하하! 그래. 역시 우리 보스지. 좋다. 잘했다.“
재창도 은성을 위해 지원 사격을 한 권태를 칭찬했다.
이렇게 은성을 위해 모든 것은 이루어지는 듯했다.
* * *
수정과 난 도로 앞에 섰다. 이제 택시만 잡고 그럴싸한 호텔로 직행을 하면 되는 거다.
‘이제 거의 다 끝나 간다.’
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밤꽃 향기가 뭐야?”
수정은 그게 지금까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말해 주면 산통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몰라.”
내 말에 수정이 날 빤히 봤다.
“너도 몰라? 나 거짓말 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 거 알지?”
수정의 말은 사실이다. 수정은 거짓말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 그래. 알지.”
“뭐야? 너 아까 그 말 듣고 무척 흥분했다. 난 네 눈에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다. 밤꽃 향기가 뭐야?”
수정은 내게 밤꽃 향기의 진실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참 말을 해 주기 난처하다. 솔직히 모텔에 들어가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으면 쉽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이런 곳에서 해 주기 뭐했다.
“그런 게 있어.”
“봐. 너 알고 있잖아.”
난 속으로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참 말하기 좀 그래서 그래.”
그때 빈 택시가 멀리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 택시를 보고 수정이 씩 웃었다.
난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바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
수정은 택시를 잡는 나를 보며 다시 피식 웃었다. 마치 가소롭다는 눈빛이다. 그게 불안했다.
저런 눈빛은 뭔가 있다. 난 수정을 잘 안다.
내가 필사적으로 택시를 세웠고, 멈춰 선 택시를 수정은 차 문을 잡고 택시 안에 있는 기사를 봤다.
“잠깐만요.”
수정은 그렇게 말하고 날 봤다.
“은성아!”
목소리가 야릇하다. 마치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다.
“응. 춥다. 어서 들어가자.”
“나 있잖아.”
“뭐가 있는데?”
난 수정을 빤히 봤다.
“나, 밤꽃 향기가 무슨 뜻인지 안다.”
수정은 약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아직은 그 향기 알 때가 아닌 것 같다. 서울에서 봐. 호호호!”
탁!
수정은 그렇게 말하고 바로 택시에 올랐다.
“아저씨, 서울이요.”
“서울 장거리인데?”
“얼마나 줘야 하는데요?”
“이십은 줘야지.”
“알았어요. 잠깐만요.”
찌이익!
택시 창문이 열렸다.
“은성아!”
난 순간 당황해 멍해 있다가 수정이 다시 부르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왜?”
“내놔! 20만 원.”
수정은 다짜고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면 안 되나?”
난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럴래?”
“응.”
난 막둥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타!”
이것으로 내가 꿈꾸던 역사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역시 수정은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서울로 갈 때까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수정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오늘 좋은 교훈 하나 얻었지, 총각!”
택시 기사가 무료했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예?”
“서울 사람은 속초에 와서 택시 잡는 거 아니야.”
“왜요?”
“이십이면 딱 가거든. 거리가 좀 애매하잖아. 하하하!”
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네요. 오늘 보기 좋게 실패를 했네요.”
“그냥 좋은 곳에 내려 줄까?”
택시 기사도 내 아쉬운 마음을 아는 듯했다.
“아니요. 하하하! 다음에 다시 도전해야죠.”
“하하하! 그렇지. 도전 정신이 있어야 젊은이지.”
참 이런 것에 도전 정신까지 나왔다.
“총각!”
택시 기사가 씩 웃으며 날 불렀다.
“예.”
“다음에는 남이섬 가. 거기가 가깝고도 서울이랑 먼 곳이야. 배 끊기면 끝이야! 왜 남이섬, 남이섬 하는지 알게 될 거야.”
택시 기사는 자신의 노하우를 내게 전수해 줬다.
“남이섬이요?”
“그래. 거기서 역사를 이룬 사람들이 참 많다. 하하하!”
“알겠네요.”
“그런데 밤꽃 향기는 뭐야?”
택시 기사도 그게 궁금한 모양이다.
“휴우! 그런 게 있어요.”
난 그때 등장한 양아치들이 떠올라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런 게 있네요.”
난 그렇게 말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때 수정이 무슨 꿈을 꾸는지 내 품에 파고들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애가 분명할 거다. 난 야릇한 마음을 포기하고 그냥 수정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수정은 표정이 편안해지면서 더욱 깊이 잠들었다.
‘그 새끼들 다음에 보면 병신을 만들어 버린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어떻게든 남 탓을 한다. 물론 나도 철저한 단일 민족 한국 사람이다.
난 그렇게 첫 도전에 실패를 했다.
그리고 찜찜한 기분에 재창건설 사장실로 올라갔다. 연애 사업에는 실패를 했지만 앞으로 할 연예 사업은 성공을 해야 하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내가 사장실에 들어서자 모두 당황스러운 얼굴로 날 봤다. 마치 왜 여기에 있냐는 눈빛이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왜 여기에 계십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 돼?”
권태의 물음에 난 짜증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 그건 아니지만.”
“대충 탁 하면 쿵 하고 감이 오잖아. 젠장! 밤꽃 향기만 아니었어도.”
“제가 지원 사격도 해 드렸는데 실패를 하셨습니까?”
권태는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원 사격?”
“예. 하하하! 원래 쿵 하면 짝이잖습니까.”
“너, 혹시 양아치 세 명?”
“그렇습니다. 제가 다 준비하고 각본 짠 겁니다.”
“그럼 네가 밤꽃 향기의 두목이네.”
“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오늘 그 밤꽃 향기 때문에 역사를 망쳤거든.”
난 무섭게 권태를 노려봤다. 내 눈에는 살기까지 감돌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권태는 목숨의 위협은 느끼고 뒤로 슬슬 물러났다. 이래서 사람들은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너, 너 거기 서라.”
“싫, 싫습니다.”
처음으로 권태는 내 명령을 거부했다. 그리고 김재창은 무슨 일인지 일이 권태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눈치를 줘서 권태에게 도망을 치라고 했다.
“너 이리 와!”
난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와 동시에 권태는 급하게 살기 위해 사장실 문을 박차고 도망을 쳤다.
“왜? 왜 그러십니까? 보스!”
“저 새끼가 밤꽃 향기 두목이라고.”
아마 재창은 죽을 때까지 이 이유를 모를 것이다. 그렇게 속초의 해프닝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