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20화
은지수는 그렇게 자신의 병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처음 호기심과 무료함에 내려갔던 그 계단 통로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 복도에는 자신이 죽는다고 말했던 김민수가 있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남자였지만 은지수의 머릿속에는 온통 김민수와 그의 여자인 시각 장애인 여자가 있었다.
‘뭘까? 왜 그런 걸까?’
여자의 호기심은 무죄라고 했다. 그리고 은지수는 김민수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 핸드폰 촬영을 막아 준 것이 김민수였으니 말이다.
똑똑!
조심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이 병원 특실 병동은 오직 은지수를 위해 전 병동이 예약이 됐다. 그러니 자신의 병실 문을 두드릴 사람은 없었다.
‘김민수인가?’
은지수는 자신의 사인을 받고 싶으면 오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옆에서 간호를 하던 코디가 은지수를 봤다.
“올 사람이 없는데?”
-문 열어 줘!
은지수는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코디는 은지수의 입모양을 보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코디가 병실 문을 열어 줬다.
역시 은지수의 예상대로 김민수였다. 처음 은지수가 김민수를 만났을 때는 사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지금 병실로 들어온 김민수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김민수는 코디에게 물었다.
“언니가 들어오시라고 하시네요. 지금 언니 상태가 무척 안 좋아요.”
코디는 힐끗 은지수를 보고나서 고개를 돌려 김민수에게 말했다.
“성대 결절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탁탁! 탁탁!
은지수가 침대 위에 앉아 뒤에 있는 벽을 두드렸다. 말을 할 수 없느니 이렇게 신호를 보낸 거다. 그러자 김민수는 그 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은지수 앞에 섰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은지수는 코디를 보며 펜과 종이를 달라는 시늉을 했고 은지수 옆에서 눈칫밥만 몇 년을 먹은 코디는 그 뜻을 알았는지 바로 메모지를 가져다 줬다.
-원래 꾀병이었는데 여기서 병이 생겼네요.
은지수는 메모지에 적어 민수에게 보여 줬다.
“그렇군요. 성대 결절의 원인은 저희 의료진도 그 원인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은지수가 적은 내용에 김민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도 가수이신데 걱정이 안 되세요?”
-그래도?
은지수는 그렇게 적고 김민수를 째려봤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수들을 잘 몰라서…….”
-‘그래도’라는 말에 무척 아픈 사람들도 있어요.
은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예. 그렇군요.”
김민수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은지수에게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그리고 저도 신세를 진 게 있네요. 고맙습니다.
은지수는 최대한 또박또박 글을 적어 김민수에게 보였다. 하지만 정말 악필 중 이런 악필은 없을 것 같았다.
“환자의 병에 대해 비밀을 지키는 것이 의사이기도 하지만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병원에서만은 지켜 주는 것도 의사입니다.”
김민수의 말에 은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사인을 안 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민수의 말에 은지수는 김민수를 빤히 봤다.
-원래 저 사인 없어요.
“아 그렇군요.
-예. 그래서 안 해 주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예요. 물론 무척이나 싸가지 없게 보이지만요.
“그럼 은지수 씨 이름 세 자만 적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 여자 친구가 은지수 씨 팬입니다.”
김민수의 말이 은지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김민수의 여자 친구는 시각 장애인이다. 그런 사람이 오디오형 가수도 아닌 비디오형 가수인 자신의 팬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제 팬이 됐죠?
은지수는 그렇게 적어 김민수에게 보였다.
“노래를 들으면 활력이 생긴다고 하네요. 저야 잘 모르겠지만 은지수 씨 노래에는 열정이 있나 봅니다.”
-그런가요?
은지수는 그렇게 적고 나서 자신의 코디를 봤다. 그리고 코디는 바로 자신의 가방에서 신작 앨범을 가지고 왔다.
-있네.
은지수는 코디를 보며 살짝 웃었다.
“혹시나 몰라서 몇 장 챙겼어요.”
역시 코디는 영리하고 눈치가 밝았다.
-잘했네.
은지수는 그렇게 적어 보이고 나서 자신의 신작 앨범에 김민수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이름 세 자를 또박 또박 적어서 앨범을 건넸다.
-아마 1호 사인본일 거예요.
“이제 사인이 생기셨네요.”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앞으로 줄 수 있는 선물 중 하나가 될 겁니다.”
김민수는 그렇게 말하고 아주 조금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마 은지수가 그 복도 계단에 없었다면 이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냐고 의아해했을 거다. 하지만 은지수는 아주 조금 뭔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지수는 김민수를 빤히 보다가 메모지에 뭔가를 적었다.
-당신, 왜 죽어요?
그리고 천천히 김민수에게 그 메모지를 보였다. 그 메모지를 보는 순간 김민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무, 무슨 말씀이시죠?”
-죄송해요. 오늘 복도에서 들었어요.
지수는 무척이나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아마 말로 미안하다고 했다면 김민수의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메모지의 대화이기에 왠지 김민수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김민수는 은지수의 펜을 받아 메모지에 적었다.
-뇌종양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네요.
-뇌종양요?
이제 메모지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서요? 그래서 눈을 여자 친구에게 주신다는 건가요?
역시 여자는 육감의 동물이다.
은지수는 그녀에게 빛을 주고 싶다고 말했을 때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 들으셨군요.
-예. 미안해요.
은지수가 적은 글에 김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뚝 하고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은지수는 바로 코디를 봤다.
그리고 눈빛으로 밖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했고 코디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역시 눈치가 좋은 코디다.
-미안해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아닙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했는데 속이 시원하네요.
김민수의 눈은 촉촉했다.
남자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많은 것을 의미할 거다.
-치료할 수는 없는 건가요?
-치료를 하기에는 제가 너무 많이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그녀에게는 너무 시간이 부족합니다.
김민수의 메모지의 내용이 은지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김민수는 그렇게 적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저기요?’
은지수는 급한 마음에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은지수였다.
하지만 김민수는 은지수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탁탁! 탁탁!
은지수는 다시 침대 뒤에 있는 벽을 두드렸다. 그렇게 은지수가 돌아보라고 자신을 보라고 두드려도 김민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은지수는 뭔가 급하게 메모지에 적어서 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는 김민수 앞을 막아서서 메모지를 김민수의 눈앞에 보였다.
그 메모지를 본 김민수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 눈빛에 은지수는 놀라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제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사인 앨범 고맙습니다.”
김민수는 짧게 묵례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그런 김민수를 은지수는 잡지 못했다. 아니, 남자의 사랑이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민수가 밖으로 나가고 코디가 병실로 들어왔고 바닥에 앉아 바르르 온몸을 떠는 은지수를 보고 코디가 놀라 은지수에게 뛰어갔다.
-언, 언니 무슨 일이예요.
‘저, 저 사람! 저 사람 잡아!’
은지수는 코디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은지수는 손으로 어서 저 사람 잡으라고 신호를 했지만 은지수의 코디는 은지수의 행동이 더욱 걱정이 되었는지 은지수 옆에 있었다.
‘어서 저 사람 잡으라고. 어서!’
애타게 소리쳤지만 은지수의 목소리는 그렇게 끝내 나오지 않았다.
* * *
이준성이 소속되어 있는 연예 기획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사장은 표정이 심각하다 못해 굳어져 있었다.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뭔가 분명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고 그 모니터 안에는 신인 가수 자살이라는 뉴스가 떠 있었다.
“젠, 젠장! 시발년이 누구 앞길 막으려고 죽고 지랄이야!”
사장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지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신인 가수 자살 뉴스의 주인공은 바로 이준성이 소속되어 있는 연예 기획사 소속 여가수였다.
그때 이준성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고 그 뒤에 잔뜩 겁먹은 여자 하나가 침울한 표정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사장님!”
이준성이 소리치자 사장은 이준성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조용히 해! 나도 머리 복잡하니까.”
“사장님 때문에 연희가 죽었습니다.”
이준성이 사장을 노려봤다.
“그게 어떻게 나 때문이야? 그년이 지 죽고 싶어서 죽은 거지.”
“사장님이 그렇게 내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저년은 왜 안 죽어? 같이 보냈는데 왜 안 죽고 왔냐고?”
사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이준성 뒤에 말없이 울고 있는 어린 여자를 봤다.
“사. 사장님!”
“연예계가 더럽고 치사하고 이런 곳인지 몰라서 들어온 거야? 다 알면서 온 거잖아. 그런데 왜 죽고 지랄인 거야! 왜?”
“사장님!”
이준성은 사장을 노려봤다.
“왜? 왜 넌 깨끗하다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역겹다. 혼자 깨끗한 척하는 너 같은 새끼가 더 역겹다.”
사장은 괜히 이준성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사장은 뒤에서 작게 흐느끼고 있는 여자에게 걸어가 여자의 어깨를 꽉 잡았다.
“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사, 사장님!”
“연희는 그냥 심한 우울증에 의해 자살을 한 거다. 알았어?”
“그, 그게 아니잖아요.”
“그게 아니면 뭔데? 그거라고 정말 그거야! 너 이 바닥에서 매장당하고 싶어?”
사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지금까지 조용히 흐느끼던 어린 여자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스타가 되려면 이런 일은 겪고 넘어가는 거야. 연희 년처럼 못 참고 죽으면 그냥 개죽음인 거다. 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알았어?”
“저, 저는…….”
“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사장은 어린 여자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알았어?”
“예, 예, 사장님!”
“당신, 쓰레기다.”
뒤에서 사장을 노려보고 있던 이준성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한없이 밀려드는 분노를 꾹꾹 누르려는 것 같이, 그게 아니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그렇게 이준성이 말했다.
“뭐라고?”
사장이 이준성을 노려봤다.
“너 뭐라고 했어? 쫄딱 망한 새끼 데려다가 일거리 주고 봉급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너 뭐라고 했어?”
사장 역시 지금 흥분해 있었다.
“너 쓰레기라고.”
“이 개새끼가.”
사장이 이준성의 뺨을 기분 나쁘게 착착 때렸다.
그 따귀를 이준성은 분노한 눈으로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