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22화
민수는 암센터 과장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애인이 있는 병실이 아니라 은지수의 특실 병동을 찾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병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서 딱 세 명이었다.
자신과 과장 선배 그리고 은지수다.
그래서인지 착잡한 마음에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은지수를 찾아갔다.
민수는 은지수의 병실 앞에 섰다.
똑똑! 똑똑!
그리고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 민수가 의사 가운을 입지 않고 있었다면 이곳까지 올 수가 없을 거다. 그리고 민수가 이 세브란스 병원의 부원장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라올 수 없었을 거다.
은지수는 슬픈 눈을 한 민수를 봤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없기에 손으로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요즘 은지수는 온통 민수 생각뿐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애잔함으로 변했다. 은지수는 민수가 앞으로 뭘 하려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민수의 말이 젖어 있었다. 은지수는 천천히 민수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처음 자신이 말을 못하게 되었을 때는 무척이나 불편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을 잃은 대신에 귀가 열렸고 또 마음이 열렸다.
“고맙습니다.”
민수는 무척이나 예의가 발랐다. 은지수는 메모지에 뭔가를 적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저와 저를 볼 수 있는 그녀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겁니다.”
민수는 작게 말했다.
-그러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아시다시피 전 얼마 못 삽니다.”
-아가씨는 아세요?
은지수의 질문에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아니, 몰라야 합니다.”
민수의 말에 은지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분명 은지수는 민수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냥 사라지시면 아가씨가 많이 힘들어 할 거예요.
“힘이 들어도 살아는 질 겁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될 거고.”
민수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은지수는 민수를 빤히 보며 메모지에 글을 썼다.
-그쪽은 그게 되세요? 그게 되시냐고요?
“아픈 기억은 주고 싶지 않습니다.”
-무척 이기적이시네요. 그렇게 멋진 남자만 되고 싶으세요?
은지수의 메모에 민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 그런 거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아프니까. 사랑이죠. 아파야 사랑이죠.
은지수의 메모에 민수는 입술을 지그시 다시 깨물었다.
“아, 아파야 사랑…….”
-살아갈 희망은 있게 만들어 줘야죠.
은지수의 말에 민수는 은지수를 빤히 봤다.
-그래야 사랑이잖아요.
민수는 은지수의 메모지를 빤히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은지수는 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목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은지수는 은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 * *
난 영등포 빌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최 사부가 앉아 있었다.
“연예계로 뛰어드실 생각이십니까?”
“영향력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운대들에게 위장할 신분은 필요합니다.”
“위장용으로 연예계를 선택하신 겁니까?”
“남자 자운대 몇 명을 묶어서 남성 그룹으로 만들면 될 것 같아서 준비하는 겁니다.”
“그럼 여자는 걸 그룹이겠군요.”
“그렇게 되네요. 하하하! 물론 사회 전반에 모두 다 배치를 할 겁니다.”
내 꿈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커진 꿈만큼 점점 더 거대해질 거다.
-누군가 본부 근처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난 바로 TV를 켰다. 내가 켜는 TV는 외부를 감시하는 CC카메라다. 마치 공중파처럼 모니터로 채널을 돌리면 각 요소요소에 배치된 CC카메라를 볼 수 있다.
영등포 빌라를 중심으로 외부에 18개 그리고 내부에 62개가 설치되어 있다.
난 책상 위에서 작은 단추를 누르며 말했다.
“어디지?”
-본부 정문입니다. 채널 12번입니다.
지금 스피커를 통해서 말하는 자는 본부 경계조다. 이들은 내가 있는 영등포 빌라를 중심으로 배치가 되어 있다.
난 스피커에서 말한 채널 12번을 돌렸다.
‘왜 먼저 왔지?’
지금 영등포 빌라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이준성이다. 물론 그는 내가 준 명함을 보고 찾아온 걸 거다. 하지만 아직 내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은 뭔가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일 거다.
-어떻게 합니까? 캡틴!
이 본부에서는 모두 다 나를 캡틴이라 부른다. 어리지만 난 이들의 캡틴인 거다.
“문을 열어 주고 정중히 모셔라. 새로운 자운대 대원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난 TV모니터에 집중을 했다. 지금 이준성 뒤에서 붕어빵을 구워 팔고 있는 사람도 내 본부를 지키는 우리 쪽 사람이다.
‘잘 감시를 하고 있군.’
내가 모니터를 보는 동안 빌라 입구에서 건장한 남자 하나가 밖으로 나가 이준성에게 짧게 묵례를 하고 몇 마디 나누고 나서 이준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물론 창권의 가족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누굽니까?”
최 사부가 네게 물었다.
“이준성이라고 연예계에 진출할 때 교두보가 될 인물입니다.”
“정말 연예계에 진출을 하실 생각이시군요.”
“좋은 배우도 있고 꽤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으니 무난히 성공을 할 겁니다.”
“좋은 배우라고요?”
최 사부는 살짝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날 봤다.
“최 사부님과 제자들 그리고 사기판 배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
“전 그들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못 봤습니다. 최 사부님에 비하면 지금 연기자들은 시쳇말로 발 연기를 하는 겁니다.”
“하하하! 이상하게 접목을 시키십니다.”
“활용을 잘하는 겁니다.”
“얼굴 팔리면 피곤해집니다.”
“영화배우 아빠, 괜찮지 않습니까.”
난 장난스러운 눈으로 최 사부를 봤다.
“캡틴이 지시를 하면 전 뭐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최 사부의 충성심을 알 수가 있다.
“예. 제가 지시하는 것만 하시면 됩니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도착했습니다.
이 영등포 빌라 내부로 들어온 이상, 들어온 사람은 철저히 감시를 당하게 되어 있다. 난 빌라 한 호를 감시 본부로 구성했다. 수십 개의 시시 티브이가 그렇게 감시를 하게 된다.
“들여보내.”
난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제가 열어 주죠.”
최 사부가 일어섰다.
“예.”
그렇게 이준성은 날 찾아왔다. 난 이준성이 들어서자마자 CC 카메라 모니터를 서랍에 넣고 TV가 나오는 모니터를 꺼내 켰다.
그러자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9시 뉴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거였다. 뉴스에는 신인 여가수 자살 사건 의혹에 대해 심도 있게 보도를 하고 있었고 성상납부터 각종 브로커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극적인 이야기를 여과 없이 토해 내고 있었다.
‘공중파라는 것들이, 쯔쯔쯔!’
난 바로 혀를 찼다.
그리고 이준성이 내 앞에 착잡한 얼굴로 섰다. 그리고 힐끗 눈동자를 돌려 TV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빨리 왔네요. 무슨 일이죠?”
“그 내기 제가 진 걸로 하겠습니다.”
목소리가 쫙 가라앉은 것이 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찰나의 순간 TV화면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 이준성을 떠올렸다. 이준성도 연예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저런 뉴스에 민감할 거다.
난 촉을 움직였다.
내 촉은 항상 날카로운 선택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내 촉을 믿기로 했다. 물론 틀려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뉴스 때문에 왔나요?”
내 물음에 이준성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내 촉이 명중을 한 거다.
“그렇습니다.”
이준성은 떨리는 눈빛과 다르게 담담히 말했다.
“그럼 은지수가 없어도 내가 차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겁니까?”
내 파격적인 제안에 이준성은 날 빤히 봤다.
“이유가 뭡니까?”
“이유가 뭘까요?”
난 이준성을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이준성은 날 뚫어지게 봤다.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이준성은 이제 내게 말을 높였다.
“전 연예계에 진출을 할 겁니다. 지금 2005년이지만 2010년, 앞으로 5년이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가 K팝에 열광을 할 겁니다. 그럼 그만큼 영향력을 가질 겁니다.”
“확신하십니까?”
또 다시 이준성의 눈빛이 떨렸다. 이것은 이준성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연예계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들이 너무 많습니다.”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요?”
“뉴스에 나온 신인 여가수를 자살하게 만든 놈들을 말합니다.”
이준성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저런 살기는 위험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저 죽은 분이 자살한 이유가 다 있군요.”
“너무 마음이 여렸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 딴따라 판에 맞지 않을 만큼 말입니다.”
“아는 사람입니까?”
내 물음에 이준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 동생처럼 여기는 아이였습니다. 이 순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고, 막아 주지 못해 또 죄스럽고,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해 저를 원망할 뿐입니다.”
이준성의 말에 난 또 다른 사회의 악을 찾은 것 같았다. 지금 우선 사회의 악으로 간주해서 제거할 존재로 여기는 것은 마포 불곰이다.
하지만 마포 불곰은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기에 나 역시 세력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력은 조금씩 눈에 보이게 강해졌다. 벌써 자운대 1기가 수료를 마쳤다. 물론 완벽히 충성심을 갖춘 대원들은 아니다.
하지만 난 그들을 충분히 통제를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영등포 빌라를 감시하고, 누군가를 조사하고, 또 누군가의 죄를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약점을 찾고 있다.
진정한 자운대 2기가 수료를 하는 순간, 난 완벽한 세력을 만드는 발판을 얻을 거다.
“그래서요?”
“아무도 그런 짓을 하지 못하는 연예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딴따라가 아니라 연예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미래의 K팝이 정말 세계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난 이준성을 빤히 봤다.
“가수는 노래만 부를 수 있게, 배우는 연기만 할 수 있게 바탕을 만들어 주십시오. 스폰서가 필요 없이 자신의 재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자금력이 필요합니다.”
이준성은 내게 돈을 요구했다.
돈이라는 것은 어떤 순간에도, 어떤 시점에도 필요한 모양이다.
“결국 돈이군요.”
“예. 어렵습니까?”
이준성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가능하시겠습니까?”
“예. 제가 오직 인재 발굴에만 신경을 쓸 수 있게 해 드리죠.”
이제 난 드디어 연예 기획 사업에 첫 발을 뗐다.
“그리고 간판스타로 은지수를 데려다 드리죠.”
“허세가 아니었습니까?”
“저희랑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내 말에 이준성은 무척이나 놀라는 것 같았다.
“조건이 뭡니까? 100억이 계약금인 가수입니다.”
“엄청난 것을 요구하더군요.”
“뭡니까? 설마 100억 이상을 요구한 겁니까?”
“아니요. 진짜 가수가 되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내 말에 이준성은 다시 놀랬다.
“진짜 가수라고요?”
“예. 진짜 가수요.”
난 이준성을 보며 씩 웃으며 이제 은지수를 찾아갈 때가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넘게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청각을 무척 예민하게 만들어 놨다.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될 거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듣게 될 거다.
그리고 자신만의 감성을 찾게 될 거다. 그 감성을 찾게 되면 난 비술로 그녀의 성대 능력을 최대한으로 강화시켜 주면 된다. 그리고 약간의 영약을 이용해서 그녀를 조금 더 어리게 만들면 된다.
‘이제 은지수를 만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