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25화
하지만 은지수의 모든 설명을 듣고 나서 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자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 두렵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꼭 살려 줘.”
“살, 살려 줘?”
“그래. 넌 분명 기적을 만들 수 있잖아.”
“기, 기적?”
“그래. 기적!”
난 말까지 떨렸다. 어쩜 난 기적을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닐 것이다. 기적은 바로 김민수가 만들려는 것이 바로 기적이었다.
“꼭 그래야 하나?”
“뭐?”
“그 사람을 꼭 살려야 하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남자가 사랑하며 죽게 두면 안 되는 건가?”
“최은성!”
은지수가 내게 소리쳤다.
“모든 것이 변하면 사랑이 변할지 몰라…….”
난 문뜩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쩜 그에게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모든 것을 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나다.
“그런 일 없어.”
“그래야겠지.”
난 불안했다. 그리고 점점 더 위태로워졌다.
내가 은지수가 말한 기적을 만들고 나서 두 사람의 사랑이 변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찌 보면 한 남자의 마지막 사랑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해. 그리고 사랑도 변해.”
“변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어,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변하지 않게 만들어!”
난 은지수를 향해 소리쳤다. 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말 무엇이 내 마음을 이렇게 위태롭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처음이다. 내가 힘을 얻고 그 힘을 사용함에 있어 불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넌 할 수 있잖아. 어떻게든 넌 할 수 있어.”
“뭐?”
“시험을 해 보면 되는 거잖아. 고쳐 주고 사람이 변하면 다시 돌려놓으면 되잖아.”
“그럼 둘 중 남은 하나는?”
“뭐?”
“둘 중 하나는 남아 아플 거다. 그것도 미치도록 아파할 거다.”
“완벽한 결과는 없다. 모든 것은 그저 흘러가는 것뿐이야.”
“흘려간다…….”
“그래. 우리도 흘러가는 거잖아.”
은지수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좋아! 그럼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 번 보자.”
난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쩜 이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실험이 될지도 모른다. 만약 이 실험이 실패한다면 난 더욱 잔인한 테러리스트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조금씩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할 거다.
‘나도 변할지 모른다.’
난 문뜩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시험을 할 생각이야?”
“둘 모두 다 해야지. 여자의 사정과 그 남자의 사정, 모두 다 시험해 볼 참이다.”
난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우선 죽여 주지. 그리고 다시 살려 볼 거다.”
“뭐?”
“우선 남자부터다.”
난 결심을 했다. 우선 남자부터 시험을 할 것이다. 이건 어쩜 인간 본성에 대한 시험일 거다.
“어떻게 할 건데?”
“비밀이다.”
난 그렇게 말하고 은지수를 봤다.
“이제 컴백 준비를 해야지.”
그때 특실 병원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은지수는 그 남자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은지수 양. 우리랑 계약합시다.”
다짜고짜 들어오자마자 남자는 은지수에게 계약을 하자고 말했다.
“전 이미 계약할 곳이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가 더 신경을 써 드리겠다는 겁니다.”
“전 이제 돈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말에 중년의 남자는 힐끗 은지수를 조롱하듯 웃었다. 난 그 웃음을 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분명 그랬다.
“이제 곧 은퇴를 할 나이가 됩니다. 그동안 노후 준비는 해야죠. 120억입니다.”
지금 은지수에게 계약을 하자고 말하는 자는 바로 이준성과 싸운 바로 그 사장이었다.
“뭐라고요?”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전 분명 계약할 곳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은지수가 째려보며 말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쪽에서는 얼마를 더 준다고 합니까? 제가 그 금액에 무조건 20억을 더 높여 드리겠습니다.”
난 남자의 말을 듣고 놀랐다.
은지수의 몸값이 무려 120억에 플러스알파라는 말인 거다.
은지수는 날 봤다.
“넌 얼마 줄 건데?”
은지수의 말에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날 봤다. 자신의 경쟁 상대가 나라는 것이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그리고 눈빛이 살짝 야릇해졌다.
“어디서 우리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있죠.”
난 멋쩍게 웃었다.
“어디서?”
“그건 알아서 찾으세요.”
그리고 난 은지수를 봤다.
“그건 우리 사장님이랑 이야기하세요. 곧 오실 거니까.”
“사장님?”
은지수도 날 빤히 봤다.
“예.”
똑똑!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네요. 우리 사장님!”
난 병실 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 줬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난 바로 이준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수고했다.”
이준성은 내게 하대를 했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물론 외부에 나왔을 때만 해당되는 말이다.
난 이준성을 비롯한 모든 내 사람들에게 완벽한 캡틴이다.
이준성은 침대에 앉아 있는 은지수를 봤다. 은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에 있던 남자는 은지수의 행동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왔을 때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계약을 하기로 했다는 남자를 봤다.
그리고 바로 인상을 구겼다.
“너, 너는…….”
물론 이준성도 옛날 회사 사장을 보고 잠시 놀랐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미소로 답례를 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남자는 나직이 이준성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준성이 대답해 줄 이유는 없었다. 이준성은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가 은지수에게 짧은 묵례를 했다.
“은성 연예 기획사 대표 이준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전 아시다시피 은지수예요. 제가 잘 부탁드리죠.”
“야! 이준성!”
남자가 자신을 무시한 이준성을 향해 소리쳤다.
“잠시만.”
이준성은 은지수에게 마치 양해를 구하는 듯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사장을 봤다.
“왜 그러시죠?”
“너, 너 어떻게 된 거야?”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좋다. 그래, 어떻게든 돈을 끌어 모을 수는 있지. 은지수 얼마 불렀냐?”
“영업 비밀이라서…….”
“얼마 불렀냐고?”
남자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이준성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날 봤다.
“여기 병원인데…….”
“예. 그렇습니다. 사장님!”
난 약속한 대로 이준성에게 존댓말을 했다.
“저거 치워!”
“알겠습니다.”
“악취가 난다. 악취가!”
이준성의 말에 남자는 이준성을 노려봤다.
“뭐? 뭐라고?”
하지만 남자의 행동은 거기까지였다. 난 바로 남자를 병실 밖으로 밀어냈다.
“조용히 나가세요. 냄새 난다잖습니까!”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준성! 넌 절대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해!”
남자는 내게 끌려 나가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난 그렇게 자연스럽게 은지수와 이준성이 있는 병실에서 퇴장을 했다. 내게 끌려간 남자는 씩씩거리며 날 째려봤다.
“이거 놔!”
“당신,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난 남자를 노려봤다.
“뭐?”
하지만 내 눈동자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내가 오늘 좀 바빠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역시 악취가 나네.”
난 그렇게 말하고 남자를 무시하며 걸어 나갔다. 그리고 바로 핸드폰을 켰다.
“접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캡틴!
“연세 세브란스 병원 부원장 김민수라는 남자를 감시하고 모든 것을 알아내 주세요.”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은 바로 뜨악새다.
“예. 그런데 무슨 일입니다.”
“그 사람이 자살을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뜨악새가 잠시 놀란 듯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여실히 들렸다.
-언, 언제까지 정보를 조사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저도 작전을 짜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특이한 이동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특이한 이동이라고 하시면?
“깊은 밤에 병원에 온다든가…… 이러면 바로 보고해 주세요. 그리고 김민수라는 남자의 모든 것을 조사해 주세요.”
-예. 먼지 하나까지 털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제 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랑이 변할지 안 변할지 보자.’
절망적이기에 저런 사랑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못된 생각일 거다. 남의 사랑을 의심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내 기적은 흔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
내 명령에 뜨악새는 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정보들을 계속 수집해 나갔다. 그리고 끝내 몇 가지 일을 알아왔다.
“설명해 보세요.”
난 지금 본부에 앉아 있다. 내 옆으로 최 사부가 앉아 있고, 김재창이 최 사부 옆에 앉아 있었다. 그 반대편에 호중과 진태 그리고 뭔가 분위기가 바뀐 박지은이 앉아 있다.
‘분위기가 많이 변했네.’
난 박지은의 분위기가 꽤나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우선 연세 세브란스 병원 부원장의 이름은 김민수입니다. 부친이 병원 원장이라서 부원장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제법 의사로서 능력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역시 아버지가 원장이라 부원장이 됐군.”
“병원만큼 족벌 경영 및 세습 형태를 보이는 곳도 없을 겁니다.”
“또 교회가 있죠.”
“맞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분명 세습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신을 따르는 존재들은 자신들의 영욕을 위해 세습을 하죠. 신의 뜻을 어기는 자가 신을 모시는 자들이니 교회가 썩은 겁니다.”
뜨악새는 교회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
“계속 보고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보세요.”
난 뜨악새에게 집중을 했다. 그리고 뜨악새가 가지고 오는 정보가 은지수가 내게 말한 정보와 일치하는지 궁금했다.
“우선 확실치 않지만 암과 같은 병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암과 같은 병?”
난 모른 척을 했다.
“예. 암센터에 자주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아주 강한 진통제를 구입해서 먹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군요.”
“그리고 김민수가 만나는 암센터 의사는 최익현이라는 의사입니다. 동문 선배이고, 놀라운 것은 심장 이식 수술을 김민수에게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건 내가 주목해 볼 정보였다.
‘그래서 찾아간 거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뜨악새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뭡니까?”
“의사 김민수가 최익현의 심장 수술을 하기 전에 의료 소송을 당했다는 겁니다.”
“의료 소송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고의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습니다.”
난 뜨악새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고의로?”
“예.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뜨악새가 내 눈치를 봤다.
“개인적인 생각은 사실이 아니잖아.”
최 사부가 뜨악새를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형님!”
이제 뜨악새와 최 사부는 호형호제를 했다.
“그럼 캡틴이 판단하는데 장애가 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