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28화
배양된 식물의 이름 그대로 알파플러스 21로.
그래서 지금 호중과 진태는 죽은 장 꼰대를 감시할 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또각! 또각!
진태와 형성의 귀에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 진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사실 진태와 형성은 김민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아래층 통로 계단에 서 있었다.
김민수가 살고 있는 곳은 현대 르네상스다. 돈 많은 사람들만 산다는 그 아파트다.
“엘리베이터를 타겠지.”
진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 통로 계단으로 이동합니다.
“빨리 말해야지.”
진태가 작게 말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죄송합니다.
철컥!
아파트 통로 문을 여는 소리가 났고, 진태와 형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려가자.”
“발자국 소리 신경 써야 하겠지.”
“그럼.”
철컥!
문이 열렸다. 그리고 또각또각 김민수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계단 모퉁이만 돌면 진태와 형성의 모습이 보일 거다. 형성과 진태는 김민수의 발자국 소리에 박자를 맞추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지금 이 어두운 복도 계단에는 오직 김민수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정말 신기하게 진태와 형성은 김민수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은 17층이다. 김민수는 끝까지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담배 냄새지?”
진태는 작게 형성에게 속삭였다.
“그래. 이 아파트 다 금연 아니야?”
“누가 제대로 법을 지키는 사람 있어.”
형성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김민수는 딱 5분 후에 아래층 계단 통로 문을 열었다.
철컥!
역시 담배를 피기 위함이었다.
쾅!
문이 닫히고 김민수의 발자국 소리도 사라졌다.
“씨발! 십년감수했네.”
진태가 욕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뇌종양 말기가 저렇게 담배를 피워도 되나?”
“담배 피고 세 달 사는 거나 안 피고 네 달을 사는 거나 그냥 똑같다.”
진태의 말에 형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이왕 죽는 거는 마찬가지겠지. 아마 저 새끼는 지금 당장이라도 거리에서 옷 벗고 춤출 수도 있을 거야.”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진태는 귀에 꼽고 있는 이어폰 마이크에 말했다.
-흰색 벤츠를 탔습니다.
그 말에 진태는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좀 빨리 말하면 안 되나?”
-타야 보고를 드리죠. 저희 기술 지원팀은 정확한 정보만 지원합니다.
역시 일선에 일하는 놈들과 지원을 하는 놈들은 분명 차이가 있다.
“왜?”
형성이 물었다.
“벤츠 탔단다. 뛰어!”
진태는 그렇게 말하고 급하게 계단을 뛰었고, 형성도 진태를 따랐다. 그들은 지금 뛰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 나는 수준이라고 해야 옳을 거다.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기보다 벽을 타고 최대한 시간을 줄이며 내려가고 있었다.
다다닥! 다다닥!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것도 와이어 액션을 잘 표현한 그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벤츠에 인공위성 추적 장치를 부착했습니다.
그 말에 진태는 달리다 말고 멈춰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너 누구야!”
진태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감돌았다.
-예?
“너 누구냐고?”
-전 지원 3팀 김무혁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김진태 요원!
“너 지금 어디에 있냐?”
-그건 또 왜 그러십니까?
“너 어디에 있냐고?”
-주차장 검은색 봉고에 타고 있습니다.
“너 거기 기다리고 있어. 너 뒤졌어!”
진태는 버럭 같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죽어라 뛴 것은 김민수를 놓칠까 해서 뛴 것이다. 그런데 기술 지원팀은 이미 김민수의 벤츠 차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했다고 했다. 그럼 이렇게 뛸 필요가 없는 거였다.
한마디로 똥개 훈련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자운대 기술 지원팀이 쓰는 위치추적 장치는 CIA도 쓰는 장비였다. 그러니 좀처럼 놓칠 수 없는 장비였다.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아직도 김무혁은 뭐를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것이 없었다. 단지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 것뿐이었다.
“너 하여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계속 추격해!”
진태는 다시 아파트 복도가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 * *
진태는 땀을 닦으며 차에 탔다. 물론 저 땀은 김무혁을 작살내고 흘리는 땀이다.
“참 너도 다혈질이다. 초짜 신입이 실수 좀 한 거 가지고 그렇게 묵사발을 내냐?”
형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진태에게 말했다.
“그럼 넌 총알 날라 갑니다. 으윽! 개새끼, 이럴래?”
“뭐?”
“저 새끼는 현장에서 뛰는 우리 안전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고 저러는 거야! 딱 그냥 9급 공무원 할 놈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놈이란 소리다.”
듣고 보니 진태의 말도 옳은 말이다.
“그렇다고 저렇게 묵사발을 내놓나?”
“시간 없어서 저 정도인 줄이나 알아. 자운대는 최고여야 한다.”
진태는 자운대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는 것 같다.
원래 해동비문 아래 무장 단체가 자운대라고 할 수 있다. 진태는 해동비문 정식 제자고 자운대 소속들은 속가 제자 정도로 보면 된다. 그러니 서열상으로 자운대 소속들은 대부분 진태나 형성보다 서열이 아래였다.
물론 자운대 파트 캡틴들인 최 사부와 뜨악새, 그리고 대목과 꽃가게는 예외였다.
진태는 이어폰 마이크에 대고 작게 말했다.
“괜찮나?”
-괜, 괜찮습니다.
정신이 바짝 들어 보였다.
“코피는 닦았냐?
-예. 코피 닦았습니다.
“기분 좆같지?”
-아,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역시 만고의 진리. 맞은 놈은 고분고분해진다.
“나한테 맞은 놈은 다 진급했다. 그것만 알아. 정신 똑똑히 챙기고 지원해!”
-예.
“어디로 가고 있냐?”
-예?
“너, 더 맞을래?”
-아닙니다. 인천 쪽입니다.
김무혁의 말에 진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인천?”
-하여튼 그쪽 방향입니다.
“그래. 인천 쪽 방향으로 간다고 인천으로 가는 건 아니지.”
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천 방향이다.”
진태는 형성을 보며 말했다. 형성 역시 인상을 찡그렸다. 인천 쪽에는 마포 불곰이라고 불리던 여자의 본거지가 있다. 이상하게 형성과 진태는 연관도 없는 둘이 겹쳐졌다.
* * *
“나보고 데뷔를 하라고요?”
난 이준성의 말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렇습니다. 은성 님이 데뷔를 해 주시면 회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표정을 보니 이준성은 작정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전 바쁜 사람입니다.”
“그런 분 같습니다. 비밀도 많은 분 같고.”
“예. 모르시겠지만 전 비밀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만큼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제가 느낀 건데 이 방에도 저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준성의 말에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을 보는 안목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주변을 살피는 능력도 탁월한 이준성이다. 물론 난 일부러 이러는 거다. 이미 연예계에 데뷔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지 내 과거가 나를 위해 100만 안티 팬부터 만들어 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완벽한 위장이 되는 것은 확실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 저희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촉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알아내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있습니다. 카메라!”
뭐든 들키게 되면 솔직한 게 좋은 법이다.
“비밀이 많은 분이시니 위장할 신분도 있어야 할 겁니다.”
이준성은 그래도 아직 날 완벽하게 파악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시죠?”
내 물음에 이준성은 씩 웃었다. 저 웃음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
“꽤 유명하시더군요.”
“아시나요?”
“예. 저도 같이 일할 분이 누군지를 알아야 하니까요. 영등포 맨발남으로 시작하셔서 톱스타 은지수까지 구하신 분이더군요.”
“그럼 그 전의 일도 아시겠네요.”
난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성폭행 미수범에 대한 일 말입니까?”
이준성은 날 보며 말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거다.
“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실입니까?”
이것은 확인인 거다. 난 뚫어지게 이준성을 봤다.
“어떨 것 같습니까?”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죠. 가끔 살다 보면 누명도 쓰는 법이죠.”
이준성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물론 이준성에게 내 과거는 남의 일일 거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입맛이 쓴 과거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사람들이 날 잊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지 개선은 필요한 법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냥 흔한 연예인이 되면 과거가 발목을 잡죠. 하지만…….”
이준성은 말을 하다 말고 날 빤히 봤다.
“하지만?”
“슈퍼스타가 되시면 가능할 겁니다.”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제가 연예계에 데뷔를 하면 백만 안티부터 양상될 겁니다. 안티 슈퍼스타가 되겠네요.”
아무리 연예인들이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고 말해도 시간과 노력은 필요한 법이다. 난 시간이 없고 노력할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더욱 내 과거가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것을 분명이 이준성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기에 말해 주는 거였다.
“가수가 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수요?”
“예. 얼굴 없는 가수로 시작하는 겁니다.”
이준성은 내게 맞는 플랜을 짜온 것 같았다.
“얼굴 없는 가수로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고 나서요?”
“이슈를 만드는 겁니다.”
난 이준성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은성 님이 누명을 쓰신 거라면 이번 기회에 밝히시면 되는 겁니다. 분명 여론은 은성 님의 편이 되어 줄 겁니다.”
“재조사를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정말 죄가 없다면 한 번 해 볼만 하지 않습니까?”
이준성은 날 보며 웃었다.
‘재조사라…….’
난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지금 최 회장 일파와 정면 승부가 가능할까?’
내게 물음을 던졌다.
그 순간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가능해!’
난 승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숨기고 누명을 벗을 방법은 없습니다. 정면 승부를 하시는 겁니다.”
“정면 승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준성 씨가 생각하는 적보다 더 거대한 적이 저의 적입니다.”
“은성 님도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