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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31화 (131/210)

흑막의 신! 131화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원래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남자였습니다.”

“뭐라고?”

마포 불곰 최은숙의 눈이 커졌다.

“제가 알까 봐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요구를 따라 준 겁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내 딸!”

김민수는 최은숙에게 소리쳤다.

“죽었다.”

“거짓말이군요.”

“뭐라고? 왜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해!”

“죽었으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겁니다. 아닙니까?”

김민수는 약간 눈가가 촉촉해졌다.

“한번만 보게 해 주세요. 제가 악인이라는 거 압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제 딸 한 번만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놈의 딸 아니다.”

“아니, 제 딸입니다.”

“아니라고.”

“정 이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 죽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거, 당신이 이루어 놓은 거 다 무너뜨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 전 오늘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습니다.”

“뭐?”

“오늘 당장 죽을 수 있는 놈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만 생각하니까요. 어디에 있습니까?”

“정, 정말 뇌종양 말기라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모진 짓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당신 인생 망쳐놨고, 아버지 사랑 깨뜨렸고, 또 한 여자 인생 엉망으로 만들어 놨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김민수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최은숙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버지는 당신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직도 사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쌓아 올린 거 다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겠죠.”

이건 완벽한 협박이다.

“아, 아버지가 날?”

“제가 그러지 않았으면 아버지는 당신을 옆에 두었을 겁니다.”

김민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바로 최은숙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 지금 뭐하는 거야?”

“죽는다는 것을 아니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민수의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다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나도 잊었다.”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용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처지가 될까? 용서는 그냥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 아주 깊게 묻어두는 거야. 그러니 더는 찾지 마.”

최은숙은 그렇게 말하고 지그시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래 그런데 부탁할 것이 뭐지?”

정말 최은숙은 김민수를 용서한 것 같았다.

“제 딸에 대해서는 끝내 말씀 못 해 주시겠다는 겁니까?”

“본다고 뭐가 달라져? 그냥 혼란만 만들 뿐이야.”

“밝히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멀리서라도 보고 싶은 겁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잖습니까?”

“나도 안 봐. 가슴 아파서. 그러니 부탁할 것이나 말해.”

“좋습니다. 우선 이것부터 부탁드리죠.”

김민수는 테이블 위에 서류가 든 봉투를 올렸다.

“뭐지?”

“병원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지분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부동산 문서입니다.”

“그런데?”

“현금화시켜 주십시오.”

“그건 직접 해도 되지 않아?”

“이 중에 반은 제 딸에게 주십시오. 또 반은…….”

“또 반은?”

“정보람이라고 제가 사랑한 여자에게 주십시오.”

“직접 줘도 되잖아.”

“그러고 싶지만, 원수가 준 돈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뭐?”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죽고 나면 아버지한테 가십시오. 아직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김민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일 없다.”

“저 때문에 많은 것이 엉망이 됐습니다. 제가 죽고 나면 다 원상태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정말 김민수는 자신이 지은 죄를 후회하고 바로잡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 * *

내 본부 사무실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차가웠다. 이 분위기의 이유는 마포 불곰의 엄청난 과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과거에 핵심적으로 개입한 대한민국의 입장 때문이기도 했다.

이 나라는 목숨을 걸고 자유를 위해 또 이 나라의 국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버린 거였다.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시하는 나라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뭉개 버리고 또 외면했다.

그런 나라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힘을 키워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위해 국민이 되고자 하는 이를 외면하는 국가는 변해야 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허나 그 희생되는 소는 자신들에게서는 전부일 것이고 최후일 것이며 마지막일 것이다. 누구도 그 어떤 하찮은 것도 대라는 것을 위해 소외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뤄질 때 이 국가는 진정한 국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국가를 만들 것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 것이다.

스스로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국민들이 조국을 사랑하며 또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엄청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흑막의 신이 되면서 또 양지에 나가 모든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더 부각시켜야 한다. 나를!’

흑막의 신 이상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결심이 든다.

최종 목표는 악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국에 악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 조국이 그 어떤 국민도 버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책임감 있는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가 강해져야 하고 또 부유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플러스알파 21이 성공을 거둬야 한다.

석기 시대에는 날카로운 돌도끼를 만들 수 있는 석공 기술을 가진 부족이 다른 부족을 지배했다.

철기 시대에는 강한 철을 가진 자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통치했다.

그리고 근대는 산업 혁명을 통해 과학을 가진 나라가 세상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21세기 초반에는 반도체 및 전자 기기의 기술을 가진 자가 부를 가졌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술과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생명 연장 프로젝트는 50퍼센트 이상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제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식량은 곧 씨앗이다.

씨앗을 지배하는 자!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난 점점 더 거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거대함의 기초에 최 회장의 응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어둠이 되고 스스로 빛이 되기 위해서는 내 누명을 벗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느긋하게 생각을 했다.

복수는 천천히 완벽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이제 시간이 부족해졌다.

내 꿈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난 야누스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악의 응징자이며 흑막의 신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빛에 서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사람으로 그렇게 보여야 할 것이다.

‘내가 다시 산 이유가 있는 것이야!’

그래야 한다. 다시는 마포 불곰 같은 가여운 여자가 만들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그녀가 용서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은 죄에 대한 응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녀를 통해 고통 받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따르릉! 따르릉!

다시 내 핸드폰이 울렸다.

“뭐지?”

-김민수가 마포 불곰의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서울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잘 감시를 해라! 절대로 죽거나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 국면이 새롭게 바뀌었다.”

-예. 사부님!

난 진태와 전화를 끊고 다시 굳게 입술을 닫고 있는 최 사부를 봤다.

“그 둘이 왜 만났는지는 밝힐 수가 없겠군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때 뜨악새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 병원 차트입니다.”

“구했군요.”

“예. 아주 어렵게 구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난 뜨악새에게 차트를 받아 넘겼다. 이 차트는 정보람 아버지의 병원 기록이다. 나는 쭉 병원 차트를 읽어 내려갔다.

“역시 조작된 거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볼 줄 몰라서 확실치 않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원래 병원 차트는 오래 보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

뜨악새가 날 봤다. 마치 어떻게 아냐는 눈빛이다.

“어떻게 제가 아는지 궁금하세요?”

“그, 그게 아니라 저도 못 읽는 것을 읽고 계신 것 같아서…….”

뜨악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겨우 스무 살이다. 그런데 모두 다 의학 용어로 되어 있는 차트를 읽고 있으니 신기한 모양이다. 이게 내 실수라면 실수일 거다.

“그냥 보는 겁니다.”

난 씩 웃었다. 하지만 뜨악새와 최 사부는 믿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하지는 않다.

“이 차트로는 확인할 수 있는 게 없겠군요.”

난 다시 차트를 넘겨봤다.

‘뭐야? 왜 뇌사 상태의 환자에게 진통제를 주사했지?’

드디어 난 흔적을 찾은 거였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확실히 뭔가 있어.’

난 더욱 의심이 됐다.

그리고 다시 최 사부를 봤다.

“문제가 꼬였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미 난 이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답이 정답일지가 의문스러웠기에 뜨악새와 최 사부에게 물었다.

“예?”

뜨악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내게 다시 물었다. 하지만 최 사부는 내가 질문하는 의도를 아는 눈치다.

“정면 돌파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역시 최 사부다.

“문제가 꼬였을 때는 답을 보는 겁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찾아도 답이 없을 때는 문제지 뒤에 있는 답지를 보는 방법이 최고입니다.”

“어느 답지를 보실지가 고민이시군요.”

최 사부는 역시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정보람이냐? 아니면 김민수냐? 그것도 아니면 마포 불곰이냐?’가 제 고민입니다.”

“각각 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이제 퍼즐 맞추기인 것 같습니다.”

“어떤 답부터 보실 생각이십니까?”

뜨악새도 이제야 내 말뜻을 아는 듯했다.

“우선 이 차트를 넘긴 간호사부터 만나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담당 간호사도 만나 봐야겠습니다.”

“그 간호사가 그 간호사입니다.”

뜨악새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이 차트는 그럼 협박용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 간호사,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자운대 대원들이 정선에서 데리고 오고 있는 중입니다.”

“정선이요?”

정선에는 카지노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사북에 있다.

“그 여자가 도착을 하면 첫 번째 퍼즐이 맞춰지겠군요.”

난 참혹한 진실이 밝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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