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37화
“정보람 씨는 사랑을 믿나요?”
어쩌면 정보람에게는 엄청나게 황당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깊은 밤에 조용히 나타나서 납치를 해 가는 지금, 이렇게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고 하는 이 여자가 이 병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탄로가 난 거야!’
정보람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을 믿냐고요?”
“그렇습니다. 사랑을 믿으시나요?”
박지은이 다시 물었다.
“전 사랑 따위는 믿지 않아요.”
“그럼 가시죠.”
박지은은 팔을 살짝 잡았다.
‘어떻게 하지?’
정보람은 본능적으로 박지은의 손을 뿌리쳤다.
“조용히 모시고 싶습니다.”
“조용히요?”
“그렇습니다.”
“내가 반항이라도 한다면 기절이라도 시킬 생각인가요?”
“어쩔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할 겁니다.”
“할 수 없군요. 이왕 들켜 버렸으니!”
박지은은 정보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분명한 것은 순순히 따라오겠다는 거였다.
“가시죠.”
박지은이 다시 정보람을 팔을 잡았고, 정보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왜 그런 문자를 보내셨습니까?”
이미 난 서말자가 감금당해 있는 건물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최 사부와 뜨악새, 그리고 진태도 옆에 있었다.
“보셨습니까?”
“사기꾼은 눈썰미가 있어야 하죠.”
최 사부의 말에 난 놀랐다. 그냥 문자를 쓰는 손가락의 위치만 보고 문자의 내용을 아는 최 사부가 신기할 뿐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사기꾼이었지 않습니까.”
최 사부는 과거형으로 말했다. 이 말에는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렇군요.”
“왜 그런 문자를?”
“정보람도 사랑이라면 사랑을 깰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악인이라고 해도 마지막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다 끝이잖아요.”
“그렇다고 하셨으면 그냥 이 일을 넘기려고 하셨습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겠죠.”
“그럼 왜?”
최 사부는 내가 그런 문자를 보낸 이유를 묻는 것 같았다.
“아직 제 마음의 결정이 안 되었다고 해 두죠.”
“알겠습니다.”
* * *
호중은 지금 차를 몰고 있었고, 정보람은 박지은과 함께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호중 역시 정보람의 이 차분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척이나 차분하시네요?”
“겪지 말아야 할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보네요.”
정보람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말했다.
“답답한데 차 창문을 좀 열어 주시겠어요?”
정보람이 박지은에게 부탁을 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박지은은 창문을 열었다.
그때 달리던 차가 신호 대기에 걸려 잠시 섰다.
“삼성동! 삼성동!”
호중의 차 밖에서는 택시를 잡으려는 듯 취객이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는 고스란히 정보람의 귀에 들어왔다.
‘최소한 이곳이 삼성동은 아니라는 거군.’
지금 창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을 한 정보람은 자신이 끌려가고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짐작을 하고 싶어 부탁을 한 거였다.
“여기 신림동 사거리니까. 대리 빨리 보내 줘!”
다시 취객 하나가 대리 운전자와 통화를 하는 외침이 정보람의 귀에 다시 들어왔다.
‘신림동까지 왔네.’
정보람은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호중이 모는 차가 출발을 했다.
그때 박지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박지은입니다. 캡틴!”
-역시 임무가 주어지면 날 캡틴이라고 부르는군!
“호중 사형의 지시입니다.”
-그래, 어디까지 왔지?
“신림까지 도착을 했습니다.”
박지은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고, 호중은 그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박지은 요원! 임무 중에 자신의 위치를 말하지 않는 철칙을 잊었나?
은성은 지금 박지은을 시험한 거였다.
“죄송합니다.”
-단 하나의 실수에 제2본부가 악인에게 발각이 된다. 명심하도록.
“예. 캡틴!”
그때 호중이 핸들을 돌려 우회전을 했다.
‘우회전이야!’
정보람은 자신의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고 지금 차가 우회전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멈춘 곳이 신림도 사거리다. 그리고 야간이니까. 정상 속도로 달리면 시속 70킬로미터는 나온다. 지금 20분을 달렸으니 15킬로미터 정도 온 거다.’
이렇게 정보람은 막연히 거리를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로 끌려가는지는 알아야 해!’
정보람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 * *
박철의 연예 기획사 사무실.
악덕 연예 기획사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박철은 건방진 자세로 책상에 앉아 있고 그의 비서가 박철의 앞에 서 있었다. 이준성 때문에 스타 제조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 이준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냥 허명에 불과했다. 어쩜 처음부터 그에게 이 연예계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시발 새끼! 이준성 개새끼!”
박철이 앞에 눈치를 보고 있는 비서를 보며 욕을 했다.
“이준성이 그 개새끼처럼 끼가 있는 애들은 못 데리고 와도 반반한 것들은 좀 데리고 와야 할 것 아니야!”
“죄송합니다.”
“이준성이가 어디에 사무실을 차렸는지는 파악했어?”
“아, 아직…….”
비서의 말에 박철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서류 뭉치를 비서에게 던졌다.
퍽!
“으윽!”
“야 임마! 월급을 줬으면 월급 값을 해야지.”
“최대한 빨리 찾아내겠습니다.”
“어떻게 간판 달고 하는 기획사 사무실 하나를 못 찾아?”
“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이준성이 그 개새끼처럼 잘하는 게 중요하지.”
사실 이준성이 일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박철이었다.
“알겠습니다.”
“알지만 말고 행동으로 보여 줘. 어디서 반반한 것들 좀 데리고 오라고.”
“예.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면접 본 애들은 어때?”
“다 고만고만한 것 같습니다.”
비서의 말에 악덕 연예 기획사 사장인 박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다 고만고만한 걸 뽑으려고 어제 그렇게 난리를 친 거야?”
“그게 원석 같은 애들이라서…….”
“원석은 명동만 가도 깔려 있어. 돈이 바로 되는 것들을 데리고 오란 말이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악한 것부터 보고해 봐.”
“예. 이름은 박다래입니다. 가수 지망생이고 나이 25세입니다. 34, 24, 35로 키가 165정도입니다. 무척이나 글래머해서 노래만 잘 선택하면 군인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종희. 역시 가수 지망생이고 19살입니다. 33, 19, 33으로 163센티미터입니다. 노래는 곧잘 합니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 평범해서 금방 질릴 것 같습니다.”
“그럼 뜯어고치고 오라고 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은 해 놓은 상태입니다.”
박철은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사진 몇 장을 보고 있었다.
“이 애는 뭐야?”
“아 예. 박서리입니다.”
“뭐하는 애야?”
“새내기 신입생입니다.”
“얼굴 반반하네.”
“예. 몸매는 더 괜찮습니다.”
“좀 매력이 있는 얼굴이야!”
“예.”
처음으로 박철에게 칭찬을 듣자 비서는 신이 났는지 박대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심이 가네. 잘하면 물건 하나 나오겠어. 하하하! 바로 돈이 되는 물건!”
“그렇습니다. 좀 발랑 까진 것만 빼고는 다 마음에 드는 애입니다.”
“오 그래! 발랑 까지기까지 했어. 킥킥킥! 스폰서 하나만 잘 잡아 주면 아주 쭉쭉 뻗어 나가겠다.”
박철은 스폰서라는 말을 하다가 번뜩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서 씩 웃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고객 관리나 좀 할까?”
박철은 책상 위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고 박철은 뭐가 좋은지 실실 쪼개고 있었다.
뚝!
-웬일이야, 이렇게 전화를 다 주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박철은 씩 웃었다.
“잘 계셨습니까?”
-나야 잘 있지.
“제가 요번에 정말 괜찮은 신인 하나 키우는데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잘 봐 주시고, 또 귀엽게 봐 주시고 많은 도움 주십시오.”
-괜찮은 신인?
“예, 정말 괜찮은 신인입니다. 하하하! 몸매가 아주 예술입니다.”
-알았어. 다음에 자리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예. 제가 다 준비를 하겠습니다.”
똑똑!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심히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남자의 모습을 보고 박철은 씩 웃었다.
“그럼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박철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서 와! 일본 간 일은 잘 됐어?”
“예. 아주 잘 됐습니다. 이번에 보낸 애들은 일본 AV계의 대스타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 못 뜨는 건 그렇게라도 본전을 뽑아야지.”
박철은 연예인 지망생들을 일본에 진출시키고 있었다. 물론 일본 공중파는 절대 아니었다. 바로 인터넷으로 많이 보고 있는 AV 포르노 배우로 팔아먹고 있는 거다.
그렇게 좀 돌리다가 거의 사창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넘겼고, 그곳에선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시켰다. 물론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야쿠자와 연관이 있어야 했고, 지금 박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도 야쿠자였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몇 명 정도 준비를 하셨습니까?”
“우선 한국에서 좀 돌리고 나서. 킥킥킥!”
박철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을 보며 씩 웃었다. 이렇게 박철의 연예 기획 사무실은 연예인만 관리하는 게 절대 아니었다.
사실 이준성을 데려다 놓고 본격적으로 연예 사무실을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본 박철이었다. 하지만 연예 기획 사무실이 자신이 알고 있는 화수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 이런 쪽으로 변질된 거였다.
“알겠습니다.”
야쿠자는 씩 웃었다.
***
-정보람 양이 도착을 했습니다.
스피커에서 정보람의 도착을 알리는 보고가 울렸다.
“모니터!”
내 명령에 내 앞에 있는 모니터에서 정보람이 이 건물 현관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보람은 차분하게 박지은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모니터 화면은 다시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CC카메라 화면으로 바꿨다.
“안대를 하지 않았군!”
“원래 시작 장애인이지 않습니까?”
뜨악새가 공손히 내게 말했다.
“그럼 귀마개라도 했어야 했어.”
난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 시각 장애인들은 청각이 예민하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보람이 귀에 들리는 소리를 통해 이곳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엘리베이터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
사실 이 건물은 5층짜리 건물이다. 물론 밖에서 보면 4층처럼 보인다. 그리고 진짜 우리가 있는 곳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지하층이다.
지하 3층으로 이곳으로 오려면 엘리베이터에서 작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통제실에서 엘리베이터 작동 버튼을 울려야 내려올 수 있는 거였다.
“여기가 엘리베이터 안인가요?”
정보람은 옆에 말없이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박지은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4층에서 미팅이 잡혀 있습니다.”
“4층이요?”
“예.”
그리고 그때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했다. 물론 이곳으로 오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였다.
‘거짓말을 하고 있어. 지금 지하로 내려가고 있어.’
정보람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지상 4층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찌이익!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