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53화
“뭐하는 거야?”
“수술은 내일이다.”
“내일? 당장 하는 게 아니었나?”
“물론이지.”
난 사악하게 최익현을 보고 웃었다.
“알, 알았다.”
난 고개를 돌려 호중을 봤다.
“모셔다 드려.”
“그냥 보내는 겁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내가 그냥 보내 준다는 말에 호중은 내가 비술을 발동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시죠.”
호중은 정중히 최익현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겠다.”
“그래.”
그렇게 최익현은 다시 호중에 의해 제 2본부를 벗어났다. 그리고 제 2본부가 발각되지 않는 곳에 가서야 최익현은 안대를 풀 수가 있었다.
“여기서 내려 드리겠습니다.”
“무슨 영화 찍어?”
“무슨 말씀이죠?”
“아니야. 하여튼 내일 보자고. 시발!”
최익현은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호중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예. 사부님!”
-최익현을 미행해라.
“알겠습니다.”
-3시간 안에 죽는다.
“예?”
-악인이다.
“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 * *
병원 앞 로비.
김민수가 초조한 마음으로 최익현이 보낸다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최익현의 앞에 체어맨 리무진 한 대가 섰다.
진태가 천천히 차에서 내려 김민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최익현 선생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최 선배는 어디에 있죠?”
“수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어디서 수술을 하는 거죠?”
“가 보시면 압니다.”
진태의 말에 김민수는 잠시 진태를 봤다.
“최익현 선생님께 전화를 해 보시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김민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병원을 봤다. 그 병원 안에는 정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진태를 봤다.
“갑시다.”
그렇게 은성은 김민수의 신병도 확보를 했다.
* * *
난 서말자가 누워 있는 수술대를 물끄러미 봤다. 온몸이 묶여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서말자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분명 악일 거다.
난 천천히 서말자에게 다가가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이제 곧 수술을 할 겁니다.”
내 말에 서말자는 다시 한 번 바르르 떨었다.
“두렵습니까?”
“두, 두렵죠.”
“당신의 죄악의 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 말에 서말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 내 장기를 적출해서 누구에게 이식이 되나요?”
“왜 그게 궁금합니까?”
“말, 말해 줄 수 없는 건가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그, 그럼…….”
“그럼 뭐죠?”
“제, 제가 참, 참 죄를 참 많이 지은 년이에요.”
“죽을 때가 되어서 아신 겁니까? 이미 후회를 해도 늦었습니다.”
“알, 알아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모든 게 돈 때문은 아니시죠?”
역시 여자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제 알맹이 다 꺼내 봐야 2억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3억을 줬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서말자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서요?”
“정말 돈 때문이 아니라면 부탁 하나 드릴게요.”
“무슨 부탁이죠?”
난 그렇게 말하고 서말자를 뚫어지게 봤다.
“제 눈 적출하고 나면 제 조카에게 주실 수 있나요?”
“지금 참회를 하는 겁니까?”
“저, 저도 처음부터 나쁜 년은 아니었어요.”
서말자는 그 말을 하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맞다. 처음부터 악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겠죠.”
“그러고 보니 참 나쁘게 살았네요.”
때늦은 참회지만 서말자는 참회를 하고 있었다. 어쩜 인간은 자신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참회를 하는 모양이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서말자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저 죽게 해 주세요.”
이건 의외의 대답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서말자는 죽겠다고 말했다.
“왜죠?”
“지금 저 같은 년에게 기회가 더 생겨도 전 똑같이 살 거예요. 그러니 그냥 죽고 싶어요. 사, 사는 게 너무 힘드네요.”
“다시 묻겠습니다. 모든 일을 없는 것으로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아니에요. 전 죽고 싶어요. 이제야 알았네요. 조, 조금만 더 빨리 후회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네요.”
난 서말자의 말을 듣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참회하는 자를 내가 벌할 수 있는가?’
이건 내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난 결론을 내렸다.
‘없다.’
그리고 다시 서말자를 봤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참회를 하셔셔.”
“전, 전 지옥으로 가겠죠?”
“그건 모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꼭 제 눈은…….”
“고려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난 그렇게 서말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참회하는 죄인을 내가 벌할 자격은 없다.”
난 길게 한숨을 쉬었다.
* * *
난 다시 통제실로 들어왔다. 내가 말하는 통제실은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방들을 지켜 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내가 통제실 안으로 들어서자 최 사부는 날 불안한 눈빛으로 보다가 여전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서말자를 힐끗 봤다.
“왜, 제가 불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최 사부는 내게 서슴없이 말했다. 굳어 있는 표정이 나를 무척이나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어쩜 저런 눈빛이 나는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저도 제가 불안합니다. 그래서 최 사부께서 계신 겁니다.”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만 저를 봐 주세요.”
“캡틴께서 저를 의식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최 사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저 역시 제가 불안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서말자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그렇죠.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참회를 한 악녀를 그냥 제거할 수는 없죠.”
난 고개를 돌려 호중을 봤다.
“풀어 줘라.”
내 말에 최 사부와 호중은 잠시 놀란 눈으로 날 봤다.
“정말 그냥 풀어 주시는 겁니까?”
“속죄하면서 살라고 해.”
그때 진태가 들어왔다.
“김민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몇 번 방이지?”
“3번 방입니다.”
“모니터 켜!”
“예. 사부님!”
진태는 바로 김민수가 있는 방의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에 보이는 김민수의 모습은 무척이나 담담해 보였다.
죽음 앞에서 저렇게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최 사부가 내게 물었다.
“김민수의 마음을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그러고 나서요?”
“자신까지 속였다면 저는 김민수를 절대 용서치 않을 겁니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민수가 있는 3번 방으로 향했다.
철컥!
문이 열리고 내가 들어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김민수는 날 빤히 봤다. 아무리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픈 사람이다 보니 얼굴이 무척이나 창백해 보였다.
“누구시죠?”
김민수가 내게 물었다.
“은지수의 친구입니다.”
내 대답에 김민수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최 선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이곳에 없는 겁니까?”
“예. 최익현 씨는 이곳에 없습니다.”
내 말에 김민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당신들 누구야?”
“정보람 양의 친구이기도 하지요.”
“뭐? 뭐라고 했어?”
“조금 전까지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중요한 겁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김민수가 날 노려봤다.
“마포 불곰에게는 왜 갔습니까?”
내 말에 김민수는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날 노려봤다.
“당신 날 미행한 건가?”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신 누구야?”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기 밀매를 하는 마포 불곰에게는 왜 가셨습니까?”
“내가 말해 줄 이유가 있나?”
김민수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다른 질문을 하죠.”
“어떤 것을 물어봐도 네가 원하는 대답은 없을 거다.”
“그건 이야기를 해 본 후에 답이 나오겠죠.”
난 의자를 가지고 가서 김민수 앞에 앉았다.
“뇌종양 말기라고 들었습니다.”
내 말에 다시 김민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아는군.”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꽤 오래 지켜봤으니까요.”
“날 지켜봐?”
“예.”
“이유가 뭐지?”
김민수가 날 뚫어지게 봤다. 그 눈빛은 약간의 살기와 호기심, 그리고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다. 그럴 것이다.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원죄가 있으니 말이다.
“이제 다시 제가 질문을 하죠. 왜 자살을 하려는 겁니까?”
모든 것을 알면서 물었다.
김민수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를 실망시키지 마라!’
내 질문에 김민수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폐부를 찌르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김민수는 최익현을 떠올렸을 거다.
자신의 자살 계획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선배인 최익현뿐이니 말이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이 자살하는 이유와 정보람! 그리고 뇌종양 말기가 연관이 있습니까?”
좀 더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또 내게 어떤 반문을 할지도 궁금했다.
‘공격적일까? 아니면 그 모든 사실을 부정할까?’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는 순간이다.
“내, 내게 뭘 원하지?”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숨겨 놓은 진실입니다.”
내 말에 김민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숨겨 놓은…….”
“당신이 숨겨 놓은 진실!”
“진실?”
“그렇습니다. 솔직한 진실을 원합니다.”
내 물음에 김민수가 나를 다시 봤다.
“그런 진실이 있을까? 숨겨질 수 있는 진실이 있을까? 과연 진실은 끝내 숨겨질까?”
의미심장한 말이다.
김민수의 말을 통해 김민수도 어쩌면 정보람이 자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은 꼭 밝혀진다는 말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말이죠. 난 그런 말 안 믿습니다.”
“숨길 수 있다면 숨기라는 건가?”
“그건 각자의 생각대로.”
난 김민수를 뚫어지게 봤다.
“이유가 뭐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뭐지? 또 너는 누구고? 왜 내가 여기에 와 있어야 하지? 그 진실부터 밝혀야 하지 않나?”
“당신에게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대는 오직 숨겨 놓은 진실을 말할 의무만 존재합니다.”
“왜? 왜 그걸 내게 묻는 거야!”
김민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분한 것이다.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던 남자가 드디어 흥분한 것이다. 그것은 분명 심적인 동요가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당신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날 확인한다고?”
“그렇습니다. 어떤 인간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라. 로맨틱하기보다는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군.”
“그렇습니다. 전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만약 당신이 가지고 있는 3가지 상황 중에 하나가 틀어지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3가지 상황?”
“더 정확하게 말하면 3가지 상황과 3가지 마음이겠지요.”
사람은 간사한 존재다. 또한 사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참회하는 자도 있다. 그런 사람은 용서를 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사악하고 간사할 뿐이다.
“그 마음이 뭔데? 나도 궁금하군.”
“궁금하십니까? 그럼 알려 드리죠. 우선 사랑이겠죠. 그리고 상황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희생이겠죠.”
내 말에 김민수가 피식 웃었다.
“왜 웃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