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의 신-158화 (158/210)

흑막의 신! 158화

“그래. 그럼 연구비는 나올 거라고 말씀 드려.”

내가 살았던 미래에는 헛개나무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이 각광을 받았고, 아주 유명한 제약 회사가 차로 개발하여 시판을 했다. 물론 그 유명한 회사는 드링크제를 만드는 회사다.

아마 거의 무시되었던 헛개나무가 미래에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아마 그때의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고 일 때문에 각종 스트레스와 회식 모임으로 인한 술자리 때문일 거다.

술은 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람이 쉬이 피로한 것은 모두 간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숙취 해소와 간 기능 강화 드링크로 만들어 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체 영약이 개발될 때까지 난 청솔제약에 돈이 될 수 있는 것을 말해 줬다. 물론 그 돈은 다시 연구실로 들어갈 것이다. 또 일부는 내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뜨악새가 김재창의 사무실로 들어왔고 나와 김재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으세요.”

“예. 캡틴!”

“저번에 통화로 했던 이야기를 더 들었으면 합니다.”

“예. 이연아의 전 남편이 갈퀴였다는 것은 이미 아실 겁니다.”

“갈퀴요?”

“예. 아주 악착같이 집요한 조폭입니다.”

“뭐 조폭들이 다 그렇죠.”

“그리고 이연아의 딸이 지금 급하게 심장 이식이 필요합니다.”

“그 아이의 병명이 뭡니까?”

“확장형심근병증이라고 했습니다.”

난 뜨악새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뜨악새의 말이 사실이라면 희귀 난치병이었다.

“이연아의 딸은 인공 심폐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봐야 심장 이식을 받지 못하면 더 악화만 될 뿐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콩팥이 그 기능을 잃어 두 달 전부터 투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연아의 딸의 유일한 희망은 심장 이식 수술을 받는 것뿐입니다.”

“으음.”

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원래 대한민국은 장기 기증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어린 아이의 심장을 기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기증자 구하는 것이 아주 어려울 겁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갈퀴가 계속 기증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대기자들이 많아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연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으음.”

나는 다시 나직이 신음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즘 갈퀴가 마포 불곰을 자주 만난다는 겁니다.”

“갈퀴가 마포 불곰을 만난다고요?”

“예. 심장의 아픈 아이가 마포 불곰을 만날 이유는 딱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뜨악새는 날 빤히 봤다.

“그렇죠. 불법 장기 밀매를 하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장기 밀매를 하냐는 거다. 그것만 밝혀낼 수 있다면 마포 불곰을 응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마포 불곰의 주변과 갈퀴의 주변을 철저하게 감시를 하세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제게 보고를 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캡틴!”

“이연아의 딸이 입원한 병원이 어디입니까?”

“강남 병원입니다.”

“한번 가 봐야겠군요. 그런데 아이의 이름이 뭐죠?”

“하늘이입니다.”

“하늘이요?”

“그렇습니다. 정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가여운 아이입니다.”

“그렇겠죠.”

난 예전 병원에 있을 때 하늘이처럼 심장 이상이 있는 어린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바짝 말라 호흡기에 의지해서 겨우 버텨 내는 것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난 뜨악새에 의해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제 그 실마리를 잡고 천천히 따라가면 되는 거였다. 물론 내게도 하늘이에게도 시간은 부족할지도 몰랐다.

***

난 바로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병원이라는 곳이 원래 사람을 차분하면서도 착잡하게 만드는 곳이다. 아마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아픈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연아의 딸이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로 갔다.

‘저 아이가 하늘인가?’

난 산소 호흡기와 각종 의학 장비를 통해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여자 아이를 봤다. 심장 기능이 저하되어 바짝 말라 있는 모습이 측은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남자를 봤다.

하늘의 아버지인 갈퀴일 거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잔인하고 모진 조폭 갈퀴가 저렇게 약한 모습으로 무엇인가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뭉클해졌다.

지금 갈퀴는 조폭이 아니라 아픈 아이의 아버지일 거다.

‘갈퀴와 마포 불곰이 분명 연결이 되어 있다.’

난 문뜩 그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마포 불곰의 죄악을 밝힐 방법은 내게 없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포 불곰이 저 어린 하늘이를 살리려는 갈퀴와 함께 무슨 짓을 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또 한 명의 생명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이 둘을 주시하고 있으면 뭔가 꼬투리를 잡게 될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한 명이 죽게 될 거다.

죄인을 밝히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방관한다면 그것 역시 죄악일 거다.

저벅! 저벅!

난 천천히 하늘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있는 갈퀴에게 걸어갔다.

갈퀴!

그는 이연아의 전 남편이다.

난 다시 갈퀴의 힘없는 등을 봤다.

‘살리고 보자!’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갈퀴!”

난 조용히 갈퀴의 뒤에 서서 갈퀴를 불렀고, 내 부름에 갈퀴는 미세하게 한 번 반응을 하듯이 조용히 자신의 딸을 천천히 놓고 돌아서서 날 봤다.

“누구지?”

갈퀴는 하늘이 깨지 않게 조용히 내게 물었다.

“이야기 좀 할까요?”

“누구냐고 물었다.”

“어쩜 내가 당신의 딸을 살릴 수도 있는데.”

내 말에 갈퀴는 날 뚫어지게 봤다. 그 눈빛은 사나웠다. 지금 이곳이 자신의 딸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내게 주먹을 날릴 눈빛이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갈퀴의 물음에 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이연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연아 씨가 보냈습니다.”

내 말에 갈퀴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지더니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년이 왜?”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아이가 깹니다.”

내 말에 갈퀴는 힐끗 자신의 딸을 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를 노려보더니 천천히 중환자실에서 걸어 나가다가 날 봤다.

“지금 내 심정에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왔다면 돌아가면 용서해 준다.”

“전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그래? 할 말이 뭐지?”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좋아!”

그렇게 나와 갈퀴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병원 앞 공터 벤치에 앉았다. 물론 의자에 앉은 것은 나였고 갈퀴는 나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왜 날 찾아온 거지? 그년이 왜 널 보냈지? 어떻게 내 딸을 살릴 수 있다는 거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갈퀴의 질문이 쏟아졌다.

“무엇부터 대답을 해 드릴까요?”

“뭐라고? 이 새끼가?”

갈퀴는 다시 날 노려봤다. 그리고 난 힐끗 주변을 살폈다. 내 주변에는 조폭 몇이 나를 포위하듯 서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갈퀴를 보호하기 위해 서 있는 거다.

“우선 이연아 씨가 보낸 것은 거짓말입니다.”

“뭐라고?”

그 순간 갈퀴가 내 멱살을 잡았다.

“너 죽고 싶어?”

“하지만 당신 딸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뭐?”

내 말에 갈퀴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마포 불곰이랑 무슨 거래를 했죠?”

내 질문이 다시 이어지자 갈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난 마포 불곰을 몰라.”

“오 그런가요? 국제결혼을 준비하신다던데…….”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포 불곰이 불법 장기 밀거래의 핵심이라는 거 알고 왔습니다.”

내 말과 동시에 갈퀴의 눈에는 살기가 감돌았다.

“너를 지금 묻을 수도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나를 포위하고 있던 조폭들이 허리춤에서 사시미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살짝 가렸다.

정말 갈퀴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내게 덤벼들 기세였다.

“쉽지 않을 겁니다.”

난 담담한 표정으로 살짝 웃어 보였다.

“그건 두고 봐야지.”

“내가 당신의 딸을 살리면 마포 불곰과의 거래를 증언하시겠습니까?”

“내 딸을 어떻게 살린다는 거지? 내 딸을 위해 네놈 심장이라도 내놓겠다는 건가?”

“꼭 심장 하나가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지.”

“뭐야?”

“당신 딸의 병이 확장형심근병증이라지.”

“그, 그건 어떻게 알았지?”

“그래서 심장 이식이 당장 필요한 거고.”

“그래.”

“그래서 당장 심장을 구할 수 있는 마포 불곰에게 당신이 달려간 걸 거고.”

“난 마포 불곰을 몰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딸은 죽어 가고 있어.”

난 갈퀴를 노려봤다. 그 순간 갈퀴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가 한 말은 그 역시 알고 있는 걸 거다.

지금 당장 하늘이가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의료 기계에 의해 겨우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오늘 당장 심장이 멈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내가 당신 딸을 살려 주지.”

“어, 어떻게 살려 준다는 거지?”

“확장형심근병증 중 당신 딸은 심실이 비대해지고 그로 인해 심장 기능이 약화된 거지.”

“그런데?”

“비대해진 심실을 원래 상태로 줄이고 심장의 기능을 강화시키면 되는 거잖아.”

내 말에 갈퀴는 피식 웃었다.

“네가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건가? 너무 쉽게 말하는군!”

“하나님은 모르겠지만 악마는 될 수 있지.”

내 말에 갈퀴는 날 노려봤다. 그의 눈빛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한 부모의 마음이 숨어 있었다.

“갈퀴! 당장 네가 손해 볼 것은 없지 않나?”

“뭐라고?”

“내가 당신 딸을 지금 살리면 당신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거지.”

“네가 내 딸을 못 살린다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뭐가 필요해?”

“네 목숨!”

“그럼 내가 당신의 딸을 살리면?”

내 말에 갈퀴의 눈빛은 점점 나를 믿고 싶다는 눈빛으로 변했다.

“내 목숨과 함께 네가 원하는 모든 것.”

갈퀴의 말에 난 씩 웃었다.

“그럼 병실부터 일반실로 옮겨!”

“뭐?”

“기적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일 수는 없잖아.”

내 말에 갈퀴는 나를 뚫어지게 봤다.

“기, 기적이라고?”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죽어 가는 당신 딸을 살리는 일을?”

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좋아!”

갈퀴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바로 조심스럽게 하늘이를 특실로 옮겼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