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60화
“예.”
김재창의 말에 이연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자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김재창은 은성을 완벽하기 믿고 있다. 그건 다시 말해 신앙이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믿고 있는 은성이 자신의 옆에 있다는 말은 뭔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혹시 제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가서 이야기 들어 보세요. 그럼 아시게 될 겁니다.”
“예.”
이연아는 조용히 묵례를 하고 사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김재창은 바로 병원에 있는 은성에게 전화를 했다.
따르릉! 따르릉!
“김재창입니다. 캡틴!”
-갈퀴가 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김연아 씨를 만나기 위해 지금 비서실에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내기는 했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지켜보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죠. 그런데 그자는 어떻게 하고 있죠?
은성의 물음에 김재창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여전히 가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지금 김민수는 어쩜 자신에게 속고 있을지 모릅니다.”
“속고 있다고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용서받을 수는 없습니다.
은성의 말에 김재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 *
조용한 커피숍.
이연아와 갈퀴가 차분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주보고 앉아 있는 둘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이연아의 눈빛은 마치 죄인처럼 서글퍼 보였다.
“무, 무슨 일이죠?”
“은성이라는 남자가 보내서 왔다.”
“은, 은성 님이라고요?”
“그래.”
갈퀴는 짧게 말하고 이연아를 봤다. 그리고 그 순간 갈퀴는 은성이 이연아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모르고 있군.”
갈퀴는 그렇게 말하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살짝 붙이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이연아는 정말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원래 갈퀴는 뭔가 불안하거나 할 때 저렇게 담배를 잡은 손이 떨린다.
오직 그의 심정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무슨 일 있군요.”
이연아는 다급한 말에 갈퀴는 불을 붙였던 담배를 세게 빨았다.
“휴우. 도박은 이제 끊었나?”
갈퀴는 이연아의 물음 대신에 질문을 했다.
“무슨 일 있죠?”
“그걸 말해 주기 전에 내가 물은 것부터 말해.”
“그게 중요한 건가요?”
“중요하지. 아주 중요해.”
“모르겠어요. 지금은 저를 조금 믿고 있는 편이에요.”
이연아는 완전히 도박을 끊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을 조금 믿고 있다는 말을 했고 그것이 갈퀴에게는 더 믿음이 갔다.
보통 도박꾼들은 누군가 도박을 끊었냐고 물으면 거짓말이라도 도박을 끊었다고 말한다. 도박꾼들에게 사채를 빌려줘 본 갈퀴이기에 도박꾼의 심리를 어느 정도 알았다.
그리고 도박꾼들에 무척이나 모질고 잔인한 갈퀴이기도 했다. 그건 어쩜 이연아에 대한 복수심일지도 몰랐다.
“조금 자신을 믿는 편?”
“그렇죠. 그런데 무슨 일이죠? 그리고 절 찾아온 이유가 뭐죠?”
이연아는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역시 여자는 직감이 있는 존재다.
“하늘이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하늘이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 그게…….”
갈퀴의 물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자신이 하늘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연아는 알았다.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평범한 엄마처럼 하늘이를 잘 돌봐 줘.”
지금 이연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가 하늘이를 봐도 된다는 건가요?”
“휴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잖아.”
“정, 정말이세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아무 일도 없어.”
“아니요. 분명 무슨 일 있어요.”
사실 갈퀴는 이제 은성을 믿기로 했다. 본인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딸을 살리려는 은성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죽어 가던 자신의 딸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은성을 믿고 싶은 갈퀴였다.
하지만 은성은 자신의 딸을 살리는 조건으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포 불곰과 대항할 것을 요구했다.
어쩜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거였다.
그래서 지금 갈퀴는 이연아를 찾아온 거였다.
“없다니까.”
“말해 줘요. 내가 자격은 없지만 말해 줘요.”
이연아는 스스로 자신이 무엇이든 물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아니, 이제 생겼다.”
“예?”
“네가 우리 하늘이에게 은성을 보냈으니까.”
“그럼 하늘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이연아의 물음에 갈퀴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없어.”
“아니, 분명 있어요. 어서 말해 줘요. 제발…….”
“으음. 사실 하늘이 많이 아프다.”
“하, 하늘이가 아프다고요?”
“그래. 지금까지 산 것도 어쩜 기적이겠지.”
“예?”
갈퀴의 말에 이연아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래. 지금까지 산 것도 기적이야. 그 기적이 정말 기적을 만들려고 준비된 걸지도 모르지.”
갈퀴는 그렇게 말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쩜 은성이라면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기적을 이뤄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갈퀴였다.
“하늘이 어디가 아프죠?”
“가슴이 많이 아프다.”
“예?”
“지금 당장 심장 이식을 해도 어떻게 될지 몰라.”
“이식할 심장은 있는 건가요?”
이연아는 계속 다급하게 갈퀴에게 물었다.
그 순간 갈퀴는 이연아를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정말 이연아가 하늘이의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온 거다.”
“그, 그래서 왔다고요?”
“하늘이한테 심장이 필요해.”
순간 갈퀴는 너무나 잔인해졌다. 그만큼 갈퀴는 다급하기도 했다.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마포 불곰의 힘은 너무나 거대했다.
그것을 정면으로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무엇이든 준비를 하고 싶은 갈퀴이기도 했다.
“하, 하늘이한테 심장이 필요하다고요?”
“그, 그래.”
“내, 내 심장을 말하는 건가요?”
“가능하겠니?”
갈퀴의 물음에 이연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면 되죠?”
이 순간 이연아는 정말 딸을 위해 자신의 심장이라도 내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일 거다.
“마지막 순간 내가 준비한 것들이 실패를 했을 때 너 아니면 내가 하늘이를 위해 죽어야겠지.”
“나 아니면 당신이라고요?”
“그래도 둘 중 하나는 조직이 일치하겠지.”
갈퀴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준비하는 게 있나요?”
“그래. 우선 은성을 믿어 볼 참이다.”
“은성 님을요?”
“그래. 어쩜 기적을 만들지도 모르지.”
갈퀴는 그렇게 말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 * *
나는 병실 침대에서 일어나 하늘이가 있는 병실로 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휘청했고 극도의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군.’
난 사실 회복이 무척이나 빠른 몸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 극단적인 행동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난 복도를 걸으며 어제 주화입마에 빠질 뻔한 일을 떠올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와 혈 그리고 피가 역류하면 크게 위험해진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어제 죽음 앞에 섰다. 아마 조금만 더 내 행동이 늦었다면 지금 난 이렇게 힘없이 걸을 수도 없고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조심해야 해!’
비술과 기공이 대단하면서도 엄청 위험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천천히 하늘이가 누워 있는 병실로 갔다.
철컥!
난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고 하늘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날 봤다.
여전히 힘없는 눈동자가 측은하게 보였다.
그리고 겨우 손을 들어서 내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아, 아저씨…….”
하늘이는 나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아프지 않니?”
내 물음에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제 내가 한 비술 발동은 갈퀴의 개입으로 인해 겨우 응급조치를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여전히 하늘이는 위험한 상태였다.
난 현기증을 느끼는 상태에서도 비술과 기공을 이용해서 기를 끌어모았다. 그와 동시에 내 눈은 미세 현미경처럼 하늘이의 몸 안이 보였다.
‘조금씩 다시 커지고 있다.’
하늘이의 심실은 어제보다 조금 더 커져 있었다. 이 상태라면 한 달 후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것 같았다.
‘시간이 없네.’
난 인상을 찡그리며 하늘이를 봤다.
“하늘이라고 했지?”
“응.”
“아프지 않으면 뭘 하고 싶어?”
“엄, 엄마 보러 갈 거야.”
“엄마?”
하늘이의 엄마는 이연아다.
“엄마 어디에 있는 줄 알아?”
내 질문에 하늘이는 마치 엄청난 비밀을 말하는 표정으로 힐끗 병실 문 쪽을 보고 내게 가까이 오라는 눈짓을 했다.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아저씨.”
“그래. 비밀.”
“엄마 정선이라는 곳에 있대.”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통화하는 소리 들었어.”
그 순간 난 뭐가 뭉클한 것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보면?”
“아빠랑 같이 살자고 할 거야.”
하늘이는 그렇게 말하고 애써 내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의 웃음은 서글펐다. 어린 하늘이도 절대 자신의 상태가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 같은 웃음이었다.
“하늘아.”
“응. 아저씨!”
“아저씨가 하늘이를 아프지 않게 해 주면 아저씨 부탁 하나 들어줄래?”
“아저씨가 날?”
“응. 그래. 아저씨가 하늘이 아프지 않게 해 주면 아저씨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해.”
“나 못 고쳐.”
역시 하늘이도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쳐 주면?”
내 말에 하늘이는 다시 살짝 웃었다. 역시 그 웃음도 서글펐다. 저 어린 나이에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 안타까운 나였다.
“그런 것을 기적이라고 한대.”
“그래. 기적이 일어나면?”
“내가 뭐해 줘야 하는데?”
“아저씨는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가 아니거든.”
난 그렇게 말하고 하늘이를 보며 웃었다.
“아저씨인데…….”
“오빠라고 불러 주면 내가 어떻게든 하늘이 아프지 않게 해 줄게.”
“오빠?”
“응. 하늘이처럼 예쁜 아가씨에게 아저씨보다는 오빠라고 불리고 싶거든.”
“나중에 몸이 좋아지면 오빠라고 불러 줄게.”
“우리 약속한 거다.”
“응.”
하늘이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리고 난 다시 한 번 하늘이를 봤다.
‘이 몸 상태로 가능할까?’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하늘이는 더욱 악화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 보자.’
난 어금니를 꼭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어디 가?”
“잠시만.”
난 다시 하늘이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가서 병실 문을 아무도 못 들어오게 잠갔다.
‘똑같은 일을 두 번 당할 수는 없지.’
난 문을 잠그고 나서 천천히 하늘이에게 걸어왔다. 역시 여전히 어지럽고 힘이 하나도 없는 나였다. 하지만 이 순간이 아니면 더욱 하늘이를 치료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해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