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62화
“죽을 수도 있었다는 거 아십니까? 어떻게 그리 함부로 목숨을…….”
의사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나를 흥분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이 순간 분명해졌다.
내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나라는 것을.
나는 파괴하는 존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허나 나는 파괴보다는 창조를 이루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난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니 끝내 나는 나에 대한 파괴자일 것이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안정제를 놔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내가 말하며 바로 안정제를 투여했다. 그 순간 난 스르륵 다시 잠이 들었다.
* * *
“정말 모르세요?”
의사가 갈퀴를 보며 물었다.
“모르겠네요.”
갈퀴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봤다.
그때 의사가 하늘과 갈퀴를 다시 봤다.
“그건 그렇고 하늘이 어, 어떻게 된 거죠?”
의사의 물음에 갈퀴는 의사를 빤히 봤다.
“무엇을 말하는 거죠?”
“하늘이가 저렇게 서 있을 수가 없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은 창백한 얼굴에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죽어 가는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의 하늘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자신을 또랑또랑한 눈으로 보고 있으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묻는 거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밖에 다녀온 사이에,…….”
그러자 의사가 하늘을 봤다.
“하늘아! 아프지 않아?”
“예. 안 아파요. 헤헤헤!”
하늘은 의사를 보며 그 맑은 미소를 보여 줬다. 정말 화창한 봄날의 하늘처럼 그리 밝은 웃음을 보였다.
“잠시만!”
의사는 청진기를 꺼내 하늘을 진찰했다. 우선 심장의 박동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쿵쾅! 쿵쾅!
튼튼히 뛰는 하늘의 심장이었다. 그 심장 소리에 의사는 다시 한 번 놀랐는지 재차 청진기를 대고 하늘을 살폈다.
“왜 이러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최은성에 의해!
그리고 그것을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이 정도로 튼튼히 뛰는 심장이라면 운동선수를 해도 될 정도로 강한 심장이었다. 아마 정말 마라톤이라도 할 수 있을 심장일 거다.
“왜 이런 거지?”
의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단지 지금 상태로는 하늘이 건강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정밀 검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의사는 하늘이의 심장 박동 수를 확인하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의사는 하늘을 봤다.
“하늘아, 무슨 일 있었니?”
의사의 물음에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천사가 다녀갔어요.”
“뭐? 천사가?”
의사는 하늘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이제는 오빠고요.”
하늘은 그렇게 말하고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은성을 봤고 하늘이의 시선을 따라 의사도 은성을 봤다.
하지만 의사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하늘이가 건강해진 이유를 모를 것이다.
“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하여튼 하늘이 아버님께서는 하늘이 정밀 검진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전 이만!”
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병실을 나갔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갈퀴의 핸드폰이 울렸고 갈퀴는 핸드폰에 찍힌 발신자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여보세요.”
-준비됐나요?
지금 핸드폰에 들리는 목소리는 마포 불곰이었다.
“예. 준비 다 되었습니다.”
갈퀴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잠들어 있는 은성을 봤다.
-그럼 준비를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마포 불곰이 전화를 끊었다.
‘그래! 준비됐다.’
갈퀴는 잠들어 있는 은성을 물끄러미 봤다.
***
깊은 밤.
스르륵 내가 눈을 뜨는 순간 갈퀴는 고민스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자신의 딸을 구한 나였기에 말투부터 달라진 갈퀴였다.
“제, 제가 얼마나 잔 거죠?”
난 의사에 의해 신경 안정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투여하지 말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하루를 꼬박 죽은 듯이 주무셨습니다.”
난 갈퀴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하늘은 어떻게 됐습니까?”
난 이미 하늘이 건강해졌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의사의 놀라운 눈빛을 봤으니 말이다.
“기적이 일어났더군요.”
갈퀴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비술 발동은 내 목숨을 걸고 행한 일이었다.
“다행입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갈퀴의 눈빛이 떨렸다. 아마 그 떨림만큼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불안한 만큼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누구도 돈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일은 없게 해야죠. 그것이 자의든 타이든 말입니다.”
“으음…….”
“마포 불곰이 무척이나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아십니까?”
갈퀴가 나를 걱정했다.
“그러니 더욱 막아야겠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입니다. 또 마포 불곰은 제가 파악한 것으로는 엄청난 일에 개입해 있습니다.”
“엄청난 일이라니요?”
“마포 불곰은 머리가 아니라 꼬리 정도일 겁니다. 그 위에 더 대단한 존재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마포 불곰의 죄악을 밝혀서 만천하에 알려야 합니다. 그럼 경찰도 어쩔 수 없이 수사를 하게 될 겁니다.”
“경찰도 개입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갈퀴가 놀라 날 보며 물었다.
“그 이상도 개입이 되어 있을 겁니다. 아니,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부자가 왜 오래 사는지 아십니까? 또 권력을 가진 자가 왜 오래 살까요?”
내 뜬금없는 물음이 갈퀴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권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의학은 신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필요한 장기가 있다면 생명 연장은 어렵지 않죠.”
갈퀴도 마포 불곰이 불법 장기 밀매와 이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는 알 거다.
“정,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말씀하신 대로라면 정말 거대한 것과 싸우는 겁니다.”
“싸워야죠. 그러기 위해 목숨을 건 겁니다.”
내 말에 갈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공명정대하고 싶어 하십니까? 당신의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내 일이 아니다.
사실 난 이번 일 때문에 정작 내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 회장의 일파! 그리고 날 무고한 그 망할 년! 그리고 그녀의 아비까지 철저하게 응징하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닥쳐야 제 일은 아니죠. 언젠가는 우리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말에 갈퀴가 한참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민은 아닐 것이다.
이미 결정을 내렸을 거다. 그저 그 결정을 다짐하는 것이 분명할 거다.
“알겠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갈퀴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 갈퀴가 움직일 때는 아니었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가증스러운 김민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난 이 순간부터 김민수가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 지켜볼 참이었다.
그가 끝내 스스로를 배신한다면 그의 파멸과 함께 갈퀴와 내가 움직이게 될 것이다.
“우선 잠시 찾아온 행복을 즐기세요.”
“예?”
“하늘한테 좋은 기억을 남겨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죠.”
내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갈퀴의 목숨일지도 몰랐다.
하나의 목숨을 살렸으니 난 하나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래서 난 테러리스트인 거다.
“하늘이가 그러더군요. 자신이 건강해지면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그러고 보니 엄마를 참 많이 따랐던 하늘이었습니다.”
“그렇죠.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니까요.”
“이연아 씨,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니 막지 마세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쉬셔야 합니다.”
“천사는 잠깐 왔다가 가는 겁니다.”
“가시려는 겁니까?”
“다시 오죠.”
“하늘한테는 뭐라고 할까요?”
갈퀴의 물음에 난 씩 웃었다.
“다시 보면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전해 주세요.”
난 그렇게 말하고 환자복을 입은 채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자운대 제 2본부로 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김민수가 가짜 회복을 하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자운대 제 2본부를 들어서는 순간 최 사부를 비롯한 뜨악새, 그리고 진태와 호중은 내 모습을 보고 놀라 눈이 커졌다.
“무슨 일입니까?”
호중이 날 보며 물었다.
“천사가 잠시 됐었지.”
“예?”
“이제 다시 악마가 되어야겠지만.”
난 그렇게 말하고 진태를 봤다.
“김민수 방에 모니터에 띄워.”
“예.”
진태는 당황한 눈빛이었지만 내 지시에 바로 김민수가 있는 방 모니터를 켰다. 김민수는 차분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차분하군. 사악하게.”
“정말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호중은 모니터에 보이는 김민수를 보며 눈에 살기를 뿜었다.
“어떻게 눈을 잃고도 저렇게 차분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만 있으면 눈이 아니라 심장도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런 세상이 왔으니까요. 여긴 지옥입니다.”
내 말에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날 봤다.
“지옥이요?”
“예. 지옥입니다. 내가 지옥에 살고 있는 겁니다. 아니, 우리가 산다고 해야겠죠.”
난 뜨악새와 호중에게 말하고 저승차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네 놈은 이제 지옥에 살 것이다.
이런 세상을 두고 저승차사는 말한 걸 거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이 지옥일 거다. 그리고 내가 그 지옥에 살고 있는 걸 거다.
‘그런 의미였어. 그런 의미…….’
그런 생각을 하며 그날 저승차사에게 지시를 했던 그 무엇인가의 존재가 내게 원하는 것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다시 온 것은 우연히 아니라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연!
하늘은 누군가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 썩어 가는 세상에 지옥과 다름없는 세상을 파괴시킬 누군가를 원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택된 것이 나일 것이다.
‘어쩌면…….’
그날을 생각하면 의구심이 드는 것이 참 많다.
‘아무리 죽은 할머니가 영적인 존재라고는 하지만 내 몸을 환골탈태시킬 능력이 생길 수는 없다.’
내 생각은 점점 더 복잡한 부분으로 접근했다.
‘또 내가 비술을 습득한 것도 이상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해서 무한한 능력이 생길 수는 없는데 죽은 할머니가 날 살리고 또 내 천수록을 찢은 다음 난 놀랍게 변했다.
그 자체가 이상하다.
‘모두가 연극이었나?’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죽은 할머니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거다. 아마 어쩔 수 없이 선택이 된 걸 거다.
나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 지옥과 같은 세상!
내가 사는 이 지옥!
그 지옥을 나는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 숙명일 것이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자의 숙명!
“이제 어떻게 합니까? 사부님!”
호중이 다시 내게 물었다.
“내보내고 지켜봐야지.”
“그러고 나서요?”
호중이 내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