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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67화 (167/210)

흑막의 신! 167화

“캡틴!”

“구하고 싶으십니까?”

내 계속되는 질문에 최 사부는 날 뚫어지게 봤다. 뭔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전, 전 지금 캡틴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처음 했던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게 뭐죠?”

“누, 누구나 자력갱생을 할 수 있다.”

난 최 사부의 말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게 마포 불곰에게도 해당되는 걸까요?”

내 말에 다시 최 사부는 날 빤히 봤다.

“마포 불곰!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 아닙니다.”

“그녀가 나쁘지 않다면 누가 나쁜 거죠?”

“처음 저를 만났던 것처럼 만나 보고 나서 결정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최 사부를 빤히 봤다.

“제가 마포 불곰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캡틴의 가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꺼내시는 이유는…….”

“가족의 부탁입니다.”

내가 내 사람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최 사부는 알고 있다. 그는 지금 내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포기해도 다른 누군가가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해 달라는 겁니다.”

“제가 악인을 구하라고요?”

“저를 위해서 안 되겠습니까?”

“…….”

“그럼 꼬맹이를 위해서라도…….”

난 최 사부의 말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마포 불곰을 만나 보죠.”

“고, 고맙습니다. 캡틴!”

그때 내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난 불길한 예감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호중이다. 호중은 지금 김민수를 감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호중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다급했다.

“뭐냐?”

-마포 불곰의 집이 불타고 있습니다.

“뭐?”

난 순간 앉아 있던 벤치에서 급하게 일어섰다.

-도시가스 폭발인 것 같습니다.

“마포 불곰은 어디에 있지?”

-집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김민수도 같이 있습니다. 저 정도의 폭발이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위험할 것 같습니다. 김민수를 구할까요?

호중이 내게 물었다. 그 물음에 난 힐끗 최 사부를 봤다.

“됐다. 철수해!”

-예. 캡틴!

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만나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

“세상에 당장 밝혀내지 못하는 일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죠.”

“무슨 말씀이십니까? 캡틴!”

“도시가스 폭발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그런데요?”

“그 가스 폭발이 일어난 곳이…….”

“설, 설마…….”

“그렇습니다. 인천입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난 지금 마포 불곰의 집에서 일어난 도시가스 폭발이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난 낮에 김민수의 부친이 통화한 내용을 알고 있다.

단지 내가 놀라운 것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 몰랐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순간 나 혼자, 그리고 자운대만으로 이 세상을 정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떨리는 눈동자로 최 사부가 날 봤다.

“사, 사고가 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겁니다.”

난 김민수의 부친이 누군가와 통화하던 것을 떠올렸다.

“캡, 캡틴이십니까?”

이 순간 최 사부의 눈에 약간의 살기가 느껴졌다.

“전…….”

난 잠시 최 사부를 봤다.

“전 아닙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렇게 석연치 않게 내가 조사하고 알아냈던 모든 것들이 화염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악이라고 규정한 김민수도 화염과 함께 사라졌다.

이것을 천벌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천벌은 김민수를 죽였고, 그 천벌을 만들어 낸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김민수의 부친일 거다.

* * *

영등포 여자 중학교 정문.

하교 시간에 맞춰서 한 대의 세단이 학교 정문 앞에 섰다. 수업을 끝내는 종이 울리고 구름처럼 아이들이 정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틈에 최 사부의 딸인 태희도 끼여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세단 차 문이 열리고 차분히 차에서 내리는 하이힐이 보였다.

“오늘 저녁 배입니다.”

차 안에서는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갈퀴에게는 미안하군.”

그리고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문을 나서는 최 사부의 딸을 봤다.

태희를 보는 선글라스를 낀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또각! 또각!

여자는 천천히 태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태희의 앞에 섰다.

“저기 학생!”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꼬맹이를 불렀다.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부르자 태희가 여자를 봤다.

“저요?”

“응! 예쁘네.”

“예?”

“참 예쁘다고.”

“고맙습니다.”

태희는 뭐 저런 아줌마가 다 있냐는 눈빛으로 봤다.

“아버지 잘 계시지?”

“저희 아버지 아세요?”

“그래. 최 선생님 잘 알아.”

최 선생이라는 말에 그제야 태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최 사부라고 부르는 것을 봐 온 태희였다. 그리고 가끔은 최 선생님이라고도 불렀다.

“아빠 식당에 계신데.”

“그러니. 이거 좀 전해 주겠니.”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태희에게 작은 서류 뭉치를 건넸다.

“이거 아버지 드리면 되요?”

“그래. 부탁해!”

“예.”

태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희가 그러는 동안 계속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태희를 보고 있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예전에는 좀 아팠는데 이제 안 아파요.”

“그, 그래?”

“예. 그런데 아줌마 누구세요?”

“아빠 친구!”

“아! 그러시구나!”

“넌 착한 사람이 되라.”

“예?”

태희는 다시 선글라스를 낀 여자를 봤다. 어찌 보면 정말 황당하게 말을 하는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태희였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태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순간 태희는 황당했고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잠시 동안 꼭 잡았다.

“넌 참 손이 따뜻한 아이구나!”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하는 여자였다.

사실 태희가 손이 따뜻한 이유는 모두 은성의 기공 때문이었다. 은성에게 치료를 받은 태희는 건강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몸에 상당한 기가 쌓여 있었다.

“예. 제가 좀 그런 편이에요.”

“그러니. 만나서 반가웠어.”

“예.”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살짝 태희를 보며 웃어 줬다가 내렸던 차에 다시 탔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대모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래. 가지!”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바로 마포 불곰이었다. 마포 불곰은 그 도시가스 폭발이 있던 날을 대비해서 자신의 방 안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놨다. 마포 불곰은 그날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콰콰쾅! 콰콰쾅!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김민수가 놀라 방문을 여는 순간 화염이 방 안으로 쏟아졌고, 그 화염에 맞아 김민수는 온몸에 불이 붙어 뒹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포 불곰은 그 위급한 순간에도 차분했다.

다다다! 다다닥!

그때 마포 불곰을 호위하던 남자 하나가 화염을 뚫고 마포 불곰의 방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피하셔야 합니다. 대모님!”

“그래야지. 가스 폭발인가?”

“예. 왜 폭발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마포 불곰은 그렇게 말하며 죽어 가는 김민수를 보고 차갑게 웃었다. 마치 지금 마포 불곰은 김민수가 죽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천벌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야! 나도 그 천벌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받겠지만 말이야!”

마포 불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살, 살려 줘! 아아악!”

전신 화상에 괴로워하던 김민수가 남자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어떻게 할까요?”

“죽게 둬! 죽어야 할 놈이다. 저놈이 산다면 나보다 더한 존재가 될 거야!”

“예.”

남자는 짧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마포 불곰은 여전히 불타는 자신의 저택과 함께 김민수의 마지막을 무섭게 노려봤다.

그리고 끝내 김민수가 숨을 거두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비밀 통로도 소용이 없습니다.”

남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집 밖으로 나가면 더 위험해진다.”

“예?”

“가스 폭발이 사고인 줄 알아!”

마포 불곰이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그, 그럼…….”

그 순간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공격이다.”

마포 불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마포 불곰이 앉아 있던 곳의 장판을 뜯어냈다. 그 순간 나무로 된 문이 보였고, 남자는 힘껏 문을 열었다.

“어리석었습니다. 가시죠. 대모님!”

남자의 말에 마포 불곰은 조심히 지하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그리고 남자 역시 따라 내려갔다.

그곳에는 미리 만들어진 통로가 있었고, 그 통로는 마포 불곰이 지내던 안가 옆집과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안가의 옆집도 불이 붙은 상태였다.

이렇게 마포 불곰은 철저하게 위험한 순간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그녀가 그만큼 굴곡진 삶을 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포 불곰은 그렇게 바로 옆집으로 올라와 불타고 있는 옆집과 똑같은 방에 들어가 앉았다.

“내일 우린 한국을 떠야겠다.”

“알겠습니다.”

물론 옆집에 있는 남자들도 모두 조선족이었다.

“정말 한국은 내게 좋지 않은 기억만 남겨 주는군.”

마포 불곰은 그렇게 말하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마포 불곰의 머릿속에는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번은 보고 가야겠지.’

마포 불곰은 지그시 눈을 떴다.

그래서 마포 불곰이 이렇게 영등포 여자 중학교 앞에 있는 거였다.

“출발해!”

“예. 대모님!”

마포 불곰의 차가 출발을 했고 마포 불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엄마는 항상 너한테 미안하다.’

마포 불곰은 고개를 돌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이없이 서 있는 자신의 딸을 물끄러미 봤다.

* * *

“아빠, 이거! 어, 오빠도 있었네.”

태희는 마포 불곰에게 받은 작은 서류 뭉치를 최 사부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몰라 나도 어떤 아줌마가 줬어.”

태희의 말에 최 사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난 최 사부의 눈빛이 떨리는 것을 봤다.

“아줌마가 줬다고?”

내가 다시 태희에게 물었다.

“응 아주 좋은 차를 탔던데? 아빠 친구라고 했어.”

“아빠 친구?”

“응. 이거 아빠 가져다 드리라고 하던데.”

태희의 말에 최 사부의 눈빛이 다시 떨렸다.

“보시죠.”

“예.”

최 사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태희가 건넨 서류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통장 두 개와 작은 메모지가 나왔다. 그 순간 최 사부의 눈빛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최 사부는 조심스럽게 메모지를 폈다.

-연길 평화식당.

딱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통장 두 개를 펼쳐 봤다. 통장 하나에 딱 50억씩 들어 있는 두 개의 통장이었다. 순간 난 마포 불곰이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 마포 불곰이 살아 있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태희를 봤다. 이건 최 사부에게 태희와 같이 오라는 메모일 거다. 최 사부는 날 보고 있었다.

“결정은 최 사부님이 하십시오.”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캡, 캡틴!”

“전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무슨 일인지 몰라 멍하니 보고 있는 태희를 봤다.

“너 중국말 배워야겠다. 꼬맹이!”

“왜? 내가 왜? 중국어는 수능에 안 나와.”

“그냥!”

난 그렇게 말하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역시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마포 불곰이 아니었다.

‘돌아오지 않는다면 쫒지는 않을 거다.’

이건 어쩜 최 사부를 위한 배려일 거다. 그리고 태희를 위한 배려이기도 할 것이고.

‘과정이 어떻게 되었던 제거가 되었군!’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이 세상을 정화시킬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난 입술을 꼭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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