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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169화 (169/210)

흑막의 신! 169화

“제 성격상 그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리고 분명 재능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통제를 잘하겠습니다. 전 프로니까요.”

“그럼 고맙고요. 남자 아이돌이 찝쩍대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수정은 남자 아이돌도 관심을 가지기 충분한 스펙과 외모를 가졌다. 서울대 출신이니 말이다. 그것도 의대!

의대까지 다니면서 가수를 하겠다는 수정이라는 것을 아시면 선생님이 아마 우선은 뒷목을 잡으실 거고, 그 다음으로는 내 멱살을 잡으실 것이 분명했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박지은 양의 일인데…….”

이번에는 이준성까지 내 눈치를 봤다. 내가 수정은 어떻게 하지 못하지만 박지은은 어떻게 할 수 있었다.

난 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박지은 씨 들어오세요.”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인 박지은에게 씨라는 말까지 붙여 주니 속에서 부글부글 뭔가가 끓어올랐다.

그리고 박지은이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들어왔다.

“넌 경호를 하라고 보냈더니 데뷔를 하겠다고 난리네. 정신 나갔지?”

“자기 재능을 최대한 살리는 것도 요원의 본분이라고…….”

“너 뭐 잘하는데?”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친구 동생이니 내 동생이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내 제자지만 말이다.

“저, 노래하고 춤 좀 춰요.”

“춰 봐?”

“여기서요?”

박지은이 날 빤히 봤다.

“연예인은 어디든지 하라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했고 이준성은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왜 웃습니까?”

“아닙니다. 맞는 말씀인데 꼭 오빠가 동생 말리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난 이준성을 잠시 뚫어지게 봤다.

“쟤는 제 동생입니다. 친구 동생이니 제 동생입니다. 수정이야 어떻게 되든 남이지만 쟤는 제 가족입니다.”

내 말에 박지은이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한 절반의 거짓말이다.

“오, 오빠……”

“호칭 정확하게 해라!”

순간 가족 같은 분위기로 가려다가 사무적으로 돌변했다.

“예. 캡틴!”

“넌 확실히 머리가 나빠!”

“죄송합니다. 영업 과장님!”

“춰 봐! 노래도 불러보고.”

난 꼬투리를 잡아서 안 된다고 말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지은은 내가 꼬투리를 잡지 못할 만큼 잘했다.

‘젠장! 저런 재능이 있었나?’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순간 박지은이 연예인으로 위장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역에 내 사람을 심어 놓는다. 나쁘지 않지!’

난 인상을 찡그렸다.

“너!”

난 박지은을 노려봤다.

“너! 남자 아이돌과 스캔들 나면 쫑날 줄 알아!”

“호중이 오빠 있어서 그럴 틈도 없네요.”

“오빠? 공과 사는 구분하라고 했다. 확 호중이 아프리카로 보내 버린다.”

내 말에 박지은은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난 몇 명 특별 대원을 뽑아 아프리카로 파견을 보냈다. 물론 그 파견은 다이아몬드 광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중국에도 요원을 파견했다. 그 중국 파견 요원의 대장은 물론 최 사부다.

최 사부가 중국으로 간 이유는 당연히 마포 불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최 사부를 보낸 것은 미래 산업의 동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희토류 광산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이래서 기억이 있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난 이렇게 내 세력의 성장을 위한 자금력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내 최대의 자금력은 바로 영약의 대량화 및 2차, 3차 식용화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어. 네 오빠 공부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잘 해라!”

창권은 중앙대를 그만두고 미국에 유학을 갔다. 물론 배우고 있는 것은 건축이다. 내가 볼 때는 정말 창권은 확실히 건축에 재능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난 그리고 이준성을 봤다.

“신경 많이 써 주십시오. 원래 똘끼가 있는 애라…….”

내 말에 박지은이 뒤에서 눈을 흘겼다.

“똘끼라고 하시면?”

이준성이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런 게 있습니다. 구구절절하게.”

그때 다시 박지은이 나를 잡아먹을 듯 눈을 흘겼다. 내가 안 보니 저러는 걸 거다.

“안 봐도 난 보인다고 했지.”

딸꾹!

내 말에 박지은은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했다.

“죄, 딸꾹. 죄송합니다.”

“언제 수정은 데뷔를 하는 겁니까?”

“이번 달 말입니다.”

난 그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오늘 통보를 하신 거네요.”

“죄송합니다. 워낙 재능이 출중해서.”

“알겠습니다. 그런데 수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하 연습실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난 모처럼 수정을 볼까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수정을 잠시 보고 가겠습니다.”

“거기 아무도 없습니다.”

이준성은 내가 소리를 내서 싸워도 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알려 줬다.

“예. 하지만 저도 정말 다루기 힘든 여자가 수정이라서요.”

“그렇죠. 어디 아닌 남자 있습니까?”

나와 이준성은 그렇게 멋쩍게 웃었다.

* * *

난 바로 지하에 있는 보컬 트레이닝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거의 3개월 이상 수정을 보지 못했다. 난 약간 들뜬 마음으로 지하에 있는 보컬 트레이닝실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다고 했지.’

나도 남자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예전 속초 밤꽃 향기 사건을 떠올렸다.

‘오늘은 어떻게든 진도 좀 나가 보자.’

역시 나도 남자다.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문을 여는 순간 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지 악을 쓰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목소리였다.

수정은 녹음실에서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수정의 노래를 들어 보니 신인가수치고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요즘 가수들이 대부분 기계의 힘을 빌려 음반을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 정도로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난 신기하기까지 했다.

‘에이, 별로 못 부르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이준성이 수정을 가수로, 그것도 솔로 가수로 데뷔를 시키겠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녹음실로 연결된 마이크에 전원 버튼을 눌렀다.

“돼지 멱 그만 따고 나와!”

내 말에 수정이 인상을 찡그리며 밖을 보고 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금방 찡그렸던 인상을 풀고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체! 너도 나 보고 싶었구나!’

이 정도 자뻑이면 병 수준일 거다. 수정은 내가 반가웠는지 손까지 흔들었다. 그리고 헤드셋을 조심히 내려놓고 녹음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웃고 있던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나오자마자 바로 내 팔을 꼬집었다.

“내가 돼지니? 멱을 따게.”

“어떻게 그 실력으로 가수를 하니?”

“요즘 가수가 노래만 부르니?”

“뭐?”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그럼 뭘 하는데?”

“요즘 가수는 춤도 잘 춰야 해!”

“춤?”

“그래. 댄싱 퀸 몰라?”

수정의 말에 난 예전 어릴 적에 ‘오늘 밤 어둠이 무서워요. 노래를 부를 때 네 눈이 더 무섭다, 이년아.’라고 농담을 했던 김완선 씨가 떠올랐다.

“그래서 노래도 그럭저럭 부르고 춤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나처럼 엄청 잘 추면 가능하지.”

“너처럼 엄청 잘 추는 게 어떤 건데?”

난 순간 궁금해졌다. 이준성이 그냥 수정이 내 애인이라고 해서 가수를 시켜 줄 위인이 절대 아닐 거다. 분명 수정에게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가수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거다. 난 그것이 궁금했다.

“보여 줄까?”

수정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봤다.

“그래. 어떤지 한 번 보자.”

난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다. 이 지하 보컬 트레이닝실에는 안무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었다.

“따라와! 이 누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줄 테니까.”

그렇게 나와 수정은 안무 연습실로 갔다. 그리고 수정은 오디오에 자신이 앞으로 부를 노래의 MR을 틀었다.

요란하고 경쾌하고 신이 나는 반주가 흘렀다.

그리고 수정은 돌아서서 날 보며 씩 웃었고 그와 동시에 수정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오늘 밤 어둠이 무서워요. 네 눈이 더 무섭다 이년아!’ 보다 더 뇌쇄적인 눈빛으로 변한 수정이 현란하게 반주에 맞춰 섹시 댄스를 췄다.

‘헉! 잘, 잘 춘다.’

난 나도 모르게 침을 흘렸다. 그리고 이준성이 왜 일반인보다 조금 더 노래를 잘 부르는 수정을 가수로 만들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보컬이야 기계의 힘을 빌리면 되니까.’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춤 하나는 누구보다 잘 추는 수정이었다. 정말 가창력만 뒷받침해 준다면 제 2의 은지수가 나올 것 같았다.

‘젠장! 군바리들 침 좀 흘리겠네.’

원래 섹시 여가수가 데뷔를 하면 그 반응이 군부대부터 나오는 것이 기본이다. 군부대 생활관에서 얼마나 많이 노래가 틀어지느냐에 따라 데뷔 성공인지 아닌지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몸매도 저 정도면 입 돌아갈 정도였다.

‘각선미 짱이네!’

난 핫팬츠를 입고 있는 수정을 보며 흑심이 돌았다. 이곳은 수정과 나만 있는 곳이다.

딱!

수정이 춤을 한동안 추다가 오디오를 껐다.

“침! 닦아라!”

그렇게 말하고 땀을 뻘뻘 흘린 채로 내 옆에 와서 주저앉았다.

향기로운 땀 냄새라고 할까?

잔뜩 땀을 흘린 수정이지만 수정의 몸에서 열정이 느껴지는 향기가 났다.

“어? 어! 누가 침을 흘렸다고 그래?”

“어? 어! 이래도 아니야?”

잠시 넋이 나간 나를 수정이 놀리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살짝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보고 싶었다. 너!”

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난 고개를 돌려 수정을 보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피곤해!”

순간 야릇한 분위기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변해 갔다. 이런 상태로 5분만 지나면 내가 품었던 모든 흑심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어떻게든 진도 나간다.’

모든 남자가 여자와 단 둘이 있을 때 하는 각오를 나 역시 불태웠다.

“그런데 너 의대는 안 다닐 거냐?”

수정은 죽어라 공부를 해서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 그곳은 원래 내가 다니고 싶었던 곳이었다.

“다녀야지.”

“다녀야지?”

“그래. 16년 동안 아빠 위해서 죽어라 공부를 했으면 한 3년 정도는 나를 위해서 사용해도 되잖아.”

이 순간 원래 수정의 꿈이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빠의 꿈이 딸이 서울대 의대를 가는 거라는 것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가수가 되겠다고?”

“기회가 왔을 때 안 하면 의사도 못할 것 같아서.”

이 말에 수정이 얼마나 가수가 되고 싶은지 느낌이 왔다. 하지만 역시 가창력은 절대 춤 실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요즘 라이브가 대세인 거 몰라?”

“내가 춤도 끝내주는데 노래도 잘하면 세상이 뒤집어져.”

자뻑도 저 정도면 시한부 인생이다.

“춤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거군.”

“보컬 트레이닝 죽어라 받고 있거든.”

원래 수정은 노력파다. 하지만 노래가 노력해서 되는 거면 다 이은미고 조용필일 거다. 난 살짝 눈동자를 돌려 내 어깨에 기대고 있는 수정을 힐끗 봤다.

“노래를 잘 부르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아빠를 설득해야지.”

정말 수정은 의사보다는 가수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16년 동안 공부한 건 아깝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애들은 거의 다 16년 동안 죽어라 공부만 해!”

뭐 틀린 말도 아니다.

“원래 내 꿈이 가수였어.”

수정의 말에 약간 서글픔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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