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74화
“하하하! 은성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 아닌데.”
“정말이십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기력이 없다고 넘버원을 마시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발기되어 있는데 풀려고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사고 치는 사람도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딱 하나의 단점이었다.
“아주 근거가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정관장에서 출시한 홍삼 환처럼 환으로 만들어도 건강 보조 식품이죠.”
내 말에 청솔제약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수출도 하기 편하고.”
사실 입소문은 물 건너 대륙으로도 뻗어 나갔다. 예전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김을 많이 사 갔다. 하지만 지금은 청솔 파워 넘버원부터 샀다.
또 중국 관광객들도 한국으로 와서 사는 것이 바로 넘버원이었다.
대박?
아니, 세계 인류 제약 기업으로의 우뚝 서는 것에 신호탄을 쏜 것이다.
그리고 비아그라를 개발해 다국적 제약 회사로 거듭난 화이자는 결국 아시아 전역의 비아그라 판매를 포기했다. 곧 유럽과 미주 지역도 그렇게 될 거다. 이건 다시 말해 조만간 이 건강 보조 식품인 청솔 파워 넘버원 하나만으로도 핸드폰 만드는 악덕 기업과 그 매출이 맞먹게 된다는 거였다.
물론 아직은 아니지만 말이다.
“수출을 생각하십니까?”
“5천만이니 2,500만이 남자입니다. 아이들 빼고 건강한 사람 빼고 먹는다면 200만이 소비층일 겁니다. 200만 명을 위해 만든 건강 보조 식품은 아니죠. 최소 4억 이상을 위해 만든 거니까요.”
내 말에 청솔제약 사장은 기겁한 표정으로 날 봤다.
“그, 그렇게만 되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겁니다. 환으로 제조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은성님!”
“그리고 2/4분기 매출 보고서를 보니 순이익이 5천억이더군요.”
순이익이 5천억으로 발전한 청솔제약이었다. 총매출이 150억도 안 되던 것이 바로 3년 전인데 말이다. 그만큼 발전한 거다.
“3/4분기에 현금 배당하세요.”
“분기 현금 배당을 하시라는 말입니까?”
“주주에게 돌려 드려야죠.”
물론 나도 주주다. 그것도 대주주!
“1천억은 예비비로 보유하시고 4천억은 현금 배당하세요.”
“알겠습니다. 곧 주주총회를 열어서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51퍼센트의 지분이 있기에, 또 20퍼센트의 우호 지분이 있는 나이기에 내 생각은 곧 승인을 의미했다.
또한 29퍼센트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 역시 현금 배당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말 황금, 아니, 다이아몬드와 같은 주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적대적 M&A도 초기에는 많이 시도가 됐다. 표면적으로는 김용팔 회장의 지분 19퍼센트와 청솔제약 사장의 지분 1퍼센트가 회사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인수 합병을 주로 하는 사모 펀드들이 승냥이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끝내 돈만 쓰고 나가떨어졌다.
파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적대적 M&A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난 돈은 이제 누구보다 많이 가지게 됐다. 그러니 복수심이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빠른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 했다.
그때 내 정보 조직에 포착된 것이 바로 동아백록회다. 그리고 최 회장은 그 동아백록회의 중간급 간부였다.
친일파 세력!
이 순간 내 적이 최 회장에서 동아백록회로 바뀌는 거였다.
‘최 회장만 따로 칠 수는 없어.’
최 회장을 건드리면 동아백록회가 움직일 거다. 돈이 많다고 해도 완전하게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 예로 5공 때 국제상사라는 대기업이 있었다.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서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났다. 지금이 딱 그 정도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은 딱 그 정도일 거다.
‘얼마나 뻗어 있는지 알아야 해! 젠장!’
내가 커질수록 내 적의 존재가 밝혀질수록 난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청산 없는 역사의 반복이 내 개인적인 복수도 이리 막고 있는 거였다.
그 복수를 잠시 미뤄야 할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뭔가가 끓어오르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진다.
“정말 슈퍼스타 수정이라니까.”
난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가 진짜 슈퍼스타 수정이라는 것을 확인한 남자의 환호성에 가까운 외침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저러고 싶을까?’
물론 저러고 싶을 거다. 수정을 보는 일이 흔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수정보다 자신의 옆에 있는 평범한 애인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이롭다. 그리고 현명하다.
C컵을 소유한 톱스타 수정보다 자신 옆에 있는 A컵 애인이 더 좋은 이유는 단 하나, 터치일 거다.
그 간단한 진리를 망각하고 있는 거다.
‘저 여자 눈 찢어지겠네.’
넋이 나간 애인을 보고 여자는 잡아먹을 것처럼 째려보고 있었다.
‘곧 집에 가겠네.’
내 예상은 적중했고 수정이라고 환호한 남자는 영문을 몰라 잠시 멍했다가 애완견처럼 화난 여자를 졸졸 따라갔다.
‘저렇게 될 줄 알았다. 톱스타보다 애인이 좋지.’
난 피식 웃어 버렸다.
물론 C컵을 소유한 톱스타를 애인으로 두면 더 좋지만 말이다.
“요즘 은지수랑 수정이 제일 잘 나가지!”
“아마 쌍벽을 이루지.”
“정말이야. 수정이다.”
“그런데 왜 명동에 온 거야? 사람 심장 벌렁거리게.”
남자들 무리들은 오늘 계 탄 날일 거다.
사람들은 그렇게 멍하니 수정이 걸어오는 모습을 봤다. 보통 일반 연예인들은 팬에 의해 포위를 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정은 그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수정은 그렇게 아무 제약 없이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체! 저 허영 덩어리!’
지금 수정은 이 순간을 즐기는 거다. 분명 수정은 보기 좋은 속물이었다.
“와! 정말 예쁘다.”
“정말 연예인은 달라도 달라?”
“그냥 연예인이 아니지. 수정 씨는 연예인의 연예인이야!”
남자 하나가 수정의 광팬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수정 씨 애인 있다며?”
“그렇다네. 스턴트맨이라네.”
“와! 정말 대단하네. 세계적인 K팝 스타와 위험한 스턴트맨의 로맨스라. 멋있다.”
“그러게 말이야. 누구는 좋겠다.”
남자가 말한 그 누구는 바로 날 거다.
난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지도 않거든.’
그때 내 옆으로 수정보다 더 예쁜 여자가 지나가자, 나도 남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여자에게 눈이 돌아갔다.
“와! 정말 잘 빠졌다.”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다리를 봤다. 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는지 내 스스로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와! 완전 예쁘다. 정말 연예인이 여기에 있네!”
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즐거운 공짜 눈요기.
이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호오! 쭉쭉 빠졌네! 수정이보다 백 배는 예쁘다.”
날씬한 다리, 잘록한 허리. 완벽한 몸짱이다. 조금 전까지 수정에게 쏠려 있던 시선들이 내가 보는 여자에게로 돌아섰다.
이래서 남자는 멀리 있는 스타보다 가까이 있는 옆집 예쁜 동생이 더 좋은 거다.
“와! 연예인 해도 되겠다.”
수컷들이 한 마디씩을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 나 역시 침만 흘리지 않았을 뿐, 이 명동 거리에 푹 빠졌다.
‘왜 이런 것들을 못 보고 살았을까?’
정말 저 여자는 사람들이 감탄을 터뜨릴 만하였다.
‘애인이 누군지 몰라도 참 좋겠다.’
그때 내 등 뒤로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야! 개은성!”
순간 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이 오는 것을 보고도 다른 여자에게 침만 안 흘리고 눈이 돌아갔으니 오늘 난리가 난 거다. 이래서 남자는 어쩔 수 없다.
“으응! 수정이 왔어.”
“너 요즘 막 나간다. 손가락 몇 번 더 지져야지 정신을 차리지?”
“그, 그게…….”
수정이 날 노려봤다. 이럴 때 바로 꼬리를 내려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수정은 나의 천사이면서 나의 악마이니까.
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수정과 어머니뿐일 거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요즘 새아버지랑 나폴리에 눌러앉으셨다. 항구의 낭만이 좋으시다나…….
그냥 어머니가 행복하시면 되는 거다. 가끔은 보고 싶지만 말이다.
‘나중에 한 번 가지 뭐!’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수정을 힐끗 봤다. 수수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무척이나 발랄해 보였다.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들이 보라고 저렇게 콘셉트를 잡고 나온 수정일 거다.
보기 좋은 위선 덩어리가 바로 수정인 거다.
“다 봤어?”
“다 봤지. 침만 안 흘리고 넋이 나간 것까지 다 봤지.”
수정이 날 째려봤다.
“벌써 잊었나? 손가락 지질 때를!”
이래서 남자는 연애 초창기에 멍청한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두고두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여자다.
“그냥 눈요기 하는 거야?”
“왜 남자는 다 그렇게 애인 놔두고 한눈을 파는지 모르겠어.”
“본능이지.”
“옛날 말에 산토끼 쫒다가 집토끼 놓친다는 말이 있더라.”
“알고 있어요. 하하하! 그냥 잠시 본 거야! 아무리 봐도 우리 수정님께서 가장 예쁘시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내 말에 수정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당연히 수정 님이지요.”
난 유아원 전래동화 선생님처럼 말하며 수정의 기분을 풀어 줬다.
물론 속마음은 지나간 저 여자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모처럼의 데이트에 수정의 마음이 참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거다.
“호호호! 당신은 이 수정 님을 즐겁게 해 줄 권리가 있고 스스로에게 불리한 짓을 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수정은 미란다 수칙을 응용하면서 농담을 했다.
“어디로 갈까?”
“좀 걷자. 날씨 오랜만에 참 좋다.”
“좀 걷다가 영화 볼까? 은지수 씨 영화 개봉했데.”
내 말에 수정은 날 빤히 봤다.
“우리도 권태기인 모양이다.”
“뭐? 무슨 소리야?”
“두 시간 반 동안 나랑 이야기도 안 하고 영화를 보겠다니 하는 소리지.”
“영화 싫어?”
“뭐, 3년 연애했으면 권태기지. 대신 팝콘이랑 콜라도 네가 사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스턴트맨이 무슨 돈이 있니?”
내 말에 수정은 어이없다는 듯 날 봤다.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다. 세 할머니 체인 식당에서 나오는 돈만 해도 영화 극장 자체를 사겠다.”
“그래도 그건…….”
“싫다는 거야? 잘못한 거 봐 주려고 했는데 꼬치꼬치 한 번 짚고 넘어갈까?”
“아니, 내가 사지. 언제는 내가 안 샀냐?”
돈이 있든 없던 이상하게 대한민국 여자들은 남자를 등쳐 먹으려고 하는 선천적 증후군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잘 생각했다.”
수정은 와락 내 팔짱을 꼈다. 정말 이렇게 스캔들 걱정 안 하고 대놓고 연애질 하는 연예인은 수정뿐일 거다.
그렇게 나와 수정은 은지수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