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75화
“에이, 영화 괜히 봤다.”
수정은 극장을 나오면서 투덜거렸다.
“왜, 영화 재미없었나?”
“재미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야. 사장님이 너무 은지수를 띄워 주셨네.”
“뭐라고?”
“저 영화 흥행이 되든 안 되든 은지수 언니는 단방에 다시 은막의 여우로 뜨겠네.”
역시 예리한 수정이다. 이래서 서울대 의대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사실 난 은지수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금을 조금 투입했다. 물론 이준성 사장도 OK를 한 일이었다.
은지수는 이제 섹시 여가수로서의 연예인 수명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팬들은 여전히 은지수와 수정이 쌍벽을 이루고 있다고는 말을 하지만 조금씩 밀리는 은지수였고, 그런 은지수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준 것이 영화였다. 그리고 은지수는 보기보다 연기력이 괜찮았다.
그래서 바로 나와 이준성은 돈질을 시작했고, 그 돈질은 곧장 시나리오의 수정으로 이어졌다. 원래 주인공 배역이지만 더욱 비중이 늘어났고, 전달하는 메시지도 강화시켰다.
정말 수정이 말한 것처럼 영화가 흥행에 실패를 해도 은지수는 홀로 돋보이게 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영화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확보한 스크린의 수만 900개 정도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영화관 70퍼센트 이상이 은지수를 보여 주고 있는 거다.
이것은 스크린 쿼터제의 효과이면서 피해였다.
한국 영화는 제도상으로 극장에서 95일 정도 개봉하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145일이었는데 점점 줄어들어 이렇게 100일 아래로 떨어진 거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제는 분명 문제가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은지수 같이 톱스타가 나오는 영화만 스크린 쿼터제 일수 안에서 개봉을 하는 거다. 은지수가 출연한 영화만 지금 일주일째 900개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고 있다. 벌써 550만 명이 봤다.
다시 말해 한 편의 한국 영화가 일주일 동안 엄청난 양의 개봉관을 확보하면서 상영되고 있기에 작품성 있는 작은 예산의 영화들은 극장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거다.
물론 지금 톡톡히 스크린 쿼터제의 득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체! 나도 나중에 영화나 찍을까?”
수정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째려봤다.
“왜 날 보는 거야?”
“누가 모를 줄 아니?”
“뭘?”
“우리가 본 영화의 제작비 70퍼센트 이상이 너한테서 나왔다는 거 다 알아.”
“그래서?”
“나도 나중에 영화 찍겠다고.”
수정은 은지수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는 어떻게 하고?”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찍지 뭐. 만능 엔터테인먼트!”
“너 그러다가 과로로 쓰러진다.”
“절대 안 쓰러지거든.”
“또 링거 꼽고 콘서트 공연을 하려고?”
사실 수정은 정말 말이 안 되는 막 나가는 짓을 너무도 많이 했다. 콘서트장으로 출발하면서 혼절을 해서 병원에 실려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차를 돌리고 나서 링거를 꼽은 채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한 때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다. 수천 개의 악플과 선플들이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싸움을 했고, 그것을 수정은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악플들을 재미있다는 듯 내게 자랑까지 했다. 멘탈이 강한 것이 틀림없다.
“악플러도 팬이다.”
수정은 정말 저런 면에서 무척이나 단순했다. 정말 수정은 얌체공 같은 연예인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이 바로 수정인 거다.
그에 반해 같은 시기에 데뷔를 한 박지은은 성격과 다르게 무척이나 조용하게 연예계 생활을 했다.
걸그룹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입지를 쌓아가고 있었고, K팝이 대세로 가고 있는 지금 걸 그룹이라는 특수성을 타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은지수, 박지은, 그리고 수정까지 해서 이들은 나와 이준성에게 상당한 돈을 벌어 주는 상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준성의 연예 기획 사무실은 상장도 했다. 액면가 5천 원이던 것이 상장을 하고 나서 바로 5만 원으로 뛰었다.
물론 그것은 K탑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수정의 위력이기도 했고 이준성의 사업 수완이기도 했다.
난 이준성의 연예 기획사가 상장되면서 500억 이상의 공돈이 들어왔다. 이제는 내게는 그냥 푼돈(?)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돈 벌기 너무 쉽다. 돈이 돈을 번다. 그래서 대한민국 서민들은 아직도 가여운 소시민인 거다.
나도 숨겨진 재벌 그 이상이지만 나머지 재벌들도 돈이 돈을 벌 것이니 말이다.
“이제 어디를 갈 거야?”
데이트만 하면 저렇게 수정은 보채기만 한다. 뭐 사실 오늘 만난 것도 거의 3개월 만이다. 해외 공연이 많은 수정이기에 날 만날 시간이 극히 부족했고, 그래서 이렇게 한 번 만나면 마치 고난의 행군을 하듯이 데이트를 이어 갔다.
* * *
‘정말 돌대가리! 돌대가리도 그런 돌대가리가 없다.’
그렇게 진태는 내게 온갖 구박을 받고 겨우 사시를 꼴등으로 붙었다. 물론 검사는 꿈도 못 꿨고 바로 변호사를 개업하게 됐다. 그래도 꽤 많이 뉴스를 탄 진태였다.
23살 최연소 사법 고시 패스는 진태의 훈장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사법 고시 패스도 꼴등이기에 내가 투자한 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한 거다.
어쩔 수 없는 인권 변호사 하나 생긴 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진태는 변호사 일은 안 하고 주구장창 데모하는 곳만 따라다녔다. 저러다가 누구처럼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인권 변호사를 너무 좋아하니 말이다.
난 그래서 요즘 차가 없는 뚜벅이다. 물론 수정도 나랑 데이트를 할 때는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는다. 처음 나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는 아주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수정은 쿨하게 사귄다고 밝혔고, 수정의 아버지만 졸도를 하는 사태로 마무리됐다. 물론 요즘 나랑 옛 은사이시며 수정의 아버지인 영어 선생님은 가장 친한 일촌이 되어 있다.
돈 많은 사위이니 장인에게는 나쁘지 않을 거다.
난 선생님이 떠올랐다.
‘새 장가를 들게 해서 해외로 보내 드려야지.’
그 계획만 성공을 하면 난 매일 오아시스에서 살 것이다. 내게는 수정이 오아시스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와 수정은 당당하고 겁 없이 지하철을 타고 재즈 바로 갔다. 지하철 안에서도 나와 수정을 보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너무나 당당한 수정의 모습에 사람들은 금방 흥미를 잃고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을 했다.
“그런데 너, 연예인 아니냐?”
“연예인이지.”
“이렇게 지하철 타고 다니다 또 스캔들 터지면 어쩌려고 그래?”
“요즘 기자들은 너랑 있는 것은 신문에도 안 실어 준다.”
“정말?”
“그래! 내 별명이 얌체공이란다.”
수정도 자기 별명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모른 척하는 것이 상책이다.
“왜?”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얌체공이지.”
그때 남자애 하나가 수정의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저기요. 사인 좀 해 주실래요?”
남자애는 무척이나 용기를 내서 수정에게 온 걸 거다.
“사인?”
“예. 저 누나 광팬이에요.”
“광팬?”
“예. 저 누나 콘서트는 다 갔어요.”
“평일에 하는 것도?”
“예.”
“학교는 어떻게 하고?”
누가 교육자 딸 아니라고 할까 봐 꼬치꼬치 캐묻고 있는 수정이었다.
“당연히 누나를 위해서 땡땡이를 쳤죠.”
남자애는 자랑스럽게 말했고 수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팍!
수정이 자신이 손으로 남자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난 순간 헉 하고 놀라 수정을 봤다.
“누가 공부 안 하고 콘서트 따라다니래?”
“예?”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참 조선 시대 여자처럼 말한다.
“하지만 누나 콘서트를 봐야 공부가 돼서…….”
“아이고 그러셔요? 너 몇 등 하는데?”
“저요? 중간쯤 해요.”
“그거 중간에서 반만 더 올리면 내가 너희 반에 가서 노래 한 곡 뽑아 준다.”
수정은 순간 공수표 같은 것을 날렸다.
“정말요?”
남자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수정을 빤히 봤다.
“그럼 정말이지. 그 대신 죽어라 공부해! 열공해라! 그럼 마누라 사이즈가 달라진다.”
수정은 옛날 급훈을 남자애에게 말해 줬다.
“정말이죠?”
“내가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못 봤죠.”
“그럼 가서 공부나 하셔! 다시는 콘서트장에 따라다니지 말고.”
“예. 역시 수정 누나세요.”
“호호호! 이제 알았니.”
난 수정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왜?”
수정이 날 째려봤다.
“너 그러다가 저 애가 반의 반으로 성적 올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연히 가서 노래를 불러야지.”
“스케줄 뺄 시간은 있고?”
내 말에 남자애는 내게 무한한 적개심을 보였다.
“당연히 없지.”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너랑 학교에서 데이트하지 뭐.”
이 정도면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병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거다.
난 남자애를 봤다.
“너 이런 꼴통이 좋냐?”
“예.”
남자애는 지하철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대답을 했다.
“저 사인 해 주세요.”
“네 성적표에 해 준다.”
수정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성적이 올라갔는지 아시죠?”
“네 성적표 사무실로 보내면 되지.”
“그,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난 분명히 약속 지킬 거니까. 너도 지켜라!”
정말 대책이 안 서는 수정이다. 이준성 사장은 또 노발대발을 할 거고, 수정의 매니저는 기겁을 해서 울상이 될 거다.
이미 저기서 귀를 쫑긋 세우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다.
난 힐끗 수정의 매니저를 봤다.
‘저 사람이 제일 불쌍해!’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수정은 지하철을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재즈 바로 갔다.
* * *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이곳은 사실 꽤 돈 좀 있다는 것들이 다니는 곳이다. 물론 내가 이곳을 예약한 단 하나의 이유는 수정에게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다.
“은성으로 예약하였습니다. 준비는 다 됐죠?”
“물론입니다. 가시죠.”
깔끔한 복장의 홀 지배인이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를 했다.
“일당 8만 원 받으면서 여기 예약하는 게 가능해?”
“이럴 때는 일당 8만 원짜리지.”
“하여튼 분위기는 좋네!”
당연히 분위기는 아주 좋을 거다. 돈 좀 있다는 집 개망나니들이 여자 뿅 가게 만들기 위해 들리는 곳이니 분위기 하나는 짱이다.
“한 달 일당 다 날려서 앞으로 네가 먹여 살려야 한다.”
“오! 그러세요.”
나와 수정은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고품격 서비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수정이 이 바로 들어서는 순간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고객들이 살짝 웅성거렸다.
수정을 알아본 거다.
정말 어디를 가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수정이었고, 난 그에 따라 수정의 남자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탔다.
‘자꾸 쳐다보네. 체하겠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코스 요리가 나왔다.
수정은 코스 요리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이래서 연예인이라고 다들 좋은 것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보다.
“더 앨범 팔아서 모은 돈 다 어디다 숨겨 놨니?”
“왜 그런 거 묻는데?”
여자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것들 중 몇 가지가 있다. 물론 여자의 키와 몸무게 그리고 나이는 절대로 물어봐서는 안 되는 거다. 거기에 통장 잔고도 물어봐서는 안 된다.
“아주 게걸스럽게 먹어서 그런다. 소속사에서 굶기니?”
“공짜는 이렇게 맛나게 먹어 주는 것이 예의야. 호호호!”
참 좋은 예의 배웠다. 이렇게 옥신각신을 하면 우리는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웨이터가 근사한 와인 한 병을 들고 우리 쪽 테이블로 걸어왔다.
“저쪽 테이블 남자 분께서 보내신 겁니다.”
웨이터는 정중하게 수정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면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난 웨이터가 들고 온 와인을 봤다.
사또 무똥 로칠드라는 레드 와인으로 최고급 와인이다.
‘젠장! 돈이 썩어나네.’
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수정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애들이 종종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아예 개무시를 하는 아이들이라는 거다. 이건 정말 예의가 아니다.
“오 그래요.”
수정은 웨이터를 보고 살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