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82화
“그럼 소피 장 당신은 최고야!”
내 말에 소피 장이 날 빤히 봤다. 그와 동시에 소피 장은 내게 돌발 키스를 감행했다. 몸이 비호같은 나도 여자의 돌발 키스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벌써 이렇게 당한 것이 두 번째다.
수정과 소피 장!
난 이상하게 내게 여자가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다다익선도 나쁘지 않지.’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최상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다려! 너를 위해 많을 것을 준비해 줄 테니까.’
난 바드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
딩동! 딩동!
차분히 초인종을 누르는 손이 보였고, 안에 있는 여자는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급하게 열었다. 슬립 차림의 여자는 마치 보고 싶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전화도 안 받아요. 어?”
여자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기다린 사람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박 사장 기다렸나?”
차가운 음성의 남자가 여자를 보며 말했다.
“누, 누구세요?”
“여기서 그 옷차림으로 이야기하면 창피할 건데?”
그 말에 여자는 자신이 야한 슬립 차림이라는 것을 알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순간 여자는 급하게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남자는 자신의 발을 문틈에 밀어 넣어 문을 닫는 것을 막았다.
“나랑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건데? 아니면 박 사장 마누라랑 이야기해야 할 거야!”
남자의 차가운 말에 여자는 마지못해 다시 문을 열어 줘야 했다.
“들, 들어오세요.”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남자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지금 아파트에 들어가는 남자는 다름 아닌 형성이었다. 은성의 지시를 받은 뜨악새는 박 사장에 대해 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박 사장이 딴 살림을 차렸다는 확인하고 나서 바로 형성을 보냈다.
형성은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거만하게 소파에 앉았다.
“역시 잘 차려 놓고 사네!”
“누, 누구시죠?”
“옷이나 좀 입지?”
형성의 말에 여자는 바로 방 안으로 급하게 들어가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누구시죠?”
“그게 중요하지는 않지.”
“예?”
“첩질하는 이유는 딱 하나겠지. 돈이 우선이겠지.”
“누구냐고 물었어요. 설, 설마 사모님이 보냈나요?”
“만약에 그쪽에서 보냈다면 넌 무사하지 못했겠지.”
형성의 말에 여자는 놀라 인상을 찡그렸다.
“그, 그럼…… 왜 온 거죠?”
“왜 왔냐면 첩질 좀 더 확실히 하라고 말해 주려 왔다.”
“예?”
“돈도 더 뜯어내고, 머리도 좀 아프게 하고, 사랑한다고도 좀 하고, 그런 거 있잖아.”
형성의 말에 여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 사장에게 자기 마누라랑 이혼하고 너랑 결혼하자고 해.”
“예?”
여자는 더욱 형성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그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거든. 네가 그 집안 콩가루 만드는 데 한몫 더 하라고.”
“제가 그렇게 해 주면요?”
“최소한 이 아파트는 네 명의가 되겠지. 아직 첩질 하면서 아파트 하나도 못 얻었지?”
형성의 말에 여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50이 넘은 남자와 20대 초반의 여자가 이런 짓거리를 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이 여자처럼 돈을 바라고 첩질을 하든가.
그게 아니면 남자에게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사는 거다.
그리고 이 여자는 전자에 해당됐다.
“정말 잘하면 이런 아파트 하나 더 챙겨 줄 수도 있어.”
“누구시죠?”
여자는 조금 전보다는 편한 얼굴로 형성에게 묻었다.
“내가 누구냐고?”
“예. 저한테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하는 거냐고요?”
“이유는 알 거 없고. 내가 누구냐면?”
형성은 그렇게 말하다가 여자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갔다.
“최소한 너 하나 정도는 소리 소문 없이 묻어 버려도 뒤탈이 안 생기는 사람.”
형성의 말에 여자는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남자의 말이 사실 같아서 두려운 여자였다.
“무슨 말인지 알지?”
“…….”
“잘 모르겠지만 이놈의 땅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든.”
“지, 지금 절 협박하시는 건가요?”
“협박처럼 들려?”
“예.”
“맞아, 협박이야! 다시 말하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시체는 절대 안 떠!”
형성의 마지막 말에 여자는 두려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형성은 바로 주머니에서 묵직한 봉투 하나를 테이블에 툭 던졌다.
“이건 착수금!”
“저, 저 주시는 건가요?”
“일을 하면 보수를 받아야지.”
여자는 조심스럽게 형성의 눈치를 보며 봉투 안을 봤다. 10만 원짜리 수표가 백 장도 넘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집 딸년이 너보다 어린 거 알지?”
형성의 말에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알, 알아요.”
“딸년보다 더 어린년이 애미 한번 되는 것도 재미있잖아.”
은성은 이렇게 철저하게 박 사장과 박은진을 파멸로 몰고 가려 했다.
* * *
난 머리를 하고 있는 소피 장을 봤다. 내가 보고 있는 소피 장을 다른 사람들 역시도 힐끗힐끗 봤다. 물론 대부분 남자들이다.
‘역시 보는 눈은 똑같군!’
난 피식 웃었다. 내게 만약 수정이 없다면 나 역시 소피 장에게 끌렸을 거다. 사실 지금도 끌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소피 장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뭐야, 저 웃음은?’
난 순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는 생각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어색해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고객님, 금연입니다.”
헤어숍 직원이 내게 아주 친절하고 재수 없게 웃으며 금연이라고 했다.
“예.”
난 짧게 말하고 헤어숍 밖으로 나갔다. 요즘 서울 바닥에서 담배 피기 힘들다. 공원이 금연이고 길거리도 금연인 곳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실내는 금연이었다. 너무나 흡연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조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헤어숍 앞에서 담배를 피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힐끗 나를 봤다.
그들의 눈빛에 난 순간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대마를 피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뭐지, 저 눈빛은?’
순간 확 짜증이 밀려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무슨 범죄자 같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요즘 담배 때문에 제법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2,500원짜리 담배에 각종 세금이 붙어서 나오는 것도 확 짜증이 나는데 저런 시선 때문에 더 짜증이 난다.
‘지들이 서민을 알아!’
서민은 담배 값이 오른다고 담배를 안 피는 것이 아니다. 담배를 피울 만큼 속이 답답한 일이 안 생기면 피라고 해도 안 피는 것이 담배다.
‘왜 흡연자에게 삥을 뜯어서 빈민을 구제한다는 거야!’
사실 담배 피는 사람들 중에 큰 부자 없다. 정말 발상부터 형편없는 것들이다. 저런 발상을 한 것들이 그 어렵다는 행정 고시 패스해서 들어간 놈들일 거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못 거둬들인 세금만 다 거둬들여도 충분히 빈민 구제 하고 남을 거다.
‘이러니 또 담배를 태우지.’
없는 사람들 돈 걷어서 없는 사람 구제를 한다? 정말 개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이것도 헛소리다.’
그때 내 옆으로 어린아이 하나가 지나갔고, 난 화들짝 놀라 담배를 껐다.
“냄새 난다. 저리 가!”
이게 흡연자의 최소한의 도리고 도덕이다. 난 흡연자고 이 정도의 매너는 지킨다.
* * *
“능력 있으시네요.”
소피 장의 헤어를 다듬고 있는 헤어 디자이너가 소피 장에게 말을 걸었다.
“예?”
“딱 봐도 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데.”
“호호호! 그런가요?”
“예. 요즘 그런 말도 있잖아요. 영계남 데리고 다니면 금메달. 동갑이랑 같이 다니면 은메달. 그리고 연상이랑 다니면 목메달!”
“호호호! 목메달이요?”
소피 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데 어쩌죠? 제 남자 아닌데.”
“예? 정말요?”
“예.”
“그럼 꼬시세요.”
헤어 디자이너의 말에 소피 장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소피 장의 눈에도 은성은 무척이나 능력 있는 영계였다. 그리고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럴까요?”
“그러세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에요.”
“그렇죠. 좀 그래요.”
소피 장은 피식 웃었다. 그때 내가 문을 열고 다시 헤어숍으로 들어왔다. 그러지 소피 장이 나를 힐끗 보고 웃었다.
‘뭐야?’
분명 저런 웃음은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증거일 거다.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예. 캡틴!”
뜨악새는 은성의 전화를 받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준비 다 되셨습니까?
은성은 뜨악새에게 시킨 일에 대해 물었다.
“예. 캡틴! 출발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우선 약간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 저축 은행 자금을 회수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축 은행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겠지만 박 사장 그놈은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인출을 하면 되겠습니까?”
-한 500은 해야죠.
은성은 억이라는 단어를 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박 사장이 아무리 애걸복걸을 해도 최 회장이 당장 지원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죠. 그때 2단계 작전을 가는 겁니다.
“예. 캡틴!”
-그럼 수고하세요.
뚝!
뜨악새는 은성과의 전화를 끊고 씩 웃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시는군!”
* * *
인천에 있는 박 사장이 마련해 준 세컨드의 집.
따르릉! 따르릉!
그때 박 사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자신의 아내였다.
“조용히해.”
박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받았다.
딸칵!
“무슨 일이야!”
-늦으시나요?
“오늘 접대가 있어서 늦어.”
박 사장의 말에 지희는 피식 웃었다.
***
뜨악새는 옆에 차분히 앉아 있는 남자를 봤다. 그 남자는 은성의 돈을 저축 은행에 예금하고 있는 김무생이었다.
“가지!”
“예.”
“이제 예가 아니지 않나?”
뜨악새가 살짝 찡그린 인상으로 김무생을 봤다.
“하하하! 그렇군! 갑시다. 김 기사!”
김무생은 뜨악새를 김 기사라고 불렀다.
“예. 회장님 가시죠. 이제 저축 은행 숨통을 조르실 차례입니다.”
“그런가? 내 살면서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군.”
김무생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최 회장의 저축 은행.
뜨악새와 함께 김무생은 거만한 자세로 저축 은행 행장실에 앉아 있었다. 은행장실 분위기는 차가웠고, 뜨악새와 김무생은 너무나 당당했다.
“지, 지금 500억 전체를 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행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김무생은 세상에 둘도 없는 거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문, 문제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왜, 지금이 불가능한 건가요?”
“그, 그건 아닙니다.”
“요즘 하도 매스컴에서 저축 은행을 때려서 마음이 불안해서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소.”
“하지만 저, 저희 은행은 건실합니다.”
“뭐 그렇겠죠. 하지만 내 마음이 불안해서.”
김무생은 그렇게 말하고 피식 웃었다. 쥐새끼 같이 생긴 행장은 당장이라도 목을 맬 듯한 표정으로 김무생만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지금까지 차분히 앉아 있던 가은이 김무생을 보며 말했다.
“은행에서 내 돈 내가 빼 가겠다는데 갑작스러울 게 뭐가 있소.”
“그렇습니다만…….”
“지금 준비금이 있을 거 아니요.”
“예. 있습니다.”
“그럼 주면 되는 거지. 왜, 혹시 여기도 부실해서 금고에 돈이 한 푼도 없는 거 아닌가?”
김무생은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