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83화
“아닙니다. 이 은행 돈이 말라도 저희 아버지 개인 금고의 돈은 안 마릅니다.”
가은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버지의 재력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 저축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큰손들은 대부분 최 회장의 자금력을 믿고 예치에 들어섰다.
“최 회장님께서야 나 몰라라 하시면 그만 아닌가?”
“저희 아버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기업 총수도 먹튀를 하고 예전에 튄 적이 있지 않소. 지금은 그 사람 때문에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산다지 아마.”
“저희 아버지께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나도 사채를 하는 사람인데 그런 분이 아닌 게 어디에 있어. 돈이 궁하면 튀는 거지.”
김무생은 이상할 만큼 가은을 자극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은성에게 지시를 받은 뜨악새가 시켜서 한 일이었다.
“이보세요. 김 회장님!”
가은은 김무생을 노려봤다.
“됐고. 내 돈이나 이체를 시켜요.”
바드득!
가은은 바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그러죠.”
“내가 내 돈을 받지 못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이 저축 은행에 돈을 예치한 사람들이 몰려들 거요.”
“알겠습니다.”
가은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행장을 봤다.
“지급하세요. 행장님!”
“하, 하지만…….”
“하지만 뭐죠?”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행장은 힐끗 김무생을 보며 작게 말했다.
“알겠어요. 우선 김무생 고객님 예치금 인출해 드리세요.”
“예.”
행장은 짧게 대답을 했다.
“그럼 볼일이 끝났으니 전 이만.”
김무생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기사!”
“예. 회장님!”
“자금 회수된 거 확인하고 와.”
“예. 회장님!”
김무생은 그렇게 말하고 뜨악새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가은의 저축 은행에서 우선 500억이 빠져나갔다. 사실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가은의 입장에서는 한 푼이 아쉬운 판이라서 정말 김무생의 500억 인출은 뒷맛이 썼다.
“젠장!”
김무생이 나가고 나서 바로 가은은 인상을 찡그리며 행장을 봤다.
“할 말씀이 뭐죠?”
“오늘 오후에 박 사장님의 대출금이 지급될 겁니다.”
행장의 말에 가은은 바로 인상을 구겼다.
“그거 보류시키세요.”
“하지만 회장님의 지시라…….”
“지금 당장 500억이 빠져나갔어요. 지금 밖으로 나간 저 여우가 바로 입을 나불거리면 다른 자금들도 바로 빠져나가게 될 겁니다. 우리 저축 은행 초유의 인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회장님께서 반드시 지원을 해 주라고 하셔서…….”
행장이 다시 한 번 말하자, 바로 가은이 행장을 노려봤다.
“행장님!”
“예, 아가씨.”
“혹시 박 사장 그 작자에게 챙긴 거 있으세요?”
“예?”
“있으시군요.”
“없,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대출을 해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나신 거죠?”
“죄, 죄송합니다. 전 단지 회장님의 지시에…….”
“일선에서 지휘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접니다.”
“예, 아가씨!”
“하여튼 당분간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대출금을 지금할지 말 건지 결정을 하겠어요.”
삐이이~.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뭡니까?”
행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 사장님 오셨습니다.”
“없다고 하세요.”
-그, 그게 계시다고 이미…….”
비서의 말에 행장은 바로 인상을 구겼다. 사실 행장은 박 사장에게 대출 커미션을 많이 받아먹은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대출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비리도 바로 드러날 것 같았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가은이 인상을 찡그리며 행장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렇게 박 사장은 행장실에 들어왔다.
“잘 계셨습니까? 행장님!”
내일 당장 돌아오는 30억의 어음을 막지 못하면 회사가 당장 부도가 날 박 사장이었지만 무척이나 표정이 밝았다.
이미 350억 대출을 약속 받았기에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거였다.
“앉으십시오. 박 사장님!”
“매번 이렇게 은행에 신세를 집니다. 하하하!”
박 사장은 의욕적으로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은 사돈께서도 계셨군요.”
“그렇게 되었네요.”
가은은 박 사장의 웃은 얼굴을 보니 속으로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자신의 아버지와 거래를 할 때만 해도 박 사장은 무슨 죄를 짓는 사람처럼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박 사장은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는 승냥이처럼 변해 있었다. 그것도 겨우 3년 만에 그렇게 사람이 변한 거다.
“행장님! 부탁드린 거 받으려고 왔습니다.”
박 사장은 마치 자신의 돈을 인출하는 사람처럼 당당했다. 그것 역시 가은은 가증스럽기만 했다. 방만한 건설사 운영과 함께 몸집 불리기만 하던 박 사장이 역겨운 가은인 거다.
“그, 그게 말입니다.”
“왜요? 그게 뭐요?”
박 사장은 행장을 빤히 봤다.
* * *
한적한 커피숍!
“이거…….”
지희는 얼굴을 붉히며 시시 티브이 테이프를 형성에게 밀었다.
“일을 착착 잘하네.”
“어쩔 수 없잖아요. 무섭게 하시니까.”
“내가 무섭게 협박을 해?”
“아닌가요?”
“협조를 구한 거지.”
형성은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제 얼굴은 꼭. 아시죠?”
지희는 형성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정말 이 테이프가 인터넷에 돌기 시작하면 시집은 다 갔다는 생각이 드는 지희였다. 물론 상대방인 박 사장은 아예 끝장이 나는 거겠지만.
“보통 이런 것은 남자 얼굴 모자이크 처리하는 거 아닌가?”
형성의 농담에 지희는 표정이 굳어졌다.
“제, 제발요.”
“어쩔 수 없잖아. 당신 얼굴 모자이크 처리하면 당신이 이 테이프 유포한 것처럼 보이잖아.”
형성의 말에 지희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 그렇게 되는 건가요?”
“교도소 가 봤나?”
“교도소요?”
“그래.”
“안, 안 가 봤는데요.”
22살 어린 여자가 교도소에 가 봤을 리가 없을 거다. 하지만 형성은 은근히 지희에게 교도소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지희를 겁주기 위함이다. 물론 형성도 교도소에는 가 본 적이 없었다. 원래 가 본 놈보다 가 보지 않은 놈이 더 그럴싸하게 설명을 하는 법이기는 하지만.
“교도소 가면 힘들어. 그것도 아주 많이.”
“그, 그런가요?”
“물론이지. 너처럼 추잡하게 들어오는 것들은 몰매를 맞기도 하고 똥을 처먹이기도 하지.”
형성의 말에 지희의 표정은 새하얗게 변했다.
“정말요?”
“그래. 그러니 얼굴 공개하고 가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왜, 시집을 못 갈 것 같아서?”
“그, 그건 아니지만…….”
지희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형성이 말한 것처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였다.
“걱정 마.”
“제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제 입장이시면 이렇게 말하지는 못할 거예요.”
처음으로 지희가 형성에게 대들듯 말했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
“시간이요?”
“그래.”
형성은 그렇게 말하고 비행기 표 한 장을 지희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죠?”
“마음이 불안할 것 같아서 여차하면 외국에 나가 있으라고.”
“그 늙은이랑 결혼을 하라면서요.”
“그렇지. 그게 플랜 A지. 뭐 세상사가 다 정해진 플랜 대로 가는 건 아니잖아. 중국이야. 그곳에도 우리 식구 많다.”
형성의 말에 지희는 형성을 빤히 봤다.
“절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우린 의리로 일해. 우리일 해 주는 사람들 그냥 쓰고 버리는 법 없다.”
“정, 정말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이 비디오 공개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요?”
“말했잖아.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고.”
지희는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알았어요.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우선 이혼을 시켜야지.”
“이혼요?”
“강력한 무기가 우리 손에 있은데 못 시킬 것도 없지.”
형성은 차갑게 웃었다.
“뭘 하려는 건데요?”
“그놈 집안에 평지풍파를 한 번 일으켜야지.”
형성은 차갑게 웃었다. 사실 형성은 은성의 제자이면서 친구다. 그리고 누구보다 은성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은성이 이렇게 음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모두 다 그 박은진이라는 년과 박 사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당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처절하게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은 은성의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은성에게 그 내막을 다 듣고 나서는 더욱더 잔인하게 움직이고 있는 거였다.
“평지풍파요?”
지희는 놀라 형성을 봤다.
“머리채 몇 번 뽑히는 것은 충분히 보상받을 거다.”
형성의 말에 지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22살 어린 아가씨가 겪을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자신의 미래가 밝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지희였다.
“그렇게 하죠. 뭐.”
“보기보다는 대담하군.”
“원래 여자들이 끝까지 몰리면 더 잔인해지고 대담해지는 거래요. 그래서 남자는 사랑에 목숨을 걸지 못하지만 여자는 목숨을 걸고 자살도 많이 한대요.”
“그런가?”
“예. 인천 아파트로 들이닥치는 거죠?”
“그렇지. 그 집 딸년이 갈 거다.”
“딸이요?”
지희는 조금 황당했다.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자고.”
“제가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데 딸년한테 머리털을 뽑히라는 거네요.”
지희의 말처럼 끝까지 몰린 지희는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야 가루 콩 집안 아닌가.”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참 무섭네요.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알고 싶어?”
형성은 지희를 무섭게 노려봤다.
“싫어요. 원래 많이 아는 사람이 영화에서도 제일 빨리 죽어요.”
지희의 말에 형성은 피식 웃었다.
“그 늙은 개가 다시 아파트로 오면 전화를 해!”
“예.”
* * *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조금 전까지 희희낙락이던 박 사장은 한순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대출금 지급이 어렵게 됐습니다.”
“왜요? 왜 지급이 어렵다는 겁니까?”
“갑자기 대량으로 인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전 이미 회장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박 사장은 다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세요. 박 사장님!”
가은이 차가운 말투로 얼음처럼 냉정하게 말했다.
“가은 사돈 처녀! 나 오늘까지 30억 못 막으면 부도가 납니다.”
“저희도 지금 위급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미 화장님께서 결정한 일이십니다.”
“제가 그것을 번복했습니다.”
“뭐라고요?”
박 사장은 가은을 멍하니 봤다.
“지금 초유의 인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급 예비비도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 막지 못하면 내일 부도가 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하, 하지만…….”
지금 다른 어떤 은행이나 사채도 박 사장에게 돈을 줄 곳은 없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봐요.”
“죄송합니다.”
가은은 짧게 말했다.
“하지만 회, 회장님께서…….”
“이 저축 은행은 회장님의 사금고가 아닙니다.”
가은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최 회장의 사금고처럼 쓰이는 저축 은행이지만 최 회장도 박 사장의 대출금 말고는 다른 용도로 예금을 유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회, 회장님께서…….”
가은이 완고하게 말하자 이제 박 사장의 표정은 아주 창백하게 변했다. 정말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다섯 시간 남짓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일 돌아올 어음 30억을 막지 못하면 바로 부도가 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