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84화
“하지만 난 회장님의 말만 믿고…….”
“지금 제 아버지를 원망하시는 건가요?”
가은이 박 사장을 노려봤다.
“그, 그건 아니지만…….”
“저희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벌써 3년 전에 부도가 났을 회사잖아요.”
가은은 박 사장의 면전에 조롱을 하듯 말했다.
“가, 가은 양…….”
“그때 부도가 났으면 박은진한테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을 건데…….”
이건 확실히 박 사장에 대한 조롱이었다.
“지, 지금 날 조롱하는 겁니까?”
“조롱이라니요. 사돈한테 조롱을 어떻게 하나요? 물론 결혼을 해야 사돈이기는 하지만.”
가은은 이제 박 사장과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다고 생각을 했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거군요. 회장님도 아십니까?”
“아버지는 모르시죠.”
“그럼 회장님을 만나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하여튼 저의 저축 은행에서는 한 푼도 대출해 드리지 못합니다.”
그때 급하게 은행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행장님! 행장님!”
문 밖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들어오라는 말도 없었는데 급하게 문을 열고 예금 담당 부장이 벗겨진 머리를 번뜩이며 급하게 은행장실 문에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행장은 자신의 난처한 상황을 괜히 예금 담당 부장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풀었다.
“내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한 소리 못 들은 겁니까?”
“들, 들었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내 말이 우습습니까?”
행장은 괜히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가은은 이것이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금 담당 부장의 표정이 거의 흙빛이 되어 있는 것이 가은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뭐죠?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예.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요?”
“그렇습니다. 초유의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가은은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까지 100억 이상 고액 예금자들이 인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금 담당 부장의 말에 가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설마 했던 일들이 지금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거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은성의 돈을 관리하고 있던 차명 계좌가 저축 은행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거였다.
“그, 그래서요?”
“귀빈실로 모시려고 했는데 바로 인출을 원하셔서 지금 은행 안에 계십니다.”
“그럼 일반 예금자들도 다 들었다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고 있나요!”
가은은 예금 담당 부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주식만 개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저축 은행의 이자율이 1금융권 은행의 예금보다 높기 때문에 5천만 원 이상 예금한 예금주가 꽤 있었다. 그들은 작은 소문에도 예금을 빼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 이 상태라면 내일이면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 앞에 줄을 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가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지금까지 출금된 금액이 얼마죠?”
“500억입니다.”
“500억이요?”
“그렇습니다.”
김무생이 인출해 간 500억도 저축 은행을 휘청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또 지금 인출된 500억 역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거액이 인출되었다는 소문이 가은의 저축 은행을 휘청하게 만들 수 있는 숨겨진 칼인 거다.
‘무슨 대책이 필요해!’
가은은 이번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찾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자기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의 비자금뿐이야!’
가은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 사장을 봤다.
“이제 왜 저희가 지급을 정지했는지 아시겠나요?”
조금 전까지 씩씩거리던 박 사장도 이 순간 멍해졌다.
“하, 하지만 그, 그래도…….”
“뭐가 하지만 그래도인가요? 사돈이 같이 망해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다른 곳에서 대책을 마련하세요. 저희도 지금 비상사태라고요.”
가은은 그렇게 말하고 은행장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이미 은행 출구 앞에서는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고 있었다.
역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거고 요즘은 인터넷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 원점에 섰다.
‘정말 소문이 사람을 잡는군!’
가은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가은의 예상대로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물론 인터넷에는 저축 은행 부실 설이 여론을 불안하게 몰아가고 있었다.
-저축 은행, 곧 자금 정지 사태 우려!
-이미 고액 예치자들은 인출 완료함. 망할 놈의 세상!
-없는 서민들만 다시 울릴 것인가?
-분명 정보 유출된 게 확실함.
-내일 모모 저축 은행 거래 정지 사태 예상!
이렇게 인터넷은 뜨거웠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남 말하기 좋아하고 인터넷은 책임이 없으니 소문은 일파만파로 커져만 갔다.
물론 이렇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것은 바로 자운대 대원들이었다.
“어서 어서 손가락이 깁스하도록 댓글을 달아!”
호중이 모처럼 박지은의 매니저 일을 잠시 접고 이번 일에 나섰다. 물론 알바들은 몇 푼이면 영혼도 팔지 모른다는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렇게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커져만 갔다.
* * *
난 소피 장을 꾸미는 것을 계속하면서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내가 우선 만난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고시생 출신 평검사였다.
조용한 일식집에 모인 내 후원을 받은 평검사가 20명이 넘었다. 소피 장은 일식집에 들어서면서 즐거운 표정을 했다.
“원래 나 일식 좋아하는데.”
“그러세요?”
“응. 회 좋아해!”
“그럼 드세요.”
내가 일식집으로 들어서자 종업원이 내 앞에 공손히 섰다.
“예약하셨습니까?”
이곳은 최고급 일식집이다. 사전 예약 없이는 회는커녕 낙교 한 조각 씹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은성으로 예약을 했는데요?”
“예. 7번 방입니다.”
종업원은 내게 말을 하며 안내를 했다. 이미 그곳에는 20명의 평검사들이 모여 있을 거다.
난 이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어쩜 내가 만든 평검사회는 군대의 하나회 같은 미군일 거다. 이들이 지금 평검사이지만 10년이나 20년 후에는 대검을 좌지우지할 인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들은 내 도움이 없었다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사시를 합격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인지 평균 연령이 다른 검사들보다 많았다.
한마디로 나라는 막차를 탄 사람들이라는 거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들 중 일부는 내 계획에 의해 스타검사가 되어 있는 평검사도 제법 있었다.
‘진태는 왔을라나?’
유일하게 변호사 출신인 진태는 이 평검사회의 회원이다.
내가 7번 방에 들어서자마자 검사들이 일어섰다. 마치 차장 검사를 대하는 것 같이 정중했다. 아마 내가 자신들의 은인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내게 하나씩 약점을 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일어서시니 부담이 되네요.”
난 쭉 둘러보며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렇게 전 평검사회가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난 이번 일로 이들의 결속을 강화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은의 저축 은행을 압박할 생각을 했다. 이미 각종 저축 은행들의 비리는 사전에 내사가 끝난 상태였다.
이제 핵폭탄 급만 터트리면 되는 거다.
“제가 이번에 모이시라고 한 것은 드디어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내 말에 20명의 평검사와 주제에 맞지 않게 인권 변호사를 하고 있는 진태가 놀란 눈으로 날 봤다.
“움직일 때라고 하시면?”
“저축 은행 문제를 터뜨려 볼 생각입니다.”
“어둠이 노을을 만들고 하늘을 검게 물들이듯 큰 것부터 뻥뻥 터뜨리세요.”
“큰 거라고 하시면…….”
내가 묻는 검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 물었다.
“저축 은행 정치권 부정 대출 사건 있죠?”
“예. 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겠습니다.”
“예. 바로 핵폭탄 급이네요.”
“그런데 전 정권 비자금, 누가 내사를 하고 있죠?”
내 말에 순간 이 공간은 얼어붙다 못해 빙하기가 된 듯 싸늘해졌다.
“그, 그건…….”
가끔 보면 절대 건드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게 바로 비자금이라는 거다. 아마 현 정권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거다.
정치인들, 집권자들은 모두가 다 비자금을 만드는 버릇 같은 것이 있나 보다. 그리고 그 버릇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각종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저희가 조사를 해도 결과물을 얻기는 힘듭니다.”
“그렇죠. 지금은 그럴 겁니다.”
“그런데 왜?”
“귀신이 사람을 홀리는 법이죠.”
“예?”
“소문만 그렇게 내라는 겁니다. 살짝 기사들에게 흘리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그 말씀은…….”
“아마 바하마 군도라고 들었는데…….”
“소문입니다.”
“그 소문의 반은 진실에 기초를 하고 있죠.”
내가 검사들과 무거운 이야기를 하자 소피 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회만 먹고 있었다. 일부 평검사는 소피 장의 미모에 놀라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소피 장은 매력적인 여자야!’
난 회를 입에 넣고 있는 소피 장을 보며 씩 웃었다.
‘지금쯤이면 쪼르륵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늙은이한테 달려갔겠지.’
난 가은을 떠올렸다. 내가 비자금을 살짝 건드리는 것은 최 회장이 비자금을 현금화시켜서 국내로 유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 * *
쾅!
최 회장이 테이블을 자신의 손으로 내려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을 보서 무척이나 흥분을 한 상태처럼 보였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말한 그대로?”
“그래요. 아버지. 초유의 인출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건드리자는 말이냐?”
“예.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잖아요. 그게 아니면 경기도에 있는 땅을 우선…….”
쾅!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최 회장은 가은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그것을 현금화하자는 거잖아요.”
“당장 현금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 지금이 최고의 위기라고요.”
“다른 방법을 모색해 봐라.”
“다른 방법은 없어요.”
가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최 회장은 가은을 보며 혀를 찼다.
“쯔쯔쯔! 그렇게 임기응변이 없어서 어찌 회사를 이끌어 가겠다는 거냐?”
최 회장의 말에 가은은 최 회장을 빤히 봤다.
“방법이 있으세요?”
“언 발에 오줌 누기지만 그게 방법이라면 방법이 되겠지.”
최 회장도 인상을 찡그렸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요?”
가은은 최 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이제야 감을 잡은 것이냐?”
“감은 잡았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거지.”
“하지만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3일은 걸려요.”
“1조 원쯤 해외 투자를 받는다고 하면 악화된 여론은 바로 우리 편으로 돌아설 거다. 지금 네가 고민하는 것은 여론이 악화되는 거잖아.”
“하지만 1조 원의 이자만 해도…….”
“그 돈은 다시 들어올 예금으로 충분히 충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