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94화
-예. 제가 멈출 수 있는지 그게 안 되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지희는 당돌하게 은성에게 물었다.
-저 역시 모르겠습니다.
은성은 지희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의 통화나 신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가 철저하게 숨겨지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꺼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은성 역시 지금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은성의 대답에 지희는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제가 어쩜 당신에게 지금까지 악마처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잇조각으로 당신을 한없이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이끌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그만두시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악마요?”
-지희 씨 당신에게는 제가 악마일 겁니다.
쾅쾅쾅! 쾅쾅!
-있는 거 다 아니까 문 열라고.
박은진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지희는 현관문 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조금 전 당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척이나 당당하면서도 서글프게 웃는 지희였다.
“있잖아요. 전 지금까지 저를 다 유혹하기만 했어요. 그리고 그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가고 또 포기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정말 웃긴 건 지금까지 제 인생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것 같아요. 공부도 하다가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는 것도 하다가 그만두고. 그렇게 항상 포기만 하고 살았어요. 그리고 또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았어요. 그러면서도 돈도 한 푼 안 남았어요. 그러데 정말 그렇네요. 악마의 유혹 같은 제의였네요.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유혹 있잖아요. 그리고 그 유혹을 승낙하고 처음으로 집에 갔어요.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 엄마가 돈 보고 좋아라 하데요. 그런데 그게 참 웃겨요. 처음에는 어디서 훔쳤나?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다니냐? 걱정을 하시다가 제가 준 돈을 보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데요. 그게 내 인생이네요. 참 서글프죠.”
지희 역시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인 은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다.
-그렇군요.
“정말 참 서글프죠. 정말 포기만 하고 반 토막으로 잘라서 그만두고 그렇게 하면서 살았어요. 그 여자한테 원한이 있다고 했죠?
-예. 있습니다.
“그럼 그 원한 푸세요. 제가 해 드리죠. 돈 좋아하는 우리 엄마 내가 준 돈 나 시집보낸다고 적금 들어 놓고 한 푼이라도 못 쓰네요. 저 같은 게 시집을 갈 수 있을까요?”
-동영상은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회수하겠습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웃기다고 해야 하나요?”
-저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죠. 당신 인생에 끼어들어서 마음대로 조종을 한 거 정말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은성은 지희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거 아세요? 전 살면서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었어요. 너는 그렇지 뭐! 너 같은 것이 그렇지. 너니까 그런 짓을 하는 거야! 항상 그렇게 손가락질 당했어요. 그리고 저 이번에 받을 잔금으로 이제는 정말 후회하지 않고 끝까지 뭔가를 해 보고 싶어요.”
지희는 정말 자신의 꿈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희 씨 꿈이 뭡니까?
은성의 물음에 지희는 처음으로 살짝 한숨 소리를 냈다.
“제 꿈은요. 사람 되는 거요. 하시던 일 계속하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다시 절 유혹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힘든 하루가 되실 겁니다.
은성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뚜뚜뚜! 뚜뚜뚜!
은성은 그렇게 한참 끊어진 전화를 봤다. 은성의 아지트는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겨울 궁전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겨울을 깬 사람은 은성이었다.
“내가 악마일까?”
순간 은성은 스스로를 후회하고 있는 거였다.
“예전 저에게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이끼 같은 필요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끼 같은 존재.”
“죄송합니다.”
형성은 살짝 은성에게 묵례를 했다. 그리고 뜨악새는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하던 은성에게 드디어 브레이크가 생겼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다.
“경찰에 신고해!”
이건 은성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예. 캡틴!”
***
쾅쾅쾅! 쾅쾅쾅!
“문 열어! 어서!”
박은진은 미친 듯 소리를 질렀고 지희는 은성과 통화 때문에 바르지 못했던 발톱에 매니큐어를 마저 바르고 있었다.
“없는 거 아닐까요?”
박은진과 같이 온 남자의 목소리가 지희의 귀에 들렸고, 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새끼발가락을 바르다가 살짝 흔들려 발가락 끝에 매니큐어를 묻혔다.
“그거였네. 너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잖아.”
지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거실에 있는 것들 중에 정말 위험한 흉기가 될 것 같은 것은 하나씩 치웠다.
“정말 그러고 보니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네.”
어쩜 이 순간 지희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유로운 것도 사이코적일 것이다. 그리고 지희는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문을 열었다.
철컥!
그 순간 박은진이 10분 가까이 문을 두드린 것에 대해 분통이 치밀었는지 문을 연 지희를 향해 바로 따귀를 때렸다.
“이 화냥년이 문을 열라면 열 것이지. 왜 있는데 문을 쳐 안 열고 지랄이야!”
쫙!
“으윽!”
박은진이 얼마나 세게 지희를 때렸는지 지희의 얼굴 한 쪽이 박은진이 끼고 있는 반지에 상처가 났다.
그리고 박은진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바로 지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지희는 그런 박은진이 지랄 발광을 해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1942!’
지희는 그렇게 박은진에게 폭행을 당하는 순간 계속 1942를 중얼거렸다. 그건 3년 만에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내민 돈을 가지고 엄마가 가서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 준 통장의 비밀번호였다.
그리고 그런 모진 폭풍 같은 시간이 한차례 지나갔다.
“문 잠가! 뭐 자랑할 게 있다고 문을 열어 놓고 있어.”
순간 지희는 박은진을 보며 조용히 말했고, 그런 지희의 모습에 박은진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아는 거지?”
“조금 늙은 것이 올 줄 알았는데 새파란 것이 왔네. 그 아저씨 쪽팔리겠다. 딸한테 들키고.”
“뭐야? 이 쌍년이! 네가 우리 집 돈 뜯어내려고 협박하기 위해 보낸 거잖아. 이 쌍년아!”
박은진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자신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해결한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그랬나?”
지희는 그렇게 말하고 피식 웃었다.
“뭐야? 어린년이 뽕을 했나? 정신이 오락가락해?”
“어리고 독하기는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희는 박은진을 처음으로 째려봤다.
“그래? 어디 독한 게 어떤 것인지 보여 주지.”
박은진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옆에서 넋이 나가 멍하니 보고 있는 호스트를 봤다.
“가서 가위 찾아와!”
“가, 가위요?”
“그래. 가위! 저년 옷부터 찢어발기게.”
박은진이 앙칼지게 외쳤고, 멍해 있던 호스트가 부엌으로 가서 가위를 찾아왔다.
“여기요?”
“너희들이 할 거니까. 너희들이 찢어.”
그 순간 지희는 자신에게 닥쳐 올 일이 뭔지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
“지, 지금요?”
“그럼 뭐 하려고 여기에 왔는데? 너도 나처럼 머리 뜯으려고 왔어?”
“그, 그건 아니지만…….”
“난 저렇게 돈만 밝히는 년들을 잘 알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협박을 해. 그러니까. 우리도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지.”
박은진의 말에 지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조금 전 자신과 통화를 했던 은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영상은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회수하겠습니다.
“뭐해? 어서!”
박은진이 앙칼지게 소리를 치자 호스트 둘이 마지못해 앞으로 나갔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이 대충 어떤 일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고, 자신이 아무리 모진 짓을 해도 지희는 신고를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죄가 처벌받지 않는 면죄부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악마보다 더 잔인해진다. 그래서인지 중세 시대에 교회에서 파는 면죄부가 그렇게 잘 팔렸다는 역사가 있는 걸 거다. 어쩜 이 세상 전체는 모두가 각각의 능력을 가진 악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심을 한 호스트 둘은 서로를 번갈아 보다가 씩 웃고 지희의 옷을 강하게 뜯기 시작을 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놀랍기만 했다.
같은 시간 박은진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조금 끊기는 감이 있지만 형성이 몰래 설치를 해 놓은 고성능 캠에 의해 실시간으로 은성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하는데 몇 분 정도 걸리지?”
은성이 옆에 서 있는 형성에게 물었다.
“제가 잘 아는 경찰에게 부탁을 했으니 바로 출동을 할 겁니다.”
“그럼 저 정도는 가택 침입에 폭력이겠지?”
“그렇습니다.”
“약해! 난 살아 있는 것이 필요해.”
“예?”
형성은 더 높은 수위를 원하는 은성을 보고 놀라 눈이 커지며 되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보고 있는 은성은 조금 전 고민하고 방황하던 그런 모습의 은성이 아니었다.
바람처럼 일어나 들불처럼 타오르는 바로 그 은성인 거였다.
“네 부하들에게 막으라고 해! 한 10분 정도 막으면 될 것 같군.”
“예. 알겠습니다. 캡틴!”
“그러고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 핸드폰 회수해!”
“예.”
형성은 짧게 대답을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물론 그가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하들이었다.
“경찰 오면 딱 10분만 막아.”
-예?
“멱살을 잡고 흔들던 무엇을 하든 딱 10분이다.”
형성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은성이 유심히 보고 있는 모니터를 봤다. 이미 지희는 모질게 당하고 있었다.
‘이제 특수 폭행에 성폭행 청부가 되겠지.’
난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사악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 * *
뚜뚜뚜!
“뭘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무슨 일입니까? 형님!”
“짭새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0분만 막으란다.”
“짭새요?”
조폭 같은 둘은 본능적으로 경찰을 비하하는 말이 나오니 인상을 찡그렸다. 조폭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네가 할래? 내가 할까?”
이건 부하인 네가 하라는 소리였다.
“경찰이 온다고요?”
“그럼 큰 형님이 괜히 가오 빠지게 우리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시겠니?”
조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형님! 왜 막는데요?”
“우리 같이 필드에서 뛰는 것들은 아무 생각 없이 까라면 까면 그만인 거야. 괜히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달려 들어가서 말실수 까딱 잘못하면 낙동강 오리알도 못 되는 거야!”
보통 진짜 조폭들은 부하나 후배가 경찰에 잡혀 교도소를 가게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서 챙겨 주는 것이 전통이었다.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조폭은 사식부터 내복까지 스페셜하게 넣어 주는 것이 원칙이었고, 혹시 몰라 들어간 놈의 아내도 단단히 단속을 해서 도망을 가거나 바람이 나지 못하게 해 줬다. 그리고 들어간 놈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애인만 있다면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추적을 했다.
물론 그렇게 추적을 하는 기간은 들어간 놈이 출수를 하는 그 시점까지였다. 그리고 충분힌 생활비를 조폭에서 지급을 해 줬다.
이것이 이론적인 조폭의 옥바라지였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의 조폭들 중에 그런 조폭 집단은 오직 형성이 만든 조폭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예 없다고 보면 되는 거다.
“그런데 형님!”
“왜, 들어가기 싫어?”
“그게 아니라 다음 주에 저희 아들내미 입학식 있습니다.”
후배 조폭의 말에 선배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