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의 신! 199화
박은진은 그렇게 최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지희가 있는 병실을 찾아갔다. 마치 박은진은 친한 친구의 병문안을 가는 것처럼 아무런 부담도 없는 표정으로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돈 때문에 그런 거니까. 돈 좀 찔러 주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박은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 그녀가 황금 만능 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증거일 거다.
또각! 또각!
박은진의 발자국은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만큼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쌍한 지희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년 기절한 거 아니야!’
박은진은 마지막 순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지희를 봤다. 하지만 지희는 마치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그것도 표독한 여자에게는 칼날만큼 예리한 육감이라는 것이 있고 지금 박은진은 누구보다 표독했다.
‘나랑 거래를 하고 싶은 거야.’
박은진은 지희가 그렇게 기절한 척을 한 것은 모두 자신을 압박해서 몇 푼 더 뜯어내겠다는 심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쩜 박은진은 그렇게밖에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집으로 보내진 동영상!
그것도 자신에게 보내진 동영상으로 봐도 분명 지희가 원하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을 한 박은진이었다.
“체! 정말 더러운 년한테 깽값 제대로 주네.”
박은진은 이 순간에도 그렇게 지희를 욕했다.
“그런데 왜 그 상황에서 어떻게 신고가 됐지?”
박은진은 그 생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희가 신고를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이 문을 두드릴 때 그때 신고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한 경찰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그게 점점 더 박은진에게는 의문이 되고 있었다.
“단독으로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더러운 년한테는 더러운 개새끼가 꼬이는 법이니까.”
박은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뭐 지금 이 순간 혼자서 한 짓이든 같이 한 짓이든 박은진에게는 상관이 없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박은진은 이 모든 책임을 다시 자신의 아빠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박은진은 지희의 병실에 도착해 있었다.
“누구시죠?”
지희의 병실 앞을 지키고 있던 의경 하나가 박은진을 막아섰다.
“지희 친구인데요.”
이미 박은진은 지희의 이름도 확인한 상태였다.
“친구라고요?”
“예. 연락 받고 왔어요.”
“연락요? 연락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순간 박은진이 의경을 째려봤다.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면회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의사야?”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럼 내 친구가 죄인이야?”
“그,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나를 막지? 겨우 의경 주제에.”
의경은 순간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의경 주제라고 했어.”
“으음.”
의경은 당장 자신의 눈앞에서 싸가지 없게 구는 박은진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경찰 생활이 더 늘어날 것 같아서 애써 참는 눈빛이었다.
“얼굴만 보고 갈 거야.”
“왜 반말이십니까?”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박은진은 그렇게 말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또각! 또각!
박은진의 발자국 소리는 여전히 그녀의 죄만큼 선명했다. 또각! 또각! 귀를 거슬리게 할 정도의 날카로운 소리였고 복도 저 끝에서부터 들리는 짜증나는 소리였다.
박은진 역시 최대한 그렇게 당당히 소리를 내며 걸으려 했다. 아무리 표독한 박은진이라고 해도 이렇게 크게 일이 터진 상태에서는 자신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의 표현으로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박은진의 예상대로 지희는 기절한 상태가 아니었다. 지희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박은진을 봤다. 그리고 박은진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불쌍한 년이 있구나 라고 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박은진 역시 그 웃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날 비웃네. 마치 걸려들었다는 그런 눈빛이야!’
박은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여기서 지고 들어간다면 합의를 할 때 저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박은진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저기 침대에 누워 있는 년은 돈에 목숨을 거는 년이라고 박은진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자신의 아빠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또한 그 짓을 한 동영상을 자신에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우선 기부터 죽여 놔야겠지.’
끼이익!
박은진은 옆에 놓여 있는 의자를 한 손으로 끌면서 귀를 자극하는 쇠소리를 냈다.
“역시 깨어 있었네.”
지금 이 순간 박은진의 말투는 무척이나 무미건조했다. 그건 100프로 의도된 말투와 행동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박은진을 빤히 보고 있는 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박은진이 참 불쌍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재수 없는 년이네.’
지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자신을 캡틴이라고 소개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살기가 느껴졌는지 그 이유를 그제야 할 것 같았다.
“그 정도 맞고 기절할 만큼 편히 살지 못했어.”
“그렇지. 너 같은 밑바닥들은 매질에 강한 법이지. 원래 오래 맞다 보면 느는 법이잖아.”
박은진은 마치 자신은 고귀한 혈통이고 지희는 더러운 천민이라는 투로 말했다.
“누가 밑바닥인지 그건 끝이 나 봐야 아는 거 아닌가? 당장 웃는 년이 이기는 년인지, 아니면 나중에 웃는 년이 이기는 년인지는 지나 봐야 아는 거지.”
지희의 말에 박은진은 어이가 없었다.
마치 박은진의 눈에는 겨우 몸 팔아 먹고 사는 년이 별 소리를 다 한다는 그런 경멸의 눈빛이었다.
“너도 머리가 액세서리가 아니니 내가 왜 왔는지는 알지?”
박은진의 물음에 지희는 피식 웃었다.
“그럼 네 머리는 장식이니?”
“뭐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순간 박은진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아버지와 붙어먹은 년과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박은진에게는 역겨웠다.
어쩜 모든 딸들이 그럴 것이다.
“왜, 네 아버지랑 한 내가 거북해? 뭐 따지고 보면 내가 네 어머니뻘 되는 거 아닌가?”
지희는 박은진을 더욱 자극했다.
“첩도 어머니 축에 드나? 따지면 겨우 첩이잖아. 그 나이에.”
역시 박은진도 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인생 막 산 두 여자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이 신경전에서 이기는 여자가 승리자라고 두 여자들은 생각을 했다.
“결국 너는 돈이잖아.”
급한 년이 먼저 옷을 벗는다고 지금 이 순간 급한 것은 박은진이었기에 먼저 신경전을 포기하고 지희에게 말했다.
“그렇게 보여?”
“그럼 아니었나? 우리 집에, 그것도 내 앞으로 그런 미친 동영상을 보낸 것은 결국 돈이라는 거잖아.”
“왜 그렇게 생각을 해?”
“너 같은 없는 것들은 다 돈에 그 어떤 미친 짓도 다 하니까.”
“그건 너지. 너처럼 미친년은 나도 처음 본다.”
역시 지희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만약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면 왜 너에게 그 동영상을 보내지? 그냥 네 아빠에게 보내면 그만인데. 너보다 네 아버지가 더 돈이 많잖아.”
순간 박은진은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너 아니면?’
박은진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아니면?
그럼 제3자가 또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박은진은 그것이 누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 혹은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가장 단순한 생각일 거다. 하지만 그 단순함에서도 끝내 박은진은 은성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사건이 있던 그 첫해에 울먹이며 사죄하던 박은진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것은 그만큼 박은진의 정신 세계가 황폐해졌다는 반증일 거다.
어쩌면 그 사건의 최대의 피해자는 박은진일지도 모르고, 또 그녀야말로 지옥에서 살아가는 죄 많은 영혼일지도 모른다.
속죄를 모르는 죄인!
‘너 아니면…….’
그 순간 박지은은혹시 지희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아니야?”
자신에게 던졌던 의문을 지희에게 확인하는 박은진이었다.
“나면 어쩔 건데? 내가 그랬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또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다. 스스로 불륜의 현장을 찍어 협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거를 만들어 보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박은진이었다.
“뭐라고?”
박은진은 지희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지희를 찢어 죽일 것 같았다.
이제는 예전의 순수함은 사라진 지 오래고 표독함과 오기, 그리고 독선만이 남은 박은진이었다.
“그런 눈 하나도 안 무섭거든.”
“뭐야?”
“겨우 부모 잘 만나서 자기가 미친년인지도 모르고 사는 년이 치켜 세우는 눈깔은 나 같은 년은 하나도 안 무서워. 너도 느꼈겠지만 난 희망 같은 거 없이 사는 년이다. 그러니 네 아빠와 그렇게 사는 건지도 모르고.”
“너야? 아니야?”
“나라고 치자.”
“너야? 아니야?”
“나 아니면 뭐가 달라지는데? 지금 궁지에 몰린 건 너지. 내가 짜 놓은 각본 그대로 움직여 준 건 멍청한 너지.”
지희가 말하며 야릇하게 웃었다.
“망, 망할 년!”
“그리고 누가 보낸 건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보냈는지가 중요한 거지. 내가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라면 너한테 안 보냈다고 했지. 그럼 왜 보냈을까? 이유가 뭘까? 왜? 왜? 왜? 라는 것부터 생각을 하고 말해!”
지희의 말에 당황스럽기까지 한 박은진이었다.
“무슨 꿍꿍이지? 그래? 네가 원하는 왜는 뭐지?”
“그것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은 내 몫이잖아.”
“너의 뜻대로 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은 그렇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죄가 있든 없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가 만들어지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이 대한민국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직하지 않아. 절대로!”
이 순간에 박은진은 드디어 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사람처럼…….’
박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잊고 살았다.
시간이 은성 그를 잊게 만들어 줬다. 또한 자신의 황폐한 삶이 외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끝내 잊은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다시 떠오르는 박은진이었다.
이제는 미안함 따위는 없는 그녀였다. 단지 기억이 난 거고, 그 기억이 싫은 박은진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날 협박할 수 있는 용기가 있군.”
“네가 모르는 현실을 말해 주는 것뿐이지.”
“난 지킬 것이 없다고 했지. 하지만 넌 지킬 것이 많을 거야! 그거면 충분한 거지. 왜? 왜? 를 잘 생각해야 할 거야! 넌 지킬 것이 많잖아?”
“으음…….”
박은진이 무한히 표독한 악녀로 변해 가시를 품은 장미라고 해도 온실 속에서 자란 장미일 거다. 가시의 날카로움도 꾹 눌러 보면 뭉그러지는 그런 온실 속의 장미!
하지만 지희는 들판에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난 찔레였다. 그녀의 가시는 손을 베어 내서 타인의 피에 물들을 수 있는 그런 가시일 거다.
“역시 네 머리는 장식이구나.”
지희는 이제 박은진을 조롱했다.
“뭐 때문에 너희 집에 보냈을까? 너희 엄마가 보면 내 꼴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데.”
지희의 말에 박은진은 처음으로 놀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혹시…….”
“네 엄마가 그 동영상을 보고 화가 나서 네 아빠랑 이혼을 하면 네 아빠는 누구 차지겠어?”
물론 이건 박은진을 더욱 화가 나게 하기 위해서 지희가 지어 낸 소리였다. 지희도 형성이 박 사장의 집에 동영상을 보낸 것을 모르고 있었다.
“너 지금 우리 엄마 아빠를 이혼시키려고 그걸 보낸 거야?”
“원래 현실이 더 막장 드라마 같은 법이잖아. 사장과 놀아나는 여비서가 사모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주 많고.”
“이, 이 미친년이…….”
그 순간 지희가 박은진을 노려봤다.
“말조심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