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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200화 (200/210)

흑막의 신! 200화

“그래도 내가 너희 아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인생 모르는 거야. 내가 호적상으로 네 엄마가 될지 누가 알아?”

순간 박은진은 피가 거꾸로 쏠렸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만든 자신의 아빠가 더욱 원망스러웠다.

“너 정말 미친년이구나.”

“그렇게 보이면 그런 거지. 그런데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아! 내가 돈 때문에 그 짓을 했다고 했지. 그래 좋아! 네 엄마 되는 거 포기하는 조건으로 얼마 줄래?”

지희는 이제 박은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너 그거 모르지? 네 아빠 무척이나 변태다.”

순간 박은진은 자신의 입술을 꼭 깨물었다. 사실 박은진은 충분히 지희를 압박해서 돈으로 거래를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지희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박은진은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지희의 입을 막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박은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입막음을 해 놓은 호스트들이 언제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묵비권을 행사할지 짐작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박은진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법무팀 팀장을 인천 경찰서에 보낸 거였다.

‘미친년이야!’

박은진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할 때 지희는 여전히 박은진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승리자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난 변태도 괜찮아. 나보다 25살이나 많으니 훨씬 빨리 죽을 테니까. 건설 회사도 네 몫이 아니라 내 몫이 될 수도 있고.”

순간 현기증이 나는 박은진이었다.

“얼마가 필요하기에 그렇게 크게 나가지?”

“네까짓 것이 얼마나 줄 수 있는지부터 밝혀.”

“3억 줄게.”

박은진은 사실 1억에서 끝을 낼 생각이었다. 아니, 1억도 지희에게는 엄청난 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은진은 지희를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렇게까지 박은진이 궁지에 몰리는 이유였다.

“3억? 겨우 3억에 이 꼴까지 당하고 네 엄마 자리를 포기하라고. 웃긴다. 너! 있잖아. 내가 네 엄마가 되면 네 아버지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뭐라고?”

“악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잖아.”

“악녀는…….”

이 순간 자신의 얼굴이 떠오르는 박은진이었다.

“아주 끝장이 나게 내 배 위에서 죽여 줄 수도 있는데. 심장마비면 충분히 난 젊은 미망인이 될 수도 있고.”

지희의 거침없는 말에 박은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순간 박은진은 그냥 온실 속에서 자라난 연약한 가시를 가진 벌레 먹은 장미에 불과했다.

막장의 끝,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지희를 이길 수 없는 박은진이었다.

“뭐, 뭐라고?”

“이제 목소리까지 떨리네. 호호호!”

“…….”

“들어올 때는 정말 날 잡아 먹을 만큼 당당하더니, 이제 내가 무섭니? 이제야 무서워? 이제야. 호호호!”

“너 정말 단단히 미쳤구나!”

“이제 알았어? 다시 말해 주지. 네 아빠를 심장마비든 다른 것이든 난 충분히 흥분에 빠져 죽여 줄 수 있지. 그럼 명도건설을 비롯해서 재산들이 다 누구의 것이 될까? 아마 부모 자식 간의 재산 분배는 2대1이지. 비율이.”

“그건 우리 아빠가 너랑 미친 결혼을 할 때 일이지.”

“그렇기는 하지.”

“우리 아빠는 너랑 절대 그런 미친 짓을 하지 못해.”

“과연 그럴까?”

“우리 아빠는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결단력이 없거든. 그리고 자신이 쌓아 놓은 것을 절대 잃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는 사람이거든.”

박은진은 그렇게 말하고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그 공원에서 있었던 일이 박은진의 머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자 휴 하고 자신도 모르게 박은진은 한숨이 나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아빠거든.”

“그걸 어떻게 알지?”

“내가 그 아빠의 딸이거든.”

“그런가?”

“3억 주지. 그 돈이면 한동안 괜찮잖아.”

“3억?”

“그래. 3억.”

박은진의 말에 지희는 피식 웃었다.

“너 지금 3억 있니?”

“뭐라고?”

“우선 3억 입금시키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지희의 말에 박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합의를 보는 건가?”

“돈부터 입금을 시키고 다시 이야기하자는 거지.”

지희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누웠다. 그런 지희의 등을 보고 박은진은 순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이 본 지희의 눈빛은 무척이나 강인하고 차갑게 느껴졌으나 지희의 등은 너무나 힘없이 가엽게 느껴졌다.

“네가 날 신고를 하면 내가 그대로 교도소에 갈 것 같지?”

박은진이 나직이 말했다.

“그게 안 된다면 이곳이 대한민국이 아니겠지.”

지희는 몸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넌 내가 완벽하게 걸려들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너보다 더 완벽하고 죄도 없는 아이가 죄인이 되는 곳이 바로 이 대한민국이야. 악녀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처럼 죄인도 죄를 짓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곳이 이 대한민국이다.”

순간 지희는 박은진의 말을 듣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대한민국 경찰 너무 믿지 마! 그리고 법을 믿는 인간처럼 멍청한 인간도 없어. 정의 실현 법치 국가! 그건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일이야.”

박은진의 말이 지희에게는 마치 박은진이 경험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랑 거래를 할 거면 돌아누워.”

박은진의 말에 지희는 잠시 망설였다.

“싫은 모양이네. 너한테 줄 3억 그냥 내가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쓰지.”

그 순간 지희가 돌아누웠고, 이 순간 지희가 가지고 있던 주도권은 박은진에게 넘어갔다.

“지금 3시간 안으로 3억이어야 해.”

“좋아! 그렇게 하자.”

박은진은 어떻게 되었던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일이 잘 마무리됐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그냥 입만 다물면 되는 거네.”

“그렇지. 친고죄이니까. 고소만 안 하면 되는 거지.”

“좋아!”

지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나머지는 우리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할 거야.”

“피곤하네. 좀 나가 주면 좋겠는데. 돈 입금시키고 나서 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지희는 그렇게 말하며 박은진에게 자신의 계좌 번호를 적어 줬다.

“역시 넌 돈이었어.”

박은진은 그렇게 말하고 지희가 적어 준 종이를 자신의 백에 넣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 네 아빠도 참 돈이 궁해서 딸 팔아 먹은 적도 있다고 하던데.”

순간 박은진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우리 아빠가 그래?”

“술이 그러데.”

“뭐라고?”

“취중진담이라고 하지.”

지희의 말에 박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이곳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입금시키고 연락하지. 그럼 넌 여기서 푹 쉬면 되는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가 줄래? 네 얼굴 보니까 다시 역겨워지거든. 네 아빠가 생각이 나서 말이야!”

지희의 말에 박은진은 돌아서서 급하게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을 열고 조금 전 박은진과 실랑이를 벌이던 의경이 들어와 지희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직 통화 중인데요.”

지희의 말에 의경은 알았다는 듯 다시 공손히 묵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지희는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이건 지희 씨에게 제가 주는 마지막 보너스입니다.

이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지희의 귀에 들렸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 돈을 받았으니 입을 꼭 다물어야 해요.”

-지희 씨 말고 입을 열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니 입금이 된 것을 확인하면 바로 형성한테 연락을 하세요. 그럼 안전하게 돈세탁을 해 줄 겁니다.

지금까지 박은진과 지희가 대화를 할 때 지희가 한 말은 모두 은성이 지희에게 말해 준 거였다. 그리고 박은진이 보지 못하는 지희의 귀 쪽에 작은 무선 이어폰이 끼여 있었다. 그 무선 이어폰은 송수신이 가능한 고성능 이어폰이었다.

지금 이 순간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일이 병실 안에서 일어난 거였다.

지희가 귀에 끼고 있는 무선 이어폰은 조금 전 묵례를 한 의경이 전해 준 것이었다. 사실 병실 밖에 있던 의경은 은성의 부하인 자운대 대원이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의 극본을 짜고 감독을 한 것은 은성이고, 추가 보기 좋게 박은진이 걸려 든 거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박은진과 지희의 대화는 모두 녹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지희는 돈도 벌고 캡틴이라고 알고 있는 은성도 배신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거였다.

***

은성은 홀로 아지트에 앉아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항상 행동으로 뭔가를 옮기기 전에 이렇게 은성은 무척이나 많은 고민을 하고 또 고민을 했다.

스스로 자신을 필요악이라고 생각을 하고 테러리스트라고 생각을 하였기에 악인이라고 생각을 하는 존재들에게는 누구보다 잔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그 잔인함도 개인적인 복수 앞에서는 무딘 칼처럼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지금 은성이 고민을 하는 것은 바로 덫에 걸린 박은진을 어떻게 처리를 하냐가 고민이었다.

‘모든 것이 너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은성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은성은 이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 더 멋지고 거대하게 살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있었다.

은성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기억들은 은성에게 많은 것을 주기 충분했고, 또한 은성이 가지고 있는 비술은 그 어떤 적도 단번에 제거할 수 있을 만큼 강했다.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해박한 대체 의학 지식은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병자를 살려낼 수 있었다. 정말 무엇을 하든 잘해 낼 수 있었고, 전설이 될 수도 있던 은성이었다.

정말 새롭게 시작한 삶에 첫 단추부터를 잘못 끼운 거였다. 그건 어쩜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다시 학교로 간 것부터일지도 모른다.

‘그때 잊었어야 했나?’

요즘 은성은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은성은 새로운 삶을 얻기 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그러니 최단 시간으로 검정고시를 보고 서울대 의대를 다시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은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복수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최상혁을 찾기 위해 다시 학교로 갔다.

어쩜 그것이 두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끝내 은성은 최상혁이라는 존재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복수를 위해 달려왔다. 물론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자력갱생이 안 되는 악인들에게 하늘을 대신하고 법을 대신해서 스스로 악의 테러리스트로 벌을 준 것도 있지만 그것은 어쩜 복수를 위한 자기 성장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그 복수의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복수의 단계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은성은 그렇게 갈망하던 복수가 눈앞에 다가오면서부터 더욱 자신이 산 세월이 후회되었다.

‘내게 복수할 존재가 없다면 난 어떻게 될까?’

은성은 그 사실에 고민을 했다.

‘나는 두 번째 삶도 잘못 산 건가……. 휴우!’

은성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미 복수를 향해 달려온 길었다. 우울증 같은 은성의 자기반성의 시간이 끝나자 은성은 덫에 걸린 박은진을 어떻게 응징해야 이 세상 최고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이것이 바로 은성의 양면성일 것이다.

한쪽 마음에서는 복수만을 위해 달려온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해 후회를 하지만 또 다른 마음에서는 그 복수를 갈망하며 즐기고 있는 거였다.

“이 나라에서는 그녀를 완벽하게 응징할 방법이 없다.”

은성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에 놓여 있는 인터폰의 수화 버튼을 눌렀다.

-예. 캡틴! 지시할 것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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