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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203화 (203/210)

흑막의 신! 203화

형성과 진태는 은성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만난 친구지만 직업 때문인지 형성과 진태는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는 깡패 두목, 또 하나는 검사와 같이 공조 수사도 가끔 하는 변호사.

이것이 친구라고 불렀던 형성과 진태의 관계였다.

사실 진태는 평검사회의 검사들을 조종하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

먼저 말을 건 것은 항상 법조계 인물들에게 눈치를 봐야 하는 조폭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형성이었다.

“너 잡으러 다니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마라.”

“와! 진짜 검사 같네. 변호사 주제에.”

형성의 농담에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꼭 아픈 곳을 건드려야 하냐?”

진태가 아직까지 퉁퉁 부어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처음 은성에 의해 직업이 나눠졌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난 머리가 나빠서 절대 사시 못 패스한다.”

형성의 말에 진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형성을 째려봤다.

“잊은 모양인데 내가 전국 꼴등! 그리고 네 앞에 너였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가?”

형성은 마치 진태를 놀리는 듯 말했다.

“농담하라고 부르는 거 아니다.”

순간 은성의 말에 둘은 조용해졌다.

“예. 사부님!”

“며칠 있다가 밀항이 있을 거다.”

은성의 말에 진태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제가 그쪽으로 조사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린 원래 조사를 다 하잖아.”

“그렇죠.”

진태는 자신이 은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찰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 밀항을 좀 성공을 시켜야겠다.”

“예? 그건 불법입니다.”

진태의 말에 은성은 진태를 노려봤다.

“네가 처음 너를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난 분명 악을 응징하는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에 필요 없는 악이니 밀항을 성공시켜도 대한민국에 손해 볼 것은 없다.”

은성은 그렇게 말하고 형성을 봤다.

“배편하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네가 준비를 해라. 그리고 이리 가까이 좀 와라.”

은성은 형성에게 가까이 오라고 지시를 했고, 그와 동시에 낮은 음성으로 형성에게 뭔가를 지시를 했다.

“예? 그걸 위조하라고요?”

“왜 불가능한 일인가?”

“그, 그건 아니지만 진본을 찾기가…….”

형성이 말꼬리를 흐리자 은성은 바로 형성을 노려봤다.

“아닙니다. 바로 찾겠습니다. 진본 찾아보면 나오겠죠.”

“그리고 진태야!”

“예. 사부님!”

“박은진 바로 출국 금지 시켜라!”

은성의 말에 다시 진태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나 그렇게 출국 금지를 시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검사도 아니고…….”

“그년은 이미 범죄자다. 평검사회에게 지시를 하면 될 거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형성! 너는 박 사장과 식사를 한 번 해라.”

“박 사장하고요?”

“그래. 김재창 사장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해 줄 거다. 그리고 슬쩍 밀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라. 그냥 흘러가는 것처럼.”

그제야 형성과 진태는 은성이 왜 이렇게 지시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박은진을 대한민국에서 처절하게 응징할 수 없다면 대륙의 끝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끝으로.

* * *

날이 밝자 최 변호사는 바로 인천 경찰서를 찾아갔다. 물론 그는 이필두와 다른 한 명의 호스트를 만나기 위해 간 거였다.

“예? 또 이필두를 만나시겠다고요?”

순경 하나가 자신이 이필두의 변호사라고 말한 최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또라니요?”

“아닙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순경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김 경사에게로 걸어갔다.

“김 경사님!”

“무슨 일이야?”

“이필두 변호사라는 사람이 와서 이필두 접견을 요구하는데요.”

“그럼 시켜 주면 되잖아.”

김 경사는 순경이 괜한 것을 보고한다는 투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변호사가 바뀌었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

“뭐 그렇기는 합니다.”

“신분 확인하고 접견시켜 줘. 계속 그 개새끼가 묵비권을 행사하니까 변호사를 좀 만나고 나면 달라지겠지. 그런데 병원에 있는 피해자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

“깨어난 것 같기는 합니다.”

“깨어난 것 같기는 하다?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깨어난 거면 깨어난 거고 혼수상태면 혼수상태지?”

김 경사는 순경을 째려봤다.

“깨어나기는 했는데 말을 안 한답니다.”

“뭐?”

김 경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의사의 말로는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 그리고 불안감에 의해서 단순 실어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 실어증 증상?”

“한마디로 말을 안 하고 대인기피 증상을 보인답니다.”

“그럼 증언 못하는 거잖아!”

김 경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현 상태는 그렇습니다.”

“젠장! 피의자 변호사는 경찰서에 들락거리고, 피해자는 실어증에 걸려서 말도 못하고. 젠장. 이러다가 다른 사건처럼 흐지부지 되는 거 아냐?”

“지금 그럴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검거가 된 놈들이니까. 구금은 더 할 수 있어.”

그때 김 경사의 책상 위에 올려 있는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바빠 죽겠는데 또 뭐야?”

김 경사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인천 경찰서 강력계 김대은 경사입니다.”

-나 서울지검 특수부 조웅천 검사라고 합니다.

조웅천 검사 역시 은성에게 도움을 받은 평검사회 출신이었다.

은성의 칼!

그 칼로 쓰이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검사라는 말에 김 경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김 경사께서 성폭행 사건 담당하고 계시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사건 제가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입니다.

조웅천 검사의 말에 김 경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건을 무마시키라는 청탁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 경사였다.

“그런데요?”

하지만 김 경사는 다른 경찰과는 조금 다른 경찰이었다.

-그거 단순한 성폭행 사건이 아니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수사를 하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진상을 밝혀내라는 겁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수사를 하라는 말입니다.

김 경사는 조웅천 검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보통 검사라는 놈들은 경찰에게 전화를 할 때 반말을 찍찍하면서 명령조로 말을 했다.

물론 조웅천 검사도 거의 명령조로 말을 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검사 특유의 상명하복 체계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말투였다. 그런데 검사인 조웅천 검사는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저도 의심스러운 것이 몇 가지 있어서 철저하게 수사를 할 생각입니다.”

-좋은 판단입니다. 수사가 막히거나 외압이 들어오면 바로 전화를 주십시오. 제가 표면에 나서서 도와 드리지는 못해도 측방 지원은 해 드리겠습니다.

조웅천 검사의 말에 김 경사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

-뭐 정확하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저희 검찰이 내사를 하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과 연관이 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참! 양아치한테 국선 변호사도 아니고 꽤 유명한 변호사가 붙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웅천 검사는 마치 경찰서 안을 보는 듯 김 경사에게 말했고, 그 순간 김 경사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경찰서 사무실 문 밖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으세요. 저는 지금 비공식적으로 온 겁니다.

“정말 무슨 일이 있군요?”

-하여튼 변호사부터 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이만!

조웅천 검사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김 경사는 접견실로 가려는 최 변호사를 봤다.

“저기요?”

그리고 김 경사는 최 변호사를 부르고 나서 그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이죠?”

“명함이나 한 장 주시겠습니까?”

“뭐라고요?”

최 변호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김 경사를 봤다.

“명함은 왜요?”

“신분 확인을 하겠다고 하면 거부하실 것 아닙니까? 최소한 변호사인지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고요? 지금 내가 가짜라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김 경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변호사가 바뀌어서 확인을 하는 거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그렇게 말해서 뭐하겠냐 싶어서 그만뒀다.

“좋습니다. 드리죠.”

최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김 경사에게 명함을 건넸다. 보통 한국 사람은 남에게 과시를 하려는 경향이 많다.

아무리 아무것도 없는 개털이지만 명함에는 온갖 직함으로 포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서 정말 빵빵한 사람들은 딱 하나만 적거나 아예 명함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삼성 회장이 명함을 파고 다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거다. 그런 사람들은 얼굴이 바로 명함이니 말이다.

김 경사는 최 변호사에게 받은 명함을 봤다.

‘명도건설 법무팀 팀장?’

김 경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럼 접견하십시오.”

김 경사는 짧게 말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명도건설에 대해 알아봤다.

‘꽤 큰 유명 건설사잖아!’

이 순간 김 경사는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성폭행이나 하는 양아치에게 저런 큰 회사의 법무팀 팀장이 붙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김 경사였다.

‘뭔가 있어. 뭔가?’

하지만 김 경사는 그 뭔가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참! 다른 피해자는?”

김 경사는 사건 현장에 있던 박은진을 떠올렸다.

“박은진 씨요?”

“그래. 박은진 그 여자 아직 연락 없나?”

“그렇습니다.”

순경 하나의 말에 김 경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김 경사는 명도건설 관련 정보를 보면서 명도건설 사장이 박 씨라는 것을 봤다.

“박 사장? 박은진? 성이 같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김 경사는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에 4명 중 하나는 박 씨다.”

김 경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관련 검색을 클릭했다. 그런데 그때 자신이 아파트에서 봤던 박은진을 찍은 사진이 김 경사의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은 다름 아닌 최상혁과 약혼식을 하는 사진이었다. 물론 최상혁과 박은진의 얼굴은 모자이크가 처리된 상태였지만 그 아래에 설명글에는 분명 박은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뭐야? 박은진…….”

이 순간 김 경사는 정말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야!”

그리고 순경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예. 김 경사님!”

“지금 당장 박은진 씨 소재 파악해!”

“예?”

“뭐가 예야?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예. 알겠습니다.”

“소재 파악이 안 되면 수배를 때려.”

“수, 수배까지요?”

“그래.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어.”

김 경사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제 점점 더 박은진을 향해 올가미가 좁혀지고 있었다.

조웅천 검사는 인천 경찰서를 나오면 은성에게 전화를 했다.

“대충 힌트를 줬습니다.”

-대충?

“예. 대충 힌트를 줬지만 그 정도도 눈치를 못 채면 경찰로 자질이 없는 거니까. 옷 벗어야 할 겁니다.”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은성은 착착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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