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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신-209화 (209/210)

흑막의 신! 209화

“박 사장이 준 도피 자금입니다.”

사실 형성이 지금 내민 가방은 박 사장이 준 그 가방이 아니었다. 물론 그 안에 들어 있는 돈도 박 사장이 준만큼의 액수도 아니었다.

형성은 박 사장이 준 돈의 거의 90프로 이상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물론 그 돈은 모두 형사에게 잡혀간 조폭의 월급으로 지급할 생각이었다.

“부족하면 또 연락을 하랍니다.”

“그런가요?”

“얼마죠?”

“열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형성은 그렇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어선을 타고 간다는데 안전은 한 건가요?”

“제 부하가 공해상까지 따라갈 겁니다.”

“이 사람이요?”

박은진은 지금까지 자신을 데리고 다닌 남자를 봤다. 그리고 형성은 박은진을 찬찬히 봤다. 박은진은 지금 그 짧은 순간 동안 이상하게 자신의 부하에게 의지하는 눈빛이었다.

“그렇습니다. 공해상까지 안전하게 모실 겁니다.”

“그 다음은요?”

“중국 쪽 브로커가 아가씨를 모실 겁니다.”

형성의 말에 박은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말도 안 통할 건데 어떻게 저를 모셔요?”

“조선족이니 말은 통할 겁니다.”

“조선족요?”

박은진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러시죠?”

“난 그딴 거 싫어하는데…….”

역시 박은진도 재중 동포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제가 안전하게 중국으로 밀항을 하고 나서는 어디에 머무는 거죠?”

“우선 청도에 잠시 머물게 될 것입니다.”

“청도요?”

“예. 그곳에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유학을 오거나 그곳에서 장기 체류를 하는 한국 사람들이 꽤 있으니까요.”

형성의 말에 박은진은 그래도 그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요?”

“다음 안전 가옥으로 이동을 할 겁니다.”

“안전 가옥요? 무슨 첩보 영화 같네요.”

“예. 중국도 공안이라는 경찰이 있어서 밀입국자의 단속이 심합니다. 요즘 같이 탈북자가 많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전 가옥은 어디에 있나요?”

박은진은 안전 가옥이라는 곳에 관심을 보였다.

“그건 비밀입니다.”

“저한테도 비밀인가요?”

“예.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라야 안전 가옥이지 않겠습니까?”

형성의 말에 박은진은 피식 웃었다.

“말은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언제 출발을 하죠?”

“바로 출발을 할 겁니다. 가시죠.”

“지금 바로요?”

“예.”

따르릉! 따르릉!

그때 형성의 핸드폰이 울렸고 형성은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직 저런 구식을 쓰는 사람도 있네요.”

박은진은 남자를 보며 살짝 웃으며 말했다.

“원래 형님께서는 구식입니다.”

남자도 박은진에게 농담을 했다. 정말 누가 보면 무척이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보였다.

“형성입니다.”

-이제 출발을 하는 건가?

“예. 어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해상까지 안전하게 이동을 시키겠습니다.”

-내가 시킨 것은 잘했겠지?

“예. 가방에…….”

형성은 그렇게 말하다가 박은진을 힐끗 봤다.

“처리 잘했습니다.”

-그래! 지금 나도 너와 박은진을 보고 있다.

***

박은진이 중국으로 간다면 내 모든 복수는 끝이 날 것이다.

‘모든 준비는 끝내놨으니까.’

박은진을 잘 보내기만 하면 된다.

‘절망으로 향해라, 박은진!’

뚝!

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박은진이 중국으로 간 후 명도 건설만 박살내면 끝이다.

‘내 모든 복수는 이번 주 안에 끝난다.’

그 복수를 끝낸 후에 나는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내 모든 것을 숨긴 상태로 흑막의 신으로 살 것이고 또 평범한 수정의 애인으로 또 시간이 지나면 남편으로 살참이다.

‘청도? 웃기고 있네.’

나도 모르게 박은진을 떠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보였다.

* * *

다시 박은진이 걷고 있는 부둣가.

형성의 안내를 받으며 박은진은 어선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를 걷고 있었다. 사실 연안 부둣가에 어선이 정박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박은진을 밀항시키기 위해 밀항 조폭이 연안 부둣가에까지 이동을 해 온 거였다.

“안녕하십네까?”

어선의 앞에 선 박은진과 형성 그리고 남자를 보고 딱 봐도 조선족처럼 보이는 남자가 인사를 했다.

“선장은?”

형성은 인사에 대한 답례도 하지 않고 선장을 찾았다.

“안에 있슴다.”

“왔소. 이 사장!”

어선 안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형성을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판 선장님!”

“그래. 오랜만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소.”

“뭐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

“손님은 누기요?”

판 선장은 형성의 옆에 있는 박은진과 남자를 힐끗 봤다.

“이 아가씨입니다.”

“곱게 생긴 아가씨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으면 밀항을 다하오?”

판 선장의 말에 박은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판 선장은 이번 밀항에 숨겨진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인상을 찡그렸고 살짝 박은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얼마나 모질게 굴었으면 이런 복수를 당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자기와 관련된 일은 아니고 또 돈 받고 하는 일이라 박은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바로 잊었다.

“돈 받았으면 돈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지 않나?”

박은진의 말에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간난 성질이 불난 소 같소?”

이 순간 판 선장은 박은진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엄청난 복수를 왜 당하는지 알 것 같았다.

“뭐라고요?”

박은진이 발끈하자 형성이 박은진을 말렸다.

“그만해요. 판 선장이 안 간다면 박은진 씨는 정말 큰일 납니다.”

“옳소! 내 뿔나서 안 간다면 당신 일 나오.”

판 선장의 말에 박은진은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닫았다. 그리고 판 선장은 형성을 봤다. 이 모든 것이 짜여진 연극이라는 것을 박은진만 모르고 있었다.

“돈은 준비했소?”

판 선장의 말에 형성은 판 선장을 봤다.

“약속한 3천 계좌 이체를 했습니다.”

“옳소. 요즘 그거 있어서 좋소. 하하하! 뭐합니까. 타지 않고.”

판 선장의 말에 형성은 박은진을 봤다.

“타세요. 그리고 몸조심하시고요.”

형성은 돈 안 드는 걱정을 해 줬다.

“고맙네요.”

“그리고 중국 가시면 그 성질 좀 죽이셔야 할 겁니다. 중국은 은진 씨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위험한 곳입니다.”

형성의 말에 판 선장이 끼어들었다.

“옳소! 중국에는 미친놈 많소. 그렇게 여자가 말했다가는 도끼 들고 뛰어오는 샤스개가 많소.”

“샤스개가 뭐에요?”

박은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처음으로 판 선장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샤스개는 한국말로 미친놈이요.”

판 선장의 말에 박은진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날씨가 이런데 출항할 수 있겠습니까?”

형성은 잔뜩 먹구름이 낀 밤하늘을 봤다.

“일 없소. 이런 날씨는 출항을 하는 기요. 날이 좋으면 한국 해경이 순찰을 많이 해서 어렵소.”

어쩌면 판 선장은 목숨을 결코 돈을 버는 거였다.

“하여튼 안전하게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쇼! 나랑 하루 이틀 사업하는 거 아니잖소. 중국 쪽 애들이나 잘 말해 노쇼. 저번처럼 늦지 않게.”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가오.”

판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조금 전 형성에게 인사를 했던 조선족을 봤다.

“엔진 걸어라! 가자!”

“예 선장님!”

조선족은 그렇게 말하고 빠르게 어선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은진은 아련하게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연안 부두를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어선은 출발을 했고, 멀어지는 어선을 보며 형성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너랑도 이제 작별이구나. 네가 놀라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형성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박은진은 그렇게 밀항선에 올라 한국과 중국의 경계선인 공해상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국 경계선인 공해상으로 나가면서도 북한의 해역과 거의 붙어 있는 곳으로 배를 몰고 있다는 거였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주우욱 철썩! 주우욱 철썩!

“우엑!”

순간 박은진은 출렁이는 파도 때문에 위아래로 흔들리는 어선 때문에 뱃멀미를 하며 토악질을 했다.

“원래 처음 배 타면 다 그러오. 참으쇼.”

판 선장은 얼굴이 노란 박은진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엑! 왜, 왜 이렇게 파도가 우웩! 거센 거예요?”

“폭풍이 오나 보오.”

박은진은 판 선장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타고 있는 어선이 폭풍을 견딜 것 같지 않았다.

“폭풍이 오는데 바다로 나가도 괜찮은 건가요?”

박은진의 물음에 판 선장은 피식 웃었다.

“말했잖소. 이런 날이 아니면 한국 해경 때문에 배 못 나간다고.”

“아무리 그래도 배가 뒤집히면…….”

“그런 일 없었으니 걱정 마쇼.”

“우엑! 하지만…….”

“일 없다니까. 오늘 배 안 나가면 당신 잡히지 않소? 그러니 나가야 하는 거잖소.”

“그,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에 중국 쪽에서 안 오면 어떻게 해요?”

“그런 일 절대 없소. 그놈들은 나보다 더 돈 밝히는 놈이라 반드시 오오.”

판 선장의 말에 박은진은 구역질을 하면서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우엑!”

그렇게 박은진의 밀항은 시작되었고 고생도 같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박은진이 앞으로 할 고생에 비하면 지금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박은진은 10시간 가까이 어선을 타고 뱃멀미를 참고 나서야 중국 측 밀항선의 불빛을 볼 수가 있었다. 여전히 풍랑은 몰아치고 있었고 파도는 당장이라도 어선을 삼킬 듯이 거칠게 출렁거렸다.

사실 박은진은 이런 상태에서 출항을 할 결심을 한 판 선장이라는 조선족이 놀랍기만 했다. 사실 예전에 얼핏 조선족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박은진은 옆에 있는 남자를 힐끗 봤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뱃멀미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뱃멀미 안 하시네요.”

“제가 부산 출신이라 안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파도가 거칠어서 속이 울렁거리기는 하네요.”

“그래도 참 저 조선족들 대단하네요.”

“그렇죠.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목숨을 걸고 이렇게 풍랑을 뚫고 간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네요.”

“그렇죠. 뭐, 다 사는 방식이 있으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불빛을 봤다. 지금은 거의 해가 뜨려는 새벽이었다. 그래서 불빛이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저기 옴다.”

“정, 정말 뱃멀미 사람을 잡네.”

“그렇슴다. 원래 다 이런 겁니다.”

“그러네요.”

뱃멀미 때문에 그런 것일까? 처음 이 배에 오를 때 저런 것들이라고 조선족을 표현하던 박은진은 이제 조선족 청년에게 존댓말을 했다.

그리고 거센 풍랑 속에서 작은 어선 두 척이 접안을 시도했다.

“판 선장 오랜만이요.”

중국 측 밀항선 선장이 판 선장을 보고 먼저 인사를 했다.

“자주 보니 반갑소.”

판 선장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게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이것은 같은 조선족이라도 출신 지역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판 선장은 연변 출신이었고 반대편 중국 측 선장은 하얼빈 출신이었다.

이렇게 중국에도 지역감정 비슷한 것이 있는 듯했다.

연길 출신 조선족들은 동북삼성 오지에서 태어난 조선족을 깡촌 놈들이라고 아래로 봤고, 하얼빈을 필두로 한 동북삼성 오지 출신 조선족들은 연변 출신 조선족들을 약은 사기꾼이라고 매도를 했다.

그래도 지금 신기한 것은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자란 이 두 남자가 선장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물론 작은 어선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선장은 선장일 거다.

“참 살다보니 중국에서 한국으로 밀항하는 사람을 태운 적은 많아도 그 반대는 처음인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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