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 7%
수업이 끝난 뒤, 제 숙소로 돌아오면서 김산은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햇살이 그의 기분도 헤아리지 못한 채 오는 내내 김산을 졸졸 따라붙었다. 매미도 그의 어지러운 심사를 놀리듯 맴맴 세차게 울었다.
왜 자꾸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처음 기생충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 벌써 일주일. 차가람은 좀처럼 김산에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 마음은커녕 초반에 김산의 실수 때문인지 이제는 대화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맨 처음 왜 기생충처럼 도시로 빌붙으러 왔냐는 말을 듣고 김산은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자신에게도 가이드 활동비는 지급되니까 구걸을 할 필요는 없고, 다행히 보건소에서 제때 구충약을 먹어 왔기에 기생충도 없다고. 그러니 안심하고 밥을 같이 먹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차가람은 더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이 그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며 말이다. 이 이상 차가람 가이드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기에 김산은 의아했다. 게다가 솔직히 기생충에 관련한 말을 할 때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는데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도시의 대화법은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게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되니 아무리 김산이라도 조금 지쳤다. 또한, 서서히 깨달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냥 자신이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고 말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었다. 이런 소모적인 비아냥을 들을 일이 없었기에 눈치채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도시에 와서 가이드가 되는 것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화가 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분명 오해를 풀고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슬픈 일이었다. 특히나 도시에 사는 친구를 만들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안타깝기도 했다.
오늘은 자신 때문에 진도가 늦어진다는 말에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분명 김산을 아껴서 그렇게 교육을 해 주신 거겠지만, 그 또한 누군가에게는 피해일 수 있었으니까. 물론 차가람은 사과를 받아 주지 않았고 도리어 크게 비웃음만 돌려줬을 뿐이다. 사과를 하면 용서해 준다는 당연한 관계 속에서 살아왔던 김산에게는 나름대로 큰 충격이었다.
도시에 온 지도 벌써 2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간 몬스터 알림은 수없이 받았지만 정작 몬스터는 보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과의 관계에 조금씩 지쳐 갈 뿐.
역시 도시 생활이 쉽지는 않구나. 할아버지가 왜 걱정하셨는지 잘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아롱아롱 서러움을 안고 방으로 돌아오자 박주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딘가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야야, 산아. 너 그거 진짜야?”
첫날 빼고 박주훈은 꼬박꼬박 방에 잘 돌아왔다. 그때마다 김산은 그를 친형처럼 반겼고, 처음엔 어딘가 어색해하던 박주훈도 그런 김산에게 적응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꽤나 친해졌다.
몇 번 더 찾아온 이재철은 김산이 박주훈과는 잘 지내는지 걱정이 많은 모양이었다. 특히 이재철은 다른 신규 가이드들과의 관계에도 우려가 많은 듯해서 김산은 행여 착한 아저씨가 괜한 걱정을 더 할까 봐 그냥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본래도 주변인들의 말을 함부로 전하는 습관이 없기도 했고.
“형, 잘 다녀왔어요?”
“어? 응, 어, 그래. 너도 잘 다녀왔어?”
다짜고짜 물어봤지만 김산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상냥한 인사를 먼저 건넸다. 얼결에 자신이 너무 다그치듯 물어봤다는 자각이 든 박주훈이 금방 기세를 누그러트리고 인사를 받았다.
반면 박주훈은 아직도 김산을 대하기가 조금 어려운 면이 있었다. 특히나 김산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고 순진한 구석을 보일 때면 저절로 제 험한 입을 단속하게 되었다. 욕도 거의 이해 못 하는 것 같은 이 동생에게 쓸데없이 마음이 많이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이지 충격적인 소문을 접하고 말았다.
“네에.”
돌아오는 대답이 어딘가 처져 있었다. 늘 먹이 모으는 햄스터처럼 지치지도 않고 돌아다니던 김산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대번 박주훈의 얼굴이 굳었다. 좀 전에 접한 소문이 번뜩 머리를 스친다.
“무슨 일 있었어? 기도해가 그런 거야?”
“네? 아…닌데요.”
김산의 커다란 눈동자가 데구루루 문 쪽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나 거짓말하고 있소 하는 표정이라 기가 찼다.
다만 김산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보다도 그 안위가 더욱 걱정이었기에 박주훈은 버럭 성질을 냈다.
“야, 산아. 기도해가 얼마나 미친놈인데 그걸 맡았어?”
“형, 에스퍼 님은 미치지 않으셨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그분을 아는 건 아니구요.”
말을 덧붙일 때 김산은 다시 박주훈의 시선을 피했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깨우쳐도 이거보단 거짓말을 잘 할 행색이라 박주훈은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게다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데 고작 거짓말 좀 했다고 죄책감을 가진 표정까지 지으니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그래. 산아, 일단, 나가서 무슨 일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