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 75%
꿈에서 김산은 자그마한 돌멩이가 되었다.
비탈길이라도 잘못 디뎠는지 온몸이 아팠다. 아마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잔뜩 데굴데굴 굴러서 이리도 아픈 모양이었다.
개의치 않고 단단하게 몸을 웅크렸다. 양지바른 곳까지 굴러온 덕에 몸은 따듯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파고드는 아픔을 단단하게 물리치고 나서야 김산은 정신을 차렸다.
“…….”
부스스 눈을 뜨니 기도해의 방이었다. 이상하게 머리가 멍하고 기시감이 들었다. 느릿하게 몸을 돌려 창을 바라보니 어느새 해가 밝아 있었다.
그 햇살은 야속하게도 잠으로 덮어 놓았던 어제의 기억을 환하게 비추고 말았다.
“음…….”
차마 말하기 민망한 곳이 쓰렸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 김산이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제와는 다르게 방 안은 비어 있었다.
얼굴에 확 열이 오르고 머리가 한층 멍했다. 지난 며칠이 꼭 늘어진 고무줄만 같아서 몇 주는 지난 것 같았다.
온몸이 조금씩 따끔거려 바라보니 잇자국이 무성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곳을 하나둘 발견할 때마다 귀 끝이 뜨거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방전 현상으로 정신을 잃었을 때와는 또 달라서 기억의 끄트머리가 희미하기만 했다. 아직도 볼에는 자상하게 쓰다듬는 기도해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다시 자상하게 해준다고 했었지.
뻣뻣하던 등줄기에서 힘이 슬슬 빠져나갔다. 무섭고 서럽긴 했지만 생각만큼 앙금이 남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처음 경험하는 가이딩 단계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더 큰 게 아닐까 하는 감상마저 들 정도였다.
멍하니 제 온몸을 훑던 쾌감을 떠올리던 그 순간, 공교롭게도 달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깼어요.”
“아.”
손에 쟁반을 받쳐 든 기도해가 안으로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침대로 다가오는 그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느껴졌다.
때문에 김산은 저도 모르게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당겨 제 몸을 가렸다. 이제 보니 속옷도 없는 맨몸으로 그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도해의 시선이 계속해서 김산에게 내려앉았다. 기묘할 정도로 집요한 그 시선이 의아해질 무렵, 기도해가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내밀었다.
“먹어요.”
쟁반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이 한 그릇 있었다. 놀랍게도 죽 위에 뿌린 참기름 냄새를 맡자마자 급속도로 허기가 졌다. 생각해 보니 밥을 벌써 몇 끼나 거르지 않았던가.
덥석 그것을 받아 들려던 김산이 멈칫했다. 팔을 움직이면 몸을 두르고 있는 이불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쟁반을 건네며 제 옆에 걸터앉은 기도해의 시선이 가까워서 문제였다.
“…….”
그 머뭇거림을 본 기도해가 미미하게 표정을 굳히며 김산을 노려보았다. 정신이 들자마자 제가 당한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이러는 게 분명했다.
이대로 굶어 나자빠지겠다고 들면 성가셨기에 기도해는 수저를 들어 죽을 조금 떴다. 이대로 김산의 손에 수저를 억지로 들려줄 작정이었다.
“먹으라니까요.”
어떡할까 고민하던 김산은 제 입 앞으로 다가오는 수저를 보고 고민을 관두었다. 그가 직접 먹여 주려고 하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지금까지처럼 자상하게 대해 준다고 약속 했다. 그 말을 믿은 김산은 저항 없이 입을 벌려 죽을 받아먹었다.
“우움.”
“…….”
김이 모락모락 나던 것이 어느덧 적당히 식어 있었다. 간을 안 했는지, 맛은 희미했다지만 참기름 향이 있어서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우물우물 잘 삼킨 김산이 다음 수저가 오길 기다렸지만 기도해는 왜인지 빈 수저를 든 채로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안 주지.
음식이 들어가니 굶주린 배가 아우성이었다. 조바심이 난 김산이 먼저 아, 하고 입을 벌리자 그제야 다시 수저가 들어왔다.
한참 동안 방 안은 김산이 야무지게 죽을 삼키는 소리만 울렸다. 점점 수저가 달그락 소리가 섞여 들고 나서야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다 먹었어요?”
“네.”
계속 죽을 떠먹여 주던 기도해가 그것을 한쪽으로 치웠다. 양이 부족한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물끄러미 빈 그릇을 내려다보는데, 머리 위에서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그럼 아, 해요.”
다 먹었는데 무슨 소리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김산은 반사적으로 입을 아, 벌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기도해의 그림자가 김산을 덮쳐 눌렀다. 수저 대신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가득 밀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