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살 내리는 날의 가이드 (120)화 (120/135)
일조량 89%

“먹어요.”

“잘…먹겠습니다.”

달칵, 하고 접시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적막이 감도는 거실에서 김산은 기도해의 눈치를 보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눈앞에는 예쁜 모양의 케이크가 놓였다. 손을 들어 포크를 집으려던 김산은 저도 모르게 폭 한숨 소리를 내며 소파에 늘어지고 말았다. 아침부터 가이딩을 연거푸 한 탓에 온몸이 노곤해서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읏.”

“왜요. 힘들어요?”

“네…….”

“흐음. 그래요.”

저도 모르게 투정이라도 부린 모양새에 김산은 다시 기도해의 눈치를 보았다. 다만 그는 개의치 않는 듯 옆에 있던 쿠션을 김산의 등 뒤에 더 받쳐 줄 뿐이었다.

“먹여 줄까요?”

“…….”

역시 기도해가 이상했다. 정확히는 그에게 설탕 묻힌 감자를 먹인 날부터, 유독 이상했다.

“왜 그렇게 봐요.”

꿀이 떨어질 것 같은 음성으로 기도해가 물었다. 스윽 다가온 커다란 손이 김산의 예민한 귓가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김산은 자신이 꼭 설탕으로 된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의 따듯한 손길을 따라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날부터 기도해는 이상할 정도로 김산과의 가이딩에 집착했다. 몇 번이고 몸을 섞고 정신을 차리면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다. 피로해서 가물가물 낮잠이라도 들려 하면 어느새 다시 품을 파고들며 김산의 온 피부를 잘근잘근 씹어 댔다.

몇 번이나 자세히 살폈으나 기도해의 몸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중간중간 김산이 잠든 사이 몬스터를 처리하고 오는지 이따금 흐트러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니 손 가이딩 정도로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기도해는 늘 가이딩을 진지하게도 받았다. 덕분에 입가가 자꾸만 부르틀 지경이었다. 말하기 민망한 곳과 허리는 계속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나중에는 진지하게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그가 가이딩 결핍이 다시 올까 봐 겁을 잔뜩 먹은 게 분명했다.

“아, 해요.”

사념에 빠진 김산에게 기도해가 다시 자상하게 말을 건넸다. 익숙한 말에 김산은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어느새 허공에 둥둥 뜬 케이크 조각이 입 앞에 있었다. 지금까지 저 소리 뒤에 제 입안에 들어오는 게 꼭 음식만은 아니어서, 순간 놀랐던 모양이었다.

기도해가 이상한 건 이런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달달한 음식들을 사 오기 시작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제 입에 뭔가를 물려 주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너무 배가 불러 거절하면 다시 가이딩의 굴레가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해 억지로 간식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도시의 디저트는 김산에게는 너무 달았다. 처음엔 모양이 신기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으나 그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기에 기도해의 정성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음!”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그가 사 온 케이크는 그의 입맛에 쏙 드는 게 아닌가.

“맛있어요.”

“그래요?”

깜짝 놀란 김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번 혀가 아릴 정도로 단 음식들은 금방 물리곤 했는데 이번 케이크는 완벽했다. 할아버지가 계시면 꼭 포장해서 들고 가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탄성에 기도해는 이번에도 부드럽게 대답하며 그의 볼을 쓸었다. 미미하게 가이딩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역시나 부끄럽다. 자신이 이렇게 사심을 가득 안고 있음을 매번 들키는 것만 같아서.

며칠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중간에 어머니와 관련해 중요한 일을 발견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기도해는 왜인지 정확히 확인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가 또 거짓말할 것이 걱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고 싶다면 저런 말도 해 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때문에 고개를 끄덕인 뒤로는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언가 일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기도해와 함께하는 시간이 포근해서 갈수록 애가 닳았다.

너무 좋은데,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도해 씨도, 드셔 보세요.”

요동치는 심장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김산이 떨리는 팔을 들어 포크에 케이크를 조금 떴다. 그대로 기도해에게 내미는 순간이 놀라울 정도로 느릿하게 인식되었다. 자신이 그의 온기에 취해서 너무 큰 사심을 가지고 있는 걸 들키면 어떡하지.

“…많이 달군요.”

다행스럽게도 기도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내민 것을 받아먹었다. 그의 입맛에는 많이 달긴 한지, 살짝 고개 숙인 그의 눈썹이 조금 찌푸려지는 걸 훔쳐보았다. 키가 한참 작아서 그의 얼굴을 이렇게 관찰할 기회는 별로 없으니까.

“더 단 것도 많아요.”

“그래요?”

애써 목을 가다듬으며 김산이 짐짓 여유롭게 말했다. 도시에 와서 이렇게 많은 디저트까지 먹어 보고, 새삼 자신이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 순간, 케이크를 받아먹느라 슬쩍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도해의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물컹한 감촉과 함께 입안으로 그의 혀가 침범했다.

“그러게요. 더 단 게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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