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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내리는 날의 가이드 (126)화 (126/135)
일조량 99%

온몸이 뒤틀리고 있었다.

아니지. 어쩌면 이건 기도해 자신의 환상이고 몸은 진작에 녹아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비가 평소처럼 독을 주입하는 건 못 보았으나 모르는 일이었다. 그사이 사람을 기척 없이 죽이는 능력이라도 연마했을지도.

죽음은 예상과는 다르게 성난 범 같은 모양이었다. 평안이지 않을까 했던 기원이 박살 난 것도 아쉬운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다가오지 않는 안식만을 기다리며 기도해는 견뎠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쓰러져 모든 걸 그저 견뎌 내기만 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뜻밖의 해답을 알려 주었다.

‘가이드는 해악이다. 에스퍼는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하지.’

그제야 기도해는 이게 기다리던 죽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햇살 한 줌 없는 지하실에서 겪은 최초의 결핍 증세였다.

‘조금 쓸 만해졌으니, 너를 더 단련시켜 주마. 가이딩 따위는 필요 없도록 말이야.’

차갑게 떨어지는 아버지의 말은 더 큰 고통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안식을 바라던 아이는 끝내 까무룩 정신을 놓고 말았다.

‘준비 끝났습니다. 가시죠.’

‘장소는 어디로 정했지?’

‘도시 B근처에 쓸 만한 건물이…….’

그날부터 기도해에겐 결핍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녹은 쇳물처럼 온몸에 달라붙은 그것들은 그대로 뒤틀린 채 굳어 버렸다.

김산을 만나기 전까지, 줄곧.

❖ ❖ ❖

“그 건물들은 전부 확인했습니까.”

나직이 깔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김산은 잠에서 깨어났다. 구출된 뒤부터 극도로 잠이 늘어나 버렸다.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마자 기도해와 시선이 마주쳤다. 줄곧 이어지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뚝 끊어졌다.

“…아뇨, 아무 일도 아닙니다. 계속 보고하세요.”

잠깐 멈칫했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달칵하고 닫히는 문소리에 김산은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잠깐의 행동에도 머리가 핑 도는 게 느껴졌다.

“…….”

차가람이 주입하려던 약물은 예상보다도 더 위험한 물건이었다. 약 전체를 맞은 것도 아닌데 김산은 며칠이나 고열에 시달리며 앓아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가 어지러웠고 구역질이 났다. 때문에 기력이 없어 많은 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다.

주사기에 있던 약을 다 맞았다면 확실하게 가이딩 능력을 잃었을 거란 진단도 들었다. 때문에 지금도 기도해와 맞닿으면 어딘가 막힌 듯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게 느껴졌다.

자신을 구하느라 기운을 소모한 그에게 가이딩을 해 주고 싶었으나 거절당했다. 자상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회복부터 하라는 기도해의 음성이 이상하리만큼 무겁게 마음에 쌓여 있었다.

그날 이후로 기도해의 태도가 어딘가 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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