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살 내리는 날의 가이드 (134)화 (134/135)
일조량 100%

기도현의 연구실에서 나온 자료들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몬스터 사건 이전에도 유례가 없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차가운 실험실에서 덧없이 희생되었다.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어디까지나 오늘날의 비극은 몬스터라는 통제할 수 없는 재앙 탓이라 여겨졌으니 말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숨기려던 서류들은 대부분 돈에 관한 문서였다고 한다. 기도현에게 연구비를 제공한 온갖 정치계와 재계 사람들이 얽혀 들어갔다. 매서운 여론과 허필식이라는 막강한 권위 앞에서 그들은 엄중한 심판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은, 기도현과 그 일당들이 제일 먼저 버린 서류 사이에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납치한 사람들의 신상 명세와 실험 내용이 적힌 기록이었다. 꽃 아래에 묻은 사람의 특징에 따라 변화가 있는지를 오래도록 관찰한 것 같다고 했다.

김산은 놈들이 마지막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을 버려진 서류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아주 잔인하고 슬픈 일이었다.

그 외에도 한 가지 명단이 더 발견되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실험의 목록으로 그 수는 적지만 가이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슨 짓을 더 했는지 가이드 협회에서 밝혀내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관련된 사람들이 전부 죽었다는 비화를 김산은 전해 들었다.

대체 약물의 존재를 기도해는 끝까지 아무 데도 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와 자신 사이에 죽을 때까지 함께할 비밀이 생긴 것이다.

아직도 김산은 매칭률이 좋은 가이드가 자신뿐인 그가 불안했지만 기도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집착을 닮은 그의 애정이 고마워서 자신이 앞으로도 기도해를 위해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체 약물로 추정되던 그 앰플을 자신이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아직도 의문이었다. 그곳에서 가이딩을 할 때처럼 따듯한 기운이 느껴졌다고 하니 기도해는 아마 가이딩 약물이라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산 생각에도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많은 사람이 실종된 가족들의 행방을 겨우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 추구한 진실인데도 세상에는 눈물이 끊이지 않고 범람했다.

청사 앞에서 시위하던 부부의 딸아이 이름도 존재했다. 그리고, 김산의 어머니 이름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예요.”

“…….”

한강의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섬.

지금은 이름을 잃어버린 황무지 섬에 김산은 기도해와 들어왔다. 이 위를 가로지르던 다리는 몬스터 사태 때 폭파되어 복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개인 배가 아니면 들어올 수도 없는 이곳에 어머니가 묻혀 있었다.

지금은 몬스터 꽃이 피지 않는 곳이지만, 도시 복구 초반에는 근처에 피난 시설이 있어 이곳에 종종 꽃이 피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꽃 아래에 묻혔다. 가이드의 시체를 묻으면 몬스터 꽃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하기 위한 명목으로.

김산은 적어도 어머니가 아프게 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허허벌판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가 묻힌 몬스터 꽃은 아무 변화 없이 시간을 다 채운 뒤 개화했다. 근처에 있던 에스퍼들이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를 사상자 없이 처리했다. 그 뒤로는 관례대로 꽃은 뽑아 재가 되었고, 재는 땅을 갈아엎어 흔적을 전부 메워 버렸다.

“……유감이에요.”

아무런 표식 하나 없는 빈 땅을 내려다보던 김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함께 검은 양복을 입고 이곳에 와 준 기도해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놈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희생해서 알아낸 건, 변종으로 피어난 꽃 아래에 시체를 묻으면 개화 시기를 당길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행위는 일반 꽃을 변종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변종 꽃이 시체가 있어야만 개화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끔찍한 몬스터를 더 일찍 불러내기 위해서.

고작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김산의 엄마는 시체조차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생각을 다 정리하고 나서야 김산은 잔잔하게 깨달았다. 아주 고요한 산속 옹달샘에 떨어진 작은 이슬이 일궈 낸 파동이었다.

“화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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