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2화 (2/127)

2. 돌아오다 (1)

“허억!”

레오는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반사적으로 목부터 확인했다. 마물에게 물어뜯긴 불 같은 고통이 아직 남은 듯했으니까.

당연하게도 주위에는 검은 마물도, 죽어 가는 동료도 없었다.

목도 멀쩡하고 팔다리도 제대로 붙어 있었다.

“하아, 개꿈인가?”

앉아 있던 장소는 어느 빈집의 지붕 위.

숭숭 구멍 난 지붕과 주변에 널린 판자와 못을 보니 지붕 수리를 하다가 잠깐 누워 잠든 모양이다.

지붕 위라 그런지 경치가 잘 보였다.

작은 숲에 둘러싸인 분지에 구성된 수십 가구 규모의 작은 마을.

고향 론마르다.

“썅,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데.”

그리고 너무 길었고.

마을을 떠나 용병이 되어 대륙 전역을 떠돌고 결국 마물과 싸우다 죽은… 장장 15년의 기억.

그 꿈속 15년의 기억이 무겁게 남아 있다.

아무리 개 같은 꿈을 꿔도 눈을 뜨면 금방 잊어버리던데, 한참을 멍때리며 앉아 있어도 각인이라도 된 듯 기억이 휘발되지 않는다.

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아니, 꿈이 아니면 어쩔 건데?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머리가 복잡했다.

양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상처 없이 깨끗한 손. 매만진 얼굴도 매끈하기 그지없다. 분명히 수염도 나지 않은 어린 몸.

“뭔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냥 개꿈을 꾼 열다섯 살이니까 당연하지.

레오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무래도 더운 데서 자다가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그런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하, 씨발 진짜….”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냥 꿈이라 치부하기에 기억은 너무도 생생했고, 끝까지 찝찝하게 레오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 한번 확인해 보면 되겠네.”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

그걸 굳이 시도해 보려는 자신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덱스 놈이 봤다면 미쳤냐고 했겠지.

바로 마나 감응을 확인하는 것.

당연히 할 줄 모른다.

하지만 꿈속에서 십 대 후반에 마나 감응에 성공했고 이십 대 중반에 오러까지 개화했다.

그러니 꿈속에서 익히고 있던 마나 감응을 시험해 보면 그만이다.

당연히 가능할 리 없다. 그저 이 찝찝한 기분을 털어 버리기 위한 미친 짓일 뿐.

….

분명히 그래야 했는데.

“씨발! 이게 되네?”

머리가 멍했다. 뇌가 없어진 것처럼 몇 초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재능이 없으면 수년을 노력해도 힘들다는 마나 감응.

그걸 5분 만에 성공했다.

그것도 꿈속 기억을 통해서.

‘아니, 그러면 그게 꿈이 아니라는 말인데…?’

…꿈이 아니면?

분명 마물에게 목이 뜯겼다. 이후 완전히 꺼진 의식.

그 뒤에 이어진 것이 죽음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죽었다.

되살아났다.

그것도 15년 전 과거의 몸으로.

“이게 뭔데….”

꿈이라 치부하기에는 이 마나 감응이 말도 안 되고.

꿈이 아니라 하면 15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더 말도 안 되는 결론.

‘쯧, 고민은 머리 좋은 놈들이나 하는 거지.’

일단 받아들이고 부딪쳐 보자.

애초에 답 안 나올 것 같은 고민은 길게 하지 않는 성격이다.

마나 감응에 성공했으니 내친김에 마나를 몸에 고정해 보기로 했다.

‘이것마저 성공하면 진짜 인정한다!’

다시 눈을 감고 체내를 관조한다.

감응에 성공한 마나를 이끌어 몸속으로 끌어왔다.

본래 있는 곳에 머무르려고 하는 성질을 가진 마나가 낯선 레오의 몸에서 다시 빠져나가려고 날뛰었다.

당황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사방으로 돌출하려는 마나를 단전에 밀어 넣기 만을 반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레오의 단전에 정착한 마나가 서로를 당기며 뭉치기 시작했고.

콩알보다도 작은 오러홀이 생성됐다.

‘이것도 된다고?’

오러홀이다, 오러홀.

오러홀 생성 방법이 기사 가문의 비전이라는데, 그 오러홀을 만든 것이다.

이제는 더 의심하려야 할 수 없게 됐다.

새로운 길을 갈 때는 확인할 것이 많지만 한 번 갔던 길은 거칠 것이 없는 법.

체내에 흡수된 마나가 오러홀에 능숙히 쌓여 간다.

이렇게 오러홀에 쌓여 술자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나가 바로 기사의 상징 오러다.

“후우….”

레오는 눈을 떴다.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난 것 같다.

콩알보다 작았던 오러홀은 이제 병아리콩 정도 크기가 되었다.

지금의 육체 수준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한계. 이 이상은 마나를 눌러 담아도 흘러넘칠 뿐이다.

이제는 신체 단련과 오러 호흡을 병행하며 오러홀을 키워 나가는 것만 남았다.

“정말 꿈이 아니었구나.”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몸이 떨려 왔다.

마물의 파도와 마주했던 절망과 공포가 다시금 전신을 훑었다.

그리고 뒤이어 밀려온 후회.

‘어머니, 릴리…!’

그까짓 성공이 뭐라고, 자존심이 뭐라고.

왜 소중한 가족을 한 번도 찾지 않았을까…!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

레오는 빈집에서 뛰쳐나와 마을 길을 달렸다.

15년의 시간이 기억들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잊을 리 없다.

곧 낯익은 붉은색 지붕이 보였다.

“하아, 하아….”

색이 바랜 나무 현관 앞에서 숨을 골랐다.

집 안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는 듯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두런두런 대화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틀림없는 어머니와 동생이다.

문고리를 잡고 슬며시 당겼다.

삼십 대 후반의 어머니와 이제 막 열 살이 되었을 여동생 릴리가 동시에 이쪽을 돌아봤다.

“어서 오렴.”

“오빠다!”

두 사람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응, 다녀왔어.”

힘겹게 대답한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집에 들어선 레오는 아무 말 없이 몇 번이고 얼굴에 찬 물을 끼얹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 * *

방금 구운 빵과 커다란 감자 조각이 든 스프.

어머니 프릴이 가장 즐겨하는 요리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스프를 보니 레오는 새삼 가슴이 벅찼다.

왜 이리 늦게 깨달았을까.

세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서 하는 별다를 것 없는 점심 식사.

죽고 죽이는 끝없는 전장에서 가장 원했던 것은 이런 평범한 시간이었다.

“오빠 눈이 빨갛다!”

“정말 그러네, 괜찮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까 일하다가 뭐가 들어갔나 봐.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혹시 이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까?

그렇다기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행동은 너무도 평범하고 자연스럽다.

‘차라리 이따가 덱스한테 물어보자.’

레오는 말을 아꼈다.

혹시나 이 시간이 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웠으니까.

지금은 그저 이 따뜻함을 즐기고 싶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어머, 우리 아들이 어쩐 일이지?”

“가끔 내가 할 수도 있지.”

레오는 달그락거리며 능숙하게 식기를 닦았다.

식사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겪은 미래가 앞으로 일어나는 걸까?’

확인해 보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다.

꿈속에서 겪었던 미래처럼, 15년 후 검은 마물이 나타난다면.

초토화된 북부 대륙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방어선은 돌파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중앙도 안전하다 할 수 없다.

아니, 그 흉포한 놈들을 떠올리면 대륙 어느 곳에도 안전지대는 없을 것이다.

지금 같은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지켜야 한다.

미래의 재앙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

평화로워 보이는 아슐렌 제국.

미래의 기억대로라면 얼마 안 있어 혼란의 시기가 온다.

내부에서는 1황자와 2황자의 파벌이 계승권을 두고 싸우고, 밖으로는 전쟁이 발발한다.

그다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의 등장이다.

‘뭐가 천년 제국이냐.’

산 넘어 산이었다.

까놓고 말해 제국의 존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남부 대륙으로 이주하면 보르트 왕국과의 전쟁에도 큰 피해를 받지 않겠지.

다만 검은 마물만큼은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설거지를 거의 마치고 마른 수건으로 접시를 닦아 내고 있을 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레오! 집에 있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 같다.

레오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작은, 밝은 갈색 곱슬머리의 소년이 현관 앞에 서 있다.

친구 덱스였다.

“가자. 애들 다 모였어.”

“덱스! 이 새끼!”

“뭐야? 뭔데?”

갑자기 양어깨를 잡힌 덱스가 얼굴을 뒤로 빼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레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염 자국 가득했던 녀석의 얼굴이 지금의 어리고 뽀얀 얼굴에 겹쳐 보였다.

‘이 새끼, 지금 보니 꽤 귀염상이었네.’

그런데 어쩌다 얼굴이 그렇게 변했을까.

말만 걸어도 여자들이 질색한다며 술을 퍼마시며 한탄하던 덱스가 떠올라 피식 웃음마저 났다.

“좀 나갔다 올게요!”

“그래, 너무 늦지 않게 오렴.”

레오는 덱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함께 용병대를 만들고 검은 마물과 함께 싸운 전우다.

이 녀석에게만큼은 확실하게 물어볼 수 있다.

“야, 너, 혹시 이상한 꿈 같은 거 안 꿨냐?”

“무슨 소리야. 낮잠이라도 잤어? 나는 오전 내내 바빴다고.”

“붉은 이리 용병대, 검은 마물, 이래도 몰라?”

“얼씨구, 진짜 꿈꾼 모양이네.”

세상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덱스.

그제야 확신했다.

그 기억을 온전히 가진 건 혼자라는 것을.

“정신 똑바로 챙겨. 오늘 옆 마을 자경단 놈들하고 붙기로 했잖아.”

“아.”

그런 일이 있었지.

도시에는 정식 경비대가 있지만 이런 깡촌의 치안까지 챙겨 주지는 않는다.

당연히 자체적으로 지키는 수밖에.

보통 혈기 왕성한 젊은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자경단을 조직했고, 레오가 론마르의 자경단을 이끌었다.

그리고 론마르의 바로 옆의 마을 코룬.

최근 코룬의 자경단 놈들의 상태가 영 안 좋아지더니 선을 넘기 시작했다.

자경단이라는 놈들이 오히려 동네 처자들을 희롱하며 패악질을 부린다는 소문이다.

급기야 돈을 빼앗겼다는 론마르 아이들도 나타났다.

론마르의 아이들을 건드린 이상, 레오가 두고 볼 수 없는 일.

“지금 가면 되나? 가자.”

“잠 다 깼냐?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괜찮다고. 네 걱정이나 해. 네 얼굴은 앞으로 안 괜찮아질 거니까.”

“…왜 말을 그렇게 하냐.”

어어? 혹시 상처받은 거야?

서른 살의 덱스였다면 ‘이 새끼, 정신만 나간 줄 알았더니 눈깔도 맛이 갔네.’라며 대꾸했을 텐데.

열다섯의 덱스는 쉽게 상처받는 소년이었다.

…그게 꽤 신선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