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3화 (3/127)

3. 돌아오다 (2)

레오와 덱스.

론마르의 자경단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코룬 마을로 출발했다.

멤버들이 몇 더 있긴 하지만 다들 일하느라 바쁘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짜식들이 다들 바쁜 척하고 지랄이야.”

“싫다는 애들을 자경단에 억지로 집어넣은 건 레오 너잖아?”

“그래도 일단 들어왔으면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냐. 책임감이 없어, 책임감이. 안 그러냐?”

꼰대 중의 상꼰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레오.

용병대를 이끌던 기억과 기질이 그대로 남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걔들은 자경단이라는 자각이 없을 거라고.”

덱스는 말을 흐렸다.

굳이 따지자면 론마르에 자경단이 필요한가부터 생각해 봐야 하는데, 애초에 론마르는 평소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 레오는 입버릇처럼 뛰쳐나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고.

“안 되겠어. 저 새끼들 조진 다음에 우리 애들도 집합 한번 시키자.”

“시키자?”

“그래, 네가 집합시키라고. 애들 정신 교육 한번 하게.”

“…내가 집합을 시켜? 정신 교육을 해?”

“부단장이 하는 게 당연하지. 그러면 내가 하냐?”

레오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붉은 이리 용병대의 악마 교관 덱스가 바로 너잖아.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을 담아

전혀 모르겠다는 듯 동그란 눈동자를 떼구르르 굴리는 덱스.

‘아, 이 녀석 용병 일 하기 전에는 순둥이였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덱스도 용병 바닥을 거칠게 몇 년 구르면서 성격이 변했다.

지금은 저 해맑은 얼굴만큼이나 순둥이에 소심하니 짝이 없는 성격.

…그랬던 놈이 어쩌다가 그런 미친놈이 된 거지?

용병대의 모두가 부단장 덱스를 악마 또는 귀신이라고 불렀다.

레오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별명이었지만 용병대가 잘 돌아가니까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으음, 적응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듯하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금방 코룬이다.

마을 어귀에 가까워지자 이미 저쪽 녀석들이 예닐곱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하, 저것들 다들 한가해 보이네.

“겨우 둘이야? 싸움은커녕 그냥 처맞으러 오셨구먼?”

코룬 자경단의 대장이라는 오즈 녀석이 비아냥댄다.

담배까지 꼬나문 품새가 꽤나 불량스러워 보였지만 레오의 눈에는 그래 봐야 애새끼다.

오즈는 올해 초 새롭게 이 마을에 정착했다. 생각해 보면 이놈이 나타나면서 이 동네 자경단 물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레오는 한 뼘 정도 큰 오즈를 씩 웃으며 올려다보며 답했다.

“너 처맞는 모습은 최대한 적게 보는 편이 좋지 않겠냐?”

“뭐라고? 어린 놈의 새끼가 말하는 꼬라지 좀 보게?”

“어휴, 나이 많아서 좋겠다. 그런데 그 나이 처먹고 한참 동생들 코 묻은 돈을 뺏어? 나 같으면 창피해서 그렇게 못 살겠다.”

“뭐, 뭣!”

한마디 시작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오즈.

레오의 입은 쉬지 않았다.

“오늘 제대로 맞자. 애들 돈도 돌려줘야 하니까 저금통 가지고 나오는 거 잊지 말고.”

“다, 닥쳐! 결투다!”

“결투 같은 소리 하네, 그냥 너 혼자 처맞는 날이야.”

“이게…!”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말을 더듬는 오즈를 보니 나름 귀여웠다.

용병 생활만 15년을 했다. 동네 꼬마를 말로 패는 것 정도는 아침에 스프 마시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

‘어느 정도 혼내 주면 되려나.’

동네 여자들을 희롱하고 애들 돈을 빼앗고 여기저기 힘을 과시하는 정도.

딱 동네 양아치 수준이랄까.

적당히 패 주고 정신 차리게 하면 될 것 같다.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덱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오가 저렇게 말로 기 싸움을 하는 건 처음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냥 단순하게 몸 쓰는 걸 선호했다.

그냥 주먹부터 나간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 주지.”

오즈는 허리춤에 매달린 목검을 꺼내 들었다.

자경단 대장을 자처하면서 일반 목검보다 더 크고 무겁게 특별 주문한 놈이다.

레오도 막대기 하나를 꺼냈다.

미리 준비한 건 아니고 오는 길에 주웠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너 정도는 이거면 될 것 같은데.”

오즈가 목을 양쪽으로 우드득 꺾으며 씨익 웃었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저 얇은 막대기로 상대하겠다고? 이쪽은 철심까지 받아 넣은 특제 목검이라고.

레오도 여유롭다.

오러를 일깨우자 온몸에 활력이 흘렀다. 겨우 몇 시간 전부터 쌓은 아주 적은 양이지만 운용은 이미 능숙하다.

막대에도 슬쩍 오러를 흘려 넣는다.

상대는 동네 꼬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본때를 보여 주마!”

오즈가 목검을 크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크고 느렸다.

목, 가슴, 겨드랑이, 옆구리….

죄다 열려서 제발 패 달라고 사정하는 것 같았다.

철썩-!

막대가 활짝 드러난 오즈의 손목을 채찍처럼 후려쳤다.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에 오즈는 “악!” 소리를 내며 목검을 놓쳤다.

그다음은 일방적인 구타였다.

퍽, 퍼벅, 퍽, 퍽-!

머리를 때리다가 손으로 막으면 옆구리를 때리고 다시 옆구리를 막으면 머리를 때리고.

덩치가 크니 때릴 곳도 차고 넘쳤다. 살집도 두툼해서 패는 맛도 좋다.

“아악! 악! 제발! 악! 그만!”

“아직 멀었어. 잘 다져야 육질이 부드러워지지.”

“악! 내가 잘못했어! 악!”

“말해 봐. 뭘 잘못했지?”

내리 십여 분을 패다 보니 땀이 좀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막대기를 내렸다.

“여기는 잘 다져진 것 같고…. 이제 너희 차례네?”

“자, 잘못했습니다!”

“저희는 오즈가 하자는 대로 한 것뿐이에요.”

레오는 오즈의 담배를 빼앗아 물었다.

깊게 들이켜자 쿨럭, 쿨럭 기침이 났다.

‘모양 빠지게시리….’

신선한 몸으로 담배 맛을 즐기는 사이, 허옇게 얼굴이 질린 남은 패거리 놈들이 그 앞에 일렬로 무릎을 꿇었다.

“뭐 하냐? 머리 안 박고.”

다시 새로운 열이 만들어진다.

레오는 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리는 오즈의 등에 걸터앉았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일어나.”

“머리 박아.”

“일어나.”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붉은 이리 용병대에 막 입단한 거친 용병에게 규율을 박아 넣을 때 사용했던, 검증된 정신 교육이다.

“봤지?”

녀석들을 한참 동안 굴리던 레오가 덱스를 돌아봤다.

“뭘?”

“이제 네가 해 봐.”

붉은 이리 용병대의 악마 교관을 하루빨리 끄집어낼 생각에.

레오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 * *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간 레오는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모두 남아 있어.’

오즈를 손봐 주며 확인한 것은 베테랑 용병으로 살아가며 익혔던 모든 감각이 그대로 몸에 남아 있다는 것.

지금은 신체 능력이 부족한 탓에 머릿속 움직임을 완전히 따라가지 못하지만, 앞으로 단련만 하면 해결될 문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집에 돌아온 레오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미약하게 오러를 일으켜 눈에 집중시키자 진갈색 눈동자에 옅은 푸른빛이 돌았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자 풀과 나무 위로 수많은 붉은 선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가 이십 대 후반에 깨달은 ‘오러안’이라 이름 붙인 기술이었다.

‘이것도 된다.’

오러가 부족한 탓인지 금방 눈이 아파 왔지만 된다는 게 중요했다.

레오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특별한 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원래 평민이 아니라 귀족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에 몰락했다고 하니, 사실 백 년도 더 된 옛날이기도 하고, 몰락 귀족이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엄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레오에게는 외현조부가 되시겠구나. 그분은 엄청난 기사셨다고 해. 특히 뭐든 한 번 보면 약점을 찾는 ‘특별한 눈’으로 유명하셨단다.]

그렇게 강하고 귀족 작위까지 받으신 분이 어쩌다가 몰락하셨을까. 열에 아홉은 정치적인 이유였겠지.

어쨌든 그렇게 가문이 몰락하면서 오러 연공법도 끊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 ‘눈’의 사용법도 잊히게 되었으리라.

오러안은 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능력.

이를 응용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심장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보인다. 낯선 생물의 급소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유용하다.

또한 그러한 흐름이 항상 유려한 선 하나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연결 부위가 있고 이곳을 노리면 급소처럼 쉽게 흐름을 끊어 낼 수 있다.

레오는 이것을 마법 함정을 파훼하는 데 유용하게 써먹었다.

일정하게 짜인 흐름의 핵심 고리만 끊어 내면 마법도 파훼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모든 마법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시간으로 술식이 짜이는 마법을 정확한 공격으로 파훼한다고? 그건 기예에 가깝다.

상대가 웬만큼 병신 같은 마법사가 아닌 이상 성공하기 힘들뿐더러, 그 정도 병신 같은 놈이라면 그냥 칼빵을 놓는 게 더 빠르다.

‘검술도 제대로 익히면 좋겠지.’

레오의 검술은 말 그대로 전장에서 살아남으며 익힌 실전 검술이다.

무수한 실전으로 다듬었다고는 하나 수백 년간 전승된 기사 가문의 검술에 비하면 그 깊이가 일천한 것이 사실이다.

제국의 검성으로 추앙받던 천재 클라인 반다이트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꽃을 현현하는 오러 블레이드.

먼발치에서 봤을 뿐이지만 그 모습은 검성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런 검성도 전사했지.’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전조였다.

제국군의 1군단장 클라인 반다이트 백작의 전사.

이후 황제파 귀족의 힘이 급속히 약해지고 대립하던 후작파의 목소리가 커졌다.

레오의 용병대를 고용했던 켈시온 백작은 후작파에 속한 인물이었다.

“켈시온이 후퇴한 건 혹시….”

느긋하게 생각하니 하나씩 아귀가 맞기 시작했다.

요크 후작을 필두로 한 후작파 세력의 기반은 대부분 남부 대륙이다. 그러니 당시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하고자 하는 이들은 중앙 대륙에 기반을 둔 황제파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후작파는 마물을 이용해 정적의 힘을 빼놓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터.

켈시온 백작의 영지도 중앙 대륙에 속했다고는 하나, 영지의 피해를 감수할 만한 보상이 있다면 또 모르는 일이다.

“하여간 귀족 새끼들이란….”

절로 욕지기가 나왔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권력 한 조각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었다니 새삼 치가 떨렸다.

생각해 보면 검성의 사망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가 검은 마물에게 그렇게 쉽게 당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것부터 의문이다.

소년 시절 황립 아카데미에서도 수십 년에 한 번 나올 천재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검성 아닌가.

“…그러고 보니 다른 군단장들도 황립 아카데미 출신이 많았지.”

미래의 재앙을 혼자 막아 낼 수 있을까.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검은 마물은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검은 마물의 등장 자체를 막는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황립 아카데미라….”

한 번 떠올리자 그 이름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혼자보다는 당연히 여럿이 유리하고, 이왕이면 능력 있는 동료가 많은 편이 좋다.

후작파의 계략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중앙 정치의 인물과도 끈이 닿는 편이 좋다.

일개 용병으로는 언감생심이지만, 황립 아카데미의 생도라면 어떨까.

제국 최고의 재능이 모이는 곳.

고위층 자제도 쉽게 입학할 수 없는 곳.

그들의 능력, 그리고 넓은 인맥과 정보력은 분명히 쓸 만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황립 아카데미는 지금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결정했다.”

황립 아카데미에 진학한다. 그리고 재앙에 대비한다.

나아갈 방향이 정해졌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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