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법사 덱스 (1)
덱스는 붉은 이리 용병대에서 유일한 마법사였다.
사실 마법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발밑을 미끄럽게 하거나 불을 밝히는 정도?
용병 생활 중에 구한 책으로 혼자 익혔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애초에 책을 보고 마법을 익힌 것 자체가 대단한 재능이었다.
길바닥에서 혼자 마법을 익힌 녀석이 지금부터 제대로 배운다면?
적어도 밥값은 해 주지 않을까.
“덱스를 데려가야겠어.”
그렇게 레오는 첫 번째 동료를 정했다.
황립 아카데미는 능력 제일주의를 표방한다.
재능만 있다면 신분과 관계없이 제국의 전력으로 키우겠다는 의도였고, 입학만 하면 학비부터 기숙사 비용까지 모두 무료이기에 돈 걱정도 없다.
“덱스, 너 나중에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어, 그래.”
덱스는 눈을 껌뻑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레오가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사냥이나 동네 밖으로 잠깐 마실 가자는 거겠지.
“그래, 약속했다.”
그러니 방금 이것이 황립 아카데미에 같이 입학시험을 보러 가자는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앞으로 매일 사냥을 나갈 생각이야. 고기를 많이 먹어야겠거든. 너도 고기 많이 먹고 운동 좀 같이하자.”
“응? 갑자기 무슨 운동?”
“내일부터 매일 새벽에 나와.”
몸을 단련하는 데에는 운동과 고기가 최고다.
겸사겸사 미래의 마법사 녀석 체력 단련도 시킬 생각이었다.
* * *
레오는 거의 매일 사냥을 나갔다.
마을 인근 숲은 그리 깊지 않아서 사냥감은 대부분 토끼나 꿩 같은 소동물이었기에 하루 식사감으로 끝났다.
고기를 챙겨 먹고 난 뒤에 단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연히 덱스도 함께다. 처음에는 달리다가 몇 번이고 토한 덱스였지만 점차 잘 따라왔다. 확실히 녀석의 근성은 칭찬할 만하다.
기초 체력 단련이 끝나면 오즈에게 받아온 목검을 휘둘렀다.
자기 전에는 꾸준히 오러를 쌓아 나갔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자 레오와 덱스의 몸은 한층 더 다부지게 변했다.
“야, 시내 좀 며칠 다녀오자.”
다시 덱스를 꼬셨다.
이곳 론마르나 옆의 코룬은 상인도 거의 들르지 않는 깡촌이다.
반나절 정도 떨어진 곳에 그래도 상인과 용병의 왕래가 좀 있는, 조금 더 큰 규모의 마을이 있다.
“쉬르에? 우리가 가서 할 일이 있을까?”
“그런 건 걱정 말고. 길면 몇 주 정도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집에 미리 이야기해.”
“몇 주나?”
“제대로 일거리가 생기면 그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그것도 그러네. 알았어.”
걱정 마라, 덱스.
전직 용병대장이 일 하나 못 물어 올까.
다음 날 일찍 출발해 운 좋게 쉬르에 향하는 짐마차를 발견했다.
“아이고, 여기 바퀴가 좀 부실한데? 이거 봐요, 이거 봐. 쑥 빠지네.”
“어? 그렇네. 혹시 자네 이거 좀 봐줄 수 있나?”
“별거 아니죠. 대신 쉬르까지 좀 태워 주시면…?”
“그 정도야 쉽지. 후딱 출발하게만 해 주게.”
쉬고 있는 짐마차에 다가간 레오.
멀쩡한 바퀴 부속을 한번 뽑았다가 끼우는 퍼포먼스로 공짜 교통편을 구했다.
“와,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
…너도 속은 거냐?
이 녀석에게 빨리 사회의 더러움을 알려 줘야 할 것 같다.
“덕분에 잘 왔어요.”
“그래, 요즘 보기 드문 청년들이구먼.”
짐마차 아저씨에게 좋은 기억까지 심어 주었다.
서로에게 이득만 있을 뿐, 손해 본 사람은 없으니 완벽한 거래다.
“이제 어디로 가?”
“저기.”
레오가 턱짓한 곳은 쉬르 시내 중앙의 유일한 3층 건물.
쉬르의 길드 사무소다.
“우리가 저기 가서 뭐 하게? 저긴 용병들이 일하는 곳이잖아.”
“잔말 말고 따라와.”
레오가 자신 있게 앞장섰고 덱스는 조금 불안한 듯 그 뒤를 따랐다.
전직 용병대장이다. 고작 작은 마을의 길드에 들어서며 긴장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오셨나요?”
길드 접수원이 미소로 응대한다.
눈은 움직이지 않고 입만 웃고 있는 전형적인 사무적 미소다.
“짐꾼으로 일하고 싶은데요, 우리 둘이 함께.”
당장 몬스터 사냥에 뛰어들고 싶지만 그러려면 용병패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용병패 발급에 나이 제한이 있고 두 사람은 딱 일 년 모자란 상태였다.
짐꾼은 당장 가능했다.
“마침 짐꾼 두 명 구하는 곳이 몇 곳 있네요.”
“좀 볼 수 있나요?”
접수원은 서류 몇 장을 내주었다.
대부분 고블린 사냥을 나서는 파티들.
‘음?’
그중 눈에 걸리는 이름들이 있다.
멜브, 코리, 샤인, 루이스.
네 명의 모험가로 이루어진 파티.
레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처음 용병이 되겠다며 마을을 뛰쳐나갔을 때, 첫 목적지도 바로 이곳 쉬르였다.
길드를 찾아왔다가 나이 제한 때문에 짐꾼으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 저들의 이름은 꽤 유명했다.
같은 모험가와 짐꾼을 습격하는 인간 사냥꾼으로 말이다.
“여기로 지원하고 싶은데요.”
“내일 출발하는 파티네요. 다행이네요, 여기도 급하게 짐꾼을 구한다고 신청한 곳이라서.”
“그러면 이따 오후에 확인하러 들를게요.”
이름과 간략한 이력을 적는 것으로 등록은 끝이다.
“덱스, 단검은 챙겨 왔냐?”
“일단은. 근데 이거, 쓸 일이 있는 거야?”
덱스에게는 사냥용 단검을 들고 오라고 했다.
레오도 평소 사냥 때 쓰던 것을 하나 챙겨 왔다.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야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몬스터는 좀 무서운데.”
“나중에는 몬스터가 네 얼굴을 무서워하게 되지 않을까?”
“…왜 말을 또 그렇게 하냐.”
덱스가 시무룩해졌다.
아, 이거 은근히 재밌네.
시내를 적당히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길드에 들렀다.
마침 모험가 파티에서도 승낙하여 내일 짐꾼으로 합류하는 것이 확정됐다.
총 나흘 일정에 일당 6실버짜리. 둘이서 나흘 동안 48실버를 벌 수 있는 일이다.
멜브, 코리, 샤인.
레오는 합류할 파티의 모험가 이름을 되뇌었다.
‘개자식들.’
기억대로라면 현상금도 챙길 수 있으리라.
* * *
숲의 어둠은 빠르게 찾아온다.
검게 펼쳐진 장막이 두터워지듯 숲의 어둠이 빠르게 짙어진다.
고블린 사냥꾼들도 서둘러 휴식 장소로 돌아왔다.
파티에 합류한 지 사흘째 되는 밤이었다.
“좋아. 딱 맞춰 돌아왔네.”
“레오라고 했지? 이야, 짐꾼 처음인 거 맞아? 돈값 하는데? 카하하하!”
파티의 리더 격인 멜브와 코리는 레오가 피운 모닥불에 붙어 앉으며 크게 웃었다.
급하게 짐꾼을 구하기는 했는데 둘 다 어려 보여서 크게 기대 안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레오라는 녀석은 캠프 준비도 능숙하고 초행길에도 기가 막히게 방향을 잡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체력도 좋아 사냥에 걸리적거리지도 않는다.
다른 녀석도 중간 이상은 했으니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하나뿐인 마법사는 이 모양이니… 쯧.”
멜브는 파티의 유일한 여성이자 마법사인 루이스를 보며 혀를 찼다.
루이스는 화염계 공격 마법과 몇 가지 보조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고 했다. 공격 마법 명중률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첫 실전임을 감안하면 크게 욕을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파티원의 불만 표현이 조금씩 강해지더니 오늘은 아예 대놓고 면박을 주고 있다.
“죄송해요….”
루이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치렁한 보라색 머리칼이 축 처진 어깨를 따라 힘없이 떨어진다. 콧잔등에 매달린 안경이 애처롭다.
오늘 오후부터는 아예 전투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멜브가 방해되니까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고 한 탓.
자신감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자, 내일 오후까지만 사냥하면 복귀다. 마지막까지 잘하자고.”
“오늘은 일찍 자두는 게 좋겠어.”
“불침번은 나부터군.”
저녁 식사를 끝내자 일찍 잠자리에 드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얼굴에 길게 칼자국이 난 샤인이 첫 번째 불침번.
멜브와 코리는 진작 침낭을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인 것 같군.’
어리숙한 초급 모험가 한 명을 파티에 끼워 몬스터 사냥에 써먹다가 마지막 날 죽여 없애는 수법.
도시를 옮겨 다니며 행해지는 같은 수법에 여러 모험가들이 당했다. 이들은 이곳 쉬르에서도 두세 번 사건을 일으키고 다른 곳으로 떠날 예정일 것이다.
“덱스, 오늘 잠들지 마라. 단검 챙기고.”
“왜? 무슨 일이야?”
“저 세 명, 모험가 사냥꾼 같아.”
덱스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커졌다.
모험가 사냥꾼이라니.
안 그래도 요 사흘 내내 뭔가 위화감을 느끼던 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일단 지금은 지켜보는 수밖에. 대신 언제든 튀어 나갈 수 있게 준비해.”
덱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 전부터 레오가 변했다. 코룬 녀석들을 손봐 줄 때 더 확실히 느꼈다.
가끔 알 수 없는 농담을 뱉기도 하지만 전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다.
게다가 용병들 사이에 별의별 일이 일어난다고 하니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레오는 루이스와 조금 가까운 쪽으로 자신의 침낭을 옮겼다.
죽여 없애려는 마법사와 짐꾼이 있다면 마법사부터 처리하려 하지 않을까.
첫 번째 타깃은 루이스일 확률이 높다.
타닥타닥-!
고요한 숲에 모닥불 타는 소리가 간간이 울렸다. 청명한 밤하늘은 별 무리를 쏟아 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동료의 멱을 따려는 모험가 사냥꾼과 같이 밤을 지새우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레오는 침낭 속에서 단검을 그러쥔 채 동태를 살폈다.
루이스의 침낭이 일정하게 들썩이는 것으로 보아 잠이 든 것 같다.
다른 이들은 아직 별다른 징후가 없었다.
터벅터벅.
그때 불침번을 보던 샤인이 루이스의 침낭 쪽으로 스윽 다가간다.
단검을 만지작거리더니 상의에 달린 홀더에 꽂아 넣는다. 그러더니 훌렁 바지를 내렸다.
‘저 새끼가….’
굳이 남의 침낭 옆에 오줌을 갈기려는 이유가 아니라면 목적은 하나.
하반신을 시원하게 드러낸 샤인이 루이스의 침낭을 걷어 내고 몸 위에 눌러앉았다. 그의 손에는 다시 단검이 들려 있었다.
“으으음… 흐읍!”
몸을 짓누르는 답답함에 눈을 뜬 루이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거칠고 두꺼운 손이 입을 막는다.
뒤늦게 얼굴 앞에 들이댄 단검을 발견하고 동공이 커진다.
동시에 멜브와 코리도 침낭을 젖히며 몸을 일으켰다.
역시 이들도 잠든 체하고 있었다.
“저 새끼 또 저러네.”
“에혀, 짐꾼부터 없애고 지랄을 하시든가.”
그때.
바람같이 침낭을 던지고 튀어 나간 레오가 샤인의 뒤에 나타났다.
한 손으로 머리칼을 당기며 목에 단검을 겨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림자 같은 움직임.
“칼 버려, 목 따이기 싫으면.”
나직한 목소리 뒤로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너, 너…!”
적막을 깬 것은 샤인.
목젖에 닿는 예리한 날을 느끼면서 그는 겨우 숨을 토했다.
샤인의 머리칼을 당기는 레오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셋 센다. 하나, 두울….”
건조하게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레오.
그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덱스가 그 곁을 지켰다.
단검을 든 덱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여태껏 동물을 사냥한 적은 있지만 사람을 찌른 적은 없다.
게다가 상대는 살의를 숨기지 않는 모험가 사냥꾼, 두렵지 않을 리 없다.
‘부, 분명히 생각이 있을 거야…!’
다소 과격하기는 해도 레오는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는 녀석이 아니다.
게다가 놈들이 범죄자라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눈치.
그렇다면 대책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 새끼들 깨어 있었네. 헛지랄하지 말고 떨어져라. 싹 다 죽여 버리기 전에.”
멧돼지 같은 멜브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찌르는 건 쉽지 않다.
상대는 어린 짐꾼이니 망설임이 있을 터. 적당히 대치하면서 다시 우위를 점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스윽-!
하지만 레오의 손 속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예리한 날이 살가죽을 지나자.
곧 샤인의 목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았다.
목을 감싸 쥐었지만 무의미하다. 손가락 사이로 진득한 핏물이 넘쳐흘렀다.
타닥- 타닥-!
간헐적으로 들리는 모닥불 타는 소리.
“셋.”
그 속에 마지막 숫자를 셈하는 레오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