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법사 덱스 (3)
레오는 대수림에서 고블린을 잡고, 덱스는 마법 공부에 매진하는 나날이 지속됐다.
혼자서 활동하며 사흘에 한 번씩 고블린 귀로 가득 채운 포대를 두 자루씩 들고 오는 레오에게 고블린 학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동안 덱스는 무섭게 루이스의 가르침을 흡수했다.
“죄송해요. 이 이상은 무리예요.”
여관에 투숙한 지 대략 이십여 일쯤 되는 날.
루이스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마법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녀는 마법사로서 초급 수준인 2서클에 불과했지만, 그 또한 수년의 노력으로 다다른 곳이다.
그런데 그것을, 덱스는 한 달도 안 되어 따라잡았다.
이제 덱스를 대할 때마다 괴로움이 더해 가는 루이스였다.
“그간 고마웠어요.”
재능 있는 자를 바라보는 범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레오도 그녀에게 더 요구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좋은 스승님이셨어요.”
너무 빨리 스승을 뛰어넘어 버린 덱스도 루이스를 다독였다.
“스승이라니… 이렇게 부족한데요.”
“맞잖아요. 처음을 가르쳐 주신 분인데. 이 책으로 열심히 공부할게요.”
짧은 기간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몽글몽글한 대화.
레오가 끼어들었다.
“근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둘이서 마법 공부만 했어요? 다른 공부는 안 했나?”
“네? 다른 공부라니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아니,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다른 공부도 하고 싶고 그렇잖아요. 저놈에게 다른 처음도 가르쳐 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아니거든요!”
“미친놈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루이스와 덱스가 동시에 소리를 빽 내질렀다.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 * *
레오와 덱스는 다시 론마르로 돌아왔다.
잠깐 돈을 벌겠다며 마을을 떠난 것과 달리, 이제부터 황립 아카데미 입학을 준비해야 했기에.
황립 아카데미라니,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던 덱스의 부모님은 그가 간단한 마법을 시연해 보이자 입을 떡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작은 마을의 농부로 살았다. 그 아들이 마법이라는 재능을 찾았고 더 큰 인물이 되어 보겠다는데 가로막을 이유는 없었다.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황립 아카데미에 가 볼까 하는데….”
“그렇게 하렴.”
어떤 말로 설득할지 고민했던 것이 바보 같을 정도로 어머니 프릴은 곧바로 승낙했다.
“엉? 진짜로?”
“너를 이 마을에 잡아 둘 생각은 없단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도록 해. 대신 항상 몸조심하렴.”
“…고마워, 엄마.”
“잠깐만.”
프릴은 작은 상자를 꺼냈다.
얼마 안 되는 패물이 담긴 상자.
회귀 전 그 상자를 털어 간 전적이 있는 레오는 괜한 머쓱함에 눈동자를 굴렸다.
“돈은 정말 괜찮아요. 여행 경비는 충분하니까.”
“그러면 이거라도 챙겨 가.”
얇은 목걸이 줄이 달린 펜던트.
회귀 전 레오가 마지막 순간까지 목에 걸고 있던 그것이었다.
“선대 남작님의 유품이란다.”
“아….”
선대 남작이라는 건 특별한 눈을 가지셨다던 어머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다.
레오는 그 자리에서 펜던트를 목에 걸어 보았다.
‘원래 이런 색이었던가?’
펜던트의 색이 기억보다 더 훨씬 더 바랜 느낌이다.
“어떤 분이셨는데?”
“남작님 말이니?”
“응,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모두 이야기해 줄게. 하지만 명심하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단다.”
레오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자세한 이야기를 피해왔다.
멸문한 가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린 아들에게 자칫 위험을 야기할까 두려웠던 것이 틀림없다.
“선대 남작님은 신비롭게 생긴 분이라고 했단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지셨다고 했지.”
“검은 머리칼이라…. 확실히 흔하진 않지만 신비롭다고 할 정도인가?”
“대륙에도 검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야 많지. 하지만 외모도 풍기는 분위기도 조금 달랐다고 해.”
“흐음….”
“그분의 성함은 메이너드 바이스만. 바이스만이라는 성을 처음으로 사용한 분이었지. 지금의 제국 어딘가의 영지를 다스리셨다고 해. 젊은 나이에 영주가 되셨고, 영지의 평민을 아내로 맞으셨지.”
그 대목에서 레오는 조금 놀랐다. 영지를 소유한 귀족이 평민을 아내로 맞다니.
일반적으로 귀족에게 결혼이란 가문을 지키고 나아가 성장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왜, 놀랐니?”
“확실히 좀 별난 분이라는 느낌은 드네. 그런데 그런 분이 어쩌다가 갑자기….”
“정쟁에 휘말리셨단다. 반역의 누명을 쓰셨지.”
“반역이라니…!”
“남작님을 견제하는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야. 가문의 모든 핏줄이 잡혀 들어가는 가운데 막내아들만 유일하게 살아남았지. 그분이 엄마의 고조할아버지란다. 엄마가 아는 건 여기까지야.”
역사로 따지면 고작 120년 전.
그럼에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무엇보다 복수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당시 바이스만 가문을 멸문시킨 왕국도 이미 역사에서 사라지고 없지 않은가.
“선대 남작님, 그러니까 제게는 외현조부되는 분이라고 했죠?”
“그래,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분과 관련되어 남은 건 그 펜던트가 전부란다.”
“응, 고마워.”
“레오, 이리 오렴.”
프릴은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아들을 꼬옥 안았다.
이렇게도 듬직한 데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레오도 어머니를 어깨를 마주 감싸 안았다.
“몸조심하거라.”
“어머니도요.”
“나도! 나도!”
두 사람 사이에 릴리가 끼어들었다.
셋은 한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었다.
* * *
쉬르에 들러 본격적인 여행 준비부터 마쳤다.
여비는 150실버가 있다.
일전에 벌어 놓은 돈은 그 배 정도였지만 나머지는 절반씩 나누어 각자의 집에 보탰다.
“육포도 좀 챙기고. 여기 붕대하고 지혈제도.”
레오는 이미 고블린 사냥을 하면서 기본적인 무장을 갖춘 상태.
시험을 보러 가는 여정이라고는 하나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제 안전을 위한 기본 무장은 당연하기에 덱스에게도 가죽 방어구를 사 입혔다.
“야, 이거 지팡이 하나 해라.”
초급 마석이 박힌 지팡이도 하나 골랐다.
“오오… 어떠냐, 좀 마법사 같냐?”
지팡이를 통해 마력을 활성화해 본 덱스가 감탄사를 뱉었다.
낮은 등급의 마석이지만 기존 마력의 흐름을 누수 없이 사용하는 데 미약한 효과가 있었다.
“야.”
“왜?”
“…너 진짜 오러를 쓸 줄 아는 거야?”
덱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상범과 싸울 때 레오의 검은 분명 푸르게 빛났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고 이후에도 마법을 배우느라 경황이 없었다지만 줄곧 궁금했다.
아무리 시골 깡촌에 살아도 오러라는 걸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러니 그 현상범 녀석도 덜덜 떨며 항복한 것 아닌가.
“그래, 어쩌다가 그렇게 됐다.”
“아니, 언제부터?”
“오즈 새끼 두드려 팰 때부터?”
“…하긴 그때도 좀 이상하다 했어. 그래서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고 한 거야?”
“어, 아무래도 내가 좀 천재인 것 같더라고.”
“나한테 마법은 왜 배우라고 한 거야?”
“잘 배울 것 같길래?”
“으음….”
억지로 웃으며 대답하는 레오는 식은땀이 흘렀다.
말도 안 되는 적당한 대답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다행히 덱스도 더 추궁하지 않았다.
길드에 들렀다.
쉬르에서 수도 메프람 쪽으로 향하는 호위 임무를 찾으려 했는데 영 일정이 맞지 않았다.
쉬르에서 메프람까지는 대략 마차로 2주일.
중간 마을도 여러 개 있고 갈수록 수도를 왕래하는 짐마차가 많아질 테니 일단 걸어서 출발하기로 했다.
아직 입학시험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으니까.
“야, 가만있어 봐.”
걷는 내내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실실 웃던 덱스가 한적한 길 한가운데에 레오를 멈춰 세웠다.
바라보는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뭔데.”
“그리스.”
꽈당-!
갑자기 발밑이 미끄덩하더니 레오의 휙 시야가 돌았다.
뒤통수가 얼얼하다. 마른 흙냄새가 콧속으로 훅 스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아오, 머리야! 이게 나한테 마법을 써?”
“캬하하하! 은혜를 원수로 갚아 주마!”
덱스는 방방 뛰어 도망치면서 마법을 연사했다.
“그리스, 그리스, 그리스!”
“응, 피하면 그만이야. 넌 잡히면 죽었어.”
레오는 오러안을 활성화했다.
마력의 흐름이 지팡이에 집중되었다가 발밑으로 쏘아지는 것이 보인다.
훤히 보이는데 타이밍을 맞춰 피하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어…?”
“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순식간에 뒷덜미를 잡힌 덱스가 크게 한 바퀴 하늘을 돌아 떨어졌다.
시원한 업어치기였다.
“마법사는 이렇게 접근을 허용하면 끝나는 거야. 잘 알았냐?”
“와, 도대체 뭘 보고 피하는 거야?”
길바닥에 대자로 누운 덱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한번 넘어트린 것에 만족해야 할 모양이다.
“그렇게 느려 터져 가지고 잘도 맞아 주겠다. 우리 할머니도 피할 듯.”
“에이 씨….”
아.
레오는 덱스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다.
“공격 마법 할 줄 아는 거 있냐?”
“파이어 애로우 하나. 그거 익히는 데 힘들었어.”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2서클 공격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분명히 루이스와 헤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기초 원소 마법만 가능했는데.
‘원래 이렇게 빨리 배우는 게 맞아?’
레오는 표정 관리에 애썼다.
“그거 나한테 쏴 봐.”
“야, 위험해. 나도 연습 중이라고.”
“괜찮으니까 해 보라고.”
덱스는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믿는 게 있으니까 해 보라고 하겠지.
아직 속도나 방향 제어가 완벽하지 않지만, 천천히 하나 날려 볼 생각이다.
그 사이 레오는 대략 서른 걸음 정도 거리를 벌렸다.
오러안으로 마법 파훼를 시험해 볼 생각이다.
회귀 이후 아직까지 그건 연습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간다, 파이어 애로우.”
덱스의 지팡이 위로 화염 화살 하나가 떠오르더니 그대로 쏘아졌다.
‘좋아. 보인다.’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연결 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반응해 정확히 검을 휘둘러 고리를 끊고 마법을 부수어야 한다.
그것을 찰나의 시간에 해내야만 했다.
사악-!
느릿하게 날아오는 화염 화살을 향해 레오의 검이 선을 그었다.
화염이 증발하듯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엉?”
덱스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지팡이를 든 자세 그대로 얼어 버렸다.
마법이란 게 원래 저렇게 쉽게 파훼되는 거였나? 루이스는 그런 이야기 안 해 줬는데? 마법사라는 거 생각보다 엄청 약한 거 아냐?
오기가 일었다.
“한 번 더.”
“…아까보다 빠르게, 연속으로 간다.”
“좋지.”
팡- 팡- 파앙-!
연달아 날린 화염 화살 셋이 레오의 검 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아, 뭐야! 안 해. 안 해.”
덱스는 허공에 지팡이를 저으며 짜증을 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것 같다.
마법사라는 게 엄청 대단한 거라며? 아무리 2서클이 초급 수준이라고는 해도 칼 쓰는 동네 친구한테 막힐 정도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더 열심히 하라고 루이스가 격려해 준 거였구나.’
덱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정작 루이스가 들었다면 가슴을 치고 통탄했을 것이다.
* * *
반나절 정도 걷자 숲이 끝나고 황무지가 나타났다.
일명 광야라 불리는 곳.
도보로 이틀 정도를 횡단해야 다음 마을이 나타난다.
인적 없는 황무지를 횡단하면서 레오와 덱스는 몇 차례나 대련을 이어 갔다.
덱스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마법을 활용했다.
한 번은 레오의 눈앞에 라이트를 시전해 시야를 뺏고 그리스로 넘어뜨리는 데 성공했는데, 그다음에는 무슨 수로 패턴을 읽었는지 귀신같이 눈을 감고 자리를 피했다.
“야, 그만해. 나 밑천 다 털렸어.”
“마법사 별거 없구먼.”
한 사람이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승부의 결착이었다.
초반에는 두어 번 덱스가 승리를 따내기도 했지만 열 판을 내리 패배하자 결국 더 이상 승부를 포기했다.
“아니, 전사하고 마법사가 붙으면 누가 이기는지 난제라며. 아닌데? 마법사가 완전 밀리겠는데?”
“네 실력이 모자란 걸 모든 마법사에게 뒤집어씌우지 마라, 낄낄낄.”
“아오, 열 받아.”
분통을 터트리는 덱스를 보면서 레오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진짜 천재는 이놈이었네.’
오히려 덱스의 성장세에 놀라고 있었다.
불과 반나절 만에 마법의 발동 속도와 정교함이 달라졌다.
눈으로 직접 마력의 흐름을 보니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지금 덱스라면 웬만한 초급 모험가 파티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할 정도일 것이다.
“마법사가 이렇게 약한 거였어? 생각할수록 열 받네!”
물론 쉽게 알려 줄 생각은 없다.
낄낄낄.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