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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7화 (7/127)

7. 상인 지오르

중천에 떠 있던 태양이 점차 낮아졌지만 달구어진 지면은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열기를 뿜어냈다.

“더워 죽겠네…. 그거 한 번만 더 해 줘라.”

“…귀찮게.”

“모처럼 익혔으니 자주자주 써야 연습이 될 거 아냐, 어서.”

“하여간 말은 잘한다니까.”

덱스는 구시렁대면서도 마력을 일으켜 술식을 만들었다.

장소는 레오의 머리 위.

“아쿠아.”

촤악-!

딱 사람 머리 크기만 한 물의 구체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루이스에게 받은 마법서로 독학한 1서클의 원소 마법이었다.

“아으, 시원하다.”

햇빛을 피해 적당한 바위 그늘 아래서 육포를 씹으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뙤약볕 아래 황무지를 횡단하는 건 꽤나 지치는 일이지만 중간중간 물을 맞으며 가다 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다.

이대로 걸으면 내일 해질 무렵쯤에는 다음 마을에 도착하리라.

“야, 뒤에서 마차 하나 온다.”

“그러네. 태워 달라고 해 볼까?”

종일 걸다가 앉아서 쉬니 다시 눕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

방금 전까지 걸을 만하다 생각했는데 탈 것이 보이니 어떻게든 타고 싶어진다.

공짜로 타도 좋고 아니면 적당히 돈을 지불해도 될 일이다.

구구구궁-!

땅 밑에서 순간 진동이 일었다.

“어? 뭐지? 방금 뭐 있었지?”

“야, 움직이지 말아 봐.”

황무지. 지하의 진동.

좋지 않은 예감에 레오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구구구궁-!

진동은 몇 초간 이어졌다. 단순한 지각의 흔들림이 아니다.

무언가 아래를 지나고 있다.

샌드 웜.

레오는 빠르게 가능성을 떠올렸다.

“샌드 웜인 것 같다. 저 마차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확신할 수 있다.

이 주변에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저 짐마차 하나뿐이었으니.

“그 커다란 지렁이 몬스터?”

“그래, 얼마나 클지는 네 거시기처럼 까 봐야 알지만.”

“훗, 그렇다면 엄청난 녀석인 게 틀림없네.”

저렴한 농담을 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시선은 마차를 향했다.

목소리가 제대로 닿을 정도의 거리가 아니기에 마땅히 경고할 방법이 없다.

“오지랖 좀 부려야겠지?”

“그래, 일단 마차부터 살려야 얻어 타든지 하겠어.”

정의감이라기 보다 말 그대로 오지랖이다.

자경단이랍시고 동네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부터 둘은 그런 성격이었다.

두 사람은 일단 짐마차 쪽으로 달렸다.

아직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기에 샌드 웜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저 마차 좀 세울 수 있겠냐?”

“내가 무슨 수로 마차를 세워?”

“마법사는 그런 거 할 줄 알아야지.”

덱스는 황당하다는 눈을 했다.

걸어 다니는 불씨나 물통 취급하면서 너무한 거 아니냐?

목구멍까지 그 말이 차올랐지만 꾹 삼켰다. 스스로 내뱉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는 눈에 오러를 집중했다.

땅속을 투시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면 가까이 붙어 있는 순간이라면 어느 정도 샌드 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붉은 선이 간간이 지면 위로 비치며 짐마차로 접근하고 있다.

아마 위아래로 롤링하듯 움직일 때 위에 있는 순간이 지면과 꽤 가까운 모양이다.

“샌드 웜이 튀어 오르기 직전에 마차 좀 세워 봐. 그러면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마차의 바로 아래에서 솟구치려 할 터.

일단 마차가 직격당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잠깐만. 그것보다 더 좋은 수가 있을 것 같아.”

덱스가 제자리에 뚝 멈췄다.

마차와 직선거리는 적어도 50미터 이상.

샌드 웜은 그 중간쯤에서 맹렬히 마차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디그.”

바라보던 방향에서 조금 왼쪽.

얕은 언덕의 바위 주변에 흙이 튀어 오른다.

땅을 파는 1서클 마법이다.

“디그, 디그, 디그.”

몇 차례 땅이 파였다.

곧 언덕 경사면에 있던 사람 몸통만 한 바위가 묵직하게 구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육중한 소음과 함께 언덕에서 구르는 바위.

그걸 발견한 마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바위의 진행 방향을 고려했을 때 여유롭게 속도를 줄이며 멈출 수 있는 거리다.

팟! 팟!

덱스는 구르는 바위의 앞을 교묘하게 파내면서 진행 방향을 조정했다.

디그 한 번에 멈춰 있는 큰 바위를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만 이미 속도가 붙어 움직이는 바위의 방향을 대략적으로 조정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

적당히 주변 지형과 부딪히며 큰 소음과 진동을 내는 루트로 유도하고 있었다.

“샌드 웜이 방향을 바꿨어.”

지면에 간간이 나타나는 샌드 웜이 흔적이 고개를 튼다.

이제 놈은 마차가 아니라 바위가 구르는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레오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제 잡기만 하면 되겠네.”

파앗-!

굴러 내리던 바위가 멈추는 순간 샌드 웜이 그 앞에서 불쑥 솟구치며 몸을 드러냈다.

굵기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만 했고 밖으로 드러난 몸길이는 5미터를 훌쩍 넘겼다.

마차의 남자는 샌드 웜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황무지를 이동하는 상인에게 샌드 웜은 재앙이다.

도적은 미리 대처라도 할 수 있지만 땅 밑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샌드 웜은 노련한 용병도 대처하기 어려웠으니까.

키에에엑!

바위에 달라붙은 샌드 웜은 이내 먹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의 진동이 아직 감각 기관에 크게 남은 터.

마비되다시피 한 감각 때문에 멀뚱히 바위를 감싸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덕분에 접근하는 레오의 진동도 느낄 수 없었다.

‘저긴가.’

오러안.

샌드 웜의 커다란 몸에 비해 붉은 선은 꽤 단조롭다.

대략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고등 동물의 심장 같은 부위가 있는 모양이었다.

타다닥-!

바위를 밟고 재빠르게 뛰어오른 레오가 망설임 없이 샌드 웜의 머리에 검을 꽂았다.

샌드 웜이 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움찔거림을 멈추었다.

오러안에 비치는 붉은 선도 빠르게 잦아들었다.

“괜찮으세요?”

그사이 덱스는 천천히 마차에 다가가 물었다.

낯선 이의 접근을 경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눈앞에서 튀어 오르는 샌드 웜을 본 남자는 그럴 경황도 없어 보였다.

“아니, 이게…!”

“샌드 웜이 그쪽으로 향하길래 부득이하게 손썼습니다.”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바위.

바위의 방향을 조절하듯 부자연스럽게 땅이 파이던 현상.

불쑥 등장한 샌드 웜.

그리고 마법 지팡이를 든 남자.

남자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빠르게 일련의 사건을 이해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오르라고 합니다.”

* * *

이 황무지는 딱히 도적이 출몰하는 곳이 아니다.

개활지인데다 풀 한 포기 없는 곳이라 눈에 띄는 큰 동물이나 몬스터도 상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오르는 한 푼이라도 아낀다는 생각으로 황무지를 혼자 횡단하기로 했다.

호위는 다음 마을 유렌에서 구할 생각이었다.

“호위를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을 겪은 후 망설이지 않고 두 사람에게 호위를 부탁했다.

샌드 웜을 미리 포착하고 사냥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이다.

이미 실력을 확인했으니 어린 나이는 대수롭지 않았다.

“뭘요. 저희도 가는 방향이니 좋지요.”

짐칸에 앉은 레오가 황무지의 풍광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저 단 며칠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다면 족할 뿐이다.

옆에는 샌드 웜의 이빨을 뽑아 담은 주머니가 있다. 부산물 중 그나마 가치 있는 것은 이빨뿐이지만 알뜰이 팔아먹을 셈이다.

“이 안에는 뭐가 들었나요?”

덱스가 짐칸 절반을 차지한 오크통을 보며 물었다.

주먹으로 툭툭 두드려 보니 안이 꽉 찬 듯 묵직했다.

달콤 상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산딸기입니다. 요즘 도시에서 수요가 갑자기 늘고 있거든요.”

“근처에 산딸기가 나는 곳이 있나 보네요.”

“여기서 하루 반나절 정도 떨어진 숲에 산딸기를 채취하는 마을이 있거든요. 몇 년 전에 알게 된 곳인데 이번에 처음 매입해 봤습니다. 하하하.”

“술이 되기 전에 팔려면 빨리 움직여야겠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날씨가 따뜻하니까요. 갈수록 수요는 늘어날 거라 여겨집니다만 품질이 떨어지기 전에 적당한 곳에서 팔 생각입니다.”

지오르는 수도 메프람에 본거지를 둔 꽤 규모 있는 상회 소속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최소 두세 그룹 짝을 이루어 이동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혼자서 산딸기를 매입해 오는 길이었다.

마차를 얻어 타니 이동 속도는 배 이상 빨라졌다.

당일 저녁 무렵 다음 마을에 도달했지만 굳이 숙박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대로 지나쳤다. 지오르는 한시라도 빨리 이동해서 더 좋은 값에 산딸기를 팔고 싶었으니까.

어둠이 진하게 내리자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준비했다.

밤공기는 상쾌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평화롭네.”

불을 피워 놓고 그 옆에 누웠다. 별자리를 이불 삼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따 깨울 테니까 먼저 자라.”

“그래, 수고하고.”

레오는 먼저 불침번을 설 요량이었다. 겸사겸사 오러 연공도 좀 하고.

어느 정도 감각을 열어 놓으면 효율은 조금 떨어질지언정 외부의 기척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고요한 밤이 깊어 갔다.

일정하게 들리는 모닥불 타는 소리와 은은하게 흐르는 산딸기의 달콤한 내음.

한참 동안 차분히 호흡을 이어 가는 중, 낯선 기척이 감지됐다.

스슥-!

레오는 즉시 눈을 떴다.

기척은 수풀 방향이다. 달과 별이 밝았지만 수풀 안쪽까지 비춰 주지는 않았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있지.’

눈동자에 푸른 오러가 스몄다.

오러안을 통해 보자 풀과 나무 외에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대략 인간의 형상을 한 밤손님.

이리저리 겹쳐 정확한 파악은 힘들었지만 대략 다섯 여섯 정도로 보인다.

“일어나. 지오르 아저씨 깨우고.”

“응? 뭔데 그래?”

발로 툭 치자 덱스가 눈을 번쩍 떴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잽싸게 지팡이를 챙겨 들었다.

“밤손님 오신다. 맞아 드려야지.”

하여간 조금 평화롭다 싶으면 여지없지.

“아저씨는 마차 뒤로 숨어 있어요.”

“아, 알겠습니다.”

자, 어떻게 해 줄까.

레오는 스읍 입을 다셨다.

밤늦게 남의 캠프에 몰래 접근하는 놈들 중 열에 아홉은 속이 시커멓다.

나머지 하나는 그냥 멍청한 놈이고.

선공을 날려도 저쪽은 할 말 없다는 거다.

그래도 언제나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확인은 해 봐야겠다.

“불 좀 밝혀 줘. 저쪽 수풀 위로.”

“그래, 손님들 얼굴부터 좀 볼까.”

수풀 위로 빛의 구체가 하나씩, 총 세 개가 떠올랐다.

머리 위가 갑자기 밝아지자 수풀 속 녀석들이 당황한다.

“어어? 뭐여!”

“뭐야? 마법사도 있어?”

“그래 봐야 둘 뿐이야, 빨리 조져!”

거리는 대략 스무 걸음 안짝.

기습에 실패했지만 꽤 가까이 접근했다 여겼는지 그대로 달려들 심산이다.

“파이어 애로우.”

덱스의 화염 화살이 먼저였다.

초당 하나씩 생성된 화살이 도적들의 면상을 향해 날았다.

놈들이 미처 서너 걸음도 떼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파앙! 파앙! 파앙!

“으아아앗! 내 얼굴!”

순식간에 도적 셋이 얼굴을 감싸며 나뒹굴었다.

마력이 부족해 머리통을 날려 버릴 정도의 위력에는 못 미쳤지만 얼굴을 뭉개는 데에는 충분했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그걸로 전투는 끝.

순식간에 동료 셋을 맨바닥에 눕히는 마법에 나머지 셋도 그대로 무기를 던졌다.

상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습격하려던 멍청함 와중에 그나마 현명한 판단이었다.

“에?”

덱스가 김빠진 소리를 냈다.

애초에 쓰러트릴 생각으로 시전한 마법이 아니다. 적어도 견제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지.

그런데 왜 못 막은 거지?

“오, 우리 마법사가 한 건 하셨네?”

레오가 덱스의 어깨에 팔을 턱 얹었다.

마법의 발동 속도나 정확도 모두 며칠 전보다 확연히 발전했다.

요 며칠 열심히 연습시킨 보람이 있다.

“쟤들은 왜 너처럼 못 막냐?”

“밤이라 안 보였나 보지.”

“뭔 소리야. 밤이니까 더 잘 보였겠지.”

“내가 아냐? 일단 저놈들부터 정리하고.”

나니까 막는 거지.

레오는 그렇게 말하려다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친구의 어깨에 힘 들어가는 꼴은 역시 아직은 보고 싶지 않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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