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산딸기와 웨어울프 (1)
레오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어설픈 습격자들을 향해 외쳤다.
“뭐 하냐? 알아서들 서로 묶어!”
“예? 예!”
뭘로 묶지? 같은 얼빠진 소리를 하면서 놈들이 서로를 묶기 시작한다.
얼굴이 지져진 세 놈도 그 와중에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조용히 동료에게 몸을 맡겼다.
상황이 끝나자 마차 뒤에 숨어 있던 지오르가 다가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덱스 님. 다시 봐도 놀라운 마법입니다.”
“고작 2서클 마법인데요. 명색이 마법사라면 이 정도는 해야죠.”
“겸손하시기까지. 덱스 님 나이에 이 정도로 완숙한 기술을 구사하는 이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헤헤헤….”
덱스는 쑥스러운지 뒷덜미를 긁었다.
역시 상인이라 그런지 기분 좋은 말을 잘하는 것 같다.
“어휴, 뭐 저런 덜떨어진 새끼들이 다 있냐.”
레오는 한밤의 습격자들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이렇게? 이렇게? 서로를 어떻게 묶을지 상의하는 놈들.
그 모습에 덱스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저런 덜떨어진 놈들이니 자신의 마법에 그렇게 쉽게 당한 거겠지.
“뭐 하는 놈들인지 이야기 좀 들어 볼까.”
얼추 정리되자 심문이 시작됐다.
도적들의 정체는 내일쯤 도착 예정인 소도시 타렌의 양아치들이었다.
최근 산딸기 가격이 폭등하면서 타렌에 유입되는 상인들이 늘어났고 이들을 노려 한 몫 잡아보겠다는 심산이었다고.
“아니, 산딸기가 얼마나 인기이길래 이 난리야?”
“여기 타렌만 보아도 배는 올랐습죠. 저 오크통 하나에 40실버는 족히 받습니다요.”
그 말을 들은 지오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매입한 양은 오크통 열 개 분량. 산지에서 개당 20실버에 사 왔으니 타렌에서 모두 팔면 200실버를 남겨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흐음, 더 비싸게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
“타렌의 상회에서 40실버에 매입해서 잼으로 가공한다고 들었습죠.”
지오르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산지에서도 평소 시세보다 조금 비싸게 매입하긴 했지만 이 정도 인기라고?
요 며칠 사이 한층 가치가 뛴 것 같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타렌에서 판매하겠습니다. 날씨가 덥다 보니 자칫 품질이 상할까 우려되는군요.”
경력 있는 상인답게 지오르는 욕심을 절제할 줄 알았다.
타렌을 지나 다음 도시에서 판다면 더욱 비싼 값을 받을 가능성도 있지만 품질이 버텨 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타렌 상회는 산딸기를 매입해 가공한다고 했다.
원물 그대로가 아니라 가공해서 파는 쪽을 택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러면 이제 이놈들 처리가 남았는데. 뭐, 굳이 살려 둘 이유가 있나?”
레오의 시선이 얼치기 도적들에게 향했다.
이대로 황무지의 시체로 만들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는 상황.
“히이이익! 살려 주십쇼!”
“경비대에 자수하겠습니다!”
멍청하지만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은지 놈들은 필사적으로 목숨을 애원했다.
평생 봉사하며 살겠다,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 너도나도 착하게 살겠다고 경쟁하듯 외치는데 그대로만 살아가면 타렌에 여섯 성인이 탄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지경이다.
날이 슬슬 밝아 오는 것을 보니 잠시 후면 성문이 열릴 시간.
이제 와 다시 자기에도 애매하다.
지오르는 차라리 지금 출발해서 놈들을 경비대에 넘기자고 했다.
“흐음, 아무래도 걸리적거릴 것 같은데….”
“뛰겠습니다!”
“죽어라 달리겠습니다!”
마차는 도적들을 매달고 천천히 타렌을 향해 출발했다.
밧줄에 줄줄이 엮인 도적들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렸고, 성문에 도착했을 때 전부 거품을 물고 있었다.
* * *
훔멜 자작령 소도시 타렌.
고향 론마르를 떠나 처음 도착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제대로 된 도시다.
“오오오-!”
성문을 지나 성곽 도시의 내부에 발을 들인 덱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석벽으로 쌓은 촘촘한 성벽도, 복층의 높은 건물도, 길가는 행인의 세련돼 보이는 옷차림까지 모든 것이 놀라웠다.
감탄을 감추지 못하는 덱스를 보며 레오는 피식 웃었다.
그래 봐야 지방의 소도시다. 나중에 수도 메프림에 도착하면 정말 놀라 자빠질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이지만 모험가를 위한 여관은 일찍부터 열려 있다.
“일단 1박을 할까 합니다.”
“좋죠. 푹 쉴 수 있겠네. 아저씨는 산딸기 팔고 올 거죠?”
“예, 상회에서 가격 교섭부터 해 볼 생각입니다. 적당한 가격에 판매가 되면 새로 매입할 만한 물품을 훑어봐야지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여기서 봐요.”
“좋습니다.”
얼치기 도적놈들 때문에 세 사람 다 잠이 부족했다.
그 와중에 덱스는 당장 도시를 구경하고 싶다고 나섰지만, 이 시간에 문을 연 곳은 여관과 길드 사무소밖에 없다는 말에 금방 단념하고 제 방에 들어갔다.
레오도 오랜만에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다지 푹신하지는 않아도 땅바닥에서 야영하는 것보다 백배 나았다. 며칠간 쌓인 피로에 금방 몸이 꺼져 들어갔다.
쾅쾅쾅-!
“야! 아직 자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레오.
덱스 놈이다. 소풍 가는 꼬마처럼 들떠 있는 목소리였다.
“망할 놈, 흐아아암-!”
찢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쭈욱 기지개를 켰다.
며칠을 찬바람 맞으면서 밖에서 자다가 모처럼 실내에서 한잠 잤더니 꽤 개운했다.
“일어나라고-!”
“나간다니까! 애새끼처럼 아침부터 왜 이래?”
“언제까지 잘 거야, 빨리 나가 보자고~!”
문을 확 당기자 덱스가 쏟아져 들어온다. 민망했는지 헤헤헤 웃는 녀석.
쫄보 자식,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혼자 좀 다녀오든가.
정오에 조금 못 미친 시간.
거리는 사람들로 꽤 붐볐다.
곳곳에서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울렸고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산딸기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활기찬 분위기다.
길드에서 소개받은 잡화점에 들러 샌드 웜의 이빨도 팔아 치웠다.
큰돈은 못 받았지만 여행 물품을 보충하고 조금 돈이 남을 정도는 됐다.
“우리도 그 파이 하나씩 먹어 볼까?”
“그러든가.”
소문의 산딸기 파이라……. 여기저기서 하도 들었더니 맛이 궁금하긴 하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 난리인 거지? 애당초 산딸기를 노리는 얼치기 도적까지 나타날 정도라니 말 다했다.
[산딸기 파이, 정오에 판매 개시! 한정 수량!]
얼씨구.
긴 줄이 생긴 곳이 있어 다가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산딸기 파이다.
둘은 잽싸게 줄 뒤에 섰다.
덱스가 앞 사람을 헤아려 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앞에 스무 명은 서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가 스물한 번째, 스물두 번째 바보가 되겠군.”
“설마 우리 앞에서 다 떨어지지 않겠… 히이이익!”
말을 하다 말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덱스.
“뭔데?”
녀석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짙은 회색빛 털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고개를 올리자 턱 밑에서 가슴으로 흰 털이 이어진 회색 늑대가 서 있었다.
수인족 웨어울프였다.
“으음?”
“이런, 미안해요. 일행이 수인을 본 적이 없어서 실례했네요.”
레오는 꽤나 정중하게 사과했다.
인간 사회에 수인이 섞여 살아간 지 오래지만 종족 차별은 여전히 예민한 문제 중 하나다.
실수했다면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이 좋다.
“뭐, 괜찮소.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 줘서 고맙네요.”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덱스도 쭈뼛거리며 사과를 건넸다.
웨어울프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건 그렇고 왠지 낯이 익은데.’
웨어울프의 얼굴을 쳐다보던 레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종족 차별적인 말이 아니라 인간이 털북숭이들을 구분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웬만큼 희귀한 털 색깔이나 눈에 띄는 커다란 상처 같은 게 아니면 죄다 그놈이 그놈으로 보인다.
이건 웨어울프 입장에서 인간을 봐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곧 판매를 개시합니다!”
“오오오오!”
문제의 산딸기 파이 판매가 시작됐다.
긴 줄은 쑥쑥 줄어 갔고 다행히 덱스의 앞까지 무사히 차례가 왔다.
“한 개 1실버.”
“엥? 그렇게 비싸요?”
덱스가 새된 소리를 냈다.
가격을 듣고 놀란 건 레오도 마찬가지.
알차게 건더기가 들어간 뜨끈한 스튜 한 그릇도 대략 50쿠퍼 내외다.
손바닥만 한 파이 한 조각이 그 두 배라니, 그럼에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걸 보면 얼마나 과열된 인기인지 대략 알 것 같다.
레오는 망설이는 덱스를 스윽 옆으로 밀어내며 돈을 내밀었다.
“두 개 주세요.”
“자, 이게 마지막입니다. 여러분! 오늘 수량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와 주세요!”
덱스가 마지막 파이 두 개를 받아 들었다.
사람 마음은 참 알 수 없다. 방금 전까지 비싸다며 머뭇거리던 덱스는, 운 좋게 마지막 수량을 손에 넣었다는 것에 얼굴이 활짝 폈다.
그러더니 다시 파이를 들여다보며 미간이 좁아진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으음….”
조금 머뭇거리던 덱스는 아쉬움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웨어울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파이 하나를 건넸다.
“저기, 괜찮으시면 이거 양보해 드리고 싶은데요.”
여전히 무서워하면서도 아까보다는 훨씬 제대로 말을 건네는 덱스.
“정말이오?”
“아까 제가 실수하기도 했고, 많이 아쉬우신 것 같아서요.”
“하하하, 고맙소. 호의를 받도록 하지.”
웨어울프는 하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동전을 꺼내 덱스에게 건넸다.
산딸기 파이를 받아 들고 함박 미소를 짓자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으음… 그리운 맛이야.”
한입에 파이를 먹어 치운 웨어울프가 아련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고향은 서쪽 대륙의 숲.
우연찮게 그곳도 산딸기가 유명한 산지였다.
“잘 먹었소. 고향 생각이 나는 음식이라 꼭 한번 맛보고 싶었지. 내 이름은 무무카요.”
무무카!
웨어울프는 역시 레오가 아는 인물이었다.
수인족 중심으로 조직된 야수 용병대를 이끌던 대장, 무무카.
‘흉터가 없어 못 알아봤군.’
왼쪽 눈가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무무카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얼굴이 깨끗하다.
그가 이끄는 야수 용병대는 무력만 따지자면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검은 마물과 초기 전투에서도 저지선 형성에 가장 공을 세우기도 했다.
안타깝게 무무카는 선두에서 싸우다가 마물 깊숙한 곳에서 전사했지만, 남은 수인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 용맹하게 전선을 지켰다.
그러고 보니 야수 용병대는 아직 조직 전인 건가?
“언젠가 인연이 닿기를.”
무무카의 인사말.
레오는 그 울림이 새삼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의 반절을 뚝 떼어 덱스에게 넘기고 남은 것을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하고 눅진한 산딸기의 풍미가 고소한 파이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목구멍을 넘어간다.
1실버의 가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또 생각나는 맛임은 분명했다.
한나절 내내 도시를 돌아다닌 두 사람은 해 질 녘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지오르 아저씨는 뭐 하고 있을까?”
가죽 방어구를 손질하며 덱스가 입을 뗐다.
며칠 같이 다녔다고 꽤나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아니면 순전히 궁금해서 일 수도 있고.
“한몫 단단히 벌었으니 놀고 있나 보지.”
“우리 빼고?”
“뭐 하러 우리를 부르겠냐? 혼자 쓰기도 바쁘지.”
“그래도 좀 서운하네.”
“흐음, 지금쯤 어디 좋은 데서 술이라고 빨고 있지 않겠어? 이런 썅, 생각하니까 좀 열 받네? 야, 나가자!”
“앉아! 앉아!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지오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여관에 나타났다.
심하게 두들겨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였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