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0화 (10/127)

10. 산딸기와 웨어울프 (3)

“너, 너는…!”

베론은 아직 소파에서 엉덩이도 떼지 못했다.

자랑스레 서 있던 호위들은 모두 바닥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다.

“아직 주제 파악이 덜 됐군.”

“컥!”

검집으로 따귀를 후려치자 이빨 몇 개가 허공을 날았다.

“테이블 위에 손 올려. 내가 묻고 넌 대답한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주지. 물론 원한다면 한 번에 저렇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턱짓한 곳에는 양팔이 잘린 채 죽은 남자가 쓰러져 있다.

베론은 벌벌 떨면서 테이블에 양손을 활짝 펴 올렸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질문에 대답했다. 최대한 협력해 목숨을 구하겠다는 모양새였다.

“일단 네놈들이 여기를 차지하게 된 경위부터 듣도록 하지.”

베론은 혹시나 손가락이 잘릴세라 입을 움직였다.

추측대로 지금 타렌 상회를 차지한 놈들은 도적.

일반 도적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꽤나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조직원은 말단까지 전부 서른 정도의 규모이고, 상회의 기존 간부들은 이미 모조리 제거된 상태라고 했다.

“전부 죽였나?”

“그, 그렇습니다.”

“흐음, 꽤 많았을 텐데.”

“열댓 명 정도 됐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장기 상행을 나갔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장기 상행이라… 좋은 핑계다.

가족들과 주고받는 서신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지?”

“빈 오크통에 넣어 성 밖 황무지에 버렸습니다.”

“…당연히 뒷배가 있겠군. 누구냐?”

엄연히 영주가 존재하는 소도시다.

오랫동안 장사하던 상회의 터줏대감들이 사라지고 그 시체가 성 밖에 버려졌다.

이 작은 도시에서 과연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다. 반대로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건 영지 경비대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뒷배가 있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그 뒷배가 영주 자신일 가능성도 있다.

“…….”

청산유수처럼 대답하던 베론이 처음으로 주저했다.

그 눈알이 미처 반 바퀴도 구르기 전에.

스걱-!

레오의 검이 무심하게 베론의 손가락을 찍었다.

왼손 약지와 소지가 한 번에 잘려 테이블 위를 뒹굴었다.

“끄아아악!”

“아, 소리 지를 것 같아서 하나 더 잘랐다. 억울하진 않지?”

레오의 상냥한 설명에 베론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미친놈이야….’

베론은 피를 뿜는 왼손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혹시 방금 비명을 들은 누군가가 구하러 오지 않을까?

아니다. 들리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방에서는 언제나 비명이 들려왔으니까. 지금은 그저 비명의 당사자가 바뀐 것뿐이었다.

“뒷배는 누구냐고 물었다.”

“해, 행정관입니다.”

“행정관이라… 재미있네. 더 자세히 말해 봐.”

이 정도 규모의 도시 행정관은 영주 다음가는 실권자다.

그런 행정관을 등에 업는다면 경비대가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이해된다.

핵심은 행정관이 이들의 뒷배를 봐주는 이유다.

더 이상 손가락을 잃기 싫었던 베론은 술술 불었다.

“행정관의 딸을? 네놈들 어지간히 막 나가는구나.”

지병이 있는 행정관의 딸에게 접근하여 중독시켰다.

특정한 약을 쓰면 병세가 일시적으로 호전되어 보이나 약을 쓰지 않으면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진다. 딸을 볼모로 잡힌 행정관은 이들의 횡포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더럽지만 고전적인 방식이었다.

“이제 다른 걸 물어볼까? 노예도 취급하나?”

“…….”

“아직 손가락이 많아서 불편한가 보네.”

“마, 맞습니다! 노예! 노예도 판매합니다!”

베론의 오른쪽 손등에 그려진 또아리 튼 뱀의 문신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기억에 있는 문신이다.

“모락스?”

“……!”

노예 사냥꾼 조직, 모락스.

황권이 약화되며 봉건 영주들 간의 영지전이 횡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터전을 잃은 수많은 평민은 노예 사냥꾼의 쉬운 표적이 됐고, 모락스는 가장 악독한 노예 사냥꾼 조직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직의 정체가 한순간에 까발려지자 베론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이 문신은 모락스의 조직원 중 중간 간부 이상의 인원에게만 허락된 것.

이렇게 단번에 알아보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쓰레기의 잔재였군.”

레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이야, 오늘도 짭짤하겠어.’

타렌 상회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내, 막스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아침 일찍부터 산딸기를 바치겠다고 멍청한 상인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그의 수입도 더욱 늘어날 터. 베론의 수하가 되어 온갖 잡스러운 일을 다 해 봤지만 이번 일처럼 간단하고 짭짤한 일은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수?”

“상회장을 만나고 싶소만….”

그래서 커다란 웨어울프가 나타나 상회장을 만나고 싶다고 할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느 도시든 수인은 있었고, 그의 임무는 산딸기를 매매하려는 상인과 그 외의 사람을 나누어 응대하는 것이었으니까.

“상회장님은 지금 손님 응대 중이오. 나중에 다시 오슈.”

“중요한 일이오. 여기서 기다릴 테니 말을 전해 주지 않겠소?”

“거참, 아침부터 귀찮게 하시네. 뭣 때문인데 그러슈? 당신 산딸기 때문에 온 건 아니지?”

“산딸기와는 관계없소. 개인적인 일이오.”

“일 없으니 돌아가시라고.”

막스는 짜증스럽게 휘휘 손을 저었다.

그는 웨어울프를 상대로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갔다.

아무리 수인이라 해도 도시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이 도시의 경비대는 상회의 편이다. 그러니 거칠 것이 없었다.

“다시 한번 부탁하오. 상회장에게 말을 좀 전해 주시오.”

“씨팔, 꺼지라고! 귓구멍이 막혔어? 짐승 새끼라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그런 막스가 크게 착각한 것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이 웨어울프가 지금 도시 경비대 같은 것에 물러날 정도의 무른 이유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

둘째는 설사 경비대가 몰려와도 능히 때려눕히고 도시를 빠져나갈 정도의 완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모욕적인 말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구려.”

“그러면 조용히 꺼지세요. 갖다 팔아도 돈도 안 될 것 같은 짐승 새끼가 아침부터 재수없게……. 카아악, 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웨어울프, 무무카는 꽤 강한 역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야, 뭔데…! 컥!”

무무카의 억센 손아귀가 사내의 목을 잡아 들었다.

흉포한 기세가 한순간에 뿜어져 사내의 몸을 잠식했다.

“네놈들. 수인을, 내 동족을 팔았나?”

“커걱….”

도망칠 수 없는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의 그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

숨도 쉬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사내가 당연히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세로로 찢어진 섬뜩한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어가는 사내의 얼굴을 응시했다.

사내의 반응에서 마침내 무무카는 확신했다.

“맞군.”

콰직-!

사내의 목이 그대로 부러졌다.

무무카는 축 늘어진 사내를 들고서 반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죽은 사내를 옆으로 던져 버리고 두꺼운 나무로 된 상회의 입구를 닫고 안에서 걸쇠를 걸었다.

“침입자다!”

“늑대 새끼가 여길 왜?”

웨어울프와 시체를 발견한 이들이 요란하게 소리치며 모여들었다.

어느새 준비했는지 태반이 몽둥이나 쇠붙이를 들고 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무무카의 양 주먹에서 너클이 번쩍였다.

검투 노예였던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

검과 창이 난무하는 검투장에서 그는 말 그대로 주먹 하나로 살아남았다.

“썩은 내가 나는구나.”

악취가 났다. 방금 목을 부러뜨린 사내의 몸에도 희미하게 같은 냄새가 배어 있다.

피와 배설물의 냄새였다.

“이 짐승 새끼가!”

퍽!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무무카의 주먹이 남자의 머리를 으깼다.

웨어울프의 힘을 더한 너클의 파괴력을 견디기에 인간의 두개골은 너무도 연약했다.

관자놀이가 움푹 함몰된 남자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퍼벅, 퍽-!

턱을 맞은 남자는 얼굴의 절반이 사라지며 목뼈가 함께 부러졌다. 가슴을 강타당한 이는 으스러진 뼈에 내장까지 곤죽이 됐다.

무무카의 주먹은 공평했다.

주먹 한 대에 한 명씩 떨어져 나갔다.

검투장의 예리한 날붙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무무카다. 도적 놈들의 눈 먼 칼 따위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으아아아…! 사, 살려 줘!”

이윽고 남은 건 한 명.

사내는 붉은 피와 뇌수 조각이 어지러이 흩어진 곳에 철퍼덕 주저앉아 발버둥 쳤다.

“상회장에게 안내해라.”

“아, 알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쇼!”

다리가 풀려 버린 사내는 엉금엉금 기다가 겨우 일어나며 복도 안쪽 방으로 향했다.

바닥과 벽에 붉은 손자국이 점점이 찍혔다.

“끄아아아…!”

그들이 향한 복도 끝 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무무카는 그곳이 상회장이 있는 장소라 직감했다.

콰직-!

반쯤 문을 부수며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낯익은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음?”

“…무무카?”

그리고 무무카를 본 그 소년은 마치 오랜 친구를 본 것처럼 미소 지었다.

* * *

콰직-!

밖이 한순간 소란스럽더니 무무카가 나타났다.

“무무카?”

레오는 절로 반가운 마음에 무무카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이 선객이었나.”

“그래, 이 자식들에게 받을 게 있어서 말이지.”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상회장에게 중요한 볼일이 있다.”

평온한 레오에 비해 무무카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였다.

방 안의 광경은 처참했다.

시체 세 구가 바닥을 굴렀고, 배가 불룩한 남자는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부여잡고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다.

“보아하니 그런 것 같네.”

레오는 무무카의 양 주먹을 바라봤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너클을 보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봐도 훤했다.

“그자가 상회장인가? ”

“그래, 이 자식들 상회를 집어삼키고 상인을 등쳐먹는 도적 새끼들이었어. 그리고 방금 재미있는 걸 알아냈지. 노예 사냥꾼 놈들하고도 연관된 것 같단 말이야.”

노예라는 말에 무무카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무무카는 벌벌 떨고 있는 베론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부욱-!

상의를 잡아 뜯자 목과 쇄골 사이에 커다란 점이 드러났다.

머리가 까지고 얼굴에 주름이 지고 배가 불룩 튀어나왔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그놈이었다.

“나를 기억하나.”

“누, 누구신지…?”

“12년 전, 대륙 서쪽 숲, 웨어울프 마을.”

웨어울프까지 나타나자 베론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찢어 죽일 듯한 살기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기억해 내는 게 좋을 거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고 싶지 않으면.”

베론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12년 전이라면, 한창 사냥개로 일했을 때다. 그중에서 가장 돈이 되는 어린 수인 사냥에 열을 올렸다.

서쪽 대륙 숲의 웨어울프 마을이라면… 아!

“기억났나 보군. 그래, 네놈에게 물과 음식을 가져다준 것이 나다. 그 때문에 내 가족이, 동족이 몰살당했지.”

무무카에게 그것은 곱씹을수록 괴로운 기억이다.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그런다고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부모와 형제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복수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대상을 찾았다.

당장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말해라. 다른 수인들은 어디에 있나. 내 여동생을 어디에 팔았나.”

갈무리되지 않은 살기에 베론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자그마치 12년 전의 일이다. 자신은 수인을 사냥하는 사냥개였고 납품을 담당하는 조직은 따로 있었다.

“그, 그건…!”

“말해라. 기억해 내라. 이 자리에서 사지가 찢기고 싶지 않으면.”

노예 사냥꾼 조직 모락스.

십 년 전 당시에는 비해 지금은 그 세가 많이 줄었다.

하나였던 조직은 몇 개로 분리된 상태다. 여전히 노예 매매를 하고 있지만 이미 그때와 같은 조직이라 말하기 힘들었다.

“이쪽 다리였지. 내게 다쳤다며 도와 달라고 했을 때 말이야.”

베론을 들어 올린 반대쪽 손이 그의 왼쪽 다리를 감싸 쥐었다.

“끄아아아악!”

꾸드드득-!

무무카의 손아귀에 잡힌 베론의 다리가 서서히 찌부러졌다.

터진 토마토처럼 손아귀 사이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윽고 드러난 것은 무릎을 포함해 정강이 절반이 종잇장처럼 너덜거려 더 이상 다리의 기능을 못 하게 된 육편이었다.

“사, 살려….”

“그러니 말하라. 내 여동생은 어디에 있나.”

베론의 눈에 비친 무무카의 얼굴은 마치 악귀의 형상과 같았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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