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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2화 (12/127)

12. 입학시험 (1)

“오늘은 안 진다.”

지오르의 집에서 지낸 지 나흘째.

덱스는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이를 부득부득 갈며 뒷마당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 이어 온 레오와 대련을 위해서다.

‘마법사는 수를 읽히는 순간 끝이야.’

수없이 대련하며 얻은 교훈이다.

발밑을 파고, 빛으로 눈을 가리는 꼼수도 의도를 먼저 읽히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더 다양한 변칙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오늘 한 가지 변칙을 추가할 수 있게 됐다. 지금껏 익힌 마법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응용해 보려 한 끝에 개발한 성과였다.

“어이, 마법사. 아침 식사 부족하지 않아? 흙이라도 좀 먹을까?”

“너나 먹어, 새꺄.”

미리 도착해 있던 레오의 도발.

덱스는 독기 어린 대답을 돌려주었다.

최근 열 번의 대련 성적은 10패.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방 먹여 줄 생각이다.

“아이고 무서워라.”

지오르의 집은 꽤 컸다. 뒷마당이라 해도 두 사람이 대련할 정도의 넓이였으니 사실 꽤 크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물론 남의 집 뒷마당인 만큼 서로 전력을 다하기는 힘들다. 레오는 목검을 들었고 덱스는 공격 마법의 위력을 1할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오늘도 구경하러 왔네. 누구 응원해 줄 거야?”

레오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구경 준비를 마친 꼬마에게 물었다.

땡글땡글한 얼굴에 넓은 이마. 지오르의 외동딸 샤를롯이다.

처음에는 엄청 낯을 가리더니 대련에 흥미를 보이면서 이제는 아침마다 꼬박꼬박 구경하러 나온다.

“이긴 사람 응원할 거야.”

“쳇, 피는 못 속이는구먼. 역시 상인의 딸인가?”

“지금 그거 우리 아빠 욕한 거야?”

“아냐, 칭찬이야.”

“흥, 그러면 괜찮아.”

화를 낼 듯 찡그렸다가 금세 풀어지는 얼굴.

열 살이라고 했던가? 똑소리 나는 꼬마다.

“이제 시작할 거야? 재밌는 거 보여 줄 거지?”

“얀마, 너 재밌으라고 하는 건 줄 알아? 안 되겠다, 앞으로 돈 내고 구경해.”

“빨리 시작하기나 해. 기다렸단 말이야.”

샤를롯은 레오의 말을 무시하며 고개를 숙여 발아래를 살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칼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윽고 작은 조약돌 하나를 줍더니 서로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두 사람의 사이로 던졌다.

돌이 땅에 닿는 순간이 대련의 시작이었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조약돌.

화아악-!

동시에 세 개의 화염 화살이 거의 동시라 할 수 있는 시간 차로 쏘아졌다.

‘미친놈.’

당연히 칭찬이 담긴 욕설이다.

하나는 정면으로, 나머지 둘은 좌우에서 휘어져 들어오는 화염을 보며, 레오는 헛웃음이 나려는 것을 꾹 참았다.

저게 정말 마나 감응을 한 지 한 달도 안 된 녀석이라고? 날이 갈수록 루이스가 느꼈던 자괴감이 뭔지 알 것 같다.

파슷-!

레오는 앞으로 뛰어나가며 정면의 화염을 베었다. 덱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기분이었지만 할 수 없다.

순간 양옆으로 뜨거운 열기가 스쳐 지나간다.

동시에 덱스로부터 또 하나의 마력이 발사되었다.

목표 지점은 막 착지하려는 발밑.

그간 오러안으로 반복해서 덱스의 마법을 관찰했다. 이제는 마력 흐름만 봐도 무슨 마법인지 알 수 있다.

‘그리스네.’

거리가 좁혀지는 데도 당황하지 않고 다음 수를 꺼낸 걸 보면, 역시 미리 생각해 둔 수였던 모양. 하지만 미리 안다면 이쪽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무게 중심을 낮추며 발밑 전체로 착지하자 레오의 몸이 얼음판 위를 달리듯 그대로 미끄러져 나갔다.

지금!

그리스의 효과 범위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한번 앞으로 도약.

급격히 가까워진 덱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채는 거야!”

“아아, 매번 같은 패턴 지겹고요. 사장님! 다른 메뉴는 없나요!”

거리는 이미 지척. 이제부터 누가 뭐래도 검사의 영역이다.

레오는 아침부터 절친한 친구에게 뒷마당의 흙을 먹일 생각에 흐뭇했다.

목검이 호를 그리며 덱스의 어깨로 향한다.

팅-!

어깨 위로 올라온 지팡이에 검이 튕긴다.

지팡이에 둘린 무형의 막이 반탄력을 발휘한 것.

“실드?”

새로운 마법이다.

이번만큼은 레오도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마법이란 게 이렇게 며칠에 하나 뚝딱 익힐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씨익.

검을 튕겨 낸 덱스가 빙글 몸을 회전하며 파고든다.

미처 팔을 회수하지 못한 레오의 시선이 덱스의 오른팔로 향했다.

그 주먹이 화염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이 미친놈이…!”

상상도 못 한 대응.

레오의 사고가 아주 잠시 멈췄다

“먹어라, 불주먹!”

파앙-!

레오의 복부에서 불꽃이 터졌다.

전혀 대응하지 못한 깔끔한 반격.

옷이 그슬려 매캐한 연기가 일었지만 위력을 줄였기에 딱 그 정도 수준에 그쳤다.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난 레오가 세상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뭐냐?”

“뭐긴 뭐야, 불주먹 처음 보냐? 파이어 피스트라고도 하지.”

의기양양하게 웃는 덱스.

레오는 기가 찼다. 아니 대련 한번 이겨 보겠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을 쓴다고? 애당초 이런 마법도 있던가?

“당연히 처음 보지. 세상에 어떤 마법사가 이딴 마법을 써? 뒈질 일 있어?”

“이겼으면 장땡이지. 알 게 뭐야.”

“야, 한 판 더 붙어!”

“싫은데, 에베베베베-!”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불주먹인지, 파이어 뭐시기인지, 마법사가 실전에서 쓸만한 기술이 아니다. 애초에 불을 두르고 주먹질을 할 거면 그게 전사지 마법사냐고.

“호와아아아!”

하지만 대련의 유일한 참관자 샤를롯에게는 꽤나 인상 깊은 장면이었나 보다.

지금껏 이어진 레오의 승리에는 항상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더니 이번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도도도 달려오더니 질문 공세를 퍼붓는 샤를롯.

“덱스! 방금 그거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주먹은 안 뜨거워?”

“하하하하! 하나도 안 뜨거워. 주먹을 실드로 감쌌거든. 어때? 죽이지?”

“와아아아-! 멋져, 죽인다!”

“어휴, 애한테 좋은 말 가르친다.”

레오는 피식 웃으며 그늘진 곳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샤를롯도 마법을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껏 같은 마법사라고 덱스를 응원해 온 모양이다.

“불주먹 멋있어. 저기 덱스, 나도 가르쳐 줘!”

“좋아. 나를 스승님으로 모시면 가르쳐 주지!”

“덱스 스승님! 나 불주먹 가르쳐 줘!”

“하하하핫!”

어라? 덱스 저놈 은근히 여자가 꼬이는 거 아냐?

루이스도 그렇고, 샤를롯도….

“후후후, 지금 마음껏 즐겨 둬라.”

역변하는 친구의 미래를 알기에.

레오는 조용히 애도했다.

* * *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한 조건은 아주 간단하다.

오직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는 것.

당연히 신분이나 종족은 무관했으며 유일한 입학 제한 조건은 스무 살 이하라는 나이가 유일했다. 입학생의 평균 연령이 열일곱 전후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나이 제한도 그리 빡빡한 조건은 아니다.

일단 입학하기만 하면 무료 기숙사가 제공되고, 상위 성적으로 졸업하면 이름난 가문의 기사나 마법사로 스카우트 되는 등 장래도 보장된다.

그만큼 졸업은 쉽지 않다.

매년 치르는 승급 시험에 합격해야 상위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고, 연속 3회 유급당하면 퇴학이다. 입학만 한다고 해서 졸업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었다.

“꼬맹이, 너 꽤 많이 안다?”

“샤를롯이야. 한 번만 더 꼬맹이라고 부르면 집에서 쫓아낸다?”

“나는 네 아빠 손님인데? 아빠 손님한테는 정중히 대해야지.”

“으으, 치사해….”

“어른은 원래 치사한 거야. 됐고, 입학시험 이야기나 더 해 봐.”

아카데미에 대해 꽤 아는 게 많은 꼬마였다.

그전까지 입학시험에 대해 레오가 알고 있던 정보는 오직 실기만으로 진행된다는 것 하나뿐.

“레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야? 흐흥,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하네.”

“너 나한테는 은근히 태도가 다른 거 아니냐? 덱스한테는 안 그러면서.”

덱스한테는 무지하게 살갑게 굴면서.

그 확연한 온도 차에 레오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물론 질투 따위는 아니다. 아무렴 사춘기도 안 온 꼬마에게 질투 따위를 하겠나.

“스승님은 존경할 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나는 그 스승을 이겼는데?”

“몰라, 마법사 말고는 관심 없어.”

“쳇, 귀염성 없는 녀석 같으니.”

“누구야! 누가 내 제자를 괴롭히냐?”

“스승님!”

샤를롯이 도도도 달려가더니 덱스의 다리에 착 달라붙는다.

아 짜증 나네, 정말.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지?

“흠흠, 스승님이 오셨으니 설명해 줄게. 입학시험은 크게 개인 평가와 대련 평가, 이 두 가지를 치르게 될 거야. 각 평가의 합산으로 종합 점수를 매기고 절대 평가로 합격이 가려져. 그래서 매년 입학생의 숫자는 들쑥날쑥해.”

“대련이야 상대를 조져 버리면 그만이고. 개인 평가는 어떤 식으로 해?”

“시험관의 앞에서 실력을 보이는 거야. 마법사 학부는 기본적으로 표적을 두고 원거리에서 공격 마법을 선보인다고 했어. 전사 학부는 뭐 내 알 바 아니고.”

“이 꼬맹이가….”

“흥, 마법사 말고는 관심 없다고 했지. 그보다 스승님, 그 지팡이 나 한번 써 봐도 돼?”

설명은 끝났다는 듯 샤를롯은 순식간에 화제를 바꾼다. 덱스의 지팡이를 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내 지팡이?”

“응, 스승님의 지팡이 굉장해 보이거든. 한번 써 보고 싶어.”

굉장하긴, 제일 싸구려 마석이 박힌 건데.

덱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지팡이를 내줬고, 그걸 받아 든 샤를롯은 팔짝팔짝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지금 할 줄 아는 유일한 마법인 빛의 구를 만들어 보려는 것.

‘그러고 보면 저 꼬맹이도 천재 아냐?’

아홉 살에 마나 감응에 성공하고 열 살에 하나의 서클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했지.

루이스가 알아서는 안 될 천재가 여기 한 명 더 있었네.

“라이트!”

동전만 한 빛이 머리 위에서 몇 번 점멸하더니 곧 사라졌다.

샤를롯은 “잉?” 소리를 내며 짧은 팔을 파닥거렸다.

“라이트!”

다시 한번 빛이 점멸했다. 방금 전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 광경에 레오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너 지금 뭐 했냐? 아이고 배야.”

“히잉… 왜 이러지?”

샤를롯은 울상이 됐다.

이럴 리가 없다. 이건 빈손으로 마법을 쓸 때와 큰 차이가 없는 정도다.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지팡이를 쓰면 이것보다 더 큰 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데….

“샤를롯, 그거 엄청 싸구려라서 그럴 거야.”

“싸구려? 스승님의 지팡이가 싸구려야?”

“맞아,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해. 첫 번째 지팡이거든.”

덱스가 다가가 샤를롯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물건은 대부분 제값을 하기 마련이다. 저것도 겉보기에만 그럴싸해 보이지 가장 싸구려 마석을 박은 지팡이다. 그래도 3실버나 줬는데….

“그렇구나….”

샤를롯의 입이 헤 벌어졌다.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얼굴이다.

그러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있으나 마나 한 지팡이로 그 정도 굉장한 마법을 보였다니! 그러면 스승님은 더 대단한 거잖아!

지팡이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마력 제어와 술식 형성의 보조다. 술자의 실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마석을 끼워 넣은 지팡이도 제 기능을 못 한다.

“스승님, 이거 써 봐!”

눈을 반짝이던 샤를롯이 잽싸게 자기 지팡이를 들고 나와 덱스에게 건넸다.

길이가 세 뼘이나 될까 싶은 앙증맞은 길이에 핑크색 마석이 꽃처럼 박혀 있는 흰색 지팡이다.

지팡이를 받아 든 덱스.

딱 어린 조카의 장난감을 빼앗은 삼촌 같다. 사실 그것도 많이 순화한 표현이다.

저 지팡이에 어울릴 만한, 레이스 달린 치마 같은 것만 입히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지 않을까?

“으음….”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오가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친구의 레이스 치마 모습을 잠깐 상상해 버린 탓이다.

“왜? 뭔데?”

“눈 마주치지 마, 변태 자식아.”

“이이익…!”

덱스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진다.

역시 놀리는 맛은 이 녀석이 최고야.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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