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입학시험 (2)
핑크핑크한 앙증맞은 지팡이.
샤를롯이 주저하는 덱스를 다시 한번 채근한다.
“생일 선물로 받은 거야. 예쁘지? 빨리 한번 써 봐.”
얕은 한숨을 내쉰 덱스는 장난감 같은 지팡이를 받아 들고 마력을 활성화했다.
솔직히 말해 들고 있기만 해도 창피하다. 그래도 샤를롯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 거절하기 힘들다.
그래, 이건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함이다.
‘어? 이거 뭐야?’
덱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력 제어가 물 흐르듯 이루어진다. 의도하는 대로 술식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마치 상상만으로 술식이 짜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마력의 그릇이 아직 부족한 덱스는 마력 누수를 최소화하는 술식을 선호한다.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지팡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비서가 생긴 게 이런 느낌일까?
집중력에 여유가 생기자 이전보다 더 많은 마력을 컨트롤해도 될 것 같았다.
“파이어 애로우.”
알고 있는 유일한 공격 마법.
수백 번은 사용한 것 같다.
덱스의 주위에 거의 동시에 다섯 개의 화염 화살이 나타난다.
위력을 줄이지 않은 본래의 크기라서 조금 떨어진 레오와 샤를롯도 그 열기를 느낄 정도였다.
“와아-!”
샤를롯이 탄성을 질렀다.
걸음마를 뗀 마법사라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마법.
하지만 누구나 동시에 다섯 개의 화살을 꺼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덱스도 고양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발목에 달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떼어 버린 듯한 기분이다.
다섯 개의 불꽃에 모두 다른 이동 좌표를 설정하고 허공에 뿌렸다.
쉬이이이익-!
불꽃들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용오름을 연상케 했다.
“스승님! 어땠어?”
“샤를롯! 이 지팡이 쩔어!”
“쩔어?”
“너무 좋다고!”
“그치? 그치? 쩔지?”
스승의 상기된 얼굴에 샤를롯도 만족한 듯 가슴을 쭉 내밀었다.
저 지팡이도 초급 마법사용이다. 그걸로 저만큼 보여 주다니 역시 스승님은 대단해!
“그거 빌려줄게, 시험 볼 때 가져가!”
“진짜로?”
“야, 너 진짜 그거 들고 가게? 시험장에서 알은척할 생각 마라.”
“으음….”
덱스는 다시 한번 지팡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꽃잎을 형상화한 핑크색 마석이 재차 눈에 박힌다.
“…….”
지팡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안 써 봤으면 모를까. 한번 써 본 이상 쉽게 아니라고 말하기 힘들다.
남자의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마법사의 욕망에 따를 것인가….
이제껏 살면서 가장 어려운 선택의 순간.
“너 설마, 지금 고민하는 거냐?”
“…제자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잖아.”
“어휴….”
결국 덱스는 욕망에 졌다.
* * *
수도 메프람의 성벽은 외벽과 내벽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성 외벽 바깥에는 주로 농민들이 거주했고, 외구역이라 불리는 외벽 안쪽과 내벽 바깥 사이에는 상업 중심의 다양한 기반 시설과 주거 지역이 공존한다.
내벽 안쪽은 황제의 성을 포함해 황족과 귀족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었으며 내구역이라 불렸다.
황립 아카데미는 이 내구역에 자리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전부 시험 보러 온 사람들이야?”
덱스는 내구역으로 이어지는 성문 앞에 빽빽한 사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메프람의 내구역은 평소 평민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는 날은 자유롭게 개방되었다.
“아마 구경 온 사람들이 더 많을 거야.”
샤를롯도 그중 하나였다. 오늘은 레오와 덱스를 배웅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내구역을 구경하러 온 참이다.
인파를 따라 내구역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하늘을 향해 삐죽 솟은 갖가지 모양의 건물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장인의 혼이 담긴 듯한 건축물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돈을 처발랐구먼.”
레오는 단순명료하게 감상을 표현했다.
입구의 높이만 10미터가 훌쩍 넘어 보이는 건축물은 거인을 위한 것일까. 도대체가 실용성이란 건 어디다 갖다 버린 건지.
“저쪽이 아카데미야.”
이윽고 샤를롯이 가리킨 곳이 이들의 최종 목적지 황립 아카데미였다.
활짝 열린 정문 너머로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호수가 보이고, 그 너머에 건물이 몇 동이나 들어서 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상상을 뛰어넘은 아카데미의 전경에 레오도 눈을 비볐다.
아카데미라고 하길래 기껏해야 커다란 건물 한두 동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부지에 딸린 호수만 해도 고향 마을이 몽땅 들어갈 것만큼 거대하다.
“자, 배웅 온 사람들은 여기까지야. 둘 다 꼭 합격해.”
“그래. 고맙다, 꼬맹아.”
“좋은 소식 기대해.”
샤를롯은 짧은 손을 흔들고는 딸려 온 시종과 함께 사라졌다.
아카데미 정문 앞에는 이들처럼 응시생을 배웅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사람 많은 거 딱 질색이다. 빨리 들어가자.”
“어… 그런데 저기 좀 봐.”
“뭘?”
“저기 문 옆에 사람들 비어 있는 곳.”
아카데미 정문은 마차 서너 대가 동시에 지날 정도로 넓다.
어디에도 사람이 북적였지만 딱 한 곳 부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 덱스가 가리킨 그곳에는 낯익은 웨어울프가 눈을 빛내며 서 있었다.
수인 자체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저 정도의 덩치를 가진 웨어울프는 확실히 희귀하다. 거기에 평범하지 않은 기세까지 뿜고 있으니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무무카잖아?”
“오, 레오! 드디어 찾았군!”
레오와 눈이 맞은 무무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걸음에 맞춰 주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다시 봐서 반갑다. 여긴 어쩐 일이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덕분에 여동생을 찾았다.”
“그거 정말 잘됐네!”
무무카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그날로 밤낮을 달려 메르윈 백작가를 찾아갔다.
오히려 무무카가 인간이었다면 입구에서 내쳐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작 성에서 십 년 넘게 지낸 수인 시종을 모르는 이는 없었고, 무무카의 사정은 경비대로부터 시종장까지 무탈히 전해졌다.
그리고 곧 산딸기 파이를 만들었다는 수인 시종을 만날 수 있었다.
틀림없는 여동생 미리야였다.
“내 여동생은 메르윈 백작 영애의 놀이 친구로 팔렸다고 했다. 천운이었지. 그 덕분에 험한 꼴을 안 보고 무탈하게 지낸 모양이다.”
다시금 감정이 북받치는지 무무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노예로 팔린 수인들은 대부분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러니 그저 몸 성히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
“여동생을 찾지 못했다면 나는 분명 어디선가 무의미하게 죽어 나자빠졌겠지. 레오, 네게 큰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은혜를 갚고 싶다.”
은혜? 레오의 눈이 반짝였다.
무무카의 용력이 평범한 수인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미래의 무무카가 꼭 야수 용병대를 이끄는 용병 대장이어야만 할까?
“무무카, 너 몇 살이야?”
“열여덟이다.”
“으잉? 진짜로?”
수인의 나이를 가늠하는 게 쉽지 않다지만 같은 10대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 얼굴에, 저 흉악한 몸에 10대라고?
“왜, 무슨 문제가 있나?”
“아냐, 보기보다 어려 보여서.”
“후후후… 가끔 듣는다. 보는 눈이 있군.”
정말?
믿기지 않는다며 입을 벌리는 덱스를 무시했다.
애써 표정 관리에 성공한 레오가 물었다.
“음, 너한테 원하는 게 있긴 한데 들어 줄 수 있겠냐.”
“내 신념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비장한 얼굴의 무무카.
그와 눈을 맞춘 레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 * *
[배움에 귀천은 없다.]
황립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문구다.
제국은 황족, 귀족, 평민으로 나뉜 신분제 사회지만 황립 아카데미는 생도 간의 수평적 관계를 주창했다.
모든 이에게 기회를 열어 재능 있는 자를 발굴하자는 취지였으며, 오직 신분만 믿고 발전을 게을리하는 이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덕분에 나 같은 놈도 시험을 치를 수 있으니 좋긴 하다만.’
레오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응시생의 옷차림과 몸짓만 보아도 누가 귀족이고 누가 평민인지 대략 구분해 낼 수 있다. 특히 저렇게 턱을 높게 치켜들고 깔아 보듯 주변을 둘러보는 녀석들은 백이면 백 귀족이다.
세 사람은 이윽고 갈림길에 멈춰 섰다. 전사 학부 시험장은 왼쪽, 마법 학부의 시험장은 오른쪽 방향이다.
아카데미의 학부는 크게 전사 학부와 마법 학부로 구분됐다.
전사 학부의 커리큘럼은 검술과 무투술 등을 포함한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각 영지에서는 매년 우수한 졸업생을 기사로 확보하려고 눈독 들이고 있었으며, 이를 노리고 출세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지원하는 평민도 많았다.
마법 학부는 크게 마법 그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적인 영역과 활용의 영역으로 나뉘었다. 특히 활용 쪽은 범위가 꽤 넓어서 연금술이나 마도구 제작의 영역도 모두 포괄했다.
그리고 입학시험 또한 크게 전사 학부와 마법 학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후우….”
“긴장했어? 자신 없냐?”
레오는 크게 심호흡하는 덱스의 어깨를 툭 쳤다.
여차저차해서 여기까지 끌고 오긴 했다만 많이 긴장되겠지.
“하, 떨어질 자신이 없다. 이 천재를 누가 떨어트려?”
“재수없네, 진짜.”
괜한 걱정이었군.
하긴 함께 용병질을 하며 죽을 고비를 넘길 때도 항상 농담을 던지던 놈이다. 고작 입학시험 정도로 긴장할 녀석이 아니다.
게다가 덱스는 드디어 본인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이게 다 샤를롯 때문이다.
“크크큭. 너나 잘해라. 무무카도 잘하고!”
“그래, 행운이 있기를.”
덱스와 헤어진 레오와 무무카는 왼쪽 갈림길을 따라 이동했다.
기숙사 건물을 지나니 일명 전사동이라 불리는 벨라토르관이 나타났다. 전사 학부의 시험이 진행되는 곳이다.
“나는 208번. 무무카 너는 209번이네.”
“정말 이걸로 되겠나?”
“뭐가?”
“내가 아카데미에 함께 입학하는 것이 어째서 네게 은혜를 갚는 일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으음….”
레오는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미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 떼가 나타나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데 그것들과 맞서서 함께 싸울 강한 동료가 필요하다고?
아무리 은인이라지만 쉽게 믿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체질에 안 맞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미리 말해 두지만 꽤 오래 걸릴지도 몰라. 10년이 될 수도 있고, 20년이 될 수도 있어. 그저 곁을 지켜 줄 든든한 동료가 있다면 좋겠다.”
“동료가 필요한 건가.”
“그래,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 일단 아까 그 멍청한 놈은 미우나 고우나 끝까지 같이 갈 생각이거든. 거기에 너도 함께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물론 강요는 안 해.”
“그렇군.”
“대답이 된 건가?”
“충분하다.”
무무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팔이라도 잘라 내 주었으리라.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되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신념과 반하는 길을 가려고 한다면 고민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레오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벨라토르관에 막 들어서려는 찰나.
“하, 어디서 역한 냄새가 나나 했더니… 짐승 새끼가 섞여 있었군.”
돌아보자 한 소년이 이쪽을 보고 있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걸친 빼빼한 소년은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듯 무무카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더니 코앞에서 손을 휘젓는다.
‘뭐지? 새로운 자살 방법인가?’
그 일련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 레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