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5화 (15/127)

15. 입학시험 (4)

“오러 소드잖아!”

“하, 정말이지 미치겠군.”

생도들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검을 물들인 짙은 기운을 보면 열두 살에 오러를 발현했다는 소문도 거짓이 아니리라. 지금 클라인이 보이는 오러 소드는 평균적인 영지의 중급 기사의 수준을 상회했다.

‘엑스퍼트, 그것도 최소한 중급 수준인가.’

레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검에 맺힌 오러의 밀도만 보아도 추측할 수 있다.

그래, 그에게 천재라는 수식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스윽-!

사선으로 한 번, 횡으로 한 번.

기본에 충실한 검로를 따라 클라인의 검이 번득였다.

어떠한 변칙과 기교도 없는 정직한 검. 그것에서 꿋꿋이 자신이 추구하는 검의 길을 걸어온 클라인이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투둑.

어깨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수평하게 허리가 베인 나무 인형 조각이 힘없이 떨어졌다.

“훌륭하군.”

제국 검술 5식(式).

마치 교본과 같은 사선 베기와 횡베기 연격.

1조의 시험 감독관을 맡은 자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만큼 완벽하고 깔끔한 검로였다.

이후 시험이 이어졌다.

무기를 사용하는 응시생 대부분은 나무 인형의 가장 얇은 부위인 목을 노렸다.

하지만 스무 명 이상 진행되는 동안 목을 깔끔히 베어 낸 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러 소드를 보인 이는 클라인이 유일했다.

무리하게 몸통을 노리다가 깊게 박힌 검을 회수하려 낑낑거리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래, 이게 평균적인 느낌이지.’

자크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채점표를 작성해 갔다.

채점표를 보면 전체적인 수준은 작년과 비슷한데 체감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클라인을 본 탓에 기대치가 높아져 버린 것 같다.

“202번, 몬젤 그리드 캐링턴.”

한동안 지루하게 앉아 있던 레오가 낯익은 이름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역시나 아까 만났던 그 건방진 꼬마였다.

“자네, 어디 불편한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몬젤은 아직도 축축한 바지 때문에 어기적거리며 시험장에 들어섰다. 그래도 어디에서 세수는 하고 왔는지 눈물 콧물 자국은 지워져 있다.

“응시생, 그 검을 사용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알겠다.”

자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몬젤의 검이 묘하게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곡도의 의미가 아니다. 20년간 검을 잡은 그의 상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저건 못 써먹는 검이었다.

“저 검은 뭐야? 휜 것 같은데?”

“처음부터 저런 검을 가지고 시험을 보러 왔을 리는 없고. 모처럼 수도에 왔다가 도박이라도 했나 보지.”

“그래도 최소한 쓸 수 있는 걸 빌려 오든지 말이야.”

그간 조용히 관전하던 응시생들도 다시 한번 웅성거렸다. 당연히 클라인 때와는 다른 의미다

‘젠장…!’

몬젤은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새로운 검을 구할 시간이 없었다. 간신히 세수하고 흐트러진 복장을 정돈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이번 시험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도 고를 수 없었다.

‘이번에 합격 못 하면 영지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귀족이라며 한껏 건방을 떨었지만 사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가문의 후계자는 큰형님으로 진작 결정된 상태고, 부유하지 않은 작은 영지에서 삼남이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번 아카데미 시험은 그간 망나니로 살아온 몬젤이 아버지에게 받은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하앗!”

얇고 높은 기합이 연무장에 울렸다.

나무 인형을 목을 노린 몬젤의 검은 어깨 부위에 맞고 튕겼다. 당초 실력도 실력이지만 휘어진 검으로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타핫! 핫!”

몬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몇 번이고 몽둥이질을 반복했다.

그 꼬락서니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던 자크는 ‘그만하면 됐다.’라며 점잖게 제지했고, 몬젤은 벌건 얼굴로 도망치듯 시험장을 떠났다.

“아이고, 몽둥이질이 영 소질이 없어 보이네. 다른 몽둥이도 보나 마나 부실하겠어.”

푸하하핫-!

술집에서나 들려올 법한 저급한 농담에 응시생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체면을 중시하는 귀족의 화법과 거리가 먼 느물느물하고 원색적인 표현.

그럼에도 다들 폭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크흠, 흠! 다음.”

웃음을 겨우 눌러 참은 자크가 시험을 속행했다.

그의 시선이 응시생 좌석을 향했다.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어 앉은 능글능글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응시생이라기보다 마치 구경꾼 같다.

저렇게 여유를 보이는 이는 둘 중 하나였다. 시험 자체에 관심이 없나 아니면 실력에 충분한 자신이 있거나.

어느 쪽일까.

자크의 호기심이 동했다.

“다음 208번, 레오.”

아까 그 걸쭉한 농담을 던진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이 없는 이름뿐인 짧은 호명은 평민이라는 뜻. 하지만 평민이 전사 학부에 지원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

마법 학부는 귀족 응시생 비율이 훨씬 높지만 전사 학부는 그 반대다. 전사 학부의 평민 응시생 비율이 과반수를 넘은 것은 십 년도 더 된 일이고 그 추세는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응시 비율이 그대로 합격 비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합격생 중에는 귀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화려한 검을 쓰는군. 평민 같은데… 장사꾼의 집 안인가?”

“그런 것 치고 옷차림은 좀….”

응시생들의 시선이 레오의 검집으로 향했다.

흰 바탕에 보석이 여럿 박힌 화려한 검집은 한눈에 봐도 꽤 비싸 보인다. 그럼에도 옷차림은 여느 평민 수준이니 꽤 궁금증을 자아냈다.

‘잘 보라고.’

레오는 감독관인 자크에게 짧게 시선을 주고 나무 인형 앞에 섰다.

검집만큼이나 눈부시게 흰 검신에 푸른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오러 소드!”

클라인의 것보다 완벽하게 갈무리되지 않은 거친 기운이었지만 시험장의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직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건가.’

자크는 놀란 와중 레오의 오러 소드를 분석했다.

전체적인 오러의 양과 질은 나쁘지 않지만 밀도가 군데군데 불균일한 곳이 눈에 띈다. 굳이 추측하자면 엑스퍼트 초중급.

‘하지만 겨우 열다섯이다. 클라인 같은 괴물이 또 있었군.’

마나를 느끼고 자신의 오러를 형성하는 것이 걸음마라면, 그 오러를 신체와 도구에 자유로이 옮겨 강화하는 것이 그다음 단계다. 웬만큼 재능을 가졌다 평가된 이들도 여기까지 대략 10년 정도 소요된다.

그러니 열다섯의 소년이 도구에 오러를 발현시킨다는 것에서 이미 괴물이라 평가받을 만했다.

“흡!”

짧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

레오의 몸이 땅을 박찬다.

나무 인형을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히더니 몸을 붕 띄우며 회전한다.

‘오랜만이네.’

레오의 독자적인 기술, 풍참(風斬).

붉은 이리 용병대에서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며 익힌, 몬스터의 단단한 가죽과 근육을 함께 찢어발기는 파괴력에 집중한 기술.

돌개바람 같은 참격이라 하여 동료들이 붙여 준 이름이다.

퍼엉-!

연무장에 폭발음이 터졌다.

조각조각 난 나무 인형 잔해가 비산하여 흩날렸다. 이윽고 드러난 나무 인형은 맹수에게 뜯어먹히기라도 한 듯 한쪽 어깨부터 가슴 중앙이 사라진 상태였다.

“저게 무슨?”

자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상태였다.

돌진 속도에 회전력을 더하여 오직 파괴력 하나에 집중한 기술. 제국 검술을 비롯해 귀족 가문의 꽤 많은 검술을 보아 왔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술이다.

‘쯧, 완전히 부수지는 못했나.’

반면 레오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신체도 오러도 회귀 전의 전성기 때보다 조금 부족하기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감독관에게 충분히 깊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잠시 연무장을 정리하고 시험을 속행하겠다.”

자크의 말에 시험 진행을 돕던 교관 두 명이 연무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쿠! 죄송함다, 선배님들.”

시험장 밖의 가드와 같은 옷인 것을 보면 교관도 상급생임이 분명하다. 머쓱해진 레오가 뒤통수를 긁으며 나무 조각들을 함께 주웠다.

하지만 그 능글맞은 행동에도 경악에 물든 응시생들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위력만 보면 나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그 안에는 클라인도 포함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 불렸다. 영지에서도 자신보다 강한 이는 아버지와 기사단장을 포함한 몇 정도에 불과했다. 당연히 또래 중에서는 견줘 볼 만한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자만심이 고개를 쳐들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제국의 미래가 모인다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한 것도 자신을 조금 더 채찍질하기 위함이었다.

‘…아카데미에 오길 잘했어!’

진심이었다.

시험장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클라인은 눈에 생기가 돌았다.

“괜찮았어?”

“흐음, 인상적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레오에게 무무카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 차례로군.”

“잘하고 와라.”

곧이어 호명된 무무카가 일어섰다.

2미터를 훌쩍 넘는 웨어울프가 움직이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인간과 수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는 하나 수인은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에 깊게 녹아드는 것을 꺼렸다. 역대 아카데미 생도 중에도 수인은 극히 드물었다.

“와… 엄청나게 크네.”

그러니 바깥 경험이 적은 어린 귀족 중에 웨어울프를 처음 보는 이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까드득-!

금속 너클을 낀 주먹을 폈다 쥔 무무카가 천천히 나무 인형 앞에 섰다.

지금껏 응시생들의 키와 비슷했던 나무 인형이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레오처럼 부수면 되는 건가.’

나무 인형을 부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합격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아마 레오도 그 때문에 화려한 기술을 보인 것이겠지.

생각을 끝낸 무무카는 중심을 조금 낮추며 오른쪽 주먹을 준비했다.

그의 주먹과 너클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렸다.

“이거 미치겠군.”

자크는 헛웃음을 뱉었다.

‘갑자기 뭔데?’

놀란 것은 원래 무무카를 알던 레오도 마찬가지다.

수인은 인간보다 월등한 육체 능력을 가진다. 거기에 투기라 부르는 기운으로 신체 능력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기술이 있다.

수인의 투기도 결국 마나가 원천이라는 점은 오러와 같다. 하지만 투기는 어디까지나 신체 전체를 강화하는 것에 그쳤다.

지금 무무카가 보이는 것처럼 신체의 일부나 도구에 집중하는, 오러 소드와 유사한 투기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콰앙-!

굉음과 함께 나무 조각이 다시 한번 비산했다.

나무 인형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한쪽 옆구리만 애처롭게 이어져 있던 상반신이 이내 기울어지더니 뚝 부러졌다.

“음, 이런 식인가.”

무무카는 자신의 주먹을 다시 한번 쥐었다 펴더니,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장 난 로봇처럼 서 있던 교관들이 다시 한번 연무장을 정리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야, 방금 그거 뭐야?”

무무카가 돌아오자마자 레오가 속삭이듯 물었다.

“확실하게 합격하려면 역시 뭔가 인상적인 걸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네 모습을 참고했지.”

“오러 소드를 참고했다고?”

“그래, 나도 투기를 집중시켜 사용해 보려 했다. 마침 되더군. 이 정도면 합격에 문제없겠지?”

마침 됐다니. 방금 처음 해 봤다는 말이잖아.

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아꼈다. 무무카는 지금 자신이 무얼 보여 줬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뭐야, 이놈도 천재였어?’

덱스도, 무무카도.

회귀하고 보니 주변에 천재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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