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6화 (16/127)

16. 입학시험 (5)

덱스는 홀로 마법동, 마기쿠스관으로 향했다.

셋이 함께 다닐 때는 몰랐는데 막상 혼자 시험을 치러 간다 생각하니 조금 위축되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장난감 같은 지팡이는 뭐야?”

“마법 하는 놈들치고 정상인이 없다고는 하지만….”

“취향 한번 독특하네.”

게다가 핑크색 꽃 모양이 장식된 흰색 지팡이는 꽤나 눈길을 끌었다.

열 살짜리 여자애가 들고 있었다면 다들 귀엽다며 흐뭇하게 바라봤을 터지만, 그걸 쥐고 있는 것이 제법 사내 티를 보이기 시작한 다부진 체격의 남자라는 것이 문제였다.

‘거, 되게 쳐다보네, 진짜.’

결국 덱스는 지팡이를 슬쩍 로브 안쪽으로 숨기기로 했다.

* * *

마기쿠스관의 마법 학부 전용 연무장.

정육각형으로 설계된 연무장 한쪽 변에는 긴 테이블이 놓였고, 다섯 명의 시험 감독관이 자리했다.

마법 학부 시험은 전사 학부처럼 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매년 수백에 이르는 전사 학부와 달리 마법 학부는 응시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중에 순수 연구나 연금술 같은 분야의 응시자는 전공 교수의 방에서 일대일 면접을 행하기에, 올해 이 연무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이는 서른 내외에 그쳤다.

하나둘 모여드는 응시생들을 보며 가장 가운데 자리의 마법 학부장 메퀸토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올해는 좀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군.”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역시 황녀님을 가장 기대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크흠흠.”

“그동안 제자의 실력을 꽁꽁 아껴 두셨으니 말이죠.”

“저희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학부장님 제자들의 데뷔를요.”

“거참,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하게.”

학부장 메퀸토가 짐짓 엄하게 말을 끊었지만 학부 교수진으로 구성된 감독관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학부장의 입가에도 금세 다시 미소가 스몄다. 그들의 말처럼 애제자들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퀸토의 제자, 3황녀 유리아.

그녀는 다섯 살에 처음 마법의 재능을 보였다.

당시 궁정 마법사였던 메퀸토는 그녀의 스승을 자처했고 황립 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긴 지금까지 연을 이어 가고 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막내 감독관이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첫 번째 응시생을 호명하는 교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연무장을 울렸다.

“1번 응시생, 유리아 드메이르 폰 아슐렌.”

‘배움에 귀천은 없다.’라는 아카데미의 규칙은 3황녀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녀가 황족의 신분으로 방문했다면 모를까, 응시생인 이상 생도 취급을 하는 것이 규칙인 것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밝은 은빛 머리칼을 뒤로 한데 묶은 소녀가 연무장의 지정된 장소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과연, 소문이 부족할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어머나, 어찌도 저리 청초하신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응시생 곳곳에서 찬사가 튀어나왔다.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빛 머리칼과 빠져들 것만 같은 커다란 진회색 눈동자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걸음 하나하나에 스민 기품은 귀족가에서 나고 자란 이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와… 쩐다.’

표현력의 차이만 있을 뿐 덱스도 같은 반응이었다.

당장 이 응시생들 사이에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귀족가 영애들이 몇 있지만, 황녀가 풍기는 기품과 고고한 분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 인생 혼자 사는 애 같네.’

다만 그녀가 황녀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탄하는 덱스였다.

지정된 자리에 유리아의 발이 멈췄다.

그녀 앞으로 펼쳐진 방향에 다섯 개의 표적이 놓였다.

가장 가까운 표적은 약 10미터, 가장 먼 표적은 약 100미터 정도로, 각기 다른 거리의 표적이 부채꼴 형태로 퍼져 있다.

“응시자는 자유롭게 표적을 향해 마법을 발현해 주시면 됩니다.”

그것이 시험의 유일한 규칙이다.

표적에 불꽃을 쏘아 대든, 표적 위에서 물을 쏟아붓든 상관없다.

할 수만 있다면 표적을 포함해 연무장 전체를 날려도 된다. 물론 그 정도 수준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면 교수 면접을 치러야 하겠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인 유리아가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지팡이는 따로 없다. 그 대신 중지에 낀 반지를 중심으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꿀꺽.

지켜보던 덱스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 마력 흐름은 마법에 입문한 이래 단연코 처음 느끼는 수준이라는 것을.

“플레임 스피어!”

낮은 영창.

표적을 향해 곧게 뻗은 그녀의 팔 옆에 거대한 화염의 창이 나타나더니 곧 쏘아졌다.

거침없이 날아간 화염은 가장 멀리 있던 표적을 정확히 맞히며 불꽃과 함께 화려하게 폭발했다.

“오오, 틀림없는 플레임 스피어…!”

“정말 놀랍군요! 벌써 4서클에 도달했다는 말입니까!”

감독관들이 감탄사를 뱉었다.

플레임 스피어는 4서클 위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마법이다.

유리아가 선보인 것은 분명한 플레임 스피어였고, 이는 그녀가 훌륭하게 네 개의 고리를 엮었음을 증명했다.

“이거… 엄청난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 아카데미 교수를 맡고 있는 그들 대부분은 6서클 위계의 마법사다.

현재 졸업을 앞둔 3학년 수석도 3서클의 완숙 단계에 그쳤으니 유리아를 보고 놀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벽을 넘었구나….”

메퀸토도 눈이 번쩍 커진 상태였다.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는 제자의 마지막 편지가 3개월 전이었다. 그리고 제자는 훌륭하게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일흔이 넘어 7서클의 벽을 허물고 대륙의 유일한 대마법사 반열에 오른 메퀸토.

불세출의 천재라 불렸던 메퀸토도 열여덟에 네 개의 고리를 엮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자신보다 빠른 제자의 성취에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성공했어…!’

유리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뭉텅이로 빠져나간 마력에 다소 탈력감이 밀려왔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스승님을 비롯해 감독관들의 얼굴만 봐도 기대 이상을 보여 주는 데 성공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다른 응시생의 수준은 평이했다.

2서클 위계의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하는 응시생이 가장 많았다.

실패의 두려움 때문인지,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닌데 가장 가까운 표적부터 노렸다. 가까운 표적에 적중하면 그다음 거리에 도전하는 식이었다.

간간이 유리아처럼 먼 표적부터 도전하는 응시생도 있었지만 성공한 이는 없었다. 그런 응시생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인지 가장 가까운 표적에도 실패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응시생 수가 적어서인지 시험은 금방 막바지에 다다랐다.

“다음 21번, 세실 베니에르.”

밝은 금발을 얌전하게 땋아 묶은 소녀.

눈을 반쯤 내려뜨고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모양새가 퍽 기품 있다. 어릴 적부터 유리아의 놀이 친구로 황궁에 머물렀기에 자연히 황궁 예법을 익힌 탓이다.

‘잘해!’

입 모양으로 전해진 황녀의 응원에 옅은 미소로 답한 세실.

가장 먼 표적을 향해 들어 올린 하얀 손에는 유리아의 것과 같은 모양의 반지가 있었다.

“라이트닝!”

손끝에서 피어난 전격이 허공을 가르며 표적을 향해 달렸다.

번개가 달리는 길목 곳곳에 스파크가 파지직 튀었고 라이트닝에 직격당한 표적은 까맣게 그을린 채 목이 부러졌다.

“오오!”

3서클 위계의 라이트닝이라니! 응시생들 사이에 감탄이 터졌다.

전격계는 화염계보다 컨트롤이 어렵다. 지금까지 응시생들이 파이어 애로우만 줄곧 난사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성취가 높군요. 혹시 저 아이가?”

“맞네. 저 아이도 함께 가르치고 있지.”

학부장 메퀸토가 흐뭇하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유리아에 가려졌을 뿐 세실의 재능도 눈부셨다.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며 발전했다.

성공적으로 시험을 마친 세실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 유리아가 미소로 그녀를 반겨 주었다.

‘해냈어!’

세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품 있는 걸음으로 제자리에 돌아가고 있지만 마음은 팔짝팔짝 뛰고 싶을 정도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이 곤란한 참이다.

처음 아카데미 이야기를 제안받았을 때는 꽤 당황했다. 하지만 다섯 살에 황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는 언제나 황녀의 옆에 있었다.

망설임 없이 함께하기로 했고, 유리아의 뒤를 이어 차석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충분히 차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3번, 덱스!”

호명된 덱스가 연무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시험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싸구려 로브를 입은 남자였다.

“평민인가?”

성이 함께 호명되지 않았으니 신분은 금방 드러났다. 물론 귀족이 의도적으로 성을 숨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다.

“아무리 귀천이 없다지만 황립 아카데미의 수준을 떨어트려서는 안 되지 않나.”

“용병이 되고 싶은 거라면 다른 적당한 아카데미가 있을 텐데 말이야.”

마법이 귀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꽤 낡은 것임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황립 아카데미의 마법 학부에 도전하는 응시생 대부분은 귀족이었다.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는 데 있어서 마법은 훨씬 문턱이 높았으니까.

“음? 무슨 지팡이가 저래?”

“하아, 아까 취향이 이상한 놈을 봤다 했더니….”

“저급하군. 요즘 평민들 사이에서는 저런 게 유행인가?”

굳이 별다른 반응을 내비치지 않던 응시생들도 덱스의 지팡이를 발견하고 한 두 마디씩 던지며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수염 자국이 거뭇해지는 사내놈이 핑크핑크한 꽃 모양 마석이 박힌 앙증맞은 지팡이를 들고 있으니 당연한 거부감이기도 했다.

“허허허, 귀여운 지팡이군요.”

“손녀딸이 지팡이를 하나 사 달라고 조르던데 딱 저렇게 제작하면 되겠구먼.”

그래도 다행인 것이 감독관들은 악의가 없다는 점이다.

마법사로 살다 보면 같은 마법사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류도 상당히 많이 접하게 된다. 괴짜라고 부르기 힘든 정신 나간 놈들에 비하면야 저 정도는 귀여운 축에 속한다.

‘입을 싹 다물게 만들어 주지.’

그런들 주눅들 덱스가 아니다. 오히려 오기가 솟았다.

여태껏 조용히 관전하면서 확신했다. 이들 중 자신 이상의 실력자는 가장 처음 나선 그 여자애 정도라는 것을.

심지어 샤를롯보다 못한 놈들도 간혹 보였다. 그러니 실력으로 닥치게 만들어 주면 그뿐이었다.

‘잘 봐라.’

덱스는 자신을 조롱하는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합격하든 못하든 간에 빚은 꼭 돌려줄 셈이다.

지정된 자리에 서서 로브를 펼치며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제자가 빌려준 지팡이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눈을 감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진분홍 마석들이 그가 형성하려는 마력 술식을 더 빠르고 간결하게 완성시켰다.

“파이어 애로우.”

나직한 영창.

시동어와 함께 술식이 전개되자 그의 마력이 물리 현상으로 구현된다.

머리 위로 다섯 개의 화염 화살이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본 어느 응시생의 것보다 더 맹렬한 불꽃을 내뿜었다.

“다, 다섯 개를 동시에!”

대기석에서 믿을 수 없다는 외침이 터졌다.

메퀸토를 포함한 감독관들의 눈도 화등잔만 해졌다.

지금껏 지루함을 내비치지 않으며 곧게 앉아 있던 유리아의 상체도 처음으로 앞쪽으로 기울었다.

‘전부 한 번에 날려 버린다…!’

정작 집중력이 최대에 달한 덱스는 주변 반응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관심은 오직 각각의 좌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투사하는 것.

쐐에엑-!

다섯 화염 화살이 동시에 방사형으로 발사됐다.

펑, 펑, 펑, 펑, 퍼엉-!

이어서 다섯 번의 폭발음이 순차적으로 연무장을 울렸다.

모두 명중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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