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클라인 반다이트 (1)
벨라토르관, 전사동에서도 2차 시험이 진행됐다.
1차 시험 응시생 대부분이 2차 시험에 참여한 마법 학부와 달리, 전사 학부는 1차 시험에서 절반 이상 불합격했다.
그래도 여전히 남은 응시생은 100명이 훌쩍 넘었다.
다시 새로운 조가 편성됐고 레오와 무무카는 다른 조로 서로 떨어졌다.
‘그 오줌싸개 녀석이야 진작 돌아갔을 거고.’
레오는 같은 조원들을 스윽 둘러봤다.
몬잘인지 몬젤인지 하는 녀석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감독관을 맡은 자크다. 각 조당 합격 인원은 두 명에서 세 명이다. 그렇게 알고 최선을 다해라!”
절반을 다시 걸러 낸다는 말에 응시생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모든 조원들과 대련하고 승패로 순위를 정한다. 거기에 감독관의 평가가 더해지는 방식이었다.
“대련용 무기는 이쪽에서 고르도록.”
자크가 가리킨 방향에 다양한 형태의 날붙이와 둔기가 준비되어 있다.
가까이서 보니 모두 날을 죽인 것들.
레오는 곧게 뻗은 롱소드를 집었다.
‘호오….’
날만 뭉툭할 뿐. 나쁘지 않은 검이다.
반대로 날만 세우면 즉시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무기라는 뜻.
대련용 무기까지 이 정도 밸런스를 구현했다니 확실히 황립 아카데미는 뭔가 달랐다.
와아-!
벌써 대련을 시작한 바로 옆 1조에서 함성이 터졌다.
클라인의 오러 소드가 원인이었다.
오러 소드를 본 상대는 기가 죽어 반격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싱겁게 패배했다.
“저렇게 선명한 오러 소드라니….”
“가까이서 보고 싶네.”
“하아, 저게 진짜 재능이라는 건가.”
레오가 속한 2조에서도 다들 한마디씩 했다.
30대가 넘어서 오러 소드를 개화하고 40대에 중급 기사가 된 대기만성 케이스도 있다지만, 당장 눈앞에서 또래가 저렇게 오러 소드를 뿜어내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 잡으려는지 자크가 좀 더 엄한 목소리로 2조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먼저 레오. 그리고 패트릭 마이어. 앞으로!”
창을 들고 나선 패트릭 마이어.
짧은 소매 아래 드러난 팔뚝이 꽤나 단단해 보인다.
제대로 단련하는 무인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마이어 남작가인가?’
‘북방의 창’이라는 별칭의 마이어 가문은 무가에서 꽤 유명하다.
검은 마물에 북부가 점령당할 때, 배수진을 치고 마지막까지 싸운 가문이기도 했다.
무기로 창을 고른 걸 보면 아마 그 마이어가 맞지 않을까?
“시작해라!”
신호와 함께 레오가 검을 곧추세우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그랬지?”
“뭐?”
“돈은 안 받을게. 특별히 보여 주는 거야.”
찡긋.
레오의 검이 푸르게 물들었다.
그걸 본 패트릭의 안색도 푸르게 변했다.
탓-!
패트릭에게 돌진한 레오의 몸이 세차게 회전했다.
1차 시험 때 나무 인형을 상대로 보였던 기술이다.
“칫!”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창의 이점을 살릴 기회를 놓친 패트릭이 짧게 혀를 찼다.
오러로 강화한 양팔이 강하게 창을 그러쥐었다. 뒷발은 단단히 지면에 박아 넣었다.
아직 무기에 수준 높은 오러를 담지 못할 뿐, 그 또한 오러 유저였다.
‘선공은 내주마. 하지만…!’
패트릭은 이를 악물었다.
적어도 지레 패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쾅!
충격과 함께 폭발음이 울렸다.
손아귀를 통해 전해지는 강력한 충격.
“으읏…!”
패트릭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주르륵 발이 밀리며 한쪽 무릎이 무너져 버린다.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곧바로 공세로 전환하려던 패트릭은 창을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 몸을 멈췄다.
“젠장….”
이미 그의 검 끝이 눈앞이다. 씨익 웃는 입꼬리가 얄밉다.
두툼한 창대는 움푹 휘어져 써먹지 못하게 됐다.
단 일 합에 승부가 났다.
휘어진 창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패트릭을 보며, 다른 세 명은 너나 할 것 없이 무기를 바꾸러 달려갔다.
뭐든 좋으니 가장 두꺼운 무기가 필요했다.
* * *
벨라토르관 상층 학부장실.
똑똑.
절도 있는 노크 소리와 함께 짙은 감청색의 긴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은 장신의 여성이 방에 들어섰다.
전사 학부의 교수 이오페였다.
“학부장님, 1차 시험 결과입니다.”
학부장 카르파 슈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받아 들었다.
한때 제국의 근위기사단의 수장을 맡았던 카르파다.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온몸에서 풍기는 맹수 같은 기운은 여전했다.
결과서를 확인한 카르파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호오….”
“클라인 군을 포함해 이번 기수에는 특히 뛰어난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오페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작은 흥분이 섞였다.
[1차 시험 평가 결과]
-1위 클라인 반다이트 (14세)
-평가 점수 : 99점
-종합 평가 : 검사. 소드 엑스퍼트 중급 이상. 오러 소드를 능숙하게 다루며 특히 검의 예기를 살리는 세밀한 오러 제어가 인상적.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 장래성이 매우 기대됨.
-2위 레오 (15세)
-평가 점수 : 95점
-종합 평가 : 검사. 소드 엑스퍼트 초중급. 오러 소드를 다루며 검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오러 활용과 검술을 보임. 실전적인 검술이 인상적. 장래성이 매우 기대됨.
-3위 무무카 (18세, 웨어울프)
-평가 점수 : 90점
-종합 평가 : 무투가.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투기 활용이 능숙함. 투기를 신체 일부와 무기에 집중시키는 모습을 보임. 실전적 체술이 인상적. 신체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향후 기술적인 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큼.
“90점 이상의 평가가 셋이라니, 지금 시험 방식이 도입된 이래 처음 아닌가? 게다가 평가 내용도 칭찬 일색이군.”
“맞습니다. 오히려 한 명도 나오지 않은 해가 더 많았지요.”
60점이 1차 시험의 커트라인이다. 70점은 평균적인 수준이고 80점 이상은 우수한 인재로 꼽힌다.
최근 몇 년간 전사 학부의 1차 시험의 최고 점수는 85점 내외였다.
“올해 수석 결정전은 아주 기대되는군.”
“수준 높은 대련이 되겠지요.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겁니다.”
전사 학부는 전통적으로 1, 2차 시험 결과의 1, 2위 학생을 대상으로 수석과 차석을 가리는 최종대련을 진행했다.
아직 2차 시험이 진행 중이지만 현 1차 시험 1, 2위가 그대로 수석 결정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경험상 1차 시험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인 이들이 2차 시험에서 미끄러질 확률은 매우 낮았으니까.
“슬슬 내려가 볼까.”
수염 가득한 턱을 문지르며 연무장을 내려다보던 카르파가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이오페가 조용히 따랐다.
* * *
이변은 없었다.
레오는 같은 조의 응시생 전부를 한 합 만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무무카도 마찬가지. 오히려 기권승을 몇 차례 받아 내면서 2차 시험을 한결 수월하게 치렀다.
전사 학부의 최종 합격자들이 결정됐다.
합격생들이 최초 응시 번호대로 다시 모였고 레오와 무무카는 자연스레 옆자리로 만나게 됐다.
“무무카, 전부 때려눕히고 왔냐?”
“음, 그렇진 못했다.”
“뭐? 설마 너보다 강한 놈이 있었다고?”
“아니, 두 명이 기권하는 바람에 그들과는 싸워 보지 못했지.”
“그러면 그렇지.”
최종 합격이 결정되었기에 다들 표정이 밝았다.
같은 조에서 무기를 맞대 본 귀족들은 서로를 칭찬하며 빠르게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모두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올해의 수석은 누가 될까? 역시 클라인 공자겠지?’
‘저 녀석의 오러 소드도 엄청났지. 클라인 공자에 뒤지지 않을지도 몰라.’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걸까.’
다들 레오를 흘끔거렸다.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였다.
정작 레오는 그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었지만.
‘담배 땡기네…. 아침에 하나 더 빨고 들어올걸.’
아카데미 학칙에 흡연이 위배되던가? 미처 그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
애초에 안 피운다는 선택지는 없다.
당당히 피우든가, 숨어 피우든가의 차이다.
회귀하고 아예 손을 안 댔으면 모를까, 이미 담배의 맛을 알아 버린 몸이라 어쩔 수 없다.
레오가 딴생각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사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무장 단상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작은 웅성임과 함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오오, 슈멜린 백작님이셔…!”
특히 선두의 중년 남자의 기세가 범상치 않다.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수염에서 중년의 나이를 짐작케 했지만, 건장한 체격만큼은 젊은 기사에 뒤지지 않는다.
전사 학부장 카르파 슈멜린이다.
학부장 일행이 단상에 함께 오르자 학생들은 대화를 멈추고 자세를 바로 했다.
모두 긴장한 얼굴이다. 진심으로 검을 쥐어 본 자라면 한때 제국 최강의 검사의 세 손가락에 꼽았던 카르파의 이름을 모를 수 없었다.
‘저 사람이 카르파 슈멜린.’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도, 지금도 딱히 접점이 없었기에 얼굴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이름과 명성만큼은 모를 수 없었다.
슬쩍 오러안을 발동시켜 봤다.
카르파의 몸에 주먹만 한 오러홀과 그곳에 갈무리된 기운이 보인다.
어찌나 강하게 압축되어 있는지 붉은 선과 선이 겹쳐 오러홀 자체가 하나의 붉은 구로 보일 정도다.
지금까지 관찰한 상대 중 단연 최강자였다.
‘대단하네. 명성이 아깝지 않을 정도야.’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가 현역을 은퇴하고 후학 양성을 위해 아카데미를 선택한 것이 10여 년 전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 기운이라니. 당장 기사단장으로 복귀해도 충분할 것 같다.
“내가 학부장 카르파다. 축하한다, 제군들은 훌륭하게 황립 아카데미 전사 학부의 일원이 될 자격을 얻었다.”
단상에 선 카르파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오러를 담지 않았음에도 쩌렁쩌렁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족하는 멍청이는 없으리라 믿는다. 제군들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 끊임없이 단련해라. 불필요한 의심은 버려라. 자신을 의심하고 망설이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한가락한다는 귀족 자제들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무인의 길을 걷는 그들에게 대륙의 최강자 반열에 들었던 카르파의 말은 금과옥조였다.
반면 레오는 지루한 연설보다 다른 것에 집중했다.
‘카르파 뒤에 선 사람들은 전사 학부의 교수진인가? 다들 강자로군.’
오러안으로 단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다들 카르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누구 하나 부족한 이가 없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건 검은 마물과 싸울 당시 주요 실력자를 오러안으로 들여다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제국의 미래라 불리던 검성 클라인 포함하여 이름난 기사들의 전력을 모두 확인했다.
카르파를 포함한 지금 이 자리의 교수진들과 회귀 전 기억의 주요 인사들의 전력을 비교한다면 명백히 전자가 앞섰다.
‘망할. 도대체 15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15년 후 제국의 전력이 오히려 후퇴한다니.
입맛이 쓰다.
당장 카르파를 대신해 단상 앞으로 나서는 저 여자만 해도 15년 후 여느 군단장보다 강했다. 물론 검성 클라인은 예외였지만.
‘왜 저들은 전장에 보이지 않았을까.’
이미 쉰이 훌쩍 넘은 카르파는 그렇다 쳐도 기껏해야 지금 삼사십 대의 젊은 강자들까지 나중에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 진짜 담배 땡기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