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광산의 몬스터 (1)
카미르 광산.
수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제국 최대의 철광석 광산이자 유일한 미스릴 광산.
수십 년 전, 제국의 혼란기를 평정할 당시 황제의 곁에서 가장 큰 힘을 보탠 이는 선대 반다이트가의 가주였다.
제국이 안정을 찾은 후 그 공을 높이 평가한 황제는 반다이트 가문에 광산 채굴권을 넘겼다.
채굴 광물의 30% 시세를 세금으로 내는 조건이 붙은 100년간의 권리였으나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였다. 덕분에 반다이트의 영지는 대륙의 어느 영지보다 부유해질 수 있었다.
그런 카미르 광산의 채굴이 고작 몬스터 때문에 중단되다니.
클라인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돼요. 설사 몬스터가 나타났더라도 가문에서 곧바로 정리했을 텐데….”
“믿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실제 중단된 건 지난 주라고 하더군. 벌써 열흘쯤 되었으려나.”
열흘 전에 작업이 중단되었다는 말에 클라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광산의 몬스터 발생은 드물지만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사흘이면 정상 작업을 재개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몬스터에 속수무책이라는 말이었다.
공방을 빠져나온 클라인은 곧바로 시종 브로닐을 찾았다.
“브로닐, 카미르 광산에 문제가 생겼다던데. 알고 있었어?”
“…예, 알고 있었습니다.”
“왜 내게 알리지 않았지?”
“죄송합니다, 공자님. 학업에 방해가 될까 싶어 가주님께서도 알리지 말아 달라 하시는 바람에….”
브로닐이 침통한 얼굴로 답했다
가주의 명령이 있었다고 하니 클라인도 더 그를 탓할 수 없게 됐다.
“…아버님의 지시였다니 할 수 없군. 하지만 알게 된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일단 아는 대로 정보를 줘.”
브로닐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외부인이 있는데 괜찮겠냐는 의미.
클라인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징후가 처음 보고된 것은 2주 전입니다.”
2주 전, 채굴 작업자의 실종이 처음 보고됐다.
폭발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지반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작업 교대 시간에 한 팀이 통째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곧바로 수색을 시작했지만 해당 팀의 작업장에는 시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진 것이다.
다음 날 또다시 한 팀이 똑같이 사라졌다.
작업은 전면 중단됐고 용병대가 진입했다. 반나절 만에 한 명을 제외하고 용병 모두가 사라졌다.
혼자 살아남은 용병은 말했다. 광산 속 무언가가 동료를 먹어 치웠다고.
이후 가문의 기사까지 동원해 한 번 더 진입을 시도했지만 정확한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결국 반다이트 백작은 추가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광산 입구 폐쇄를 명했다.
“하아….”
설명을 모두 들은 클라인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문의 기사까지 나섰지만 해결하지 못한 몬스터라니.
특히 아직 정체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광산이 멈춰 있는 것은 둘째치고 몬스터를 없애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레오는 몬스터의 정체를 다시 한번 확신했다.
‘맞구나, 미믹 슬러그.’
대륙에는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북부 대륙의 겨울 산맥이나 중앙 대륙의 대수림이 대표적이다. 당장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프로인 숲만 해도 그 속에 오우거가 살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지 않은가.
아직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도 충분히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광산 사건의 원흉이 된 미믹 슬러그도 비슷했다.
광산의 소음이 우연찮게 땅속에서 동면 중이던 미믹 슬러그를 깨웠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미믹 슬러그는 본능적으로 포식 활동을 한 것뿐이다.
거대한 몸체를 넓게 펼치고 주변 지형에 동화되어 먹이를 포획하는 미믹 슬러그의 사냥 방식을 미루어 추측하면, 아마 그들이 광산 막장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이미 미믹 슬러그의 배 속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하는 클라인을 앞에 두고, 레오가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 몬스터, 알 것도 같은데?”
“뭐?”
“아, 물론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들은 내용으로 떠오르는 몬스터가 있어서 말이야.”
레오는 방금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미믹 슬러그라는 존재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던 클라인의 얼굴에 점차 놀라움과 희망이 깃들었다.
“그 녀석이 맞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지. 그렇게 강한 놈도 아니니까.”
레오는 클라인의 표정을 읽으면서 슬쩍 부추기는 말을 섞었다.
직접 미믹 슬러그를 토벌할 생각이다. 나중을 생각하면 반다이트 백작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으음, 네 말대로라면 당장 해결할 수도 있다는 거지?”
“미믹 슬러그가 맞는지 확인부터 해야겠지만 말이다.”
“으음….”
광산이 멈춰 있는 것은 반다이트 가문에 큰 손해다. 게다가 가문의 적장자로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숙고를 마친 클라인은 마음을 정했다는 듯 입술을 뗐다.
“레오, 부탁이 있다. 카미르 광산으로 같이 가 줬으면 한다.”
“지금 당장?”
“너만 괜찮다면.”
그렇게 말하는 클라인의 눈빛이 뜨겁다.
레오는 짐짓 놀란 척했지만 속으로 바라던 바였다. 어쨌든 광산의 일이 해결되어야 도리안 공방의 검도 빨리 만들 수 있을 테니.
“공자님!”
광산으로 향하자는 클라인의 말에 브로닐이 놀라 제지하려 했지만.
“만약 그 미믹 슬러그라는 몬스터가 아니라면 바로 포기하겠어. 하지만 레오의 말이 맞다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알겠습니다.”
브로닐은 말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금방 수긍했다.
이들과 친구로 지내며 예전보다 말수도 늘어나고 밝아진 공자였지만, 원래 성격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다.
특히 한번 꽂히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황소고집은 예전부터 백작님도 쉬이 꺾지 못했다.
“놈을 토벌하려면 일단 마법사가 필요해.”
사냥을 대비한 패부터 갖추어야 한다.
가장 손쉽게 불러낼 수 있는 마법사라 하면 당연히 덱스다.
대단한 마법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생도 수준으로 충분했다.
“갈게. 주말에 할 일 없어 심심했는데 잘됐네.”
대충 설명을 들은 덱스는 역시나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학부에 혹시 데려올 만한 친구 없냐? 한 명 정도만 더 데려가면 좋겠는데.”
레오가 물었다. 뭐든 여유 있게 준비하는 편이 좋으니.
그 정도 어렵지 않다는 듯 씨익 웃는 덱스.
“친구? 당연히 있지. 불러올게.”
자신 있게 답한 덱스가 잠시 후 데려온 이는 클라인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줄리앙 공자?”
“크, 클라인 공자로군요. 오랜만입니다.”
“둘이 아는 사이야? 더 잘됐네. 동기끼리 편하게 해, 편하게.”
“그, 그렇지.”
덱스가 툭툭 어깨를 두드리니 줄리앙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왜 나를 불러낸 거지? 어디로 가는 거지?’
줄리앙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클라인과는 사교 파티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딱 그 정도 친분이었기에 어색한 사이다.
‘클라인은 왜 여기 있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덱스가 다짜고짜 방으로 찾아와 “뭐 하냐? 어디 좀 가자.”고 해서 끌려 나온 것뿐이었으니까.
‘클라인이 있는 걸 보면 괴롭힘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지난번 소각장 사건 이후 딱히 괴롭힘을 당한 것은 아니다.
단지 슬쩍 눈이 마주치면 기분 나쁘게 웃어 보인다거나 지나가면서 어깨를 툭툭 친다든가 하는 정도? 하지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특히 피로 물든 이빨을 보이며 씨익 웃는 그 모습 벌써 꿈에서 몇 번이나 마주했다.
턱.
덱스가 어깨에 턱 손을 얹자 줄리앙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그러면 출발하도록 할까.”
아카데미 정문에 반다이트 가문의 마차가 대기해 있었다. 네 명이 앉아도 넉넉할 정도로 넓은 마차였다.
이윽고 출발한 마차 안에서 클라인은 아직 내용을 모르는 덱스와 줄리앙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몬스터에 대한 내용은 레오에게 부탁할게.”
“그래. 나는 광산의 그놈이 미믹 슬러그라고 생각해.”
“미믹 슬러그…? 처음 듣는데?”
줄리앙이 고개를 갸웃했다.
덱스야 애초부터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일반인 수준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줄리앙은 마법사의 소양을 익히며 웬만한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쌓아왔다.
미믹 슬러그는 그런 그에게도 생소한 몬스터였다.
“설명할 테니 잘 들어 봐.”
정확히 말해 미믹 슬러그는 미지의 몬스터가 아니라 잊힌 몬스터다.
최소 수십 년 동안 인간과 조우했다는 보고가 없지만 고서에는 분명히 기록이 남아 있는 놈이다.
슬라임 같은 부정형의 몸체가 기본이지만 크기는 훨씬 거대하다. 점액질의 특징을 가지지만 단단한 암석의 질감까지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의태 능력을 가진다. 그러니 광부들도 미믹 슬러그의 영역 내에 위화감 없이 진입했을 것이다.
“녀석의 약점은 불이야.”
기사까지 진입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주변 지형지물 자체가 미믹 슬러그의 몸체이지만 베고 자른다고 해서 큰 타격을 주기 힘들다. 오직 핵을 노려야 하는데 그 핵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불로 지져 몸체를 축소시켜야 핵이 겨우 드러난다.
요는 정체만 파악하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몬스터라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거군.”
신나 보이는 덱스의 곁에서 줄리앙은 더욱 고민이 깊어졌다.
‘갑자기 몬스터 사냥이라고…?’
카미르 광산의 몬스터를 해결하러 가는 길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반다이트 가문과 딱히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아니지만 딱히 우호적인 관계도 아니다. 이번 일을 아버지가 알면 뭐라고 할지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그런데 저놈은 뭐지?’
클라인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내, 레오.
검밖에 모르는 것으로 유명한 클라인과 짧은 시간 어떻게 저런 친분을 쌓았는지 의아했다.
느낌상으로는 클라인을 누르고 수석을 했다는 그 평민 같은데… 게다가 덱스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다.
클라인을 누를 정도의 검술과 몬스터에 대한 해박한 지식.
‘숨 막히네, 진짜.’
검의 천재라 불린 클라인 반다이트.
그 클라인을 꺾었다는 레오.
거기에 마법사인지 깡패인지 모를 덱스.
어쩌다 그런 녀석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있는 걸까.
“하아아….”
“왜? 어디 불편해?”
“아, 아니야.”
길게 토하는 한숨에 귀신같이 반응하는 덱스.
친절하게 신경 써 주는 것 같지만 그 정도로 눈치 없지 않다.
불편한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거겠지.
아직 해가 중천이다. 광산에 도착하는 것은 아마도 밤늦은 시간일 터.
앞으로 몇 시간이나 이렇게 숨막히는 기분으로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갑갑해졌다.
젠장,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흐으….”
줄리앙은 다시 한번 짧게 숨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아주 조심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