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28화 (28/127)

28. 광산의 몬스터 (2)

수도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황야 지대.

하늘을 향해 그저 높게만 뻗은 기이한 건축물이 있다. 중앙 대륙의 마탑이다.

똑똑.

마탑 상층부 집무실.

정수리가 유독 비어 보이는 중년의 마법사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들어와!”

“유미르 님, 반다이트에서 다시 서신이 왔습니다.”

“내용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카미르 광산의 몬스터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내용이지요.”

“알겠다, 나가 봐.”

“예.”

공손히 다시 닫히는 방문.

유미르는 실실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흐흐흐, 몸이 달았구먼.”

반다이트로부터 며칠 전 첫 서신을 받았고, 다른 연구 때문에 여력이 부족하다는 뜨뜻미지근한 답장을 보냈다.

정말 여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마탑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협상의 기술이었을 뿐.

카미르 광산이 반다이트의 주요 수입원인 만큼 정상화가 더딜수록 많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에 대한 조언의 값은 더욱 비싸질 터.

치사하긴 하지만 마탑의 재정을 책임지는 사무장으로서 챙길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길 필요가 있었다.

“일단 현장 확인을 한번 하고, 다시 마탑으로 돌아와 정보 분석하고. 이렇게 대충 2주 정도 더 뭉개야겠군.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조언을 주면 대략 한 달 이내에 정상화가 되겠지.”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기만 하면 마탑의 권위가 손상된다.

비싸더라도 확실한 결과를 내야 다음에도 귀족들의 지갑을 털 수 있다.

‘그리고 몬스터의 핵을 받아 내는 것도 조건에 추가해야겠어.’

유미르는 광산에 출몰했다는 몬스터가 높은 확률로 미믹 슬러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마탑에서도 몬스터에 가장 해박한 그였기에 가능한 추측이다.

수십 년간 보고되지 않았던 만큼 미믹 슬러그는 희귀하다. 희귀한 몬스터의 핵은 연구 가치가 높으며 당연히 금전적 가치도 높다.

‘돈도 받고, 핵도 얻고.’

이것이 유미르가 그리는 그림.

그는 서랍을 열고 고급스러운 편지지를 꺼낸 유려한 필체로 글을 적어 내려갔다. 아직은 여력이 부족하니 며칠 후 다시 서신을 보내겠다는 내용의 답신이었다.

* * *

반다이트 가문의 집무실.

가주 미오크 반다이트 백작은 카미르 광산 문제로 며칠째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마탑에서는 아직 답이 없는가?”

“예, 가주님. 서신을 전달하고 며칠 지났건만 아직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허허, 설마 의도적으로 시간을 끄는 겐가? 영악한 자들 같으니….”

반다이트 백작은 헛웃음을 뱉었다.

광산에 기사 멜핀을 보내고도 해결은커녕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마탑에 조언을 구했으나 놈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간을 보며 한껏 몸값을 높이려 한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더 일이 복잡해진다.’

백작도 알고 있다. 마탑의 뻔한 수작질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태라는 것을.

카미르 광산을 통한 이권으로 황궁에 내는 세금은 채굴 광물 시세의 30%. 조건만 보면 채굴을 못 한 만큼 내야 할 세금도 없으니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황궁 또한 광산에서 얻는 세수가 크다. 일정 수준 이상의 채굴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황궁 재정에도 문제가 생긴다.

물론 지금 당장 재정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이 상황이 반년이 갈지 일 년이 갈지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벌써부터 반다이트의 적대 세력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백작은 두꺼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도는 거의 없었다.

“마탑에 다시 한번 서신을 보내도록 하게.”

“예, 가주님.”

노집사를 내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 백작은 길게 한숨을 뱉었다.

생각 같아서는 직접 광산을 방문해 그 몬스터란 놈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만 공교롭게도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곳이 돈 귀신 같은 마탑밖에 없다는 사실이 눈앞을 깜깜하게 했다.

* * *

레오 일행이 광산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조금 안 되었을 무렵이다.

평상시라면 24시간 채광으로 분주할 광산이 적막으로 가득했다. 광산 입구는 임시 폐쇄된 상태였고 고용된 용병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공자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반다이트 가문의 마차가 도착했다는 보고에 가문에 소속된 기사 멜핀이 달려 나와 클라인을 맞이했다.

미리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얼떨떨한 얼굴이다.

“멜핀 경, 오랜만입니다. 3년 만인가요?”

“예, 그 정도 된 것 같군요. 헌앙해지셨습니다.”

“국경에서 헌신한 멜핀 경의 노고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별말씀을요. 일단 안쪽으로 드시지요.”

멜핀은 자신의 방으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원래 광산 감독관의 숙소로 쓰던 방. 이제는 멜핀의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소식을 듣고 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업에 매진하는 공자님께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습니다. 현재 조사 중이니 최대한 빨리 좋은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멜핀도 이곳에 도착한 지 겨우 나흘째다.

첫날 광산 내부에 진입했지만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하기는커녕 피해만 입고 후퇴했다. 이후 더 이상 희생을 피하고자 백작은 광산 내부 접근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 때문에 멜핀은 첫 진입 때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 와중에 클라인 공자까지 갑자기 방문하니 괜한 초조함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같이 오신 분들은…?”

“아카데미의 동기들입니다.”

“그러시군요.”

행동 하나하나에 귀족의 예법이 배어 있는 한 명과 예법 자체를 모르는 듯한 두 명.

멜핀이 보기에 꽤나 신기한 조합이었다.

“브로닐을 통해 대략적인 내용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경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클라인은 멜핀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다.

전체적인 것은 브로닐에게 미리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현재 마탑에 조언을 구한 상태라는 것을 추가로 알게 되었다.

“이게 내부 지도입니까?”

“공자님,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펼쳐진 지도에 관심을 갖는 클라인에게, 멜핀은 단호히 답했다.

몬스터의 정체에 대해 마탑에 자문을 구했고 그 답을 기다리는 동안 무의미한 희생을 내지 말라는 것이 백작의 명령이다.

그 명령은 클라인 공자라 해도 지켜야만 한다.

“그렇게 대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멜핀 경은 융통성이 없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주무시고 내일 아카데미로 돌아가 주십시오.”

“…일단 내일 다시 한번 이야기합시다.”

의외로 클라인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당장 진입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염려한 멜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 내일은 꽤나 고집을 부릴 것 같지만….

“쉬실 곳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숙소가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갑자기 찾아와 미안합니다.”

멜핀은 급하게 준비한 손님방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내일 어떻게 클라인의 고집을 꺾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하지만 그로부터 두 시간 후.

레오 일행은 폐광산의 입구에서 서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줄리앙이 좌우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무리 클라인이 함께라고 하지만 나중에 무조건 문제가 된다. 반다이트 백작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잖아?”

“결과가 좋으면 다 좋게 되어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클라인이 이걸 해결하면 백작님은 더 기뻐하시겠지.”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레오와 클라인은 개의치 않는 얼굴이다.

굳이 멜핀과 실랑이하지 않은 것도, 내일 아침에 다시 설득할 것처럼 여운을 둔 것도 그 이유였다.

“모험 같네. 재밌겠다.”

덱스는 애초에 별생각이 없는 듯했고.

“난 모르겠다….”

줄리앙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 * *

광산 내부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

수십 년간 미스릴과 철광석을 캔 광산인 만큼 수많은 줄기가 거미줄처럼 얽혀 자칫 길을 잃기 쉬었다.

지도가 없다면 말이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는 왼쪽인가.”

레오가 몰래 챙겨 나온 지도를 보며 방향을 잡았다.

“이건 또 언제 챙겼어?”

“기본 아니겠냐?”

덱스가 라이트로 불을 밝혔다.

다행히 광산 내부에는 이곳저곳에 표식이 많았고, 지도와 비교해가며 이동하면 헤맬 걱정은 없어 보였다.

한 시간가량 움직인 끝에 미믹 슬러그가 자리 잡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작업장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일직선으로 나 있는 통로.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울퉁불퉁한 암석의 벽과 바닥과 천장뿐.

수상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멈춰.”

하지만 오러안으로 바라보는 레오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부터 막장까지의 약 수십 미터 공간, 그 전체가 미믹 슬러그의 영역이라는 것을.

“틀림없이 미믹 슬러그야. 여기부터 놈의 뱃속이라고 생각하면 돼.”

“뭔가 보이는 거야? 지금까지 지나온 통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클라인이 신기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무리 찡그리며 보아도 보이는 것은 암석뿐이다. 육안으로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불을 붙여 보면 확실하겠지.”

“그러면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두 마법사가 나설 차례.

“사방에 불을 일으켜서 안쪽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클라인은 전위에서 둘을 보호해 줘.”

“알겠어.”

“어렵지 않지.”

덱스가 먼저 불꽃을 일으켰다.

통로 전체를 두르기에는 조금 부족했지만 나머지는 줄리앙이 메웠다.

곧 통로 위아래, 좌우의 사방을 두르는 불의 띠가 만들어졌다.

“앞으로 조금씩 전진.”

두 마법사가 불꽃을 서서히 전진시켰다.

검을 빼 든 클라인이 두 마법사의 앞을 보호하듯 지켜 섰고, 레오는 조금 떨어진 뒤에서 전체 광경을 시야에 담으며 관찰했다.

꿈틀-!

얼마 안 가 반응이 나타났다.

통로를 얇게 덧씌웠던 무언가가 일렁이며 불꽃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 것이다.

“벽이 움직였어! 아니, 벽이 아닌가?”

“괜찮아. 이대로 조금씩 전진해. 클라인은 긴장 늦추지 말고.”

“알았어.”

천천히, 천천히.

뜨거운 불꽃에 움찔움찔 반응하며 벽을 뒤덮은 미믹 슬러그의 몸체가 뒤로 물러난다.

“잠깐 정지, 기다려.”

“다시 천천히 전진.”

그에 맞추어 레오가 두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린다.

열 걸음 전진하는데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서늘했던 통로는 어느새 후끈 달아올라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는데 뒤쪽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금방 들킨 모양인데.”

“공자님-!”

금방 멜핀의 모습이 나타났다.

횃불을 하나 들고 서둘러 쫓아온 모양새다.

“공자님! 위험합니다. 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멜핀 경, 진정하세요. 몬스터는 이미 눈앞에 있습니다.”

“예?”

그 말에 놀라 사방을 살피는 멜핀.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암석뿐이다.

“잘 보세요.”

“아아…!”

멜핀의 눈에도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불꽃에 반응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는 무언가가.

지난번 진입 때 몬스터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 끈적이는 점액질이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베어도 베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사방이 몬스터 같은 느낌이었다.

치지직-!

스스스스슥-!

처음에 얇디얇았던 그것은 뒤로 물러설수록 두터워졌고, 그 형체가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방의 통로 사방이 울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곧 놈이 깨어난다.”

레오의 신호.

지금껏 미믹 슬러그의 반응은 반사 행동에 가까웠다.

오랜만의 포식 활동 후 가수면 같은 휴식 상태였던 녀석은 위협을 느끼고 이제야 깨어난 것이다.

“그래.”

클라인은 기다렸다는 듯 오러 소드를 일으켰고.

화르륵-!

덱스가 그의 검날에 화염을 덧씌웠다.

“이거 멋진데.”

클라인이 자신의 검을 보며 탄성을 뱉었다.

도구에 원소 마법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고난도 마법은 아니지만 흔히 볼 수는 없는 광경이다.

자존심 강한 마법사는 자기 마법을 아티팩트 취급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족속이었기 때문이다.

“온다!”

동시에 통로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반투명한 점액질이 천장에서 줄줄 흘러내리더니 몽글몽글 뭉치기 시작했다.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로 뭉쳐진 점액질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덱스와 줄리앙을 향해 쏘아졌다.

팟-!

하지만 둘의 앞은 클라인이 지키고 있다.

불꽃을 두른 검에 양단되어 힘을 잃고 철퍽- 떨어지는 점액질.

“아직, 조금만 더.”

레오는 한발 뒤에서 오러안에 집중력을 더했다.

핵만 파괴하면 끝나는 싸움이다. 불꽃으로 압박해 나갈수록 미믹 슬러그는 동요할 것이고 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천천히 압박해 들어갈수록 미믹 슬러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커졌다.

파앗- 팟!

사방에서 점액질 공격이 이어졌지만 클라인은 완벽하게 제 역할을 했고.

“찾았다.”

마침내 핵을 찾아낸 레오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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