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광산의 몬스터 (3)
침대에 누운 멜핀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클라인 공자까지 갑자기 찾아오다니.
일단 내일 아침 좋은 말로 다시 한번 타일러서 보낼 생각이다.
‘이상하군, 당장이라도 광산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긴 하나 꽤나 외골수적인 면모도 가진 공자다.
광산 소식을 듣고 아카데미에서 당장 달려올 정도였으니까.
일단 내일 이야기하자는 말을 순순히 들어줘서 다행이었다.
…순순히 들어줬다? 그 고집 센 공자가?
“설마…!”
불길한 느낌에 벌떡 몸을 일으킨 멜핀.
일행이 묵고 있을 방으로 달려 내려가자 문 앞을 지키던 병사가 깜짝 놀라 반쯤 감고 있던 눈을 치켜떴다.
“공자님은 안에 계신가?”
“그, 그렇습니다. 제가 계속 불침번을 서고 있었지만 밖에 나오신 분이 없으니까요. 곤히 잠들어 계신 것 같습니다.”
“…….”
잠시 망설이던 멜핀은 결국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공자님,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멜핀입니다.”
조용하다.
똑똑똑.
“공자님! 멜핀입니다. 공자님? 공자님!”
목소리가 점차 커졌지만, 방 안쪽은 조용하다 못해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멜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철컥철컥.
잠겨 있는 문.
“열쇠.”
“아, 여기 있습니다.”
방은 휑하니 비어 있다.
공자는 광산에 진입한 것이 틀림없다.
‘클라인 공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만 막아야 한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몬스터를 해치우라는 명령도 아니고, 광산의 입구를 폐쇄하고 지키라는 것이 백작의 명령이다.
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공자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다급해진 멜핀은 최소한의 무장을 갖추고 곧바로 광산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주한 것은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 * *
치이이익-!
두 마법사는 침착하게 몬스터를 압박하고 있었다.
파앗-!
클라인 공자는 화염 마법을 유지하는 두 마법사를 완벽하게 보호했으며.
“찾았다.”
가장 뒤에서 전황을 조율하던 소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몬스터를 향해 뛰어들었다.
몬스터는 쇄도해 오는 소년을 향해 반투명한 점액질을 펼쳤지만, 그는 사방에서 감싸는 점액질을 거칠게 베어 내며 능숙하게 접근했다.
이어서 단 한 번의 찌르기가 몬스터의 핵을 관통했고.
동굴 전체에 펼쳐져 있던 점액질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숨에 몬스터를 격퇴한 것이다.
“이게 무슨….”
멜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 * *
모처럼의 주말이건만 지오르는 오전 내내 서재를 떠나지 못했다.
책상에는 상회의 서류가 그득하다.
평소 집에 일을 가져오는 건 선호하지 않지만 요즘 안건이 많다 보니 별수 없다.
사락, 사락-!
눈과 손이 바쁘게 서류를 훑고 넘긴다. 확인한 서류들이 책상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숫자를 확인하고 내용을 검토하면서도 머리 한구석에는 쉬는 날 샤를롯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이 자리했다.
‘며칠 전만 해도 집이 꽉 찬 것 같았는데.’
딸의 스승이 되어 준 덱스.
투덕거리면서도 항상 같이 있으려 한 레오.
거기에 험상궂어 보여도 꽤나 상냥한 웨어울프 무무카까지.
그들이 떠난 후 집이 더 휑한 느낌이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들.
그에 걸맞은 성적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소식에 다 함께 기뻐했다.
‘몇 년 후에는 나 같은 일개 상인이 눈높이를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겠지.’
미래의 이득을 위해 어떻게든 그들과의 인연을 끌고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접었다.
애초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인연이다. 오히려 보답해야 하는 건 이쪽이었다.
그런 와중에 투자를 도와 달라는 레오의 제안은 꽤 흥미로웠다.
똑똑.
“지오르 님, 황립 아카데미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지오르는 반색하며 편지를 받아 들었다.
아카데미라면 분명 레오가 보낸 것일 터.
분명히 지난번 이야기했던 투자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무슨 투자를 선택할지 궁금하군.’
흥미로운 표정으로 봉투를 뜯었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미스릴이다.
카미르 광산의 채굴 중단 소식과 실제 공급 부족 현실화로 미스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미 정상 시세의 두 배를 넘어섰지만 상승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투자가나 상인들 사이에서는 미스릴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돌 정도다.
지오르 또한 발 빠르게 미스릴을 일부 확보하고 차익을 거둘 적당한 때를 가늠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레오도 미스릴 매수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직감했고.
그 직감은 딱 절반만 맞아떨어졌다.
[현 시세 기준의 미스릴 매도권 매수, 만기일 1주일~한 달 이내, 투자금 전부, 오늘 당장 매수 요망.]
말 그대로 투자금인 60실버로 미스릴 매도권을 구매하겠다는 내용.
“매수권도 아니고 매도권이라니?”
지오르는 문구를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몇 번을 확인했지만 쓰여 있는 것은 분명 매도권이다.
“도대체 왜?”
매도권은 말 그대로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는 권리이다.
만기 시점에서 실제 미스릴의 시세가 설정된 매도권의 시세보다 높다면 매도권은 말 그대로 휴지 조각이 된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권리 따위, 아무도 돈을 주고 사지 않을 테니까.
레오의 편지 내용은 말 그대로 미스릴 시세가 폭락해야 가치가 생기는 권리에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지금 시장의 흐름과 정반대 방향에 배팅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혹시 내가 놓친 정보가 있나?’
지오르는 상인회를 통해 최신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광산은 여전히 폐쇄된 상태였고, 미스릴 가격은 그사이 더욱 올랐다.
반다이트가에서 마탑에 도움을 청했으나, 마탑이 뻣뻣하게 군다는 소문도 변함없다.
수도의 주요 공방은 모두 미스릴 부족으로 납기를 무기한 지연시켰다.
발 빠른 일부 상인들은 미스릴을 구하려 제국 바깥으로 나갔지만 아직 특별한 소식은 없다.
여전히 무엇 하나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중 지오르가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는 소식은 마탑의 움직임이다.
지식의 보고라 불리는 마탑이라면 광산의 몬스터에 대한 힌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움직이기 직전을 기점으로 시세가 꺾일 확률이 높다.
물론 마탑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세는 다시 폭등하겠지만 거기에서부터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
‘지금까지 마탑의 행태를 보면 대답을 주는데 최소한 일주일 이상, 보수적으로 봐도 최소 나흘은 움직이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레오는 ‘오늘 당장’이라며 서두를 것을 지시했다.
이는 조만간 미스릴 수급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견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할 수 없군.”
레오가 요구한 것은 투자의 손과 발이 되어 달라는 것.
지오르의 조언이나 판단은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 달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 * *
지오르는 즉시 상인회 본점의 거래소로 향했다.
거래소에는 여러 시세를 알리는 거대한 나무 판넬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중 한쪽이 매매권 거래소.
밀, 콩, 감자 같은 농산물부터 금, 은, 철 같은 자재의 현물과 매수, 매도권 가격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5분마다 바뀌는 숫자판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그중 단연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은 미스릴 쪽이었다.
미스릴의 시세는 오늘 하루만 해도 1할 이상 상승했다.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수권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매도권 가격은 쭈그러들 대로 쭈그러들었다.
“후….”
시세를 잠시 바라보던 지오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손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를 비우고 그저 손발로서 움직여야 할 때였다.
60실버를 반으로 나누어 만기일이 2주와 한 달 남은 매도권을 각각 구입했다.
창구의 직원이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거래소의 창구 직원은 거래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묻거나 조언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때문이다.
“후우….”
지오르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팔랑팔랑한 권리 증서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와아아아-!”
“또 올랐어!”
“내 말이 맞지? 미스릴은 무적이야!”
“아무래도 더 투자해야겠어. 어디 돈 빌릴 곳 없을까?”
“빌려서 투자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아? 지금이 고점이면 어떡해?”
“병신아, 지금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따서 갚으면 되는 거잖아!”
십수 분 동안 세 번이나 바뀐 미스릴의 시세판.
모두 연속적인 상승이다.
투자자들의 환호성도 이어졌다.
적어도 이 거래소 안에서 하락에 배팅한 투자자는 지오르 혼자인 것 같았다.
‘아무 근거 없이 이런 투자를 선택할 리 없어.’
지오르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레오는 굳이 만기일이 짧은 것을 지정했다.
만약 그가 운에 기대는 투자를 하려고 했다면 반대로 만기일이 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오늘 당장 거래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내일이라도 지금의 추세가 무너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뜻.
이러한 방식으로 레오의 요청을 거꾸로 해석하면 이랬다.
[당장 내일이라도 미스릴 시세가 꺾이며 추세가 바뀔 수 있다.]
지오르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광기를 재료로 폭등하는 미스릴의 시세.
그것을 단번에 반대 방향으로 꺾을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미스릴의 수급이 해소되어야 한다.
제국 밖에서 대량의 미스릴을 구매하거나 제국에 새로운 미스릴 광산이 발견되거나… 아니면 카미르 광산이 정상화되거나.
그중 짧은 기간에 가장 확실히 시세를 꺾을 수 있는 사건은 광산 정상화일 것이다.
“으음….”
마탑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그 전에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까?
지오르는 자신이 확보해 놓은 미스릴에 생각이 미쳤다.
이미 수익권을 즐기고 있는 상황. 며칠 더 보유하면 추가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레오의 과감한 투자가 옳다면 지금 당장 처분할 때였다.
한참을 더 고민하던 지오르는 이윽고 거래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집이 아니라 미스릴을 보관하던 상회 금고 쪽이었다.
* * *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
피곤했던 레오 일행은 마차가 출발하자마자 금세 곯아떨어졌다.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클라인은 드르렁 소리를 내며 잠든 레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야.’
검술 재능은 독보적이지만 그 외에는 평범하다고 여겼다.
오히려 진중하지 못하고 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타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겪을수록 새로운 면모가 보인다.
일견 거칠어 보이지만 자신만의 기준을 확실히 지켰고, 평민이면서 귀족 사회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
몬스터에 대한 박식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연륜과 경험이 필요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내보이기도 했다.
광산의 일을 마무리할 때도 그랬다.
잠시 시간을 돌려 미믹 슬러그를 소탕한 직후.
“공자님, 정말 다치신 곳 없으십니까?”
“정말 괜찮다니까요. 다친 사람도 없고 몬스터까지 해결되었으니 아버님도 기뻐하시겠지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클라인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싶은 생각에 들떴고 그 기분을 감출 생각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 멜핀의 미묘한 표정은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다행이야.’
멜핀 역시 큰 걱정을 덜어 안도했지만, 얼굴에는 옅은 그늘이 섞여 있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지만, 이들을 진입하게 둔 것은 명백히 자신의 과실이다.
물론 광산이 정상화될 것이니 자신이 받을 질책은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이다. 그러니 묵묵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어서 아버님께 이 소식을 전해야지.”
“그래, 하지만 내용을 조금 바꿔서 전하는 게 났겠다.”
“응? 뭘 바꿔?”
레오의 말에 클라인이 눈을 꿈벅거렸다.
“이대로 소식을 전달하면 기사님이 질책받을 거 아니냐. 결과가 좋아 백작님께 질책할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백작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
“아….”
클라인은 그제야 레오의 말뜻을 이해했다.
가신이 주군의 명령에 반한 것 자체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결과가 좋다고 해서 문제 삼지 않는 선례를 만들었다가는 향후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멜핀은 질책받을 것이다.
다름 아닌 자신의 고집 때문에.
“우리가 막무가내로 진입한 시점에서 이미 폐를 끼친 거야.”
“…멜핀 경, 미안합니다.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요.”
“공자님, 저는 괜찮습니다. 애초에 제가 처음에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잘못입니다. 마음 써주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멜핀은 부드러운 눈으로 클라인과 레오를 바라보았다.
어린 공자의 한마디에 마음속 작은 번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질책당하면 어떠랴, 미래의 가주가 이렇게 잘 자라 주었는데.
“그리고 레오 도련님, 편하게 멜핀이라 불러 주십시오.”
“낯간지럽게 도련님이라뇨. 저 귀족 아닙니다. 그냥 평민이라고요.”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공자님의 친구분이지 않습니까.”
호의가 가득 담긴 멜핀의 눈빛.
레오는 애써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했다.
그냥 빨리 끝내고 가고 싶다.
“…어쨌든 이렇게 말을 맞춰 보자고.”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